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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쉬운지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죄를 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반면, 병을 고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기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즉, 육체적인 치유와 영적인 치유 모두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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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ch is Easier?
27/09/2018 | Matthew Payne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Rise, take up your bed and walk’?” (Mark 2:9)
In Mark 2:1-12, Jesus famously healed a paralysed man who had just been lowered through the roof of the house that Jesus was preaching in. Lots of details of this story are interesting. Personally I want to know what the reaction of the home owner was. I suspect that he wanted to know who was going to fix his roof. The crowd surely wanted to know whether Jesus would heal the man (cf. Mark 1:44-45).
“마비된 사람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운가?” (마가복음 2:9)
마가복음 2장 1절부터 12절까지는 예수님이 설교하던 집 지붕에서 내려온 마비된 사람을 고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많은 세부 사항이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집 주인의 반응이 어땠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는 누가 자신의 지붕을 고칠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군중은 분명히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치실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참조: 마가복음 1:44-45).
However, none of these questions are addressed—at least not at first. We don’t hear about Jesus’ reaction to seeing the hole in the roof, but only that he saw the faith of those who had lowered their friend through it. They firmly believed that Jesus could meet their friend’s great need. And, in response to that faith, Jesus gave the man the extraordinary blessing that all Christians receive by faith. Jesus promised him: “son, your sins are forgiven” (Mark 2:5).
그러나 적어도 처음에는 이러한 질문 중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붕의 구멍을 본 예수의 반응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 친구를 낮춘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친구의 큰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받는 특별한 축복을 그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죄가 사하여졌다"(막 2:5).
The religious teachers in the room all thought this was highly blasphemous. Surely forgiving sins was God’s job alone! Only God can promise that someone’s sins will never be brought under Judgement (Mark 2:7).
그 방에 있던 종교 교사들은 모두 이것이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누군가의 죄가 결코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실 수 있습니다(막 2:7).
Jesus’ response was to challenge them with a question: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Rise, take up your bed and walk’?” (Mark 2:9)
예수님의 대답은 질문으로 제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운가?” (마가복음 2:9)
Jesus quickly moved on to make his main point, which was that he could, in fact, offer forgiveness of sins. Forgiveness is an invisible action. Jesus healed the man visibly to prove that his invisible act of forgiving sins was also effective. It’s hard to conceive of how Jesus could blaspheme God in one moment and then heal with God’s power in the next. His healing therefore demonstrated that he had authority from God to do both.
예수님은 재빨리 본론으로 넘어가서 실제로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는 보이지 않는 행위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사람을 눈에 보이게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한 순간에 하나님을 모독하고 다음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의 치유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What’s the Answer?
But what’s the answer to Jesus’ question? Which is easier to say?
It’s an excellent youth-group or Bible study question. Get people to choose a side and argue their case. On the one hand, miraculous healings are impossible for us. It’s easier for us to say anything rather than actually heal someone. On the other hand, Christians know that full forgiveness of sins before a just and holy God was a far more significant undertaking than any miracle ever was. God effortlessly parted the Red Sea for Israel to escape Egypt, but it took nothing less than the death of God’s Son to achieve the forgiveness of sins (Hebrews 10:10-14). The fact is that it was far easier for Jesus to heal the man than it was to forgive him.
답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어느 쪽이 더 말하기 쉬울까요?
청소년 그룹이나 성경 공부를 위한 훌륭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편을 선택하고 자신의 주장을 주장하게 하세요. 한편으로 기적적인 치유는 우리에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누군가를 치유하는 것보다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완전히 용서받는 것이 그 어떤 기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홍해를 쉽게 갈라주셨지만,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만 했습니다(히브리서 10:10-14). 사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치유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However, this isn’t only true because of the cross. It is also true because of who was watching.
We are naturally concerned with appearances. We are keenly aware of how enormous a fool Jesus would have appeared if he had publicly ordered a paralysed man to walk and nothing had happened. He would lose face in front of the crowd. His detractors would have scorned and ridiculed him. Few of us would dare invite that kind of reaction by promising a healing. So, if forced to choose, we would have to say it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After all, who can really know for sure?
But that’s atheist logic. Jesus was keenly aware that the most important gaze upon him on that day was not that of the crowd, but that of God his Father. It is one thing to look a fool in front of a crowd. It is another thing entirely to offend God. Jesus’ career was marked by living before the sight of God his Father (Hebrews 10:7). He would endure whatever shame the crowds might throw at him for the sake of pleasing his Father (Hebrews 12:2). It is clear that the criteria against which Jesus considered what was ‘easier to say’ was what God thought of his actions, not what people thought. Risking upsetting people is a small matter compared to disobeying God. Jesus only ever acted with his Father’s authorisation (cf. John 5:19).
All of us will give an account of our words and deeds to God (Hebrews 4:13). Like Jesus, we must be concerned with God’s evaluation of our conduct rather than how other people might judge us. It is far better to look a fool in the eyes of the world than it is to offend God.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십자가 때문만은 아닙니다. 누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마비된 사람에게 걸으라고 명령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였을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군중 앞에서 체면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의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감히 치유를 약속함으로써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당신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결국 누가 정말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무신론자의 논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자신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시선은 군중의 시선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군중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경력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사는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히브리서 10:7). 그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군중이 자신에게 던지는 어떤 수모도 견디셨습니다(히브리서 12:2). 예수님이 '말하기 쉬운 것'을 고려한 기준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분명합니다. 사람들을 화나게 할 위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에 비하면 작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행동하셨습니다(참조: 요한복음 5:19).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히브리서 4:13).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Translated with http://www.DeepL.com/Translator (free version)
Image: Charles Reuben Ryley (after James Newton), 1795, public domain
Matthew Payne is a PhD student at Sydney University investigating the ministry and theology of William Perkins (1558-1602). Matthew leads “Stretch”, a ministry which aims to educate ordinary Christians in theology through interactive seminars (visit: stretchtheology.com).
Which is Easier?
매튜 페인은 시드니 대학교에서 윌리엄 퍼킨스(1558-1602)의 사역과 신학을 연구하는 박사 과정 학생입니다. Matthew는 대화형 세미나를 통해 일반 기독교인에게 신학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역인 'Stretch'를 이끌고 있습니다(방문: stretchtheolog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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