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모든 국민에게 전쟁에 이겨야 한다는 정신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1941년 ‘국민학교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고 국민과도 만들었습니다. 국민과는 국어(일본어), 역사, 지리 등을 묶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조선어를 폐지하고 한국사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와 국민과는 ‘황국신민교육(皇國臣民敎育)’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후 일본은 국민과를 폐지하고 국민학교를 소학교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이라는 말 자체가 나쁜 의미가 아니며 ‘국민학교’를 다른 이름으로 바꿀 경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으리라는 이유로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96년부터 식민지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국민학교의 ‘국민’의 의미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일제식민지와는 다르게 한국어와 한국역사도 배웠습니다. 그때 국사가 독립교과가 되고 각종 시험에서 필수 과목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국사는 국민윤리와 함께 국민에게 국가주의 정신자세를 심으려는 정신교육에 이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사교과서는 국정도서로 바뀌었습니다. 국사교육은 정부의 통치이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통로로 이용되었고 국정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반영하였습니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의 시작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워야만 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구구단도 다 외우지 못한 내가 국민교육헌장만은 달달 외웠습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나는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매일 아침조회시간이면 구령대 앞에 모여 고사리 같은 손을 가슴에 얹고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오후 6시가 되면 국기하강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언제 어디서든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어디다 무엇에 충성하는지도 모르면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들세.’ 마을 방송 스피커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이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아, 우리가 게을러서 잘 못살고 있구나! 내가 잘 못 가꾸어서 살기 좋은 마을이 안 되는구나! 아픈 사람도 늙은 노인도 어서어서 일어나 일해야 잘살지!
아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새벽종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학교에 가서는 모두 모여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다짐하였고 저녁 시간이 되면 태극기 앞에 모두 모여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그 때 기껏해야 국민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국민학교 과제 중에는 표어 만들기와 포스터 그려오기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했던가요.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오랑캐, 방공방첩, 수상하면 신고하자.’
북한 사람은 입가에 침을 흘리며 머리에 뿔이 달린 먹잇감을 노리는 사나운 늑대의 모습으로 기괴하게 그려졌습니다. 난 정말 북한 사람은 짐승과 같은 모습일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모습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2005년 평양을 방문했었습니다. 못자리 비닐박막 지원을 했고 잘 사용되는지 보러갔습니다. 가슴이 뛰었고 북한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손자 손을 잡고 을밀대 주위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사탕을 주자 아이가 기쁘게 받았습니다. 또 어떤 할아버지는 손녀와 함께 대동강에서 여러 사람들 틈에 끼여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우리랑 똑같았습니다. 피가 돌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힌 왜곡된 모습이 그제야 바뀌고 있었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국정국사교과서로 공부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는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줄줄 외우면 되었습니다. 시험도 그렇게 출제되었습니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 없이 그냥 암기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공부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한다고 야단입니다. 1974년의 유신정권의 국정교과서의 되풀입니다. 그때 국사는 국가주의 정신교육에 이용되었습니다. 국난극복사관을 내세우고 유교의 전통윤리를 국민의 정신자세로 강조했습니다. 검정으로 발행되던 국사 교과서는 국정도서로 바뀌었습니다. 지배층 위주의 서술과 정부의 홍보 역할을 하거나 반공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하나여야 하고 하나로 행동하며 아무 비판의식 없이 살아가면 된다는 전체주의와 획일화였습니다.
역사는 참다운 인간을 위한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역사교육은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모범이 되며 권력에 늘 복종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었습니다. 또한 권력자들의 권력유지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역사교육은 그만해야 합니다. 역사교육은 이념도 정치도 아닌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성과 함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인간, 인간을 위한 사랑을 기르는 역사교육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