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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우금산 개암사
2025년 12월 14일(일요일)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백제시대 고찰입니다. 개암사(開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634년(무왕 35)묘련(妙蓮)이 창건하였습니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중수하였고, 1276년(충렬왕 2) 원감국사 때는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1636년(인조 14)에 계호(戒浩)스님이 다시 중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암사 뒤, 우금암(禹金巖)을 포함한 길이 3,960m의 우금산성(주류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합니다.
개암사 일주문앞 1칸 다포계 맞배지붕입니다.
1994년 건립하였고, 화강암으로 조각된 거북을 받침돌로 원주로 세우고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얹고 화려한 5출목의 상부에 정면과 배면에 6개씩 12수의 십이지상서수(瑞獸)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사찰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첫번째 산문으로 주차장 가까이 위치하며, '능가산개암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능가산개암사(楞伽山開岩寺) 편액
능가산의 이름은 능가경(楞伽經)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화되었다 하여 이루 산 이름을 능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능가산은 예지명으로 지금은 변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주문의 초석은 귀부(龜趺)로 되어있고 기둥은 연화문과 용문 등 여러 문양으로 조각하였는데 대웅전 기둥을 옮겨 놓은 듯 합니다.
神光不昧萬古徽猷(신광불매만고휘유) 사람의 본성은 만고에 아름다운법
入此門內 莫存知解 (입차문내 막존지해) 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내지 마라.
전나무숲
이 곳 전나무 숲은 약 300m에 이르며 평균 수령은 150년이상으로 추정합니다. 전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서 발생되는 피톤치드는 나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자연향균 물질로 스트레스 완화, 진정 및 향균작용, 심폐기능 강화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불이교(不二橋)
일주문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150년 넘은 전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을 걷다보면 개암사 경내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다리입니다.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 즉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사천왕문과 넓은 개암사 경내가 펼쳐지게 됩니다.
사천왕문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삼문(삼해탈문) 중 두 번째 산문으로 사찰 수호의 사천왕인 지국천왕(동), 증장천왕(남)과 광목천왕(서), 다문천왕(북)이 내부 양쪽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편액
사천왕문(四天王門) 편액은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지낸 송원당 설정 대종사(松原 雪靖 1941~ ) 의 글씨입니다.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북방 다문천왕은 삼지참과 탑
남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좌)은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사진에서는 묘하게 잘려버린 우측의 북방을 담당하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의 손에는 탑이 있습니다.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 남방 증장천왕은 검
4대천왕의 지물(持物)은 경전마다 조금씩 달라요. 이곳에서는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좌)이 비파를 들고 있으며,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우)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방 광목천왕
인간세계의 선과 악을 살펴 죄 지은 자를 벌로써 다스리고 반성하게 하는 천왕입니다. 크고 넓은 눈을 가진 천왕으로 수미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백은타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킵니다. 한문으로는 추목(醜目), 악안(惡眼)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광목천왕이라고 불리어집니다.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죄인에게 심한 벌을 내려 고통을 느끼게 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매서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광목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습니다.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모습입니다.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으며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방 다문천왕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암흑계를 관리합니다.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를 수호하는 천왕으로 비사문천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이라 불립니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암흑계에 머무는 악령의 우두머리로서 재물과 복덕을 주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다문천왕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는 호법신이 된 것입니다. 다문천왕은 지물(持物)로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입니다.
불교의 수많은 신장상 중에서 사천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중요한 표식이기도 합니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 다는 뜻에서 얼굴이 검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동방 지국천왕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천왕입니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들 중에서 동쪽 영역의 황금타를 관장하는 천왕입니다. 지국천왕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며, 늘 인간들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땅을 지켜줍니다.
부처님 또는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국천왕에에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명을 받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국(持國)천왕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입니다.
