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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이라는 직접적 칭호: 구약에 총 34회 선포됨.
'하나님의 영광': 구약에 6회, 신약에 23회 등장하여 총 29회 선포됨.
'그의 영광' (하나님을 지칭): 구약에 21회, 신약에 9회 등장하여 총 30회 선포됨.
'내(나의) 영광' (하나님이 친히 소유격을 쓰심): 구약에 25회, 신약에 5회 등장하여 총 30회 선포됨.
'주의 영광': 구약에 10회, 신약에 5회 등장하여 총 15회 선포됨.
'주의 영화로운 이름': 성경에 2회 등장함.
'그에게 영광이' (송영의 형태): 신약에 9회 선포됨.
'영광을 돌리다' (하나님께 드리는 동사형): 성경에 총 18회 사용됨.
'영화로운' (하나님을 수식하는 형용사): 성경에 25회 사용됨.
'영화롭게' (하나님이 행하시거나 영광 받으시는 동사적 표현): 성경에 총 30회 사용됨.
인간적인 부귀영화나 사물의 광채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다 제외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그분의 신성과 통치를 드높이는 영광 및 영화의 빈도만 합산해도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무려 242회에 달합니다.
이 방대한 숫자가 가리키는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영광의 진짜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영광이란 본질적으로 창조주께만 온전히 돌려져야 마땅한 거룩한 가치라는 사실을 성경은 암시가 아니라 매우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실로 아름답고 웅장한 성서적 증거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구체적인 통로들
그렇다면 성경 문맥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어떠한 통로와 사건들을 통해서 이 땅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선포될까요?
첫째,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Power)'을 통해 영광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무한한 권능과 그분이 행하시는 전능한 힘은 외적인 영광으로 즉각 치환됩니다. 출애굽기 15장 6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권능'은 히브리어로 힘을 뜻하는 '코아흐(Koach)'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막강한 전능의 힘이 곧 오른손의 영광으로 발산되었다는 뜻입니다.
역대상 16장 28절에서도 만국의 족속들을 향해 명하기를 "만국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분의 절대적인 능력 때문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신약의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재림의 순간을 묘사하실 때 이 권능과 영광을 나란히 배치하셨습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여기서 '능력'은 헬라어로 폭발적인 힘을 뜻하는 '디나미스(Dynamis)'이고, '영광'은 찬란한 '독사(Doxa)'입니다. 구약의 권능과 영광의 짝이 신약에서도 능력과 영광의 구조로 고스란히 이어져 일합니다. 만물을 굴복시키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그분을 가장 영광스럽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둘째, 선악의 대쟁투 속에서 사탄의 세력인 '원수의 멸망'을 통해 영광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참 가슴 아픈 역사의 심판일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대적하는 대적자들을 무너뜨리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공의로운 영광이 온 천하에 입증됩니다. 출애굽기 14장 17절~18절에서 여호와께서 완악한 바로의 군대를 홍해로 유인하시며 모세에게 이렇게 단호히 선언하십니다.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여기서 '영광을 얻으리니'는 수동형태적 의미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그분의 주권적 영광이 온 세상에 강제로 입증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무기와 병거, 군대 권력을 홍해 수중 속에 수장시키심으로, 세상 모든 적대 세력 위에 군림하시는 여호와의 승리의 영광을 명확히 선포하신 역사적 사건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당신의 백성' 자체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선포가 이사야 46장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친히 "나의 영광(티프에레트)인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십니다. 자식이 부모의 자랑이자 영광이 되듯이, 허물 많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주님의 언약 백성들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우주적인 자랑이자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 백성들을 살려내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확증하십니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하나님의 눈에는 그분의 고귀한 영광의 결정체들입니다.
넷째,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나타내는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6절의 산상수훈 설교를 통해 성도의 도덕적 삶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는지 그 방향성을 명확히 정조준해 주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동사가 바로 앞서 배운 '독사조(Doxazo)'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정직하고 온유하며 사랑이 넘치는 착한 행실을 실천할 때, 불신 세상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성도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의 행실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거룩한 속성을 세상에 영광으로 번역해 보여주는 움직이는 통로입니다.
4. 성육신: 하나님의 영광의 최고조의 현현
하나님의 영광이 역사 속에서 가장 찬란하고 완벽하게 드러난 최고의 정점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입니다.
구약 이사야 40장 3절 이하를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여호와의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메시아의 초림 예고가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5절에 이르러 그 성육신의 본질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땅으로 걸어 들어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 자체가 곧 "여호와의 영광(카보드)의 나타남"이라는 대선언입니다. 보이지 않던 거룩한 하나님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을 입고 우리 눈앞에 만져지고 볼 수 있는 찬란한 영광으로 가득히 출현했다는 뜻입니다.
