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 일 (2019. 11. 06. 수) 만달레이 밍군 대탑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손과장의 추임새에 못 견디고 과음을 한 안선생이 밭은기침을 하는 거로 보아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오늘은 만들레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정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Minggun 대탑과 그 주변의 유적을 보는 것이 주요 일정이다.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조식 뷔페로 아침식사를 했으나 어젯밤의 과음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음식 솜씨가 없어서인지 입에 맞는 것이 없다. 그래도 쌀국수와 주스로 대강 아침을 해결하고 로비에 내려와 200달러를 환전했다. 원래는 내가 어제 호텔 한편에 있는 환전소에서 환전하려 했더니 100달러에 150,500짯 밖에 안 쳐줘서 두 말 않고 나와 버렸다. 바간에서 152,000짯을 쳐주었는데 1,500짯이나 덜 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말이다. 그러나 다른 환전소를 찾기가 3,000짯보다 더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여기서 환전하기로 했는데 같은 환율로 내가 환전하는 것은 뭔가 패배한 느낌이 들고 분해서 안선생을 대신 보냈다.
어제 헤어지며 6,000짯에 예약한 택시로 8시 20분에 호텔에서 출발해 Mayan Chan 부두에 도착했다. 부두 주변은 시장과 가까운 지 여러 가지 물류를 옮기는 사람들과 승객들이 뒤섞여 매우 복잡했다.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를 찾으니 비슷한 곳이 있어 들어가 1인 5,000짯을 주고 왕복 배표를 끊었다. 문제는 아무 표시도 없는 강둑에서 어디서 배를 탈 것이며 어느 배가 우리 배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 온 이유가 대부분 우리와 같기 때문이기에 그냥 서양 애들 많이 있는 곳에 같이 있다가 얘들이 우르르 가면 대강 우리도 따라 가면 될 듯 했다.
< Mayan Chan 부두는 여러 곳을 가는 배들로 복잡했는데 표를 보고 탈 배인지 아닌지를 구별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는 일행인 듯한 사람 뒤만 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선착장은 배를 타고 내릴 시설이 전혀 없고 시멘트도 하나 바른 일 없는 완전 맨땅 그대로라 비라도 내리면 어찌 될지 눈에 선하다. >
< 9시 10분에 출발해 10시 20분경에 밍군 선착장에 도착하니 배에서 육지로 긴 외나무 다리 하나를 걸친다. 저길 무사히 내려갈까 하는 순간 배의 선원이 긴 대나무를 들어 육지의 아줌마에게 주니 순식간에 임시난간이 만들어졌다. >
이라와디 강은 그리 맑지 않은 강이었지만 수도였던 만달레이를 품어 흐르면서 강가에는 빨래하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그리고 수영하며 노는 아이들 등 수많은 이들이 강과 함께하며 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또 우리나라의 강들처럼 양쪽으로 나무가 쭉 심어진 제방 사이에 낀, 어깨 짓눌린 강이 아니라 야생 그대로의 강이어서 어떤 때는 성난 물길로 마구 내닫는 거친 강이 되어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기도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강은 우리나라의 낙동강처럼 녹조로 인한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으로 인한 발진, 구토, 설사, 두통, 고열, 간 종양은 없을 것이고 대청댐에 사는 물컹물컹한 큰빗이끼벌레가 있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강은 아니니까 통제된 아름다움이나 투명도와는 관계없이 강 주변의 사람들에게 살아있고 쓸모 있는 강이다. 정말 많은 물들이 낮은 곳을 찾아 모이고 모여 이리저리 섞이며 더 낮은 곳을 찾아 같이 흐르는 모양은 그냥 출렁이는 바다와는 달리 언제 보아도 옳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하려는 민초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린다.
< 배에서 내리자 큰 나무가 우리를 반겨준다. 갤럭시 s10의 어떤 기능을 잘못 눌렀는지 모두가 나무를 중심으로 쏠린 느낌이다. 그래서 안선생이 넘어질 듯 위태롭다. >
여기도 지역세금이 있어 밍군-사가잉 지역 하루 다니는데 5,000짯이다. 2만 짯을 주니 종모양이 걸린 노란 스티커를 붙여 준다. 이곳 사정을 몰라 떨빵한 우리에게 현지 사람들이 4인용 툭툭이를 권하는데 여전히 한국 습관을 못 버려 바가지라도 쓸까봐 무조건 긴장해 거절부터 한다. 긴장해 봐야 사실 별로 버티지도 못하기에 만 짯에 4인용 툭툭이를 대절해 관광하기로 했다. 걷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그 거리가 짧으면 걷겠지만 그런 현지 사정을 모르니 타는 것이 맞고 4명이 정원이니 별로 우리에게 손해도 아니다. 한국 사람은 늘 이런 걸 따져야 툭툭이라도 탈 수 있다. 타니까 중간에 있는 대탑도 들르지 않고 속 시원하게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바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우릴 내려 주더니 돈도 받지 않고 가버렸다. 아마 공동으로 운영하기에 아무 툭툭이나 오는 대로 타면 되는 모양이다. 여기는 하얀 파고다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 대탑에서 조금 올라가면 흰색의 특이한 파고다가 나오는데, 1826년에 바지도 왕이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신쀼미 파야(Hsinbyume Paya)다. 안으로 들어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린 포기했다. >
<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종(鐘)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과 설명문 >
신쀼미 파야에서 다시 다른 툭툭이를 타고 조금 내려오니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종이라는 밍군 대종이 있다. 1808년 밍군 대탑을 만든 보도파야 왕이 만든 종인데 그 무게가 90톤이라 한다.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이 18.9톤이니 이로 미루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종도 대탑과 운명을 같이해 지진으로 1839년 땅에 떨어져 있다가 1896년 현재 위치에 다시 세워져 지금은 타종할 수 있는 가장 큰 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은 러시아의 크렘린 궁전에 있는 황동으로 만든 ‘차르의 종’으로 높이 6미터에 무게 220톤이나 되는데 이 종을 주조할 당시 화재가 발생했는데 누군가가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는 바람에 종에 금이 가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크기는 세계 일등이되 한 번도 소리 내어보지 못한 종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이 종은 아직도 치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둔탁하지 않고 맥놀이 현상까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잘 만든 종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탑 안에 있어야 할 종이 제 자리를 잃고 엉뚱한 자리에서 부처가 아닌 관광객을 불러 모우는 종소리를 내고 있으니 이 종의 팔자도 매우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만들레이에서 11km 정도 떨어져 있는 밍군 대탑은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왕(바돈 왕, 1781~1819)이 1790년에서 1797년까지 만들다 미완성에 그쳤다. 밍군 대탑의 건설은 꽁바웅 왕조의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탑 자체가 불운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보도파야 왕은 자신의 강력한 왕권 강화와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전탑 불사(佛事)를 시작한다. 하지만 높이 152m로 만들려고 계획했던 밍군 대탑을 만들다가 상층부 공사가 진행될 즈음, 혹독한 노동에 지친 라카인족 일꾼 천여 명이 라카인 아쌈(Assam)지역으로 도망친다. 당시 라카인 아쌈 지역은 보도파야 왕이 당시 영국이 지배하던 인도로부터 빼앗은 영토로, 인도와 국경 문제로 미묘한 분쟁이 있던 지역이다. 보도파야 왕은 라카인들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얀마 군대는 도망자들을 추격해서 인도 땅인 라카인 아쌈 지역을 침범하게 된다. 이에 인도를 식민 지배하며 호시탐탐 미얀마 침략 기회를 노리던 영국이 이를 기화로 미얀마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 결과 꽁바웅 왕조는 비운의 마지막 왕조가 되고 밍군 대탑 역시 현재 70m 정도의 높이에서 건설이 중단된 채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왕조의 운명을 지켜보게 된다. 게다가 1838년과 1956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탑의 입구 부분과 양쪽 기단 부분이 심하게 금이 가고 일부는 허물어져 버렸다. 왕권 강화와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한 불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왕조의 몰락과 국민을 식민지 치하의 망국민이 되게 했으니 왕의 잘못된 욕심 때문인가, 아니면 부처의 무자비(No mercy) 때문인가.
