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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15장은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비유가 등장한다.
눅15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같은 비유를 다른 방법으로 나타냈다.
“우리의 의로움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는 관점에서 의로움이 무엇이냐?’
‘양이 그 무리에서 떠난 것이 너의 의라고 하신다.’
99마리는 자기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무리, 인간들.
그 무리 속에서 아니다 라고해도 의롭지 않아 !
같이 그 속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철저한 자기발견, 자기가 죄인임을 발견하고,
그 잃어버림이 그 무리에서 이탈됨이 너희 의이다.
잘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양 100마리 중에 하나를 잃으면 무엇을 잃었다는 것인가?
진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완전한 100인데
그 100인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사람 중에 진리를 모르는
것이 진리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잃은 양 하나를 찾는 것이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 100이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셨는데 내가 진리를 발견 못했으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찾아지는 것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그러면 완전한 100이다.
100은 온전한 말씀을 의미 한다.
99마리는 온전치 않다. 율법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리하나, 그리스도가 가해져야 그것이 완성이 되어지는 말씀이다.
★들에 두고-광야
★두고-카타레이포
2641 kataleivpw kataleipo {kat-al-i'-po}
2596과 3007에서 유래;‘버리다’, 즉(함축적으로) ‘소수’, 남은 자,‘포기하다’,남겨두다, 보존하다<마 4:13>동.
abandon;
★찾아다니지-포류오마이
4198 poreuvomai poreuomai {por-yoo'-om-ahee}
중간태. 3984와 같은 동일어의 파생어에서 유래;‘횡단하다’,즉‘여행하다’(문자적으로 혹은상징적으로, 특히‘움직이다’【상징적으로는 죽다】‘살다’).떠나가다(앞으로, 멀리, 뒤로)가다,여행하다, 걷다 <눅7:6; 행 20:1>동. to go on one's way, walk, live;
광야의 기간이 잃어버린 진리 하나를 찾는 기간이다.
99마리는 광야에 두었다. 율법이다.
마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길을 잃었으면-플라나오
4105 planavw planao {plan-ah'-o}
4106에서 유래;‘방황하다’(안전, 진리, 도덕에서 부터), 헤메다, 속다, 죄를 짓다, 넋을 잃다, 길을 벗어나다 <마 24:4; 계 20:3>동. cause to go astray, mislead;
광야의 기간 진리를 찾는 기간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산에 두고 -
3735 o[ro" oros {or'-os}
아마 퇴화한 oro<오로>(일어나다 또는“세우다”;아마 142와 유사; 3733과 비교)에서 유래;‘산’(자체가 평지위에 돌출
한 것으로), 작은 산 <마 5:1; 계6:14>중명. mountain, hill;
율법성전,예루살렘을 의미한다.
하나를 찾으면 그 성전이 완성이 된다.
율법은 행위 유발, 자존심을 부각시켜준다.
종교행위는 길을 의미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눅 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찾은 즉-진리 하나를 찾았다.
★어깨에 메고-그 양이 이제는 진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어깨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짐을 지는 곳이다.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주님께 가져가면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러면 어린아이인 나는 그분의 어깨에 올라 탈 수 있게 된다.
그분의 어깨위에 올라가면 그분이 인도하신다.
양이 어깨에 올라타는 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어깨에 올라타는 양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다.
우리는 육체를 보게 된다. 이 땅에 오는 순간 잃어버린 것이다.
진리를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66권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진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그분의 육체가 죽어야 한다.
잃어버렸다가 찾았다는 것은 육체로 나타났다가 죽고 진리로 왔다.
성경66권의 속의 의미를 깨달으면 문자가 죽은 것이다.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집-오이코스/성전
들에 있다가 이제 진리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벗과 이웃-우리들이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문자로 알고 있을 때는 주인을 몰랐다.-종
친구는 주인이 하는 것을 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친구이다.(로고스안의 흐레마를 알게 되면)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다.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알게 해 주신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다.
1)게이톤
1069 geivtwn geiton {ghi'-tone}
1093에서 유래;(그의 ‘땅’에 인접한)‘이웃’, 함축적으로 ‘친구’ <요 9:8>남명. neighbor;
1093 gh' ge {ghay}
기본어로부터 유래된 압축형;‘흙’,연루된 의미로 ‘지방’,혹은‘지구의’ 딱딱한 부분이나전체(모든 면의 거주민을 포
함), 나라, 세상, 땅, 육지 <롬 9:17;히 8:9>여명. earth, soil;
주님이 나를 이웃으로 볼 때에는 이 게이톤을 쓴다.(주님의 입장에서)
땅이라고 하는 이웃으로 보는 것.
주님 잔치 상에 간 이웃은 새로운 땅이다.
이웃은 새로운 땅이 된 이웃이다.
그 때는 친구나 이웃이나 같은 개념이다.