이 위대한 구절인 이사야 40장 5절의 영어 선언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를 중심 가사 삼아서, 온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웅장한 음악인 헨델(Handel)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제4번 합창곡 '주의 영광(And the Glory of the Lord)'이 탄생한 것입니다. 음악을 들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온 시대를 뒤흔드는 그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합창의 가사 내용이 바로 메시아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대목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그 가슴 벅찬 영광의 기억을 복음서에 이렇게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신성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곁에 텐트를 치듯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 베들레헴 아기로 오시고 갈릴리를 걸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바라보니, 그 인격과 생애 속에서 내뿜어지는 광채가 다름 아닌 우주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의 영광(독사)' 그 자체였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밤에도, 누가복음 2장 9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하였고, 천군 천사들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대합창을 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초림은 온 우주의 어둠을 찢고 내려온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찬란한 빛의 현상이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삶 속에서 표적(Miracle)을 행하심으로 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시적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에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즙으로 바꾸신 첫 번째 기적을 기록하며 요한은 이렇게 맺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물질의 변환 기적을 통해, 자신의 신성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장엄한 영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광이 마침내 영원히 완성되어 웅장하게 거할 최종적인 초소는 바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계시록 21장 10절~11절에 사도 요한이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니, "하나님의 영광(독사)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증언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메워진 글로리어스(Glorious)한 도성입니다.
그 도성 안에는 더 이상 피조된 해나 달의 단편적인 광채가 필요 없습니다. 계시록 21장 23절의 선포처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온 성성 안에 창조주와 구속주의 장엄한 신적 영광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처럼 가득 흘러넘쳐 해와 달을 무색하게 만드는 완벽한 영광의 세계가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5. 성경을 관통하는 '영광의 구절들'
성경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속성에 연결되어 '영광의~'라는 수식어로 장엄하게 결합한 복음적 단어들이 대단히 풍부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성경 원문을 일별해 보아도 최소 25가지 이상의 영광의 칭호들이 성경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칼, 영광의 자리, 영광의 왕, 영광의 하나님
영광의 눈, 영광의 수레, 영광의 집, 영광의 팔
영광의 보좌, 영광의 풍성함, 영광의 면류관
영광의 형상의 모양, 영광의 주, 영광의 자유
영광의 중한 것, 영광의 찬송, 영광의 아버지
영광의 몸, 영광의 힘, 영광의 소망, 영광의 광채
영광의 그룹들, 영광의 영, 영광의 관, 영광의 복음
이처럼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흘러들어오며, 마침내 하나님께 최종 도달하는 모든 거룩한 신앙의 요소 앞에는 예외 없이 영광이라는 수식어가 왕관처럼 찬란하게 씌어 있습니다. 영광으로 수식되는 단어들이 이토록 성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6. 송영: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송영(Doxology)'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송영이란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위대하심과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특별한 찬미 양식입니다.
영어 신학 용어로 송영을 뜻하는 'Doxology(독솔로지)'는, 헬라어로 영광을 뜻하는 '독사(Doxa)'와 말씀을 뜻하는 '로고스(Logos)'가 결합하여 탄생한 거룩한 합성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만을 가득 담아 올리는 영광의 말씀이자 찬송 시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주 안의 모든 가치 있는 영광과 경배는 오로지,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되어 드려져야 마땅하다고 강력하게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영광은 오직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와 우리를 피로 사신 구속주만이 받으실 합당한 몫이며, 이기적인 인간이나 천사 혹은 그 어떤 피조물 생명체에게 가로채어 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15편 1절에서 선언하듯 준엄하게 백성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두 번이나 간절하게 영광을 이기적인 우리 인간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에만 온전히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찬가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 속에서 이 시편의 고백처럼 내 자아의 영광을 지워버리고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예수님의 신실한 사도들은 서신서를 쓰면서, 편지의 시작 부분이나 중간, 혹은 편지를 마감하는 가장 결정적인 결론부마다 이 장엄한 송영(독솔로지)의 찬가를 화려하게 받아 적어 채워 넣었습니다. 사도들이 남긴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의 송영 구절들을 온 마음으로 소리 내어 함께 읽으며 그 영광의 무게를 느껴보십시오.
갈라디아서 1장 4절~5절 (편지의 서두):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구원자 주님께 기어이 영광을 돌려 올리는 서두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21절 (편지의 중간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의 기도를 넘치게 채우시는 전능자에게 올리는 중간 송영입니다.
