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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거북선.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통제영귀선(왼쪽)과 전라좌수영귀선(오른쪽)
<img class='wiki-image' alt='파일:/image/001/2011/07/12/PYH2011071209060005200_P2.jpg' data-filesize='56732' src='//cdn.namuwikiusercontent.com/3c/3cbfbd1774ed7af97409322b6f3247c7bf2adbe7be1d66836415a4583bc91efb.jpg?e=1505529184&amp;k=oyrid2CniCab89hPOz7h2w'>
경상남도에서 복원한 3층 거북선. 그러나 국산목재를 사용했다는 주장과 달리 실은 수입목재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결국 조사결과 제조사 대표가 징역 4년을 살게 되었다. 여담으로 비슷하게 생긴 거북선의 침수사고까지 터졌다.
위 거북선의 초기 기획모습.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거북선/c0037496_6251971.jpg' data-filesize='234934' src='//cdn.namuwikiusercontent.com/a0/a06c99f0dd81b8cbda26c12353603448d916f24ddfe0fe1fa911777b870fa28c.jpg?e=1497616548&amp;k=W5o2IM3vFroM5YAFQXWXUg'>
한강의 거북선형 유람선. 지금은 통영에 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때 갑천에서 운행했던 태양전지 거북선. 지금은 한빛탑 근처의 엑스포과학공원 내 수영장에서 볼 수 있다.
통영에 정박 중인 거북선 복원품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잘 알려진 군함.이상준: 이순신은 설계를 하고 만든건 목수아저씨조선의 위대한 16세기 바다 헤처 적진에 난입해서 떡장과 위엄쩌는 화력으로 무쌍을 찍는점도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개발되었던 군함의 형태인 과선(戈船)[1]과 여말선초의 검선(劍船)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 묻혀 있던 것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킨 것이다. 태종실록에도 '거북선'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의 것과는 이름은 같지만 세부 구조도 같을지에 대해서는 설계가 전해지지 않아 알 길이 없다.
다만 태종실록 30권(태종 15년) 좌대언 탁신이 올린 상소에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어 적을 방어해내기 위한 방호장비는 갖춘 것 같다.
기본형태는 기존 조선 수군의 주력함이었던 판옥선을 개량한 것으로 지붕을 덧씌워 방어력을 높이고 포문을 많이 설치하여 사격 공격을 용이하게 하도록 구조를 변경, 앞에는 용머리 형태의 충각 겸 포문을 달아 돌격전에도 용이하게 설계되었다.
당시 일본 수군의 전술은 배에서 직접 사격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동성이 빠른 소형 배를 타고 적함에 난입하여 근접전으로 배를 뺏거나 횃불을 던져 태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옻칠한 나무 지붕에 쇠못을 빼꼭하게 박은 거북선에는 상륙 자체가 불가능하여 통하지 않았고, 거기다가 근접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화력[2]으로 적함을 격침시켰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는 말 그대로 해상요새 수준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나대용이 거북선의 제작자라 하지만 공식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야사에만 등장하는데 야사에 거북선 제작에 관여한 사람 수만 20이 넘는다. 흠좀무. 배한성의 고전열전에선 나대용설을 채택했는지 이 사람이랑 동생이 어느날 이순신 앞에 설계도를 가져와서 브리핑한다. 다른 야사에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도인이었던 송구봉이 임란을 예견하고 거북선의 설계도를 만들어두었다가 이순신에게 주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는 전라좌수군 방답진에 소속된 방답귀선, 전라좌수영 본영에 소속된 영귀선, 통제영 창설 이후 건조된 통제영 귀선의 3척이 있었다. 하지만 원균의 상 병크 당시 모두 침몰.
여담으로, 현재 국내 웹상에서 위 사진의 거북선*이 선교사가 찍은 실제 거북선 사진이라며 돌고 있으나, 사실은 이승만 정권 당시 만들어진 모형이다. 1956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전통선박 모형 전시회에 기증한 물건이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1척에는 약 120여명이 승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 이는 전시 병력부족으로 인해 최소한으로 승선했던 숫자로 보인다. 전후 숙종대의 기록에 따르면 정상적인 편제라면 약 150여명이 승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장(귀선돌격장) 1명
좌·우 포도장 각 1명
장령 6명
선직 2명
무상 2명
타공 2명
요수 2명
정수 2명
사부 14명
화포장 8명
화포수 24명
노군 90여명
진주성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총통의 모형.# 거북선도 이런 총통들을 사용하였다.
조선의 주력 화포였던 총통을 주로 장비하고 있던걸로 보이나,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천자총통은 임란을 거치면서 조선수군 전반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걸로 추측된다. 난중일기에도 초기에는 천자포에 관한 기록이 보이다, 뒤로 갈수록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과 왜선이 워낙 약해서 현자/지자총통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점차 사라진다.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완전한 형태가 남아있지 않아서 용머리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많다. 총포문이었다는 설이 있고, 대포문이었다는 설도 있으며 불을 뿜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3]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독가스를 뿜는 화학전 분사기라고 방영하기까지 했다.
널리 알려진 또다른 설인 충각설은 학술적 근거는 없으며 고 김재근 선생의 저서 <한국의 배>에 기초해 보면 전라좌수영 귀선의 용머리 외에 선체 하부에 설치한 귀면의 용도에 관한 설과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총포문이나 대포문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존하는 거북선은 1980년대에 복원되어 다시 만들어진 복제품들이다.
이후 거북선의 후계함으로 매의 형태를 한 해골선(海鶻船)[4]이란 배가 개발된 기록이 있으나 그 모양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다. 2007년 해골선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발굴되어 그 귀여운 외모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turtleship_next.jpg' data-filesize='24409' src='//cdn.namuwikiusercontent.com/92/926e6e7e2cbeb7fab459da3411f3daac9929dbb0111e0a1dce6f976dadc1c500.jpg?e=1498212054&amp;k=LHMSYdoMjaiOZxw70W3HSQ'>
다른 후계선인 창선은 1606년 나대용이 만든 것으로, 판옥선이나 거북선하고는 다른 배로 배에 창검을 빽빽하게 꽂아놓은 쾌속선이라는 것이 실록에 나오나, 여타의 자료는 없다.