대탑 안에는 촛불을 밝힌 초라한 불상 하나 놓여 있을 뿐이고 보도파야 왕이 머릿속에 그렸을 화려하고 엄청난 위용의 탑은 역사 앞에서, 자연 앞에서 높이와 크기를 포기한 패배자처럼 초라한 몰골로 무너지고 갈라져 내 앞에 쓰러져 있다. 다시 한 번 지진이 난다면 아예 벽돌 더미로 화할 듯하니 무슨 의미를 우리에게 주려는 것인가. 밍군대탑 앞 간이음식점에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코코넛주스와 맥주를 주문해 한잔 마시며 좀 쉬며 보니 탑 오른쪽으로 부서진 잔해를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것조차 허무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다시 툭툭이를 타고 밍군대탑을 한 바퀴 두른 다음 대탑 앞에 있는 사자상으로 갔다. 처음 툭툭이를 타고 신쀼미 파야로 올라가며 사자상을 뒤에서 보았을 때는 사자의 둥근 엉덩이 부분만 보여 난 그것이 둥근 단지의 모형으로 생각했다. 좁은 길 가의 상인들은 티셔츠와 간단한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 그들의 동글동글한 글자를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해 둔 것이 눈에 띄었지만 알아도 별 쓸모가 없을 듯해 관심을 끊었다. 사자상 역시 대지진 때 대탑과 같이 파괴의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 사자상은 한 쌍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 번째 사자상은 너무 많이 부서져 몸통만 남아 있어 그것만으로는 사자상이 짐작되지 않을 정도였다.
< 사진의 오른쪽 아래 집을 보면 이 사자상이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두 마리 중 오른쪽에 있는 이 사자상이 덜 부서진 것이다. 대탑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은 눈 아래 길게 펼쳐져 아무 말 없이 무심코 흐르는 이라와디 강을 내려다보며 부질없는 인간의 허망한 역사를 부서진 잔해로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
< 화장실 가다가 우연히 만난 큰 바윗돌 하나. 우리를 태워온 툭툭이 기사가 이 돌이 저 사자에게서 빠진 눈알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아무튼 어처구니없는 만남이다. >
< 조금 더 내려오니 근래에 지어진 파야가 하나 있고 그 파야의 사면에 부서진 사자상의 원래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도록 이런 사자 석상을 만들어두었다. 결국 머리 부분을 우린 지금 볼 수 없는 것이다. >
점심때도 지났지만 적당한 식당은 보이지 않고 배시간은 남아 다시 선착장 근처 상점에서 캔 커피와 맥주 2캔을 마시는데 손과장과 안선생은 술을 꺼린다. 아마 어제의 후유증이 계속되는 건지 모르겠다. 배로 다시 Mayan Chan 부두로 돌아와 2인승 툭툭이에 4명이 타고 만달레이에서 믿을 만한 유일한 음식점인 Golden Duck 식당으로 갔다. 양고기 수육무침 작은 것과 마늘 볶음밥 작은 것, 그리고 미얀마 맥주 2병으로 점심식사를 했는데 가격은 17,000짯 밖에 안 되었다. 양고기는 어제 먹은 오리보다 못했고 볶음밥도 양이 조금 모자랐지만 대강 점심을 끝내고 또 툭툭이를 4명이서 타고 호텔로 왔다. 부근 마트에서 인레 호수에서 마실 것까지 포함해 양주 4병과 맥주 2캔, 잭 플루트와 포도 등을 사 와서 호텔에서 일단 씻고 휴식을 취했다.
< 5시 반 쯤 라면을 끓이고 안에 참치 통조림도 넣어 저녁 겸 안주 겸해서 술을 마셨다. 8시 30분 쯤 마치고 9시 경에 이른 취침을 했으나 안선생은 여전히 기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
♠제 10 일 (2019. 11. 07. 목) 만달레이 → 낭쉐 인레호수
5시 30분에 기상하여 씻고 빠진 것 없이 짐 정리를 다시 했다. 호텔 식당에서 쌀국수와 주스로 형식적 식사를 하고 7시 체크아웃 후 로비에서 인레로 가는 버스 픽업을 기다렸다. 8시에 버스가 와서 타니 보조의자까지 다해 20명이 탈 정도의 미니밴이었다. 버스는 만달레이 시내를 벗어나지 않고 곳곳을 다니며 예약 승객을 태우고 다시 혹 손님이 있을까 해서 터미널에 들렀다가 9시나 되어서야 시내를 벗어났다. 우리 자리는 맨 뒷자리 4좌석인데 웬 모기가 그렇게 많은지 내가 도착 때까지 손으로 잡은 모기만 해도 20마리 정도나 되었다. 그러나 반바지를 입어 무방비로 노출된 무릎 아래는 모기들이 회식 파티를 열고 있었으니 이때 모기에게 물린 곳은 가려움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귀국 후 3달이 지나서도 가려웠고 지금도 흉한 자국으로 남아 있다. 11시경 길가 휴게소에 들러 손과장과 나는 과일주스 한 병씩 마시고 이선생은 배낭여행을 하는 서양인이 먹는 미얀마 가정식을 보더니 맛있느냐고 물어보고는 자기도 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안선생도 주저하더니 주문해 먹는데 그저 먹을 만한 것 같았다.