빌립보서 4장 20절 (편지의 결론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장 17절: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후서 4장 18절 (바울의 유언 같은 종결부):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장 2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전서 4장 11절: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있느니라 아멘." 사도들의 간절하고 한결같은 핵심 부탁은 오직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라는 교훈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유다서 1장 25절: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들의 영성이 일관되게 한 길로 흐르고 있음을 봅니다.
이 송영의 물결은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천상 세계의 웅장한 대합창으로 폭발하며 성경 역사의 최종 결말을 장식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요한계시록 5장 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보좌의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온 우주의 창조 목적에 걸맞은 합당한 예우이기에 천하만물이 대화창을 부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단편적인 영광뿐만 아니라 우주 안의 모든 고귀한 가치들을 한데 다 모아서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아낌없이 돌려 올리는 구원받은 자들의 대합창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7절 (새 천사의 기별 중 첫째 천사의 핵심 외침):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마지막 시대에 온 지구가 회복해야 할 핵심 제일 기별은, 인간이나 사탄에게 향해 있던 모든 거짓 영광을 거두어들이고 오직 온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께만 진정한 삶의 영광을 돌려 경배하라는 대선언입니다. 함축된 복음의 무게가 실로 거대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절: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요한계시록 21장 24절~26절 (구원의 최종 성취 장면):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에게로 들어가리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에게로 들어가겠고." 구원받은 전 우주의 백성들이 "여호와여, 영광을 내 자아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님만 받으시옵소서"라며 자신들의 면류관과 영광을 보좌 앞에 다 내려놓고 최종적인 송영을 올리는 감격적인 성경의 피날레 장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때 부르는 찬미가(찬송가) 속에도 이 위대한 송영의 가사들이 참으로 깊고 자주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예배의 시초와 마감마다 부르는 찬미가 1장과 2장의 가사를 정독해 보십시오.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께 영광 돌려 보내세, 영광 돌려 보내세." 예배의 목적이 다름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께 전폭적인 삶의 영광을 돌려 올리는 데 있음을 명시한 대목입니다. 결코 가볍게 지나칠 한 구절이 아닙니다.
찬미가 5장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 찬송 돌리세"라고 노래합니다. 작사자들이 아무 단어나 조합해 만든 가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적 본질인 '거룩함'을 온전히 인정하며, 그 성품에 합당한 외적 발현인 '영광'을 피조물이 찬송으로 돌려 올리겠다는, 신학적으로 완벽하게 압축된 성령의 가사입니다.
또한 이사야 6장 3절의 천상 스랍들의 찬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위대한 찬미가 구절들도 가슴을 울립니다. "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주, 거룩, 거룩, 거룩 주의 영광 천지에 가득, 이스라엘의 높으신 주 거룩, 거룩, 거룩 영광, 영광." 이것이 우리 존재가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송영입니다. 그분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존재의 무거운 영광을 마땅히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누리는 구원의 감격을 노래한 찬미가 68장 <고생과 수고가 지나간 후>의 후렴구 가사도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대단한 영광일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누릴 영광일세."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입어 마지막 날에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천국의 영광을 역동적으로 노래합니다. 이처럼 성경과 찬미가는 온통 하나님께 올리는 영광과 주님이 성도에게 입혀주실 영광의 물결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7. 영광(榮光)에 관한 두 번의 연구 종합 요약
지난 여든한 번째 강의와 오늘 여든두 번째 강의를 관통하는 '영광'에 대한 전체 신학적 연구를 한데 모아 최종 요약정리를 하겠습니다.
첫째, 영광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보드'의 중심 어원적 본질은 '무겁다'는 뜻의 카바드에서 파생되어 '존재의 묵직함', '중대함', '위엄', '장엄함(Majestic)'을 의미하며, 헬라어 '독사'는 도케오(생각하다)에서 유래하여 외부로 밝게 빛나는 '명예', '명성(Reputation)', '광채'를 뜻합니다. 한자어 영광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찬란한 빛을 형상화했습니다.