한국에선 마치 이순신하면 철갑선인 거북선을 제작했다는 식의 통념이 있으나, 사실 조선수군의 주력은 판옥선이고 이순신도 거북선을 개발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엄격한 법 체계를 가지고 있던 조선왕조에서 기존 규정에 없는 새로운 군함을 만든다는 것은 지휘관의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며, 그 결단을 이순신 장군이 내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거북선 자체는 태종 때 완성됐다는 말이 있긴 하나, 현실은 태종 시기 거북선에 대한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의 '거북선이 왜선과 싸우는 모습을 관람하다'는 한 줄과, 해당 기록에서 2~3년 뒤 상소문의 내용에 '거북선은 적선에 둘러싸여도 아군을 해치지 못한다' 정도. 실제로 조선 수군은 건국 후부터 왜구 등에 대항하여 계속된 투자와 신형함과 전술 개발을 해왔는데 이걸 다 무시하는 소리다.
조선 초기의 주력함인 대선에서 성종 때의 맹선으로 그리고 명종 시기에 와서 전선(戰船, 판옥선의 공식 함명)이 주력함으로 등장하는데 이 모든 사실을 무시하고 태종 때의 거북선과 임진왜란 시기의 거북선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항해시대의 프리깃과 현용 프리깃을 같은 배라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순신 종가에서 보관 중인 귀선도.
이순신 함대에서 거북선은 주력함이 아니었으며 현재 알려진 만큼 함대 내에서의 전략적 중요도도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거북선의 건조는 극소수만 이루어졌고, 이를 칠천량에서 다 잃고 난 다음 명량해전 이후 건조할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단 1대도 거북선을 건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순신 입장에서는 칠천량 해전에서 큰 손상을 입은 수군을 시급히 재건해야 하는 입장에서 건조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거북선을 후순위로 미루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왜냐면 정말로 거북선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면 19세기 고종 시절까지도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현역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내 배의 역사관에 "인류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로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한때 경상남도에서는 임진왜란 때 침몰했을 거북선을 찾기 위해 수중탐사중이라고 했으나,[5] 현재 중단되었다.
지금은 안 쓰이는 지폐인 500원짜리 지폐와 5원짜리 동전에도 거북선이 도안되었다.
또한, 이 지폐에는 정주영 회장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소를 건설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만든 역사가 있다'고 설득해 차관을 받아왔다고 한다.[6] 물론 실제로는 개발도상국의 일개 기업가가 국가의 돈을 빌린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 보증을 서주었기 때문에 차관을 들여올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의 대부분 부대마크에 필수요소다. 각 해역함대와 작전사령부, 교육사령부 등 주력부대, 제7기동전단, 충무공 이순신함등 전단, 함정마크에도 사용된다. 또 장교 정모[7]와 함정에 근무하는 승조원 뱃지에도 들어간다.[8]
일본에선 이런 이미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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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그린 또 다른 그림.
실제로 에도 막부 시대에 거북선을 복카이센沐海潛(=목해선)이란 괴물배로 부르면서 이것을 가토 기요마사가 퇴치한다는 내용의 연극[9] 또한 성행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뛰어난 활약을 본 일본군은 거북선과 비슷하게 상부구조를 덮은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로 이것. 메구라부네도 참고.
또한 직접적으로 거북선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문헌에 응선(鷹船)이라는 배 역시 이 거북선을 닮았다.링크 이 배는 임란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예술작품인 <회본태합기>에 조선 거북선으로 등장한다. 뱀발로 <회본태합기>에 등장하는 조선 수군의 배는 다 중국 병서에 실린 중국 배의 모습이다. 전쟁이 끝난 후 에도 막부 시대에 나온 책인지라 일본인 삽화가가 조선 수군의 배를 실제로 보지 못해서 참고자료로 본 책이 중국 병서였기 때문.
또한 이충무공전서에서는 명나라 화옥이 쓴 해방의(海防議)에 "조선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건 퇴조 때이건 마음대로 간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거북선이 철갑선인가에 대해서는, 한국 주류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역사는 제법 오래돼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최초의 철갑선이면 자랑스럽겠지만 철갑선이 아닌 걸 맞다고 할 수 없다"라고 기술하였다.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한 의도적인 주장이었는지, 아니면 그게 진의였는지는 몰라도. 이에 대한 신채호의 근거는 아주 간단한데,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기록에 철갑이라는 게 없다.[10] 다만 현재의 국내외 학자들은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게 나오는 건 일본측 기록인데, 이마저도 철갑을 두른 것인지 철갑을 두른 것처럼 강했다는 것인지(물론 일본에 텟코센이 있기는 했지만), 철못을 박았다는 것인지 해석이 엇갈리고, 거북선이 강해서 자기가 졌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적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명량 해전 때는 13척이 다 거북선이어서 졌다고 할 정도. (실제 명량 해전에서는, 그 직전에 일어난 기록적인 패전 때문에, 이순신 휘하 함대에 거북선이 없었다.)
다만 위에서 보듯 당시 판옥선을 거북선처럼 개조했다는 기록에 근거해 왜군이 헷갈렸다는 주장도 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난 기록을 보면 일본에서도 철갑을 두른 배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거북선이라는 철갑선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이걸 주장한 건 유길준인데 이 역시 일본의 정한위략을 보고 그랬다는 것. 사실 실록이나 여타 기록 중에 귀선철개라 하여 거북선용 철갑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있는데, 문제는 관련 기록 중 하나는 1748년 작성된 경상좌수사의 장계 초본에 "이른바 거북선은 누각을 만들지 않고, 판으로써 덮개를 하고 그 위에 거듭 인갑을 하였고(所謂龜船則不以爲樓以板爲蓋仍作鱗)..."하는 기록이고(출처), 다른 기록은 흥선대원군 시절 기록이다. 즉 둘다 임진왜란 당대 기록이 아니다.
정약용은 정조 대에 영국 배 프로비던스 호가 부산에 표류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면서, 프로비던스 호가 "배 위에 널판지를 깔아 마치 거북선 같았다"고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철갑선 설을 부정할 여지도 있다.
생각해보면 고종 때까지도 거북선이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논란이 있는 게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철갑선 설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철갑을 씌웠다는 기록은 부족한데 그나마 철갑선 언급이 있는게 대부분 일본쪽 기록이지만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판을 멀리서 봐서 착각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어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11]
그렇다고 안 씌웠다고 하자니 일본의 화공을 어떻게 버텼냐가 문제다. 당시 일본도 화공용 폭탄(포락옥)과 짚단을 사용한 데다, 물에 적신 거적을 겉에 덮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 말라버리면 효과가 없고, 이동 중이나 포락옥같은 폭발물에 맞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 거기다 적이 항상 쳐들어 오기 전에 사람이 다니기 힘든 거북선 등에 짚단 덮을 시간을 내준다는 보장도 없다.