< 엄청 높은 산을 두 개나 넘어서야 비로소 산에 둘러싸인 평지가 나타났는데 이곳은 ‘헤호’라는 곳으로 이곳 자체는 별볼 것이 없지만 공항도 있고 교통의 요충지라 한다. >
인레로 들어오는 길목에 다시 지역세를 받는 곳이 있어 1인 15,000짯을 지불했다. 오후 3시 40분에 낭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오토바이를 개조한 화물택시를 타고 Royal Inlay hotel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2일 후 네피도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리셉션의 자그마하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아가씨가 능숙한 영어로 저녁 7시에 출발해 밤새 가는 버스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계획은 이 호텔에서 7일과 8일 이틀을 자고 9일 낮 버스로 네피도로 가는 것이었는데 밤 버스밖에 없다면 9일로 잡혀있는 네피도 호텔 예약 때문에 8일 밤버스로 가야한다는 결론이다. 어쩔 도리가 없어 밤 버스 티켓을 1인 17,000짯에 구매하고 인레 호텔의 8일 예약을 취소해야했다. 당연히 예약 취소 차지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내가 잘 생겨 그런지 받지 않았다. 어쨌든 호텔 1박 값은 아낀 셈이다. 내일 인레호수 보트투어를 신청했는데 1인 17,000짯이었다. 또, 환전하기 위해 환전소 위치를 물으니 낭쉐의 중심부 지도에 위치도 표시해 주고 상세히 설명까지 한다. 그런 친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자세히 보지 않았고 우리가 온 길을 짐작해 대강 알듯해 지도마저 방에 두고 나와 결국 교만함의 결과로 비오는 길에 무거운 우산을 벌서듯 들고 한참을 헤매야 했다. 결국 우리가 처음 도착한 시장 부근의 사설 환전소에서 200달러를 30만 짯에 교환했다. 저녁은 리셉션 아가씨가 “Beyond Taste”란 레스토랑을 추천해 비오는 밤길을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겨우 찾아 2층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양식도 현지식도 아닌 어중간한 맛이 역시나 우리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오늘은 손과장과 안선생의 몸 상태가 술 마실 형편이 아니라서 각자 방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 11 일 (2019. 11. 08. 금) 인레호수 투어
아침에 인레호수 보트 투어를 위해 일찍 일어나 6층 옥상식당에서 뷔페로 아침을 먹었다. 오늘 밤버스로 출발해야 하므로 7시 반에 호텔은 체크아웃하고 가방을 맡겼다. 그리고는 우리를 호수로 픽업할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웬 청년이 맨몸으로 호텔 입구에 오더니 따라 오라고 한다. 알고 보니 호수 선착장이 호텔에서 2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우린 그걸 모르고 차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랗고 좁게 생긴 보트에 의자가 4개 놓여 있고 뱃사공 2명이 타고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출발했다.
< 뱃전이 수면에 닿은 상태로 엄청난 속력을 내며 우리 배 곁을 스쳐 지나가는 뱃사공의 자세가 상당히 긴장돼 보인다. >
인레호수는 미얀마 북동부 고원 산악 지대인 샨 주(州)에 있으며, 해발 875m에 남북으로 22km, 동서로 11km로 길게 생긴 거대한 산정 호수다. 미얀마 북부 카친주에 있는 인다우기 호 다음으로 큰 호수인데 우기에는 약 1.5배 정도 늘어나서 남북의 길이가 최대 33km까지 늘어난다고 하는데 호수 주변은 여름철에도 비교적 선선하여 서양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호수에는 17개의 수상마을이 있고 여기 사는 민족은 수상족인 인따(Intha)족인데 이들은 호수 바닥에 대나무로 기둥을 세운 후 갈대로 그물을 엮고 그 위에 부레옥잠 같은 수초와 호수 바닥에서 건진 진흙을 뿌려 인위적으로 농토를 만드는데 이를 쭌묘라 한다. 즉, 쭌묘는 인공으로 만든 부유식 수경재배지를 말하는데 수경재배를 통해 생산된 토마토, 가지, 꽃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토마토는 미얀마 전역에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인레 호수에서는 배를 타고 쭌묘에 뿌릴 흙을 배가 침몰할 정도로 바닥에서 끌어올려 싣는 어부와 쭌묘 사이사이를 이동하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미얀마 토마토의 90%가 인레호수의 쭌묘에서 생산된다니 대단하다. 쭌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작은 규모가 아니라 호수 가장자리와 배가 다니지 않는 곳은 거의 준묘로 덮여 있어 마치 평야처럼 보일 정도였고 원두막이나 창고 같은 건물도 있었다. 쭌묘 옆에는 부레옥잠과 토란 비슷한 식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
< 물속에는 우리로 보면 논고둥이나 다슬기 같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사진 중앙에 있는 껍질이 오돌오돌한 다슬기는 중국 양삭의 식당에서 맛본 다슬기 쌀국수에 들어가 시원한 육수 맛을 선사하던 그 놈 같다. >
< 물속에 수많은 나무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지었는데 무슨 이유에선가 2층 집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1층은 너무 물에 가까워 습하므로 창고나 허드레 공간으로 쓰고 2층을 생활공간으로 쓰는 듯했다. >
< TV에 더러 소개된 목에 링을 끼워 기다란 기형적 목을 만드는 부족이 여기 있었다. 의자가 5개인 것은 관광객 2명일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얼마를 받는지 모르지만 과연 하루 몇 장의 사진을 찍을까 궁금했다. >
< 바깥에서 시끄러운 앰프소리가 나기에 바라보니 근처 중학생 정도 되는 학생들이 무슨 행사를 하는지 전교생이 반별로 배에 따고 어떤 놈은 일어나 춤추고 어떤 놈은 장단 맞추고 어떤 놈은 배를 운전하고 지나간다. >
무슨 행사인지는 몰라도 좁은 배에 저학년은 앉아 있지만 좀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은 일어나 앰프소리에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뒤이어 오는 배에는 여학생들이 일어나 춤을 추고 난리가 났다. 어떤 배는 가운데 종이돈을 코팅해 돛 모양으로 크게 매달아 놓았는데 진짜 사용 가능한 돈 같았다. 이런 배가 몇 척인지 헤아려 보지 못했지만 좌우간 열댓 척은 되는 듯했다. 문제는 이런 일탈적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교감이 배에 탈 때, 담임이 반드시 임장해서 운행 중에는 구명조끼를 착용 후 운행 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지도할 것인데 수상족이라서 그런지 전혀 안전사고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하긴 빠져 봐야 수심이 얕고 바로 인가들이니 문제는 없을 듯했다.