둘째, 신학적으로 영광의 가장 깊은 정의는 "하나님의 내적 본질인 '거룩함'이 숨겨지지 않고 외부로 장엄하게 발산되어 나타나는 '외적 현현'"입니다. 내면적 거룩함이 가시적으로 발현된 형태가 바로 엄숙한 영광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3장 7절에서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 목적은 자신의 이기적인 과시가 아니라, 당신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가 입혀주신 고귀한 형상대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자체가 곧 하나님의 우주적인 영광이며 자랑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넷째, 이 장엄한 구속사의 질서 속에서, 천하만물 창조 세계는 시편 19편 1절의 노래처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창조적 영광의 찬가를 선언하고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들은 일생의 삶을 통해 마땅히 창조자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께 전폭적인 삶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의 선포처럼, 그분이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임당하신 유일한 '어린 양 구속자'이시기 때문에 온 우주의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일점의 부족함도 없이 완벽하게 합당하신 분입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피조물이자 구원받은 자녀인 우리의 유일한 삶의 목적과 일상의 이정표는, 오로지 그리고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려 올리는 청지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성도들의 삶의 양식을 명쾌하게 단언했듯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권면을 뼈에 새겨야 합니다. 이 말씀은 사소한 식생활의 절제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 얼굴의 표정, 눈빛, 행동, 그리고 삶의 모든 비즈니스와 경영의 일거수일획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영광으로 번역해 내어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높여드리는 삶을 살라는 위대한 인생의 대헌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완벽한 신앙의 기도문인 '주기도문'의 위대한 결론부를 마음에 새깁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며 내면적 거룩함의 찬양으로 장엄하게 문을 연 주기도문은, 우리의 필요한 요구 사항들을 쭉 고백한 이후, 맨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웅장한 최종 송영으로 문을 닫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내 자아의 소망과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권세와 영원무궁한 '영광(독사)'만이 영원히 우주의 아버지가 되시는 주님께만 가득히 있기를 갈망하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기도의 마감이어야 한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일생의 마감과 매일의 삶의 고비 역시 이 주기도문의 결론처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마땅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영광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적 이해에만 머물지 마시고, 내 삶을 묵직하고 장엄하게 다듬어 하나님께 직접 영광을 돌려 드리는 청지기가 됩시다. 예배당에서 입술로만 성령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마시고, 그 송영의 담긴 신학적 의미를 내 삶의 현장 속에서 몸과 인격으로 치열하게 체험해 내는 살아 숨 쉬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으로 영광에 대한 두 번에 걸친 깊은 신학적 어휘 강의를 모두 마감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귀한 성경의 보화 같은 어휘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영광스러운 광채 안에서 늘 평안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하나님의 영광(Glory)의 신학적 정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내면적 존재의 본질적 속성이 '거룩함(카도쉬)'이라면, 그 거룩하신 신성이 피조 세계 속에 가시적·초자연적으로 찬란하게 뿜어져 나와 드러나는 외적인 현현(Manifestation)이 바로 '영광(카보드/독사)'임. (이사야 6장 3절 천사들의 대구 찬양 "거룩하다...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가 이를 완벽히 증명함)
하나님과 결부되어 영광·영화의 단어가 사용된 빈도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무려 242회에 달하며, 영광의 참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성경은 명확히 선언하고 있음.
하나님의 영광이 계시되는 구속사적 통로:
권능(Power): 우주를 통치하고 백성을 구원하시는 전능한 힘(코아흐/디나미스) 자체가 곧 외적 영광으로 구현됨.
심판: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듯, 공의를 대적하는 사탄과 원수의 무리를 무너뜨리심으로 주권적 영광이 온 천하에 입증됨.
언약 백성: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한 자녀들을 가리켜 친히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실 만큼 백성 자체를 우주적 자랑과 영광의 결정체로 삼으심.
착한 행실: 성도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 실천하는 도덕적이고 사랑 가득한 행실(독사조)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여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됨.
성육신(Incarnation)과 표적, 새 예루살렘: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신성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성육신) 자체가 "여호와의 영광의 출현(사 40:5, 요 1:14)"이며, 가나 혼인 잔치의 표적을 통해 영광이 가시화됨. 최종적으로 창조주와 구속주의 영광이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가득 차서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는 완벽한 영광의 초소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임.
송영(Doxology)의 본질과 사도들의 영성:
송영(독솔로지)은 영광(독사)과 말씀(로고스)의 합성어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의 찬가를 올려드리는 특수한 찬미 형태임. 시편 115편 1절의 선포처럼 영광은 이기적인 인간이 가로챌 수 없으며 오직 창조주와 구속주 주님만이 받으실 전유물임.
바울, 베드로, 요한을 비롯한 신약의 사도들은 서신서의 서두, 중간, 결론부마다 격정적인 송영의 찬미를 받아 적어 일관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세세무궁토록 영광과 권능이 있을지어다라며 대합창을 구함. (계시록의 세 천사의 기별 중 첫째 기별 역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경배하라는 우주적 명령임)
성도의 삶의 이정표와 주기도문의 결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의 선언처럼,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함. 일상의 사소한 언어, 표정, 행동, 사업 경영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번역해 내는 것이 구원받은 피조물의 최고의 특권임.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역시 모든 간구를 마친 후, 맨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웅장한 최종 송영으로 문을 닫음. 이처럼 입술의 노래를 넘어 온 삶과 인격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매 순간 체험하고 돌려 드리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영적 도달점이자 최종 목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