네이버캐스트의 거북선 철갑선설에 관한 글
이쪽은 요약하자면 "금속판으로 덮는 것이 별 문제 없이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도가 된다. 이쪽이 가장 보편적인 학설.
신(臣)이 일찍이 왜적이 쳐들어 올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거북선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백 척의 적선 속이라도 돌진해 들어가서 대포를 쏠 수 있게 했습니다.
- 당포파왜병장
<img class='wiki-image' alt='파일:/image/023/2004/04/27/200404270322_01.jpg' data-filesize='28578' src='//cdn.namuwikiusercontent.com/01/01a0e97d19bb8dea74a87f2bb1b12f74eec4af45a779ba89d7788926960c7946.jpg?e=1504489440&amp;k=_a1gp7rzI13rqeblc_jCYw'>
(경상남도에서 복원한 거북선은 3층 구조지만 대포가 2층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 외부 형태만큼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은 바로 내부구조다.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2층설과 3층설, 2.5층 설이 혼재되어 있는데, 현재는 2층 설은 사실상 사장된 상태로, 최초로 제기한 것은 구한말 선교사였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제창한 형태이다. 하지만 언더우드 학설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바로 서양식 노에 입각한 거북선 모델이기 때문에 언더우드가 제창한 구조에서는 조선식 노를 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자연히 언더우드 모델인 2층 설에서는 전투 공간과 노를 젓는 공간이 합쳐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사격을 하면 이동이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진다.
이 때문에 제기된 학설이 3층설이다. 남천우 등이 제기한 이 학설은 전투 공간과 노를 젓는 공간이 겹쳐지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층을 더 올린 것인데, 이것 또한 고증에 어긋난다. 기본적으로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지붕을 올린 것이라는 기록과 차이가 발생하고, 2번째로 발생하는 문제점은 층수가 높아져서 흘수가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3층으로 증축을 해도 오히려 무게가 늘어나서 흘수 자체나 복원력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3층설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과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3층설도 문제가 있다.
때문에 위의 학설들을 절충한 2.5층설이 제기되었는데, 내부에 전투 공간을 따로 확보한 반층 정도되는 공간을 마련해 따로 전투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이 설은 임진왜란 당대의 기록인 <간재집>의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언더우드 식 2층설 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모델이 되었고, 조선식 2층 모델의 제기, 3층설의 보완과 2.5층설 자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홍순구 교수팀이 추정해 그린 거북선 그림.# 임진왜란 당대의 인물인 간재 이덕홍의 책에 실린 거북선 그림에 의거한 거북선 단면 8각형설에 기초해 그린 것이다.
2015년 현재 홍순구 교수팀의 연구팀에 의해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 높이에 관한 치수 기록을 처음으로 해석해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모두 3층 구조였고, 기존의 2층의 낮은 높이에 대한 논란은 방패판의 크기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15년 8월 18일 기사 :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모두 3층 구조"
2015년 10월 15일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현존 거북선 모형은 '엉터리'…'명량'식으로 발포하면 배 뒤집혀" 홍순구 교수의 3층설 연구에서 화포 운용에 대한 내용을 추가로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거북선은 측면에서는 황자총통과 현자총통같은 중소 구경의 화포만을, 천자총통, 지자총통과 같은 중, 대형포는 함수 전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혹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3층에도 당연히 벽과 난간이 존재했던 판옥선의 특성상 그 위에 뚜껑을 올린 거북선의 지붕은 자연스럽게 바로 그 3층 벽 위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타당하다. 위에 제시된 거북선 3층설의 그림들을 토대로 생각하면 판옥선의 3층이 무슨 벽도 난간도 없는 구조가 되어 말그대로 2층의 지붕 위에 병사들이 올라타서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 나온 그리스 함선의 군사들마냥 싸운 것이 되는데 이랬을 리는 없고 당연히 병사들의 추락 방지 및 적군의 화살, 총탄에 대한 방호 용도로 화포를 쏠 구멍만 뚫어 놓은 벽이 둘러처져 있었으니, 바로 이 위에 뚜껑을 덮은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 모로 합리적이다. 위의 거북선 3층설의 그림들에 나온 3층의 구조처럼 비스듬하게 누운 벽에 뚫린 화포 구멍을 엎드려서 들여다보는 것보다 보통 판옥선처럼 수직으로 세워진 벽에 뚫린 화포 구멍을 통해 밖을 보는 것이 더 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천장 높이도 위에 제시된 형태의 거북선들보다 더 높아 탑승자들이 편리할 것이고, 또 위와 같은 거북선을 만들려면 이미 있던 3층의 벽을 다 뜯어내야 했을 문제 등의 이유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거북선을 3층으로 합리적으로 고증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는 현대의 매체들에서는 거의 다 이런 형태로 거북선을 디자인한다.
지금은 폐간된 국산 모형전문잡지인 <취미가>[12]의 제호 중에 역사전통기획 시리즈로 이순신 장군 흉상과 거북선 특집('95년 12월호)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후일 전자책으로 별도 발매).
거북선의 경우 필진인 김세랑 씨가 알고 지내던 거북선 연구가에게 사사한 지식으로 '지금 알려진 거북선은 중국과 일본의 동시대 함선을 비교하여 만들어진 모습으로, 조선시대 판옥선 제작기술과 전법을 고려하면 지금과는 한참 더 모양이 달라진다' 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다. 제작 동기는, 우연히 한참 예전에 절판된 거북선 프라모델을 입수한 것을 계기로 자신이 배운 지식을 최대한 적용하여 거의 새로 만들다 시피 개조한 외형이었는데, 당시의 설명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부분이 많은 형태였다.