< 타나카(tanaka)를 얼굴에 뽀얗게 바른 아줌마가 연꽃 줄기에서 긴 섬유를 뽑아내 천을 짜고 있어 잠시 구경을 했다. 연꽃은 꽃은 꽃대로 부처께 공양하고 연한 줄기와 뿌리는 식용으로 쓰고 질긴 줄기는 섬유로 사용하니 버릴 것이 없다. >
< 인레 호수의 쉐 인데인 파고다와 부처. 가는 곳마다 만나다 보니 어지간한 파고다와 부처상은 이제는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
< 지공예의 일종으로 종이 우산인데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으로 어울릴 것 같다. 마음에 들어도 넣어 올 데가 없어 못 산다. >
< 인레 호수에 있는 팡도우 파고다의 눈사람 모양의 다섯 부처상은 재미난 이야기가 전한다. >
1965년 축제기간에 주변 마을에 복을 빌기 위해 다섯 부처를 배에 모시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부처를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중 네 분은 찾았으나 한 분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 포기하고 돌아 왔는데 며칠 후 네 분의 부처 사이에 잃어버린 부처가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영험함이 알려져 사람들이 너도나도 금박지를 붙이는 바람에 아름답던 부처의 형상은 금으로 도배한 눈사람 몰골이 되고 말았다. 이후로는 축제기간이 되면 새로 찾은 부처는 파고다에 그냥 모시고 네 분의 부처만 배에 싣고 마을 순례를 간다고 한다.
1965년이면 최근 일이니 이야기가 실화이며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하겠는데 의심증 많은 나의 생각은 이렇다. 풍랑이 치던 그날 배를 몰던 사공이 부처를 빠뜨리고 잃어버린 죄책감에 아마 밤낮없이 죽기살기로 호수바닥을 뒤졌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잃어버린 부처를 찾았고 찾은 게 자랑할 일도 아니기에 그냥 살그머니 가져다 두었다고 본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고 더욱 부처에 대한 신심을 돈독히 하는데 이는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쓴 벽화를 복원하면서 예수 모습을 원숭이로 바꿔놓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페인의 한 성당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상 최악의 복원", "망친 작업"이라고 비난했으나 인터넷에서는 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인 '에케 호모'(ecce homo) 벽화를 '이 원숭이를 보라'라고 바꿔 부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성당은 관광 명소가 되어 짭짤하게 관람료까지 챙기게 된다. 이는 그야말로 전화위복의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종교의 이상한 유머와 같은 것이다.
< 11시 조금 넘어 수상족 마을의 수상식당에 들러 국수와 맥주, 콜라로 점심을 때웠다. 국수가 밀가루인지라 색깔이 덜 익은 느낌을 준다. >
식사 후 1시간 정도 보트를 달려 낭쉐 선착장에 도착하니 1시 15분이다. 오후 7시에 네피도로 갈 pick up 차량이 온다니 그 때까지 쉬며 기다릴 곳이 필요해 어제 묵었던 호텔 방 하나를 15달러에 빌렸다. 305호에 들어가 좀 씻고 휴식을 취하다가 근처 샨족 식당에서 샨족 고유의 쌀국수를 주문했다. 우린 이날 저녁 미얀마에 와 가장 싸면서도 맛있는 쌀국수를 먹었다. 가까운 맛집을 두고 맛을 넘어선 “Beyond Taste”에 갔으니 아! 아까비!!!
저녁이 되니 비가 쏟아진다. 모두 짐을 찾아 우두커니 로비에서 pick up 차량을 기다리니 차는 오지 않고 무심한 비만 줄기차게 내린다. 내리는 밤비를 보자니 멍한 가운데 앞으로 전개될 일들이 걱정이다. 어두운 산길을 달려야할 밤버스도 위험하거니와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할지라도 앞으로 전개될 일들은 계획되지 않은 것들이라 자연이 걱정이 되었다. 20분 쯤 오토바이 화물트럭이 도착했는데 우리 말고 다른 일행도 있어 더러는 지붕을 뚫고 흘러내리는 비를 맞아야 했다.
어두워 어딘지도 모를 터미널에 도착하니 디럭스한 느낌의 버스 한 대가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다. 트럭 운전기사는 우산도 쓰지 않고 달려와 우리 짐을 버스 밑 짐칸에 넣어준다. 정신없이 트럭에서 내리니 어떤 사람이 달려와 고맙게도 우산을 씌워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터미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내려서 뛰다시피 정류소에 들어가니 겨우 정신이 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람! “만달레이, 만달레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 우산을 씌워준 사람에게 저 버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만달레이로 간단다. 이런, 미칠 일이 있나! 그래서 급하게 일행들에게 알리니 모두 우산도 없이 버스 짐칸으로 달려가 캐리어를 꺼내어 정류소로 오니 비에 흠뻑 젖어 조금 추웠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진정되자 드디어 정신을 차린 안선생이 성을 불같이 내며 옆에 서 있던 터미널 직원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선생의 말은 처음에는 영어였다가 점점 스스로 화가 차오르자 힘든 영어를 버리고 익숙한 한국말로 꾸짖기 시작했기에 미얀마인인 그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을 미루어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성을 내는지 짐작한 그는 아직 성을 내는 미얀마 사람을 보지 못한 나를 위해 실실 웃으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우리나라라면 아마 그는 내가 당신 짐을 짐칸에 넣은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성을 내느냐고 따졌을 것이고 그럼 안선생이 도리어 난처한 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만달레이 행 버스가 고장 났을 때도 아무도 성내지 않았고 누구도 운전기사에게 따지지 않았다. 미얀마에서 성내고 고함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구경하지 못했으니 미얀마는 얼마나 즐거운 곳인가! ㅋㅋㅋㅋ.
