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2018년 1월 27일은 AFC U-23 챔피언십 축구 결승전이 열린 날이었다. 중국의 창저우 올림픽센터에서 열린 결승 경기는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전이었다. 경기 도중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도 양 팀은 최선을 다하였다. 눈 내리는 상황에서의 축구 경기는 매우 드물다. 특히 베트남 선수들은 더 힘든 경기를 하였을 것이다. 결과는 2-1로 우즈베키스탄의 승리였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은 아쉽게 준우승으로 머물러야 했다. 이 경기는 박항서 매직의 서막이었다.
마침 나는 그때 베트남 다낭에 여행 중이었다. 대학원 졸업 여행이었다. 그 날 오후 경기 전부터 베트남 국민의 열기는 뜨거웠다. 거리에는 온통 빨간 셔츠와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로 물들였다. 베트남 중부 지역인 후에에서 다낭으로 이동하는 동안 굉장히 많은 장면을 보았다. 여기저기 광장에 모여 있는 인파, 오토바이시클의 끄이 보이지 않는 이열 종대의 행렬, 트럭 위에 타고 국기를 흔드는 젊은이들, 거리마다 가게 앞마당에 TV를 보려고 모여 있는 주민들, 그리고 아쉽게 준우승을 했지만 경기 후에도 그 열광의 도가니는 그다음 날 새벽까지 그칠 줄 몰랐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그 열기는 흡사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대회 경기 때 분위기와 비슷했다. 베트남에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관이었다. 아마 이번 아시안컵 경기 때는 더 열광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그 이후 박항서 매직은 이어져 베트남은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바레인을 이긴데 이어 시리아를 꺾어 4강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패하여 4강에 머물렀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와 동메달을 겨뤘지만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아쉽게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1년 전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였다. 이 경기의 우승국은 우리 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승승장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다음에 이어진 국제 대회는 2018년 AFF 스즈키컵 대회였다. 지난 해 말에 열렸던 동남아시아 10개국에서 원정과 홈을 오가며 경기를 했던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베트남은 4강에서 필리핀을 이겨 결승전에 올라갔다. 상대는 말레이시아였고 결과는 홈과 어웨이 두 경기를 하여 합계 3-2로 이겨 베트남이 우승하였다. 이제 동남아시아의 축구 강호는 베트남으로 인정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고 있는 AFC 아시안컵 2019 경기에서도 베트남은 8강까지 올라왔다. 당초의 1차 목표는 16강 진입이었다. 그런데 8강까지 올라갔다. 베트남 축구는 물론 박항서 감독으로서는 굉장한 쾌거였다.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베트남 선수들의 정신력이었다. 악착같은 근성이 눈에 띄었다.
이번 대회에서 나는 두 나라를 응원하였다. 그 두 나라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와 베트남이었다. 힘겹게 8강에 올라온 베트남이 일본을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박항서 매직은 계속 진행되었다. 박항서 감독은 이번 경기의 유일한 한국인이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그리고 계속 성과를 내는 그를 존경한다. 이번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우승을 기원했지만 우리나라 역시 어제 벌어진 8강전에서 카타르에 졌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 경기 개최국으로서 상승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에 대한 평은 자제하겠다.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서다. 카타르에 패했지만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2004년에 베트남에 처음 여행을 갔을 때 관광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베트남인들의 축구 열기는 우리나라 사람 이상이다. 축구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한다. 특히 A-매치가 있을 때면 경기장 근처에 교통이 마비될 정도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당시 나는 그냥 베트남 축구는 약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정말 호이안에서 묵은 다음 날 새벽 바닷가에 산책 중 백사장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등교하기 전에 운동을 하러 나온 학생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모래밭에서 잠깐 동안 축구 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2014년에 방문하였을 때 하노이 도심 한가운데에 축구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시내 곳곳에 정규 축구장을 비롯하여 풋살구장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큰 운동장에 풋살 경기장 네 개가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휴일 낮은 물론 평일에는 일을 마치고 밤에 운동하는 광경을 수시로 보았다. 정말 열기가 대단하였다. 박항서 매직은 이런 잠재적인 역량을 끌어올린 결과라 생각한다. 마치 개인의 숨겨진 소질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멘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과 같다.
박항서 매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23세 이하와 성인 대표의 두 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이제 곧 내년에 열릴 2020 AFC U-23 챔피언십 예선전을 대비하여야 한다. 이 경기에서 본선에 올라야 도쿄올림픽 참가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까지 올림픽 본선에 나가본 적이 없는 베트남을 응원한다. 한 가지 더 응원한다면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박항서 매직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매직이라 함은 기적을 뜻한다. 기적은 상식적으로 볼 때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로 표현한다. 또는 신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믿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는 ‘꿈은 이루어진다’를 배웠고, 베트남 축구에서는 ‘기적은 이루어진다’가 실현되고 있다. 모두 박항서 감독과 관련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폴란드전과 첫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가 첫 골을 넣은 후 달려가 박항서 감독과 포옹을 했을 때 나는 TV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에 더욱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하여 축구의 명문 중 하나인 차범근 감독이 나온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축구선수 활동을 하였다. 이어서 1977년 U-20 국가대표 선수를 시작으로 한국 축구 발전에 상당히 기여하였다. 실업팀을 거쳐 K리그 및 국가 대표팀에서 트레이너, 코치, 감독직을 오랫동안 수행하였다. 2017년 10월 창원 시청 축구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지체 없이 베트남으로 가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기 시작하였다. 맡은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까지 기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박항서 감독의 제2전성기는 지금 베트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중간으로서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상금은 물론 박항서 감독 이름과 비슷한 국내 브랜드 중 하나인 건강 음료도 판매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경기 중에는 몰입하여 가끔 흥분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골을 넣었을 때 약간 어설픈 어퍼컷 세레모니도 보기 좋다.
그의 파파 리더십은 베트남 선수들에게 통했고, 결과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승리하고자 하는 정신, 훈련, 전술 및 전략이 그대로 성공하고 있다. 그동안 갈고 닦은 모든 역량이 집중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박항서 매직’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냈다. 나는 그의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면서 업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즉 한 우물을 꾸준히 파면서 묵묵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큰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박항서 감독이야말로 정말 멋진 액티브 시니어이다. 지칠 줄 모르면서 열정을 갖고 인생2막의 결실을 맺고 있다. 지금까지 오면서 부담감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늘 승리를 꿈꾸는 그의 마음에서 상상을 현실로 이루는 매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앞으로 두 달 후인 3월 26일에 대한민국과 경기를 갖는다. 동아시아축구연맹과 동남아시아축구연맹이 작년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7년 동아시아축구 우승국과 스즈키컵 우승국끼리 친선 경기를 갖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2017년 동아시아축구 우승국은 대한민국이고, 2018년 스즈키컵 우승국은 베트남이다. 경기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양 팀의 멋진 경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박항서 매직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일본을 이겼어야하는데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