1. 거북선 머리의 경우 당시 일본 함선들의 지휘부가 있는 누각이 높이 있는 것을 감안, 지휘부를 직사로 공격할 수 있는 대포를 탑재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가정하고 있다. 때문에 거북이 머리의 사이즈가 상당히 크며, 실제로 거북선이 수십, 수백척씩 사용되고도 후세에 이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거북이 머리 대형화와 함선 높이로 인해 함선 균형의 불안정'을 이야기하고도 있다. 사실, 지금 알려진 거북선의 거북이 머리는 사이즈가 너무 작아 그 용도를 억지로 끼워맞추려면 '적에게 심리적 위압감'이나 '연막살포용'으로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13]
2. 함수 아래쪽의 도깨비 문양은 위치가 애매하여 그 자리에 도깨비 문양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가지 가능한 추론은 이게 사실 충각의 일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유사시 적함을 들이받는 전술은 전세계적으로 근대까지도 사용되었는데, 현재의 거북선 모양대로라면 그대로 들이받을 시 함체가 충격을 받는 형태이며, 도깨비 문양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홀수선 근처라 충각으로 들이받으면 적함에 물이 들어가기 쉬운 위치라는 점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커야 하기 때문에, 아예 충각으로 설정하고 대형화하고 돌출시켜 놨다.참고로 충무공 전서의 통제영 귀선에는 귀면이 없다. 전라좌수영 귀선에 도깨비 문양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북선의 모습은 이 전라좌수영 귀선을 모델로 한 것.
3. 돛의 경우 근거리 전투시에는 총탄이나 화살에 맞아 구멍이 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투시에 눕힐 수 있도록 설계한 뒤에 100% 노를 저어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접을 수 있게 설계.
4. 거북선의 철갑선 이야기에도 의문을 제시하고는 있다. 일반 철일 경우 바다에서 녹이 슬어 사용할 수 없다는 점과, 못 등으로 고정 시켰을 경우 나무 사이가 벌어지거나 빠져 파손 가능성이 높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적함의 적병이 뛰어들어와 함상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아예 원천 봉쇄하기 위해 최소한 지붕은 있었음이 분명하고, 거기에 적병이 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칼이나 창을 박았다는 기록이 있어 여기에 도색을 했으면 철갑으로 오해하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철갑선 이야기도 무시할 수는 없어 일단 나무 지붕 위에 '놋쇠'로 압정 같은 형태의 장갑판을 무수히 박은 것으로 설정했다.
단,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거북선이 돌격선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철갑이 아니면 조총의 사거리에서 그 갑주가 죄다 파괴될 것임을 이유로 들어 철갑의 타당성을 든다. 이 경우도 판형갑주가 아닌 비늘형 갑주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구한말 시기 재래무기 정리시 기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 귀선철개라는 기록이 있어, 철장갑 설도 힘을 얻은 상황. 사실 조선시대 성문에서는 얇은 방화용 겸 방어력 증가용 쇠조각들을 겉에 씌운 사례가 흔하다. 이 경우 녹은 도료를 칠해 방지. 실제로 방화를 막기 위해 철을 씌운 조선시대 성문들도 철판 겉에 도료가 칠해져 있다.
5. 현재의 알려진 거북선 형태는 누각 높이가 너무 낮아 기록에 남아있는 무수한 총안구와 대포 발사구와 노의 숫자가 설명이 안 된다. 게다가 전투원들의 전투 공간을 아예 예상 못 했기에, 대략 3단 갑판 형태로 포마다 승무원과 총통이 배치되어 외부를 조준하고 맨 밑층엔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으며, 서로의 작업 공간에 문제가 없도록 설계를 해봤다. 이렇게 됐을 때는 결과적으로 높이가 상당히 높아 1번의 거북이 머리와 더불어 상당히 언밸런스 하게 생긴 탓에, 전투에서의 효율성을 위해 함선 균형을 희생했을 가능성에 더욱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에 남천우가 주장한 3층설과 관련해서 일본에서 실험해본 결과 높이가 올라가도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에 자연히 복원력과 흘수는 정상수준으로 내려간다. 단 남천우 교수의 3층 설은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거북선의 구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14]
결과적으로 완성된 거북선 형태는 훨씬 전투적이고 강렬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외형 자체가 좀 예쁘지가 않아 주류로서 인정받긴 힘들다는 것을 제작자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설명에서 납득할 만한 부분들이 꽤나 많아 음모론까진 아니더라도, 이 부분은 좀더 연구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자금이나 연구지원 등이 있었으면 하는 부분.
단, 김세랑 씨의 학설도 최근 밝혀진 여러가지 사료에 의하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세랑 씨는 거북선의 노를 그리스 갤리선처럼 수평에 가깝게 설치된 것으로 주장했으나, 이는 한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시기에 만들어진 언더우드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정설에 따르면 거북선의 원형인 판옥선을 비롯한 대형 한국 전통 선박의 노는 거의 예외없이 수직으로 물에 담그는 형태이므로 거북선의 노도 수직 노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다행히 이 오류는 2005년 취미가의 후속잡지 NEO에 김세랑 씨가 연재한 판옥선 제작 시에는 수직으로 담그는 조선식 노로 수정되었다.
또한 거북선은 원양항해 성능이 떨어지는 평저선이 아니라 첨저선과 평저선의 하이브리드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아직까진 학술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며, 오히려 현재는 중국에서 외양용 한선인 봉래고선의 발굴과 정크선 중 한선과 유사한 평저선인 사선 연구의 발달로[15] 평저선도 원양 항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이 우세하다.[16]
거북선 선체 함수의 귀면상은 충각이 아닌 능파성[17]을 높여 속도를 올리기 위한 돌출물이라는 이론도 존재한다. 이 경우 충각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지나치게 돌출될 필요가 없고, 판옥선과 거북선을 비롯한 모든 조선수군의 전선은 서양배처럼 배를 지지하는 용골이 충격을 받아주는 구조가 아니다.[18] 용골이 없고 저판 전체와 장쇠가 용골을 대신하는 구조라서 적함과의 충돌시의 충격을 그대로 선체의 구조강도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고려시대 과선이 평저선이면서 쇠뿔을 달고 충각공격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시간적 차이가 큰데다 과선의 쇠뿔에 대한 상세한 내부구도조 불명이라 거북선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리고 거북선 3층설의 경우 이미 거북선과 판옥선 자체가 평저선치고는 무게중심이 높은편이기 때문에 거기서 전고가 더 올라갈 경우 항해성능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일부 거북선/판옥선 복원품은 안전성의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다만 이는 복원시 충분한 사전 연구가 부족했고, 조선시대 배에 밸러스트를 적재했던 것을 고증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건조된 거북선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목재건조와 신설계, 그에 따른 여러가지 꽃피고 싹틔우는 애로사항때문에 실제로는 판옥선에 뚜껑만 덮은 판옥선 개장형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판옥선과 큰 구조적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4번 각주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다. 단 이런 주장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의 기록을 보면 수치와 포문수의 차이가 있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이 문제는 같은 판옥선이라도 크기와 포문수가 제각각이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시간대나 지역별 차이, 혹은 재료수급 등등의 이유로 판옥선은 규격화되지 않은 여러가지 형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에서도 멋있게 보이는지 묘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거북선/e0063976_4bf5661db119a.jpg' data-filesize='242316' src='//cdn.namuwikiusercontent.com/b0/b085d107fd1ba3c474501c9541618e249162efc7fcca9c291d7c855d7395391e.jpg?e=1502642069&amp;k=OYSiMnksns2sw5C36ONYkA'>
서양의 한 학자는 거북선의 모양을 위와 같이 추정하고 있다.[19] 용머리에서 포를 쏘려면 이런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이에인 딕키 외 4명이 쓴 <해전의 모든 것>라는 책에서 제시한 것으로 비전문가의 예측일 뿐이다. 엄연히 거북선 그림이 국내 사료에 남아 있는데 이런 당치도 않은 추정을 하는 것은 고증 오류에 불과하다. 덕분에 이 책은 훌륭한 내용에도 한국 독자들에게 고증 오류로 까이는 중.
