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서 통과된 법 AB5는?
단기 임시직을 정직원으로 고용해 내년 1월부터 임금·복지 혜택 줘야
- 우버 "우린 해당 안된다"고 하지만
3년 누적 적자 12조원에 달하는데 운전자 1명에 年 430만원 추가부담
700억 투입해 반대 주민투표 발의
'AB5(Assembly Bill 5).'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통과된 이 법안 하나에 공유경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차량공유 업체 우버(Uber)는 그 여파로 주가(株價)가 폭락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고용 관련 법인 AB5는 이달 11일 캘리포니아주 의회를 거쳐, 18일 개빈 뉴섬 주지사의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핵심은 '독립 계약자' 자격으로 일해왔던 기존 계약·임시직 근로자가 일정 조건을 갖춘 경우, 정직원으로 채용해 제대로 된 임금과 복지 혜택을 주라는 것. 시행은 내년 1월 1일부터다.
차량공유 업체 우버와 리프트(Lyft), 음식배달 업체 도어대시(Doordash) 등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독립 계약자' 지위를 남용, 근로자를 착취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온 가운데 법이 통과된 것이다. 우버는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만 20만명 이상의 운전자가, 리프트는 32만5000명이 일하고 있다. 두 기업이 본사를 둔 캘리포니아주가 앞장서서 철퇴를 내리면서, 이들은 하루아침에 수십만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AB5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언제든 편한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돈을 버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직 경제)'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혁신이란 이름 아래 침해돼 온 노동 기본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적자에 AB5까지… 엎친 데 덮친 우버
이 법은 'ABC 테스트'라는 세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다. 직원이 회사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고용주의 통제나 지시를 받지 않으며, 별도의 독립된 사업·직업을 가진 경우에만 '독립 계약자'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최저임금에 초과 근무 수당, 건강보험, 유급휴가 등을 모두 챙겨줘야 하는 직원으로 고용해야 한다. 이 법이 적용될 경우 우버는 운전자 1인당 연간 3625달러(약 430만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분석이다.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더 보게 되는 셈이다.
관건은 그간 '혁신기업'으로 알려졌지만 사업 면에선 줄곧 적자를 내온 우버가 이를 버텨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에서만 통과됐지만 이 법이 다른 주(州)나 외국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경우 천문학적인 부담을 지는 것을 넘어 아예 사업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버는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적자가 12조원에 달한다. 20일 현재 우버의 주가는 32.6달러로 상장 당시 공모가(45달러)보다 28%나 하락했다.
일단 우버는 '기존 고용 분류가 타당한 만큼 달라질 것이 없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이 회사 최고법무책임자인 토니 웨스트(West)는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한 지난 11일 "이미 우버 운전자의 업무가 회사의 핵심 사업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수차례 받았다"면서 "법 조항이 까다로워졌다는 것이 우리가 그걸 통과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우버와 리프트는 공동으로 6000만달러(약 710억원)를 들여 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주민투표 발의에도 나섰다. 이와 별도로 우버는 '군살 빼기'에도 나섰다. 지난 7월 마케팅 인력 400명을 해고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10일 기술·상품 부문 직원 435명을 추가로 감원한 것이다.
대규모 고용이 불가피한 경우, 우버는 당장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된다. 가격을 인상하거나 운전자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일이다. 전자는 소비자의 반발을, 후자는 운전자의 불만 혹은 이탈에 직면하게 된다. 우버로선 어느 쪽도 택하기 쉽지 않다. 시장 점유율 30%가량을 차지한 경쟁자 리프트가 버티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대규모 출혈을 감수하고 시장을 뒤집을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AB5 효과 전망은 분분
우버
우버 운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최저임금 보장, 추가 수당, 의료 보험과 같은 혜택은 찬성이지만 특정 회사의 직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상반된 심리 때문이다. 긱 이코노미의 생명인 자유와 유연성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우버 측 역시 "대다수 운전자는 직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IT(정보기술) 엔지니어에서 우버 운전자로 전직해, '라이드셰어 가이(The Rideshare Guy)'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해리 캠벨(Campbell)씨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수많은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고 느낀 점은 그들이 유연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것"이라며 "자기가 원하는 만큼 많이 혹은 적게 일해도 되고, 심지어 6개월 장기 휴가를 가도 상관없고, 상사도 없고, 돈은 즉시 들어온다는 점 때문에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들이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5 지지자들은 우리가 특정 업체 직원이 돼도 이런 유연성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 그런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일례로 차량 공유 운전자에 대한 최저임금 지급이 시행된 뉴욕주에서는 리프트가 호출이 적은 지역에서는 운전자들의 앱 시스템 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 곳에서 대기하는 것은 업무 시간으로 간주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라는 뜻이다.
시행을 3개월여 앞둔 AB5 통과의 여진(餘震)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노던일리노이대의 마이클 오스월트 교수(법학)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캘리포니아는 매우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중요한 주인 만큼 다른 주에서도 이를 뒤따라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포브스지는 AB5의 'ABC 테스트' 조항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한 데다 주관적 해석이 가능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또 이미 매사추세츠주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이 통과됐지만 현지 우버 운전자들은 여전히 '독립 계약자'라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의 '긱 이코노미' 종사자, 배달 인력 등 200만명 넘어]
한국에도 정규직 대신 임시직으로 원할 때만 일하고 돈을 버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고 있다. 일반인이 택배를 배달하는 '쿠팡 플렉스', 음식을 배달하는 '배민커넥트' 등이 대표적이다. LG유플러스도 주부나 직장인, 학생이 앱 하나만 깔면 퀵 배송 기사로 일할 수 있는 서비스 '디버'를 최근 내놨다. 이들은 자영업자와 회사 직원의 중간쯤에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분류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총 221만명으로 전체 취업자 2709만명의 8.2%에 해당한다.
지난 2009년 창업한 우버 역시 처음부터 운전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면 지금처럼 세계 60여국, 700여 도시에서 이용자 1억명을 확보한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특수 고용직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유연성과 높은 생산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임시직에만 의존하는 경우 수입과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도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아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등 반응이 서로 다르다"면서 "이를 모두 융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 방식의 경제. 1920년대 미국 재즈 클럽들이 단기 섭외한 연주자를 '긱(gig)'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나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등이 일반인을 운전·배송 요원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취업 장벽이 낮고,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고용 불안, 임금 정체 등의 부정적 측면도 있다.
[출처] 조선일보
[원문보기] 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3/2019092300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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