2)프레시온-
4139 plhsivon plesion {play-see'-on}
pelas,<펠라스> (‘가까운’)의 파생어의 중성; (부사)‘가까이’,(명사)‘이웃’,즉‘동료’(사람, 국민, 기독교인, 친구로서)
<롬13:9>부. neighbor;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관계 속에서 사랑해야 할 이웃-내 몸 같이 사랑하라
내 입장에서 주님이 나의 이웃이라고 할 때는 프래시온을 쓴다.
보이는 육체의 예수를 사랑을 하면 사랑은 진리로 보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웃이 나와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된다.
이웃을 사랑해야 비밀이 없는 친구가 된다.
★함께 즐기자-슁카이로
4796 sugcaivrw sugchairo {soong-khah'-ee-ro}
4862와 5463에서 유래;‘기쁨으로 동정하다’,‘축하하다’,기뻐하다<빌2:17>동. to rejoice with;
5463 caivrw chairo {khah'-ee-ro}
기본동사;‘유쾌하게 되다’,즉 은은히‘행복하다’,‘유복하다’일반적으로 특히 인사와 같은것(만남이나 헤어짐에 있어)‘안
녕’,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눅10:20; 빌 4:4>동. to rejoice;
진리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가능하다.
잃은 양을 찾았기 때문에 함께 즐길 수 있다.
진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찾았기 때문에 친구, 이웃이기도 하다.
우리가 언제 회개했는가?
주님과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 회개이다.
주님이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시고 새로운 벗으로 불러 주는 순간,
내가 그 초대에 응해서 가면 그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회개이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와같이-앞에서 한 내용이다.
주님이 잃은 양 되어 자신이 육체를 입고 오는 순간 잃어버린 것이다.
진리가 숨겨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진리를 못 찾은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시면 그것이
찾아진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회개하는 것이다.
예수자신이 잃어버렸다가 찾아지는 이야기이다.
그분이 먼저 회개해 주시고 그 다음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진리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회개이다.
내가 하려고 하면 행위가 되어 버린다.
회개 까지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나도 모르게 그 말씀에 끌려갔는데 기쁨이 오고
즐거움이 오는 것이 회개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에이스 하마르톨로스
죄인하나-단수 예수자신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도록 오셨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죄이다.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는 순간에 불의 한 것이다.
그 자체가 죄이다.
그 자체를 악이라고 표현한다.
그 자체를 간음이라고 한다.
율법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면 영이 육체가 되어버렸으니 간음이다.
회개한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다.(물 침례/불 침례)
그분이 죄를 짓고 회개한 것이다.
예수자신이 잃어버렸는데 진리로 찾아지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죄가 있긴 있었다.
눈에 보이면 무조건 죄/죄인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한다.
사망에 이를 수가 없다. 사망에 이르러야 주님은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율법을 주지 않으면 죄를 죄로 볼 수 없기에 율법을 준다.
죄인을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가 오시지 않으면 죄인이 될 수 없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야 되는데 예수가 안 오시면
죄를 깨달을 수 없다.
율법에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해야 알게 되는 것이다.
롬 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을 몰랐을 때 /율법의 의미를 몰랐을 때는(진리를)
살아 있더니 계명이 이르매(성령을 의미/사랑 성령의 법)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이 성령의 법이 임하니 그 율법이 진리로 보이게 된다.
진리를 알고 나니까 내가 죄인이구나를 발견하게 된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죄임을 깨달은 것이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율법을 의미.
아담을 최초 인간으로 보면 답이 안 나온다.
내가 말씀으로 지어졌을 때 나‘라는 사람이 아담이 되는 것이다.
표면의 말씀이 (겉의 말씀/문자말씀)들어오면 그것이 아담이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는 율법의 기준에 의해서 짓는 죄를 말한다.
모든 인간은 율법을 알기 이전에는 죄인이고
율법을 안 이후에도 죄인이다.
아담은 오는 자 예수의 모형이다.
원죄를 말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실 자는 오역이다.
★오실 자-멜론토스/멜로의 현재 분사 능동태
3195 mevllw mello {mel'-lo}
3199(‘기대’의 개념으로)의 강세형;‘의도하다’, 즉 ‘~하려고 하다’,또는 ‘어떤 일을 감당하다’(사람이나 사물, 특별히
사건, 목적, 의무, 필요, 기대값, 가능성, 또는 분주함에서), 대하여,~를 따라, 오다, 의도하다, 의미하다, 생각하다,
~하려고 하다, 준비하다, 돌아가다 <마 16:27;눅3:7;롬 8:38>동. 부정사와 함께 쓰임 a)의도하다, ~하려고 하다 b)
의도하다, 목적하다 c)~을 해야만 한다 d)미래의 의미로 사용됨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할 때는 호 에르코메노스라고 한다.