저자는 이런 거북선 복원도를 내세우면서 기존의 한국 복원은 불확실한 그림 자료에만 의지했다고 주장하나, 전라좌수영/통제영 귀선도가 실린 이충무공전서는 정조의 명령으로 편찬되었고 유득공의 엄격한 검수까지 거친 엄연한 관찬서적이고, 이것 외에도 거북선을 묘사한 삽화 자료들 자체는 은근히 많다.[20] 전후사정을 고려해보면 저자들이 민화풍 수군조련도만 보고 멋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면 실록에도 이순신 당시 거북선은 도면이 전혀 남아있지않으며 이순신 당시 거북선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나온다.
네이버캐스트의 거북선 구조 관련 글
사족으로, 거북선이 서양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는 거북선이 이렇게 그려져 있었다.
뭔가 아스트랄함이 심하게 느껴진다.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해군 박물관에 전시중인 거북선 모형.@ 아래 에이지2의 한국 거북선의 초기 형태는 늘씬한 게 이 모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 연구소 산하의 소식지인 USNI News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함은 어느 배냐라는 설문조사에서는 그 엔터프라이즈를 꺾고 2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배가 설문조사대상인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미군의 프리깃 함 USS 컨스티튜션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순위이다. 영문 기사와 번역본 참조.
임진왜란 편에서 당연히 등장하며 아예 드라마 오프닝 장면이 거북선의 항해 장면이며, 일본 특촬영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해전 장면은 대형 수조에서 모형을 이용하여 촬영했다.
제작 시기가 1980년대라는 한계 때문에 거북선의 디자인이 언더우드 학설처럼 서양식 수평노+2층구조로 되어 있다.
태종 때의 거북선에 대한 옛 자료+나대용의 아이디어로 건조되지만 지붕의 철갑이 무거워져 진수식에서 선회도중 침몰하는 대 참사가 일어난다.[21] 그 후 철갑의 무게를 줄이고 재건조해 성공적으로 띄웠으며 사천해전에서의 첫 데뷔에선 결전병기급으로 나오고, 한산 대첩에서는 당시 같은 방송국의 역사스페셜에서 보여줬던대로 포격 후 돌격선의 역할로 등장한다. 다만 이순신의 파직 이후 대타로 부임한 훌륭하신 원균이 말아처먹은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침몰하고 만다.[22] 또한 불멸의 이순신에는 거북선이 조금 앞선 시기의 역사스페셜의 3층선 고증과 달리 2층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오며, 다만 입에서 대포를 쏠 뿐이다.
링크. 처음 등장에는 입에서 연기만 뿜다, 1분 7초와 2분 12~13초에 용두에서 대포를 쏜다.
영화 명량에서도 등장한다. 개봉 전 제작현장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거북선 건조 장면과 정박 장면이 보인다. 이분이 작성한 기록에 따라 13척의 판옥선 중 1척을 거북선으로 개조하여 돌격선으로 쓸 작전이었지만,[23] 배설이 군사가 살 방법을 찾았다며 거북선을 불태우고 자기는 작은 배로 탈영한다.
불타서 용머리가 떨어지는 거북선과 산발을 한 채 실성해 절규하는 최민식 씨의 연기가 일품. 이 때문에 이순신은 대장선으로 선두에 서서 싸워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도망치던 배설은 분노한 안위의 활에 맞아서 절명했다는 점. 이후 최후반부에 조선수군의 기력상승 이벤트(?)가 벌어진후 왜선들을 '갈아버리는' 대장선이 거북선으로 보이는 장면이 나오고, 에필로그의 한산도 대첩 장면에서 거북선의 전투 시작 장면이 잠깐 등장하긴 한다.
10화에서 드디어 존재가 언급됐다. 귀선이라 부르던 불멸의 이순신과 달리 여기서는 거북선이라 부른다. 하지만 스킵된 사천해전이야 그렇다 쳐도..한산도 대첩에서는 그 모습이 코빼기도 안보였다. 그러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뜬금없이 나왔는데 하필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불멸의 이순신의 칠천량 해전 장면을 우려먹기한 장면에서 나왔다.. 더불어 거북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다 격침당해 노량해전은 커녕 정유재란 내내 1척도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왜곡을 통해 출연한 것이라 사실상 징비록에서의 순수 출연은 없는셈...