동방 지국천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하여는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라니집경에 의하면 동방지국천왕은 왼손에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손을 구부려 보주를 쥔다고 하고, 일자불정륜경에 의하면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올려드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비파를 든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방 증장천왕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주는 천왕으로 수미산 세계의 남쪽을 관장합니다. 수미산 중턱의 남쪽 영역 류리타를 관장하는 천왕입니다. 증장천왕은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을 소생시키고 덕을 베풉니다. 한문으로는 증장(增長)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준 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웠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갑옷을 입었습니다. 증장천왕의 지물은 대체로 칼을 쥐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청허루
정면 5칸, 측면 4칸 주심포양식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앞에서 보면 1층이 중층 누각으로 누각 밑의 계단을 오르면(누하진입) 대웅보전 앞마당이 나오며 일주문, 사천왕문 다음에 오는 세 번째 산문인 불이문 역할을 하는 건물입니다.
청허루(淸虛樓) 편액
하산 서홍식 합장(荷山 徐弘植 合掌)의 글씨입니다.
청허루의 뜻을 해석하면 잡념이 없이 맑고 깨끗하다. 번뇌에 사로 잡히지 않고 몸을 정갈하고 단정히 할 수 있다.
청허루
청허루에서 바라본 개암사 풍경
좌측 월성대, 우측 안심료
안심료(安心寮)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개암사의 모든 사무 업무를 총괄하고 신도와 관련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종무소입니다.
안심료(安心寮) 편액
월성대(越聖臺)
정면 7칸, 측면 4칸 팔작지붕입니다.
불교 의례, 특히 법회나 불공을 드릴 때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개암사죽염
개암죽염은 약 1,300여년전 전라북도 변산의 우금바위 부사의방에서 진표율사께서 제조방법을 전수한 이래 주로 불가의 스님들 사이에서 민간 요법으로 전해되어 온 건강한 소금입니다.
청정해역인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곰소염전에서 생산된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3년 이상 자란 대나무 통 속에 넣고 황토 경단으로 마개를 한 뒤 소나무 장작만을 연료로 사용하여 고온으로 구워 내기를 8번 반복하고, 마지막 9번째는 소나무에 송진을 뿌려 가열 온도를 소나무에 송진을 뿌려 가열 온도를 더욱 올리게 되면 소금이 녹아 훌러내리게 되는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른바 "자색보물소금"이 탄생하게 됩니다.
지장전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고려시대 작품인 청림리 석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23호)을 주존으로 하며, 이를 본뜬 소형 지장보살상들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
지장보살을 독존으로 모시고 뒤에는 지장보살과 같은 형태의 작은 지장보살 1,000기를 봉안하였습니다.
지장전 석불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맞대어 보주(여의주)를 감싸 쥔 모습입니다. 지장보살 앞에 자리잡고 '지장보살' 명호를 반복적으로 독송하며 죄업 소멸과 병고 소멸을 기원합니다.
청림리 석불좌상(靑林里石佛坐像)(전북유형문화재 123호)
일명 청림사(靑林寺) 절터로 불리는 곳에 있었던 불상으로, 연꽃잎을 조각한 8각형의 대좌 위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오른손 바닥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손바닥에 보주를 감싸쥐고 양 엄지 손가락을 맞댄 상태로 앉아 있는 모습이며, 원래 목과 몸체 부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근래에 복원한 것입니다.
지장시왕탱화
지장보살을 중앙에 좌우레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주위에 시왕이 배치된 지장시왕탱화는 칠성탱화와 함께 1921년에 조성되었습니다.
대웅보전
대웅보전(보물292호)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 팔작지붕의 건물입니다. 높은 장대석 기단, 민흘림 원기둥, 굵고 안정감 있는 우주, 주두의 둥근 밑면, 내부의 우물마루, 우물천장, 불단 위 정자각의 화려한 닫집 등의 특징을 보이는 중심 불전으로, 주존불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있으며, 곳곳에 용의 머리와 봉황이 새겨져 있습니다. 백제의 안정감, 조선 중기의 다표의 장중함,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경향을 모두 볼 수 있는 건축물입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대웅보전 편액은 조선 후기 서예가 원교 이광수(1705~1777)의 독특한 서체인 동국진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석가삼존불상 뒤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입니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며, 보현보살은 실행을 상징합니다.
