이번 베를린 일정을 짜다보니 라이프치히가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루 이틀 정도 다녀와도 좋겠다 싶어서 일정에 넣어 보았다. 처음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아름다운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를 엮어서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라이프치히에서 바이마르까지 또 한 시간 여면 닿을 수 있는 거리라는 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번 독일 여행 때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남쪽에서부터 괴테뮤지엄을 비롯해 괴테의 흔적을 따라 여행했었는데 그 완결점이 바이마르라는 점에서, 괴테의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게다가 이곳엔 도서관을 탐하는 내가 보고 싶었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도 있고, 더 나아가 바흐의 유적으로 가득하니 이왕이면 그곳까지 다녀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민 끝에 드레스덴을 건너뛰고 라이프치히를 거쳐 바이마르로 갔다 베를린으로 복귀하는 2박3일 일정을 짰다.
라이프치히역에 내리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도 쌀쌀했다. 걸어서 도심을 여행하려니 뭔가 막막한 느낌이 들었는데 투어버스가 관광객을 호객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얼른 버스 투어를 결정했다. 모든 시티투어 버스가 그렇듯 이 버스 역시 하루종일 타고 내렸다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이어서 중간중간 원하는 곳에 내렸다 타면 되겠다 싶었다.
결론적으로 이 선택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비교적 크지않은 라이프치히 도심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도심만 빙빙 돌던 버스가 가장 멀리까지 나간 지역에 출판인쇄 산업단지가 있었는데 우리 파주출판단지와 너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
라이프치히 여행에서 그동안 내가 보았던 어떤 예술가의 집보다도 가장 좋았던 <멘델스존 하우스>를 만났다.
이곳은 애초 여행 계획에는 없었는데 아마도 내가 살펴봤던 여행 가이드에 중요하게 나와있지 않은데다, 뮤지엄을 굳이 찾아갈 만큼 멘델스존 음악을 아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역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 도중에 멘델스존 하우스가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고 지나는 길이니 한 번 들러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이곳은 너무나 좋았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유명인들의 뮤지엄과 생가들은 웬만큼 찾아다녀봤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문학관 말고는 그렇게 큰 감동을 주는 예술가 뮤지엄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대개의 생가 박물관이 생전에 살았던 집을 있는 그대로 꾸며놓고 평소 사용했던 물품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형태 아닌가. 그나마도 제대로 전수 관리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갖춰있지 않고, 화가의 생가에 그 화가의 걸작 작품 하나도 제대로 걸려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멘델스존하우스는 달랐다.
적어도 음악가의 뮤지엄이 어때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워낙 은행가 집안이었던 멘델스존 가문이 부유했기에 대저택과, 그가 남긴 일상의 흔적도 풍요롭다. 그 자신이 어릴 때부터 모든 학문에 뛰어났던 천재적인 기질을 갖춘데다 헤겔, 하이네 등 당대의 거장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고 바흐를 세상에 널리 알린 뛰어난 기획자였으며 괴테와는 예술적 교류를 나눈 절친이었다.
슈베르트나 베토벤 같은 삶의 고통을 겪지 않았던 이런 배경때문에 멘델스존 음악은 밝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낭만주의 경향을 띤다고 소개되어 있다.
집안 곳곳의 방도, 전시실도 품격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멘델스존은 유대인 가문이었는데 이 저택과 유산들은 전쟁 때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그렇진 않았을텐데 잘 단장된 집은 아름답기만 하다. 당대의 미녀로 소문났던 여인 세실과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고 집안 곳곳엔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도르레 방식을 활용한 전시였다. 멘델스존이 쓰던 악기, 일기, 악보와 노트 등 유서깊은 물건들이 이중으로 선반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버튼을 누르면 선반이 움직이면서 시선이 닿지 않는 아래와 맨 윗 부분 전시물들도 눈높이에서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굳이 이런 장치까지 필요할까 싶었는데 뭔가 재정상황이 매우 부유한데서 오는 여유 같은 것일까...잠시 생각해보았다.
멘델스존하우스에서 가장 감동했던 곳이 바로 이 디지털 음악감상실이었다.
이곳은 내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각종 악기들을 조율해가며 원하는 음색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는데 멘델스존 음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악보가 나오고 여기 녹음된 음악이 언제 누구의 지휘 아래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는지도 모두 명기되어 있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을 틀어놓고 그 음악을 내 맘대로 다시 재구성해볼 수 있다니...나같은 음악 문외한에겐 별 필요도 없는 호기심거리에 불과하겠으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얼마나 멋진 체험일까. 이같은 체험 및 음악감상 공간을 갖춘 뮤직 라이브러리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더우기 최고의 스피커에서 뿜어져나오는 음향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이곳에서 몇 시간이라도 앉아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라이프치히는 멘델스존의 음악 뿐 아니라 클라라 슈만이 태어난 곳이며 슈만과 리스트가 활동했던 곳이고 바흐의 음악인생, 괴테의 삶과 문학이 녹아있는 곳이다.
그 음악적 전통이 아직 살아있는 음악의 도시로, 뮤지엄 내 작은 홀에서도 음악회가 종종 열린다고 해서 부러웠다. 이 유서깊은 홀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고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 내가 함께있는 상상을 해본다.
집안이 오케스트라를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던 멘델스존의 집에선 음악회가 자주 열렸고 이때 내로라 하는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들고 석학과 예술가들이 인문정신과 음악과 예술을 논했다고 하는데 그 분위기를 재현해놓은 방에선 마치 타임슬립을 하듯 그시절 옷을 입고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현장에 설치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내 폰으로 사진을 전송해주는 큐알 서비스가 있어서 우리는 한참동안 19세기 코스프레를 하고 놀았다.
이런 부와 명성을 갖고도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멘델스존의 삶은....그의 음악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만 한 것이었을까? 그의 부친은 유대인이었지만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럼에도 베를린에선 유대인 차별을 견디기 어려워 라이프치히로 이사했다고 한다. 라이프치히는 상대적으로 유대인에게 관대한 편이었고 멘델스존은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아 유럽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라이프치히를 유럽 음악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게반트하우스에는 멘델스존 동상이 세워져있다.
여행을 한다는 건, 이렇듯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당대 슈만이나 리스트 만큼이나 명성이 있고 모차르트와도 비견된다고 하는 음악가 멘델스존을 겨우 결혼행진곡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가 그의 뮤지엄을 방문함으로써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라이프치히가 왜 음악의 도시인지, 게반트하우스가 왜 유럽 명문의 공연장인지를 알게 되었다.
촉촉히 비 내리는 정원에 서서 아름다운 저택을 올려다보며 예술이, 시대가, 후손들에게 남겨주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서른 한 살에 요절한 슈베르트는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방랑의 삶을 살았고 그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때로 처연하고 애잔하며 삶의 비애와 애수를 느끼게 함으로써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지 못할 진한 감동을 남긴다. 멘델스존의 삶을 엿보고 온 지금 다시 듣는 그의 음악은 내게 어떤 빛깔을 남겨주게 될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그의 음악을 들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