2016년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는 이순신을 다룬 1,2화에서 등장하며, 영화 명량의 CG팀이 참여한 결과로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거북선 등장 때 무슨 공룡 울음소리같은 효과음이 나오는 것이 명량 거북선 장면과 흡사하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주인공 중 한명으로 소개되어. 시청자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작중에서의 묘사를 보면 일단 철갑선은 아닌 것으로 묘사. 3층설을 따라 판옥선처럼 1층의 노갑판, 2층의 포갑판 위에 3층으로 지붕을 덮고, 함체를 단단한 통짜 소나무로 만들고 지붕에 녹슨 창검을 잔뜩 꽂은 것으로 묘사, 철갑선이 아닌 것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3층설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top-heavy로 인한 복원력 문제는 피해갈 수 있었으나, 2화 한산도 해전 편에서는 적함에 근접하여 전투를 수행하다가 조총 탄환에 관통되어 함장인 귀선돌격장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의 승조원이 피격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영화 명량에서 잠깐 묘사된 것처럼 용머리 내부에 현자총통이 내장되어 있고 적선을 충파할 때는 선체 내부로 용머리가 수납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2011년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인 <고우-공주들의 전국> 26화에 잠깐 스쳐 지나간다. 물론 실제 거북선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조선에 출전한 하시바 히데카츠가 조선 수군에 대한 대책을 부하들과 논의하면서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을 보고 "이것이 조선의 군선인가? 이런 배는 본 적이 없다"라며 놀란다. 그런데 뒤에 부하가 "조선 수군 따위가 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그 거북선 그림을 밟아버린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조선 수군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히데카츠는 출전을 명령하다가 병으로 쓰러져서 나가 싸웠는지의 묘사는 확실히 안 나오지만 지휘관이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이내 죽으면서 유야무야 된 듯 하다.
초창기 자라선(…)바이킹선 같은.... | 1.0c 패치 후 |
HP | 200→ 300(정예) |
공격력 | 50 |
사거리 | 6 |
근접 방어 | 6→ 8(정예) |
원거리 방어 | 5→ 6(정예) |
이동 속도 | 느림 |
생산 비용 | 목재 200, 금 200[24] |
정예 업그레이드 비용 | 식량 1000, 금 800 |
속도와 사정거리가 조금만 보완되었다면 진정한 해상의 완전체가 되었을 유닛
한국의 특수 유닛으로, 바이킹 족의 롱보트처럼 성을 건설하면 항구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 초기 디자인은 표현이 괜찮았으나 어쩐지 허약해 보였기 때문에, 패치를 통해 위와 같이 듬직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본 게임의 군함들 중에서 HP가 가장 높으며, 1타 공격력 50에 스플래시가 들어간다. 또한 근접 방어력이 매우 높아서 화공선에 강하고, 빵빵한 기본 체력 덕분에 파괴선에게도 강하다. 같은 포탄 발사 군함인 대포 갤리온과는 달리 포탄의 착탄 속도도 스페인 대포 갤리온 마냥 빠른 것도 장점. 실제 게임에서는 어느 정도 수만 모여 주면, 스펙 빨로 웬만한 배는 다 밀어버린다. 가격은 나무는 갤리온의 두 배인데 3배의 갤리온을 가져가도 거북선에게 발린다. 두세 척이 일점사로 한 방 뻥 쏴주면 갤리온이 증발하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정거리가 6밖에 안 되는 게 점수를 깎아먹는다. 속도도 빠른 편은 아니라서 치고 빠지면 따라가기 힘들다. 바이킹이 롱보트로 무한 히트 앤드 런을 시도하면 빡친다.[25] 또한 스페인의 빠른 사격을 자랑하는 대포 갤리온에도 피해가 심하다. 그러니 실제 운용할 땐 호위용 갤리온배와 고속 화공선이 꼭 필요하다.[26] 또한 한국은 거북선을 해상 특수 유닛으로 받은 대신 파괴선 테크를 사용할 수 없다.[27] 여기에 가격이 매우 비싸서 대량 생산이 어렵다. 5척만 뽑아도 목재 1000에 금 1000이 나온다. 이는 불가사의 건설에 드는 비용과 같다.
여울목이 많은 연안이나 강 맵 한정으로 수륙양용 탱크와 비슷한 위용을 보여 준다. 거북선으로 여울목을 점거하고 타워+성문 러시에 지상군을 섞어 주면, 상대는 '뭐야 저거 무서워'를 외치면서 후퇴할 수 밖에 없다(평타 50 데미지에 감쇄가 들어가는지 추가바람). 보통 거북선이 3척 이상 모이면, 평타 한 번에 지상 유닛이 3~5기씩 죽는다. 지상군에게 효율이 좋은 저고도 사석포, 혹은 몸빵[28]으로 지상군의 화력을 보조하는 탱크처럼 쓰면 된다. 아군의 아나저에 팀킬 당하거나, 왕정 시대 유닛에게 일점사당하지 않는 이상 안 죽는다. 대신 비싸서 활약이 한정되어 있는 연안 맵보다는, 미로처럼 강이 이어진 강 맵에서 유효.[29] 이런 지형에서는 천적인 롱보트도 좁은 수로 구석까지 몰아붙여서 때려잡는다. 흠좀무. 다만 이단업글이 없어서 수도사의 전향에는 주의가 필요.
거북선 영웅으로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은 롱보트 따위는 감히 갖다붙이지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하게 강력하다.
평범한 정예 거북선과 비교할 경우 체력은 2배요, 공격력은 25 더 높고 사거리가 4씩이나 더 길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공격 속도 또한 가히 엄청나게 빠르다. 만구다이와 거의 같은 연사속도를 자랑한다. 보통 거북선이 1발 쏠 때 장군님은 3방 쏘신다. [30]
이를 그대로 다시 설명한다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전 시리즈에 나오는 전투 유닛 중에서 최고의 스펙이며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2위는 체력 300에 공격력 25짜리 만구다이 기병인 칭기즈 칸. [31]
물론 실제로는 정복자 미션 역사적 전투: 노량 앞바다 파트에서만 등장하며, 아군에 합류하게 되는 순간 그 유닛 하나에 불과한 존재 자체로 전황이 180도 뒤집혀버리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동안 적으로 나오는 일본군의 대포 갤리온배 짤짤이와 사무라이 상륙 러시에 시달리며 애를 먹던 조선군의 입장이 장군님의 강림으로 인해 일방적인 일본 수군 대학살의 장으로 변모한다. 화살 몇 번 쏘지도 못하고 주둥이포 두세방에 펑펑 터지는 일본의 갤리온배들의 모습이 압권.