개암사 대웅전 석가삼존불상
개암사 대웅전 석가삼존불상은 비록 조상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발원자와 만든 조각승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17세기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영철이 제작한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개암사 대웅전 석가삼존불상을 통해 1636년 대웅전 조성부터 1657년 삼존불 개금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개암사 중창 불상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17세기 중엽 수연을 위시한 일군의 조각승들이 만든 불교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움츠린 듯한 상체와 머리, 몸에 비해 큰 머리가 특징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 및 조각승의 계보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석가모니불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81cm 이며, 얼굴은 사각형이고 입 주위를 파내어 꽉 다문 듯한 입 모양을 표현하였습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모두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 정상부가 솟아 있습니다. 목은 두꺼우면서 잛습니다. 어깨는 앞에서 보면 당당하고 다부져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움츠리고 있으며 머리도 약간 숙인 것 같습니다.
왼쪽 어깨 위에는 둥근 옷 주름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대의(大衣) 안에 입은 승지기 상단에는 단순한 굴곡이 있습니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중앙에서 양 무릎 쪽으로 굵은 양각의 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 다리 사이에는 'Ω'형태로 동그랗게 말린 넓은 옷 주름이 곡서을 이루며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좌우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점, 그리고 영락(瓔珞)이 부착된 점을 제외하면 본존불의 형태와 같습니다. 다만, 무릎 위에 올린 손은 맨살을 드러낸 본존불과 달리 대의 자락이 한번 감싸고 있으며, 승지기 상단 옷 주름이 좀 더 자연스럽고 양 다리에서 무릎 쪽으로 새겨진 옷 주름이 촘촘합니다.
입 주변을 깊게 조각하여 입체감을 살린 얼굴의 표현이나 두다리 사이에서 무릎 쪽으로 가로줄을 새긴 옷 주름,
'Ω'형태로 중첩되면서도 곡선을 보이는 무릎 사이 옷자락의 표현 등은 17세기 초반 현재의 전라북도 지역을 근거로 점차 경기도와 황해도 지역은 물론 전라남도 지역등 서해안 전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 수연(守衍)과 영철(靈哲)의 보살 특징과 같습니다. 특히 개삼사 대웅전 석가모니불상은 형태와 얼굴 모습, 옷 주름을 새기는 방식이 1639년(인조 17) 수연을 수화사로 하고 영철이 조각에 참여한 예산 수덕사 대웅전의 목조 삼방불 좌상과 유사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나 개암사 대웅전 석가모니불은 수덕사 불상과 달리 턱이 뾰족하고, 양 다리 사이의 옷자락이 유려한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오히려 영철이 수화사로 참여하여 1649년(인조 27)에 만든 서울 화계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유사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개암사 대웅전 석가삼존불상은 영철의 주도로 1640년(인조 18)대 무렵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닫집
개암사 대웅보전은 가장 많은 용조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정에는 9마리의 용이 수미단의 부처님을 호위하듯 애워싸고 있습니다. 좌우 축량에 두 마리, 정면 어칸에 세 마리 그리고 네 마리는 귀포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닫집안에 세겨진 세 마리를 더하면 모두 12마리의 용이 화려하고 강렬한 모습으로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어칸과 좌우 축량의 용조각
용조각
법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불(護佛)의 역할 뿐 아니라 물을 지배하는 용을 조각하여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의 화기(火氣)를 누르는 역할을 겸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곳곳에 용의 머리와 봉황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질물로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칠성탱화
치성광여래를 중앙에,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주위에 칠여래가 배치된 칠성탱화는 1921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신중탱화
동진보살을 중앙에, 상단 좌우에 체석천과 범천을 배치하였습니다.
법고
영산회괘불도(靈山會掛佛圖) (보물 제1269호)
영산회괘불도는 세로 1208.0cm, 가로 868.5c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불화로, 총 25폭의 삼베를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이어서 바탕을 만든 후 불·보살을 그리고 채색했다. 총 무게는 181kg에 이릅니다.