만약 내가 만달레이로 간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만달레이로 갔을까? 아니다. 전혀 그런 일이 생겨날 확률은 없다. 왜냐하면 만달레이 행 버스는 거의 좌석이 차 있었기에 우리가 올라가면 이미 우리 좌석에 다른 승객이 앉아 있을 것이므로 이 버스가 우리가 탈 버스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을 것이다. 결국 별 일 아닌 것으로 일단락되자 그제야 추위를 느껴 비에 젖은 남방을 벗어 캐리어에 넣고 두꺼운 방수가 되는 점퍼로 갈아입었다.
< 밤 7시 40분에 출발한 네피도 행 버스는 좌석이 3열로 배치되어 공간이 넉넉했다. 목 베게도 있고 작은 담요도 있는 일인용 의자는 뒤로 기우려져 조금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언제나 즐거운 손과장은 미얀마에 살아도 되겠다. >
비는 창밖으로 억수같이 내리는데 버스는 헤드라이트의 행렬을 이루며 내리막길을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간다. 추위를 느껴 담요를 덮었더니 어느새 잠든 모양이다. 안선생의 밭은기침은 끊이지를 않고 계속되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듣는 사람도 그 괴로움이 느껴져 안쓰럽다. 시간은 그렇게 차가 굴곡진 비탈을 조금씩 아래로 고도를 낮추듯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제 12 일 (2019. 11. 09. 토) 낭쉐 → 네피도 (Nay Pyi Taw) 시내 관광
새벽 4시경에 어두컴컴한 네피도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네피도가 정치적 수도인데 비해 터미널은 버스도 몇 대 안 보이고 너무 어두웠다. 자다가 깨어서 어리바리한 상태의 우리 네 사람은 갈 곳 잃은 나그네처럼 불 꺼진 사무실 앞 어두운 길에 멍하게 서 있었다. 요의(尿意)가 느껴져 모두 화장실을 찾았는데 어딘지 알 수 없다. 일단 어두운 건물 뒤에서 오줌부터 누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곧 젊은 애가 오더니 택시 흥정을 하는데 이 시간에 호텔 아니면 딱히 갈 곳도 없는 형편인데도 안선생은 에누리에 최선을 다 한다. 그래 봐야 1,000짯 정도 깎을 수 있을까? 14,000짯에 흥정을 했는데 생각 외로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마치 성곽처럼 거대하게 보이는 Apex Hotel에 도착은 했는데 운전기사가 리셉션 센터를 못 찾아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찾아 들어갔다. 새벽 5시경은 호텔에서 제일 얼빵한 사내가 숙직 겸해 리셉션을 지키는 시간인지라 아니나 다를까 이 사내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겨우 알아 들은 말이 지금은 체크인이 안 되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마침 화장실이 급했던 나는 토일렛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없다고 한다.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없다고 하니 황당해 다시 자리에 돌아와 생각하니 내가 잘못한 걸 깨달았다. 다시 가서 종이에 “W.C”라고 적으니 비로소 2층 열쇠를 준다.
< 급한 볼일을 보고나니 사물을 볼 여유가 생겼다. 바깥에 나와서 호텔 주변을 보니 리조트처럼 생긴 건물도 있고 본관 별관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미얀마의 아침 공기는 맑고 신선하여 심신을 깨우는 듯하다. >
8시 좀 넘어 드디어 정식 직원인 리셉션 담당아가씨가 오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원래 약속한 체크인 시간이 아니었지만 방 배정을 해주어 짐을 풀 수 있게 해주었고 예정에 없던 아침 식사도 다른 건물에서 배달해와 2층 식당에서 먹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일 8시 30분에 양곤으로 갈 버스표까지 이대용 선생 이름으로 예약하고 마지막으로 오늘 오전 네피도 시내관광에 필요한 택시도 불러 주었다. 동남아 어디를 가나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어리바리하고 여자들이 영리하고 똑 부러지게 야무지다.
< 버스회사는 “Elite”이고 승객은 이대용, 연락처의 전화번호, 그 아래 “NPT”는 “핵확산금지조약”
은 아닐 테니 네피도겠고 그러면 “Yhn”은 양곤이겠다. 날짜, 시간, 그리고 타는 곳이 “APEX Hotel”이라 되어 있다. 좌석번호, 영수 금액이 44,000이니 1인 11,000짯이고 우리 돈으로 9,000원 정도이다. 그리고 서비스 피 어쩌고저쩌고 적혀 있는데 그건 알 필요가 없어 모르겠다. >
2층 식당에서 기다리니 다른 건물에서 카트에 싣고 배달음식이 왔다. 커피와 주스, 누들과 야채, 스크램블 순서로 식사를 했는데 1인 6,100짯이니 5,000원 정도로 제법 만족한 식사를 했다. 아니,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네피도는 현재 개발 중이어서 구글 지도를 펴서 찾아본즉 호텔 근처에 식당이나 가게 같은 것이 없었다. 원래 미얀마의 수도는 양곤이었는데 2005년 핀마나로 옮긴 후 이름을 네피도 (Nay Pyi Taw)라 바꾸었는데 “왕이 머무는 곳[皇都]”이란 의미란다. 그래서 건물의 대부분이 큰 호텔이거나 관공서이고 그 외는 길이며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네피도는 최근 조성된 도시라 들릴 필요는 없었지만 인레에서 양곤까지 길이 너무 멀어 그래도 행정 수도라니 하루 쉬어 가는 셈치고 1박을 넣은 것이다. 오늘 시내 관광코스는 보석박물관(사실은 판매장), 분수공원이라는 수목원,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다는 우빠따산띠 파고다를 보고 졍션 센트리(Junction centre)에서 장보고 환전하는 것이다. 식후 룸으로 돌아와 씻고 모자란 잠도 좀 자고 젖은 옷도 말리면서 11시에 예약한 택시 시간을 기다렸다.
3시간 예약에 3만 짯에 주기로 하고 10시 50분에 호텔에서 출발해 보석박물관에 갔더니 입구에 경비원이 금속탐지기로 몸수색을 깐깐이 해서 안에 휘황찬란한 보석이 대단히 즐비할 줄 알았는데 거의 질이 떨어지는 옥(玉) 종류로 동물 조각이나 부처 조각, 팔찌, 목걸이 등속을 팔고 있었다. 평소 장신구에 관심이 없거니와 솜씨도 특별히 눈을 끄는 것이 없어 휭하니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수목원은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걸어야할 넓이에 비해 시설은 빈약해서 크게 볼 만한 것이 없었다. 이제 조성 중이라 앞으로 50년 후에 오면 시간이 괜찮은 작품들을 만들어 줄 듯하다. 해가 점점 머리 위로 올라가면서 날씨는 덥고 습도도 높아 불쾌해졌다.