몬테수마 미션 마지막 임무에서도 맵 북쪽으로 올라가면 '신의 선물'이라면서 확보 가능.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더 포가튼에서 판옥선이라는 업그레이드가 생겼는데, 거북선의 이동속도를 15% 향상시켜 준다. 거북선이 판옥선을 개조해서 만든 배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묘하다. 그리고 아프리카 왕국 출시와 동시에 이루어진 4.4 패치에서는 성 없이도 해당 유닛을 뽑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갤리선만 뽑으면 망하도록 해전 밸런스가 대거 수정되었기 때문에 이 유닛이 활약할 여지가 커졌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상의 거북선 | ||||
거북선 | 중형 거북선 | 장갑 거북선 | 강습형 장갑 거북선 | 강화형 장갑 거북선 |
개량 거북선 | 명품 중형 거북선 | 돌격형 장갑 거북선 | 제례식 장갑 거북선 |
2015년 12월 현재 총 9종의 거북선[32]이 있다. 당연히 전투함이며, 메뉴얼적으론 장갑 거북선도 조선에서 건조가 가능하지만, 재료의 미구현으로 현재는 캐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다만, 거북선은 특수건조, 중형거북선은 직구입으로 구입가능하다.
거북선 계열의 선박들은 오직 포격전을 위한 배이며, 백병전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로 갑판전도 물론 불가능. 화력이나 장갑, 내구도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어서 유저해적의 토벌 혹은 군렙에 있어 백병스킬이 없거나 약하고, 또한 백병전을 원치 않는 유저들이 사용한다. 하지만 PvP에서도 백병불가는 포격토벌군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본서버에서는 밸런스 상의 이유(?)로 거북선의 백병 회피 확률을 70%로 낮추고 거북선류를 건조할 수 없게 막아버렸다.
요즘은 유저가 거북선을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부관에게 부관 선박으로 요구레벨이 낮은 명품 거북선이나 개량 거북선을 주고, 그 거북선이 백병이 안되니 수탈당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이용해서 캐시로 관통력을 강화한 대포를 달아서 전투중 화력 지원용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엄청난 캐쉬질로 본인은 랩제가 높은 거북선, 부관은 랩제가 낮은 거북선을 태워 더블 거북선을 몰고 다니는 유저도 볼 수 있다고.
한국섭 유저들은 보통 편하게 거북이라고 부르며, 캐쉬 거북선들은 단어 앞글자를 하나씩 따 와서 줄여 부른다. '돌'격형 '장'갑 '거'북선이면 '돌장거' 이런 식이다.
대항해시대에 등장하는 거북선 중 하나의 모습. 외관상의 고증은 나쁘지 않다.
제작진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는 영웅에 이순신이 있다면 유닛에는 거북선이 있다. 임진록 시리즈 대대로 최상의 체력 + 공격력 + 연사력 + 가격[33]을 지닌 해상 유닛으로 스펙만 놓고 보면 준완전체 유닛인데다가, 느린 탄속으로 인해 무빙으로 완벽히 농락이 가능한 명나라군의 사선과, 척 보기에도 난잡하게 여러개의 탄을 산탄마냥 발사해대는 왜군의 누각선과는 달리 빠른 탄속에 여러발의 포를 정확하게 날리는 위엄 돋는 능력을 보여주신다. 초기 버전에서는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패치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최종보스 이미지로 리뉴얼되었다.
이순신 등용을 업그레이드 해야 거북선 생산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 건물이나 일꾼을 빼앗아봤자 이순신 등용 업그레이드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거북선 업그레이드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명의 경우엔 기술 훔치기로 기술은 훔쳐올 수 있지만 생산 건물이 없으므로 생산을 할수가 없다. 즉, 조선이 아니면 절대로 생산이 불가능하다. 이건 임진록2 시절부터 나왔던 이야기지만 조선의 반격에서도 안 고쳐졌으며, 여러번의 패치에도 끝내 바뀌지 않았다. 의도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현혹술로 빼앗아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근데 그럴 일이 생기긴 할까? 임진록 영웅전쟁 때는 깃발병으로 조선군 조선소를 점령하고, 테크트리만 충족시키면 생산이 가능했다.[34]
조선술을 익히면 만들 수 있는 선박. 해상 던전인 문무대왕릉에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거북선은 최상티어는 아니지만 위에서 2위급의 배다. 최상급 배는 통신사선, 거북선 다음 배는 판옥선.
충무공전1/2에도 등장. 충무공전2의 경우 일반 거북선과 강화형인 철갑선이 따로 존재한다. 일반 거북선은 안택선보다 좀 더 센 정도지만 철갑선은 정말 강하다. 해상전이 안 벌어져서 그렇지.
위가 강화형인 철갑선, 아래가 일반 거북선. 충무공전2의 모습.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거북선/c0058317_4a42ed26467d9.png' data-filesize='84608' src='//cdn.namuwikiusercontent.com/f8/f829815c41f42a0ea2b7b79001bae2dcba714ff8348fc4744812ba3019555833.png?e=1499312500&amp;k=nj6DmUDv22TFlfOH7yZ1lQ'>
충무공전1 브리핑/영상에서의 거북선의 모습. 위 사진에서 가운데 배는 판옥선.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거북선/c0058317_4a42f0e19b969.png' data-filesize='86467' src='//cdn.namuwikiusercontent.com/e7/e701dc828dd938a3b64420198849ab4c9f0341fe985f448e45df44996244919f.png?e=1501328140&amp;k=mafwzLu2a1ieFIx7oSh03Q'>
실제 게임에서의 모습.
게임 상 성능은 그럭저럭한 편. 하지만 충무공전1의 판옥선의 특성상 탑승한 유닛들이 전투가 가능해, 거북선보다 판옥선에 포수 여럿을 태우고 판옥선만 움직이면 화력더 더 좋고 자동으로 무빙샷이 되어 더 낫다.[35]
문명 5에 추가된 한국 문명의 캐러밸 대체 유닛으로 등장했다.
문명 5에서의 모습.
데미지 측면으로는 쓸만하나 대양 항해가 불가능 하다는 게 단점. 게다가 한국의 종특때문에[36] 제대로 써먹기 전에 더 고테크인 유닛이 나오기 때문에 묻혔다. 사실 고테크 유닛 때문에 묻히는 감이 없지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 유닛인 주제에 산업 시대 유닛인 철갑함과 싸워도 꿀리지 않는 방어력을 보이는 유닛이기는 하다. 심지어 도전 과제중에 거북선으로 철갑함 부수는게 있을 정도.[37]
출처 : 네이비필드 홈페이지
2004년에 이벤트로 등장했다. 선박 종류는 프리깃.
2016년 현재 재등장했다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이순신의 2차 전직으로 등장하는데, 게임 시스템 상 해상전 개념이 없이 육지에서만 전투하기 때문에 거북차로 바뀌었다. 평타로 불을 뿜고, 스킬은 용머리 모양의 불덩어리가 목표지점 주변을 회전하면서 공격하는 것인데 이름이 강강수월래. 흠좀무.