화면의 중앙에는 영산교주 석가모니 부처님이 서 계시고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위치하며, 두 협시보살의 뒤쪽으로 아미타여래와 다보여래,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시립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성은 불교 의례서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 1661)에 근거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오른손을 무릎까지 늘어뜨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보인 채, 가슴 위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약지를 마주 잡을 듯한 모습입니다.
본존 좌측의 문수보살은 양손으로 여의를 받쳐 들고 오른쪽 어깨를 석가여래보다 약간 앞쪽으로 내민 채 서 있으며, 보현보살은 양손으로 연화 가지를 잡고 석가여래보다 다소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이렇듯 두 협시 보살들이 약간씩 부처님의 앞뒤로 표현되어 있어 시각적으로 존상들 사이의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마치 부처님께서 ‘영취산 설법’을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시는 듯 보입니다.
채색은 붉은색, 황토색, 그리고 녹청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그 외에 군청색과 백색 등도 곁들였습니다. 붉은색은 불·보살의 가사와 석가여래의 두광 테두리에, 녹청과 군청색은 가사 일부와 광배의 내부 등에, 그리고 황토색은 신체에 사용했습니다. 석가여래를 비롯하여 권속들의 상호는 눈썹과 속눈썹까지 가는 먹선으로 처리할 정도로 상당히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또한, 원문, 국화문, 모란당초문, 금강저문을 비롯해 다양한 문양들을 가사 곳곳에 빼곡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의외로 석가삼존이 시야에 잘 들어오며 명확히 구분됩니다. 이는 구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채색의 적절한 운용과 밀접한 연관을 지닙니다.
개암사 괘불화는 1749년에 스님들 70여 명과 재가 신자 180여 명이 동참, 발원해 제작했습니다. 한 점의 불화 불사를 위해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이 동참한 것만 보아도 당시 개암사에서 괘불화의 제작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주자들의 이름 앞에는 기포(基布, 바탕감인 삼베), 채색 (彩色, 안료), 견사(繭絲, 비단), 그리고 공양(供養, 공양물) 등 시주 물목을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림은 수화사 의겸스님을 비롯해 총 13인이 공동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외에도 최종 감수를 맡은 증명 스님, 불화 제작을 위한 권선을 독려하고 비용을 조달하는 화주 스님, 당시 주지 스님의 법명도 기록했습니다. 괘불화를 현괘하기 위해 필요한 괘불지주도 함께 만들었으며 현재도 사찰에 석주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물은 이 영산회괘불도 제작을 총괄한 화사 의겸스님입니다. 의겸스님은 1713년부터 1757년 무렵까지 전라도 및 지리산 인근을 중심으로 활동한 18세기의 대표적인 화승입니다. 석가설법도를 비롯한 여래설법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십육나한도, 그리고 괘불화 등 다양한 주제의 불화를 두루 섭렵했습니다.
괘불화는 총 5점을 제작했는데, 그중 개암사본이 마지막 작품입니다. 전작들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방법을 총동원해 완성도를 높이려 했던 것이 화풍을 통해 고스란히 확인됩니다. 더욱이 화기를 보면, 의겸스님을 존숙(尊宿)이라고 칭하고 있어 당시 스님의 명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암사 괘불화 그림에는 상호 중 눈썹과 속눈썹 등이 매우 세밀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밑그림에는 윤곽만 그려져 있어 이 부분 역시 채화 과정에서 그려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종이를 몇 번씩 겹쳐 바르거나 윤곽선을 고치면서 수정했으며 동일한 채색이 필요한 곳에 표시를 해 두기도 하였다. 밑그림에 쏟은 공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1749년 종이에 먹선으로 그린 개암사 영산회괘불도 초본
개암사 영산회괘불도는 초본(草本, 밑그림)도 남아 있습니다. 괘불화의 초본으로는 유일합니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전체 화면의 크기, 불보살의 배치와 세부 크기, 그리고 존상들 사이의 간격도 같습니다.