그러므로 멜론토스는 오실 자가 아니라 그냥 오는 자,
혹은 육체를 쫒는 이스마엘을 표상하고 있다.
육체를 쫒는 무엇인가 의도하고 있는 존재의 상징이다.
따라서 아담이 사망이 왕 노릇하는 자의 원형이요 상징이다.
고로 아담은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표상이라야 맞다.
율법아래에서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율법을 감당하려고 하는 처음 사람의
표상이고, 선악을 쫒아 살려고 하는 처음사람인 ‘나’를 일컫는 말이다.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나면 원죄이다.
아담하고 관계도 없다.
하와/교회-우리들이다. 언약 백성을 말한다.
율법의 열매를 먹었다. 먹는 순간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죄를 해결하려면 아담이 그 죄를 전가를 해야 한다.
그 아담이 그 죄를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줘야 같이 해결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가 준 열매를 받아먹은 것이다.
딤전 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딤전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하와보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다.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먼저 지음을 받았다.
항상 처음부터 계셨던 분이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
원래가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아담은 이 죄를 해결해 주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롬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른다는 것은 육체를 따라 난자를 쫒는 것이 아니라
이삭의 삶을 산다는 것이고 그것이 은혜가 넘치며
화목과 화평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고 계시해준
그의 믿음 안에서 살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육체를 입고 오면 범죄한 것이다.
율법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범죄한 것이다.
그 범죄의 이유는 우리들을 죄인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무엇이 범죄인줄 모르니까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처음사람이 있고 두 번째 사람 한 사람,
곧 예수그리스도가 있다.
처음 사람을 따라 산다면 그 영이 죄 아래 있는 것이고
마침내 사망에 이르지만 두 번째 사람인 기름부음을 따라 산다면
그 은혜가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이 바울의 요지이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산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가 대비되어
한 사람 이스마엘과 한 사람 이삭을 대비하여
그리스도와 율법의 대비로 사용하고 있다.
혹자들은 예수를 믿는데 정신이 팔려 그 예수의 믿음을 놓친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로부터 나오는 믿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우상이 되어졌고 예수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예수의 믿음이 곧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의문이 속한 육체의 계명을 폐하고 한 새 사람을 크티조/창조한다.
한 새 사람을 따라 사는 것이 결국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롬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심판은 한 사람/예수의 십자가 심판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육체의 예수/-왕 노릇.
한 사람을 앞에서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밝히지 않는다.
한 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귀결시켜 주고 있다.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많은 사람이- 죄를 깨달은 사람만 해당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이 육체로 계시면 순종 안하는 것이다.
육체로 계시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빠뜨린 후에
한 사람이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우리로 말하면 순종하지 않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만 믿는 것, 율법만 믿는 것, 문자대로만 믿는 것이
순종 안한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 내가 죽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한 사람과 율법을 동일시 하고 있다.
예수가 오신이유는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가중시키기 위하여.
그분이 안 오시면 내 범죄가 드러나지가 않기 때문이다.
율법이 들어와야 범죄가 드러나고 그 범죄가 드러난 자신을 보면서
내가 세리가, 죄인이 맞구나 ! 라고 깨닫게 된다.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범죄가 드러나게 한 것은
영생을 주기 위해서이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죄인이 되어야 한다. ‘세리와 죄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칭의인. 회개를 품지 않았다.
예수그리스도의 회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분이 죄인으로 오셔서 그것을 회개한 것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본인이 회개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오신 그 진리를 내가 소유했다면 나도 회개한 것이다.
주님의 회개가 내 회개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이
나도 회개한 것으로 봐 주시는 것이다.
죄인-불특정 다수. 복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다.
그들이 진리를 몰랐는데 얼떨결에 온 것이다.
의인으로 도장 찍어 주시지만 광야 40년을 살아야 한다.
물 침례는 –한 마리가 없는 것/진리가 없다는 의미.
율법을 받았는데 그 율법 속에서 진리를 발견치 못하는 것이다.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40년이 걸렸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그 진리를 깨닫는 여호수아, 갈렙만 들어간다.
1세대는 죽고 2세대는 산다.
가나안에 들어간 2세대는 한 마리의 찾은 양 , 진리이다.
1세대는 99마리 양이다.
진리 하나 찾으면 100마리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길을 잃지 않은 99마리 양은 율법을 의미하고
율법이 가르쳐 주는 길이다.
한 마리를 찾는 것이 99마리 보다 더 기쁘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회개를 소유하지 않은 의인이라는 뜻이다.
하늘차원에서(진리) 말한다는 뜻이다. 회개를 품지 않은 스스로 의인.
★양 99마리는 잃어버린 한 마리에 대비해서 율법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면 진리를 찾은 것이다.
찾으면 그것이 100이다.
99은 진리가 빠진 상태, 율법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잃은 양이어야 한다.
끝까지 나의 잃은 양됨을 고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