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리는 자인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2.5㎞ 정도 떨어진 마을로 동쪽으로는 높이 305m의 삼락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들이 마을을 감싸고, 서쪽과 남쪽은 넓은 논과 밭이 펼쳐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량이 풍부한 적제지 못이 있어 시원한 풍광을 자랑한다.
옛 이름이 옥산인 1리는 신라시대 함양 박씨가 개척했으며, 풍수에 따르면 지세가 좋아 옥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함양 박씨와 경주 김씨, 김해 김씨가 많이 살았으나 지금은 타성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옥산의 남쪽에 자리한 한내개 마을은 앞에 큰 내가 흐른다고 대천으로도 불렸으며, 예전 마을은 사라호태풍 때 홍수로 떠내려 가버려 지금의 자리에 다시 마을이 들어섰다.
옥산의 주산물은 복숭아와 대추. 옛날에는 50세대 정도가 살았지만 섬유공장, 주물공장 등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외지인이 늘어 지금은 65세대 정도가 분포한다. 복합농은 30호 정도. 복숭아는 전부 노지에서 재배하며 특수작물이나 시설재배는 전무하다. 포도농사를 짓던 농가들은 지난해 동해 피해를 입은 나무들을 대부분 잘라버렸다. 송이마다 손을 대야하는 포도보다는 복숭아가 일하기 수월하다고. 자체 작목반 대신 옥천1,2리와 울옥리가 함께하는 2동 작목반이 출하를 책임지고 있다.
↑↑ 김용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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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66) 이장은 적제지 앞에서 24년째 할매손국시를 운영하는 이곳 토박이. 경산시청 산림과 상용직원으로 15년 근무하다 2000년 퇴직한 뒤 자인면 번영회장, 산림조합 대의원, 자인단오보존회 이사를 맡고 있다. “군 제대하고 부산에 잠깐 있었던 걸 빼면 여기서 평생을 살았어요. 식당 바로 옆집이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김 이장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고향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적제지 왼쪽에는 없던 길도 생겼다. 번영회장으로 있을 당시 의장한테 부탁에서 보상을 주고 낸 길이다. 젊은 사람은 죄 밖으로 나가고 아기 울음소리 끊어진 지 오래지만 주민들 단결력 하나는 자랑할 만한 동네라고.
복숭아와 벼농사를 아주 조금 짓고 있다는 김 이장은 이런저런 바깥일을 하느라 식당 일을 못 도와줘 점심장사밖에 못한다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시추할 때 적과할 때가 제일 바빠요. 조생종 다 내고 하려면 가을까지는 계속 바쁘지. 일손 구하기 힘드니까 품앗이도 하고, 주말에 자식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해요. 노인일자리사업인가 일손 보내주는 거 고맙긴 한데 과수농가에는 그 사람들이 와서 할 일이 별로 없어. 까다로운 일이라…”
김 이장은 “마을 앞과 회관 뒤 수로에 U자관 설치했고, 삼락지 아래 수로만 정비하면 된다”면서 숙원사업이랄 것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못 둑 아래서 농사짓는 주민들이 요구한 수로 정비 건도 올해 예산을 받을 것 같아 다행이다.
6,70대가 대부분인 이곳에는 50대도 찾아보기 힘들다. 산지가 많아 땅덩이는 넓지만 농지는 크게 넓지 않다고. 김 이장과 김성식(79) 노인회장, 김정대(65) 작목반장, 박기상(62) 새마을지도자 등이 주축이 돼 마을을 이끌고 있다.
저수지가 많은 경산지역은 어느 마을이나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적제지도 한바탕 쓰레기와의 전쟁을 겪고 지금은 휴식년제를 통해 수질이 많이 정화된 상태다. 이곳 주민들은 2010년 봄, 못 둑에 모두 나와 천막을 치고 데모를 했다. 낚시꾼들이 버리는 쓰레기로 못이 더러워지는 것은 물론 교통 혼잡으로 농사에 막대한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갖고 가라고 하면 들고 가는 척 하다가 길에 던지고 갑니다. 집 쓰레기까지 여기 와서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해 9월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에야 주민들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김 이장은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수질검사를 통해 오염수준이 기준치를 넘어야 한다”면서 “지정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