따라서 이 초본은 수화사 의겸스님이 그린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초본을 보면, 그의 필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화의 밑그림이 채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밑그림에는 일체의 문양이 그려져 있지 않아 문양은 채화 과정에서 추가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산신각
정면 3칸, 측면 1칸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산신령을 봉안해 지역 수호와 풍년을 기원하는 전각으로 봄마다 산신대재가 열리는 등 불교 행사가 진행됩니다.
산신각(山神閣) 편액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된 산신령이 모셔져 있습니다.
용이 조각된 지팡이를 쥐고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앉아 있는 산신상은 전각 정면 어칸을 바라보지 않고 남쪽 벽을 향하고 있습니다.
산신상 뒤에 새로 제작된 산신탱화가 걸려있습니다.
관음전
정면 3칸, 측면 2칸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 동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본존인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관음전(觀音殿) 편액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습니다.
남순동자는 연꽃을 두 손으로 감싸듯 받쳐 들고 서 있고, 해상용왕은 두 손으로 여의주를 받쳐 들고 서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화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 한 관음보살이 아미타여래 9품인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고 기다란 연꽃 가지를 쥐고 있습니다.
해상용왕, 남순동자
남순동자는 연꽃을 두 손으로 감싸듯 받쳐 들고 서 있고, 해상용왕은 두 손으로 여의주를 받쳐 들고 서 있습니다.
응진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본존 석가모니불과 그의 제자인 16나한상을 봉안한 전각으로 각 나한의 수행상이 사실적 조각으로 표현된 조선 후기 나한전 양식의 걸작입니다.
응진전(應眞殿) 편액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합장한 채로 서서 협시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가섭의 얼굴은 인자한 표정과 자애로운 자태로 나타나 있고, 두 손은 가슴에 모아서 손가락을 양쪽으로 굽혀 맞대고 있습니다.
아난존자는 수행자임에도 여성들이 수없이 따랐을 정도로 준수한 외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미모에 크고 살짝 들어간 눈, 반듯한 이마, 잘생긴 콧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난존자와 가섭 존자의 대비는 또한 인간의 늙어감을 여실히 보여주어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개암사 응진전십육나한상(전북유형문화재 제179호)
'발원기'와 '사적기' 등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중앙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봉안하였으며, 그 좌우오 금강경, 새끼호랑이, 염주 경전 등을 들고 다양한 자세를 취한 나한들을 배치하였는데, 92~98cm 정도 크기의 나한들은 각이 진 턱에 넓적한 머리모습 등 강인한 인상을 주며, 16나한이 지닌 단아한 형태와 부드러운 양감 등은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개암사 풍경
정중당
정면 5칸, 측면 3칸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깨끗한 무리가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불교 법회나 의식을 치르는 강당으로 사용됩니다.
정중당(淨衆堂) 편액
범종각(梵鐘閣)
사방 1칸 다포계 팔작지붕입니다.
동종이 달려있는 종각으로 전에 있던 곳인 대웅전에서 종각으로 옮겨온 것이며, 청동 범종으로 맑고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개암사 동종(開岩寺銅鐘) (전북유형문화재 제126호)
전체 높이 89cm, 입지름 61.5cm의 조선 후기(1689년 숙종 15년) 범종으로, 종의 웃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고, 어깨 부위에는 사각형으로 띠를 돌렸으며, 그 안에 그린 원에 범자를 새겨 놓고, 일부는 이 사각형의 구획안에 2행의 한자 명문을 양각하였습니다.
어깨 아래쪽으로는 9개의 꽃무늬를 한 유두를 감싼 4각형 모양의 유곽과 구름 위에 천의를 입고 두 손으로 꽃을 받든 보살입상이 4개씩 교차로 배치되어 있으며, 종 입구는 띠를 두르고 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용뉴와 용통
견대는 4각형의 구획 안에 다시 원을 구획하여 내부에 범자를 새겼으며, 그 아래 4개의 유곽과 4개의 비천보살입상을 교차로 배치하였습니다.
유곽 사이에는 두 손으로 연꽃가지를 쥐고 있는 비천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천보살입상
하단부에 돋을새김 형태로 양각된 명문(銘文)을 통해 제작 시기 및 봉안된 사찰, 종의 무게, 시주자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