< 수목원에서 본 살색 꽃받침이 특이한 꽃. 노란 별 모양의 꽃이 작아서 예쁘다. >
대강 한 바퀴 돌고 나와 다음 목적지인 우빠따산띠 파고다로 향했다. 이 파고다는 그 높이가 98m로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보다 1m 낮다고 한다. 아마 일부러 1m를 낮춤으로써 쉐다곤 파고다를 미얀마 최고의 파고다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수도인 네피도에 자기들이 만든 이 파고다가 2위라는 것을 미얀마 군사정부는 은연 중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 우빠따산띠 파고다로 향해 가는 길인데 태어나서 이렇게 넓은 길은 처음 봤다. 편도 10차선인데 좌측 중앙분리대 너머 또 10차선이 있고 마지막 10차선은 대강 3차선 정도의 너비로 되어 중앙분리대까지 친다면 왕복 30차선 너비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차는 안 보일 정도 앞에 한 대가 가고 있다. 택시는 일본 차 크라운이라서 차의 왼쪽에 내가 앉아 있고 운전기사는 내 오른쪽에 있다. 그러나 주행방향은 우리와 같다. >
가다가 좌측에 궁전 같은 큰 건물이 있어 궁금해 하는데 운전기사가 국회의사당이라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도 이전하던 2005년도는 군부독재 하는 때인데 국회의사당을 왜 저렇게 크게 지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972년 유신헌법 시절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처럼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을 장충체육관에 모아놓고 투표하면 무효표 2표를 제외한 99.9%로 당선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2016년 아웅 산 수치여사가 선거를 통해 실권을 잡게 되었으니 미얀마 민주주의 장래도 저 넓은 도로처럼 뚫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차가 없네.
< 드디어 도착한 곳이 우빠따산띠 파고다인데 주차 후 푸른색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
< 우빠따산띠 파고다는 쉐다곤을 모방했기에 그 모양은 같으나 쉐다곤 파고다가 수많은 부속 건물 등을 거느리고 있다면 여긴 조금 단순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 중앙의 에메랄드 부처를 중심으로 전체가 큰 홀로 트여 있어 매우 넓게 보였고, 천장의 휘황찬란한 황금빛 장식이 마치 터키의 성 소피아 사원을 보는 듯 대단했다. 가장자리를 따라 황금판에 영어로 불경의 섭리를 새겨 둘려 놓았다. >
그 중 몇 개의 테마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는데,
★ Noble Truth of Origin of Suffering : 고통 근원에 대한 고귀한 진실. 이는 괘락과 욕망에 대한 강한 갈구에 고통의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 Noble Truth of Suffering : 고귀한 고통의 진실. 이는 사고(四苦)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사고(四苦)를 말하나 이 네 가지는 똑같이 4등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내가 볼 때는 생(生)은 태어나기 전 의식이 없어 깨닫지 못하겠고 노(老), 병(病), 사(死)는 함께 너무 빨리 닥쳐 또한 깨달을 여가가 없다. 또한 생과 노가 괴롭다 하나 사는 것과 늙는 것은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병은 걸릴지 안 걸릴지 알 수 없고 죽음은 죽어보지 않아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 Noble Truth of Cessation of Suffering : 직역하자면, “고통 중단의 고귀한 진실”이지만 아마 “해탈의 고귀한 진실”이라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Noble Eightfold Path : 이는 팔정도(八正道)를 설명한 것이다. 부처가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 이야기한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바른 길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등이 적혀 있다.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보면 배의 방향을 잡는 조타키처럼 생겼다. 인생의 항로를 바로 잡는 키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
< 우빠따산띠 파고다를 나오니 점심때가 되어 정션 센터로 갔다. 민가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 숨어 살다 나왔는지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
이곳에서 만달레이 럼(rum)주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값이 너무 싸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인 럼은 어떻게 보면 식민지의 술이라 할 수 있다. 럼주라 하면 서인도 제도와 카리브해, 노예무역, 밀주 등이 떠오르면서 우리 세대의 머릿속에는 “캡틴 큐”라고 애꾸눈 해적을 상표로 쓴, 국산 저급 럼주를 연상시킨다. 마시고 나면 반드시 마신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하야로비” 란 술과 함께 당시 악명 높은 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만달레이 럼이 유명하다는 말보다 과거의 머리를 차에 받힌 듯한 통증이 떠올라 겁부터 먼저 났던 것이다.
< 매장 한 쪽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음식 부스를 발견했다. >
족두리를 쓴 그녀의 한국 음식이란 뜻인지 코리아 푸드라고 적어놓고 현지 아가씨가 능숙하게 김밥을 직접 말아 팔고 있어 깜짝 놀랐다. 속재료도 제대로여서 이걸 사서 맛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듯하기도 하고 마침 점심때도 된지라 도시락 세 개를 사니 나무젓가락도 넣어 준다. 물어물어 환전소를 찾았지만 닫힌 문에 오늘은 토요일이고 또 무슨 축제를 앞두고 있어 며칠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만 보고 결국 환전을 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사고 싶은 것이 별로 없어서 맥주 몇 캔을 사고서는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 사온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은 손과장이 끓인 라면과 과일로 식사 겸 안주를 했다. 2L병에 담긴 것은 만달레이에서 산 위스키인데 요즘 술 마시는 인원이 줄어 아직 남아 있다. 8시 20분에 취침. >
♠제 13 일 (2019. 11. 10. 일) 네피도 → 양곤
이동으로 인해 피곤했던지 6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오늘 주된 일정은 양곤까지 이동이었기에 8시 30분 출발 스케줄에 맞추어야 했다. 우선 씻고 가방을 완벽히 정리한 후 7시에 2층 조식 뷔페에서 우리밖에 없어 몹시 조촐하고 초라한 아침식사를 했다. 이래서 어떻게 이 큰 호텔을 운영하는지 내가 걱정될 정도이다. 8시에 체크아웃하고 로비에서 기다리니 8시 20분에 전기차(골프카트)가 와서 짐을 싣고 타니 상쾌한 아침 공기를 뚫고 편안히 버스 픽업지점에 내려주어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조금 주었다. 원래 한국에서 예약했던 호텔은 이 Apex hotel이 마지막이다. 양곤에서 마지막 1박은 원래는 윌리스 게하를 생각했지만 투숙해보니 비싼 것에 비해 시설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특히 매니저 자식 하는 짓이 개양아치 짓인지라 숙의를 거듭해 양곤 교통의 중심지인 술레 파고다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인 Mayshan hotel을 찾아 어제 예약을 했다. 가격은 방 2개에 60달러이니 방 하나당 윌리스 게하보다 10달러가 싸다.