우주전함 거북선의 디자인..
1979년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에서는 우주전함화 된 거북선이 나온다. 초기 장면에서 태권브이가 해체되어 거북선의 부품이 된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출격 초기에 태양의 인력권에 끌려들어가자 "섭씨 일만도는 견딜 수 있어!" 하더니 태양을 걍 돌파해버리며.[38] 극 후반에 거북선이 위기에 처하자, 선장 역할을 맡은 주인공 훈이가 이순신 장군에게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나오고, 갑자기 영감을 받은 훈이가 거북선의 허상을 여러개 만들어서 학익진을 시전한다.
그러나 그 후에 더 많은 적이 나타나자, 훈이는 "죽기를 바라고 싸우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요, 살기를 바라고 싸우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크루들을 독려하지만 역부족, 적의 포격으로 선체가 크게 흔들리는데.. 이게 뭥미? 천장에 숨겨져 있던 '비밀 문서'가 뚝 떨어지고, 그 비밀문서를 읽은 '박사님'은 훈이와 영희를 격납고로 보낸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레버 하나 당기고 버튼 하나 누르니 태권브이의 부품이 사출되면서 우주공간에서 결합~! (이 대목에서 극장은 난리가 났다. 가히 2002년 월드컵 황선홍의 첫번째 골 수준.) 식스 센스급 반전을 보여주었다.
<img class='wiki-image' alt='파일:attachment/거북선/분해태권브이.jpg' data-filesize='8415' src='//cdn.namuwikiusercontent.com/13/13a8e587a3fb59efca2350f9a576b6679f89ffe721d2a291d36202ba2392ad95.jpg?e=1499135239&amp;k=9xg06K6JqXn_Nk4JcL3pKg'>
그냥 처음부터 태권브이 있는 것 알려주고 출격 시켰으면 아무 고생도 안했겠지만 거북선 이전에 탈레스별로 갔던 지구의 우주선들을 박살낸 우주마왕 일당의 해킹으로 애들만 탄 상태에서 거북선이 자동 발진해버렸고, 지구와의 통신장비마저 먹통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이전에 당한 우주선의 유일한 생존자로 합류한 박사가 숨겨진 두루마리를 읽은 것.
삼성전자가 발매한 게임중에는 우주 거북선을 소재로 한 슈퍼 알라딘보이용 게임도 있다. 제목도 우주 거북선이고, 작중 우주 거북선의 모습은 거북선을 개조한 것처럼 생겼다. 게다가 타이틀 화면과 스탭롤에서는 대놓고 금색 거북선이 등장한다. 사실 본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산 슈팅 게임을 베이스로 기체의 그래픽만 거북선으로 수정하여 발매한 것으로 공작왕을 온달장군으로 둔갑시킨 게임과 더불어 당시 삼성전자측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괴작.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고 백남준의 비정수의 거북선.[39]. 대전시립미술관에 전시중이다.
1988년에는 당시 현대전자(현 SK 하이닉스)에서 역시 우주전함 거북선을 소재로 한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노 배치가 언더우드의 낡은 학설에 따라 서양식 노 배치인 것이 아쉬운 점.
UN-GO 극장판인 인가론에 거북선이 등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언고 거북선 논란사건 항목으로.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에서는 이 거북선의 머리, 등껍질과 흡사한 적 메카인 센트 마그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거북선과 달리 머리가 3개다.
아산시에서 만든 온라인 전략 시뮬레이션인 충무공 해상대전에도 등장. 여기서는 판옥선보다 한 급 아래의 전함으로 나온다. 참고로 안택선은 판옥선과 동급이라 더 급이 높다. 하지만 후반부 일본 군함들의 성능이 동급 조선군에 비해 밀리는지라 상대할 만 하다.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Ancient Impossible[40]에서는 거북선의 용머리엔 그리스의 불이 달려있고 입에서 독가스도 뿜는 무시무시한 결전병기로 소개한바 있다. 흠좀무 #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4에서 지코&팔로알토 팀의 미션곡 이름으로 '거북선'이 등장했다. 그냥 단순히 제목딱지만 붙인게 아니라 노래에서도 국악 느낌의 독특한 비트가 흘러나오며, "우린 거북선 다른배들 통통 그냥 통통 떨어져라 똥통"이란 가사도 있다. 이 노래는 공개당시 음원차트에서 장기간 TOP10에 오르는 등 나름 흥행하기도 했다. 후에 팔로알토의 리믹스버전도 그에 못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멤버가 다수 빠져나간 후 Remix 2 버전이 나왔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원피스에도 등장했다.
효게모노에선 오다 노부나가 사망 전에 명과 조선의 강력함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거북선 여러 척이 몰려나오는 거북선 함대가 나온다.
모형으로는 목재 조립식 모형 전문업체인 영공방에서 고급형인 1/65 스케일, 일반형인 1/100, 아동용 간이형인 주니어 거북선 3종이 발매되어 있으며, 1/65와 1/100 타입은 금속 부품을 많이 사용하여 완성시에 굉장히 멋지다. 블록완구로는 옥스포드 블록에서 장군 시리즈로 거북선을 발매하고 있다.
한때 네이버 지식IN에 거북선과 현대 해상 무기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북선이 덤비기 전에 100% 깨진다. 결론은 그 시대의 위대한 무기는 그 시대에서만 위대할 수 밖에 없을 뿐이다. 따지고 보자면 먼 미래에서 K-2 소총으로 무장한 사람과 레이저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과 같은 이치다.[41] 하지만 상대방이 스톰트루퍼이라면? K-2 승
판타지 소설 강철의 열제에서도 등장. 자이언트 크랩 껍질이 엄청 단단하면서도 배에 올려놔도 뒤집히지 않는 가벼운 물체라는 걸 안 제라르와 장보고가 고안했다. 실제 우리가 아는 거북선과 약간 다르긴 하지만[42] 역할과 모양은 거의 일치한다. 그 뒤 벌어진 신성제국, 제국연합과의 해전에서 무시무시하게 활약하며 터틀 드래곤[43]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그 뒤 이 사실을 안 고진천에 의해 육상용 거북선도 개발돼 최후의 전투에서 초반 고윈이 탑승하며 계웅삼이 이걸 타고 적진을 돌파하는 등 활약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