< 아침에 우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가족 같아 보이는 부부와 아이가 보였다. 식사는 단출하지만 분위기는 조용하고 침착하다. 빈약한 의자를 가리는 등받이나 좀 다렸으면 그래도 있어 보일 텐데. >
< 8시 45분이나 되어서야 이마에 “ELite” 라 붙인 버스가 우리를 보고 천천히 접근한다. 짐을 짐칸에 싣고 차에 타니 에어컨도 빵빵하고 좌석도 넓고 편하다. 이런 차 같으면 얼마든지 타고 다닐 텐데 좁은 벤 뒷자리에 통로까지 보조의자를 놓고 빽빽이 구겨져 모기에 종아리를 물리는 것은 정말 최악의 고역이다. >
<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화장실도 깨끗하고 커피 맛도 좋았다. 특히 비현실적 몸매를 가진 여종업원을 보았는데 아가씨인지 시집을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몸매로 봐서는 아가씨 같다. 좁은 어깨 폭은 가는 팔의 굵기에 어울리고 허리와도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저 호리호리하면서도 쭉 빠진 키는 어쩔 것이냐? 하체가 상대적으로 긴 것을 보니 스리랑카에서 본 싱할라족 처녀들과 닮아 있다. 우리나라 아가씨들은 죽었다 깨도 저런 몸매는 있을 수 없으니 외국에 나와서야 넓힐 수 있는 대단한 견문이다. >
13시 50분쯤 양곤 외곽 아웅밍갈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택시기사들이 자기 차를 타라고 난리다. 처음이라면 어떻게 탈까말까 고민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현지인화 되어 버스 타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간단히 그들의 권유를 무시했다. 안선생이 36번 버스를 타야 술레 파고다로 간다고 해서 버스 정류소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우리는 통하지 않는 말로 물어물어 찾는데 자전거 탄 사내가 마치 내가 술레 파고다로 가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36번 버스를 가리킨다. 그리고 200짯이라고 묻지 않았는데도 이야기해 준다. 아! 이 친절을 어쩔 것이냐!!!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을 향해 가는데 양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든 나라라서 그런지 어디나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쉴 새 없이 지껄이고 떠들며, 그러나 환히 웃었다. 그러는 사이 술레 파고다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이제 호텔을 찾아가는 일이 큰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실패했지만 일단 구글 지도를 펴서 이리저리 재며 찾아가니, 앗! 바로 호텔이 눈앞이다. 이제 나도 구글 지도로 길 찾아가는 사람의 대열에 살짝 새치기한 느낌이었다.
< 메이샨 호텔 입구. 마침 옆집은 맥주 사기 좋은 슈퍼이다. 호텔 문 앞에 선 나에게는 2층은 보이지 않아 밤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리셉션에는 중국인처럼 생긴 아줌마가 우리를 맞았는데 영어가 능숙하다. 어두침침해서 호텔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오래된 목욕탕 수부 같은 느낌이다. >
< 방은 넓은 방과 좁은 방이 있었는데 안선생과 나는 좁은 방을 선택했다. 넓은 방은 위 사진의 창문에 접한 방이어서 밤새도록 도로의 소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연출했다고 하니 손과장은 밤새 휴대폰으로 숫자 공부했단다. 음주하지 않으면 어서나 쉬지 않는 부지런한 손과장. 방에서는 늘 이런 차림에 이런 자세를 고수한다. 나는 저기에 더해 웃옷까지 안 입는다. >
술레 파고다가 바로 보이는 위치여서 이동도 수월하고 음식점도 가까워 여러모로 괜찮은 위치의 호텔이다. 짐을 풀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주변에 “999 Shan Noodle Shop”이 많은 호평을 받는 음식점으로 나와 있다.
< 우리 돈으로 2,500원 정도인데 면이 가늘면서도 쫄깃하여 식감도 좋고 육수도 깊이가 있어 식당 안에는 구글을 보고 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
식후 호텔로 돌아와 쉬다가 5시 30분에 선물도 사고 저녁도 먹을 겸 택시로 Junction city 쇼핑몰로 갔다. 우리나라의 백화점과 비슷한 크기였는데 일단 중식당에서 오리요리와 소룡포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웬지 낮 익은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 환공어묵이 어느새 미얀마까지 진출해 1호점은 미얀마 플라자 3층에 있고 여기에 곧 16번째 지점을 낸다고 한다. 어제 본 졍션 센터의 김밥만큼이나 반갑고 놀랍다. >
“본촌”이라는 한글간판이 눈에 띄어 가보니 프라이드 치킨을 주로 팔고 있다. 내부에는 젊은 층이 주로 많았는데 이 본촌이란 그룹은 미국과 동남아 등 8개국에 350개 매장이 있는 치킨·한식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프라이드 치킨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식 간장소스, 매운 양념소스 등을 곁들인 색다른 치킨으로 대박을 친 기업인데 치킨뿐 아니라 비빔밥, 떡볶이, 잡채, 순두부 등 한식과 샐러드 등도 판매해 연간 290억 정도 번다고 하니 대단한 한국인이다. Junction city에도 당연히 삼성과 LG매장이 있지만 롯데리아도 있고 K-BIBIMBAP도 있었는데 음식의 경우 상당히 높은 가격대로 팔리는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는 고급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 한국인이 부지런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게 다가왔다.
< 그리고는 주된 목적 중 하나인 선물 구입을 위해 market place란 간판이 있는 곳에 들어가니 각종 음료수, 식재료 등을 팔고 있다. 다른 것은 필요없고 원두커피만 잔뜩 샀다. 200g 1봉에 우리 돈으로 2,500원 정도니 청도 동네 카페인 “유목정”의 아메리카노 1잔 값이다. >
< 귀가하며 찍은 밤의 술레 파고다의 모습. >
더 할 일도 없고 내일도 다른 곳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졍션시티에 와 시원한 에어컨 덕을 볼 계획이었으므로 택시로 호텔로 돌아왔다. 큰방에서 술을 한잔하고 9시 45분경에 돌아와 10시 쯤 잤다.
♠제 14 일 (2019. 11. 11. 월) 양곤 → 하노이
6시 30분에 일어나 세수와 면도하고 8시에 1층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물 중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다가도 남은 쓰레기의 대표 오그락지는 좌변기에 버릴 수 있어 버리고 바깥 쓰레기통에 버릴 것은 버린 후 가방을 꾸리고 침대에 누워 쉬었다. 오늘 비행 탑승시간이 18시 55분이기에 호텔 체크아웃 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한 버텨야 한다. 그리고 리셉션에 가방을 맡긴 후 정션시티에서 점심 먹고 시간 보내다가 돌아와 길 건너 AA약국 앞 정류소에서 공항버스로 공항에 가 수속을 밟은 후 면세구역에서 저녁을 먹고 비행기를 탈 작정이다.
< 8시에 1층 식당으로 가니 토스트와 바나나, 커피와 계란 프라이를 바로 조리해 준다. 손님은 우리뿐인 모양이다. >
11시 40분에 체크아웃 후 가방을 맡기고 “Junction city”로 갔다. 푸드마켓에 들어가 남은 미얀마 돈은 더 사용할 곳이 없을 듯해서 버스비 정도만 남기고 과일 말린 것과 커피도 더 샀다.
< 과일 말린 것과 과일 농축 사탕 등 달달한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필요한 만큼 담으면 무게로 값을 알려준다. >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 해서 둘러보다가 “999 Shan Noodle Shop”이 보였다. 어제 좋은 느낌을 받은지라 줄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 돈을 주면서 주문을 하니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일단 자리로 후퇴해 생각해 보니 아까 사람들이 줄서서 무언가 하고 있는 걸 본 것이 생각 났다. 그래서 혼자 가서 보니 카드 비슷한 것을 사람들이 사고 있다. 우리가 주문할 정도의 돈을 주니 카드를 발급해준다. FOOD STREAT라 적혀 있어 STREET를 잘 못 적었나 했더니 EAT에 의미를 보탠 의도된 오기였다. 나는 샨 누들의 쌀국수를 주문했고 알랑미 맛을 좋아하는 이대용 선생은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더 할 일이 없어 커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두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구경하다가 1시 40분 경에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아 길 건너 AA약국 앞 정류소에서 500짯의 요금을 내고 공항버스를 탔다.
< 서양 애들도 여기와 교화를 많이 받았는지 그 행실이 착해져 노인 부축하기와 자리 양보하기 등도 할 줄 알게 되었다. >
사진의 오른쪽 할머니들은 버스가 서자 40대 후반의 사내가 지금 할매들이 앉은 자리에 앉았다가 내려가 부축해 자기 자리에 앉히고 자기는 뒷자리로 가서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별로 고마운 표정도 아니고 당연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표정이다. 앞서 옷도 깔끔하게 입은 여자애가 구걸용 종이를 돌리니 그 사내는 옆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잔돈을 빌려 돈을 주기도 했다. 빌려서라도 남을 도와주는 것은 부유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장면들은 패키지여행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또 보더라도 그 장면의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는 글로 설명해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3시 좀 넘어 공항에 도착해 귀국 때 추위를 대비해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다시 단단히 꾸렸다. 그리고 4시 좀 넘어 체크인하고 면세구역에 들어가 간식으로 팟타이를 사 먹었고 남은 돈으로 과자를 사서 나누었다. 18시 55분 양곤에서 탑승한 베트남 항공의 VN956기는 우리의 예상대로 먹을 만한 기내식을 제공했는데 평시 베트남 항공의 연꽃무늬 술잔을 노리던 안선생은 드디어 4개를 채움으로써 한 세트를 장만했다. 가난한 나라가 오히려 손님 대접을 더 착실하게 하는 것 같아 남김없이 깨끗이 먹었다. 그리고 과연 다음 환승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줄지 안 줄지가 궁금해졌다. 이는 내 까진 이마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기내식을 주면 시간이 30분 정도 후딱 지나가기에 기다리는 것으로 오해 없기 바란다. 2시간 30분을 날라 21시 25분이 되어서야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 통로로 가서 다시 보안 검색 후 23번 게이트에서 기다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이번에는 달러로 구입했다.
♠제 15 일 (2019. 11. 12. 화) 하노이 → 부산 → 청도
하노이에서 00 : 30분에 VN426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도착은 6시 10분이니 이는 시차를 생각하면 실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이다. 역시 기내식을 주었는데 제법 메뉴가 다채롭다.
< 양배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엄청 큰 걸 넣어 두었다. 샐러드가 맛있다. >
항공편이 몰려 내리지 못하고 몇 번 선회하더니 20분 정도 연착해 착륙했다. 그래도 다행히 짐이 일찍 나와 세관 통과 후 다시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가방을 새로 꾸렸다. 봉고택시를 타고 구포역에 도착해 부전식당에서 귀국 기념 의식으로 돼지국밥에 소주를 반주 겸해 마셨다. 08시 05분 기차로 청도에 도착하니 08시 52분이다. 마중 나온 사모님들 차를 타고 각자 귀가하여 15일의 여정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항공권 31만원과 생활비 650달러까지 해서 총 여행경비는 109만원 이었다.
<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여행을 다니는 것일까? 어떤 곳은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해 찾기도 하고 어떤 곳은 놀라운 유적을 보기 위해 힘든 여행을 한다. 하지만 멋진 경치나 놀라운 유적은 TV에서 보는 것이 훨씬 낫다. TV에는 드론을 이용한 고공촬영과 같은. 실제 여행에서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나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실증까지 곁들인 유적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까지 들을 수 있어 그야말로 견문(見聞)을 두루 갖출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수 시간의 괴로운 비행과 지루한 환승을 위한 기다림까지 감수하면서 왜 돌아다니는 걸까? 이번 미얀마 여행에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그 답을 찾은 듯하다.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돌아다니는가? 그건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나 인생의 깊이 있는 속내를 알기 위해서다. 그 목적에 합당한 여행지로서 이 미얀마 보다 나은 곳은 없다. 여긴 어디서든 행복한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그 행복의 열쇠가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알아내겠지. > 끝
첫댓글 행복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힘듬을 등에 지고 여행을 다닌다는 말이 조금은 가슴에 와 닫네요.
가난하지만 화내지 않고 밝게사는 미안마 사람의 정서를 잘 접수했네요. 코로나 19로 함께하려던 대만 여행이 취소되었지만 언젠가는 같이 체험 하겠죠.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너그러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함께 생활해 봄으로서 인생에서 원초적
으로 중요한 것들을 체감하고 돌아와서 우리 일상생활 더욱 여유롭고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서 삶의 질 자
체를 좀 더 풍요롭게 고양시킨다는 것이 이번 미안마 여행의 참의미인 것 같습니다.
모처럼 내용이 여전히 알찬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여행에서의 모습처럼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