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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불이의 공전보(共戰譜)
소설《신·인간혁명》과 함께 걷는다
제15회 야마구치(山口)①
세상을 크게 바꾼 인재가
잇따라 날갯짓한 야마구치.
광선유포의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사가 새겨진 천지다.
은사는 불이(不二)의 애제자에게
차대를 응시하고 개척을 맡겼다.
젊은 투장은 다기진 동지와 함께
신시대 확대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 ‘개척정신’은 지금도 벗의 마음에 불타올라
후계의 인재에게 계승되고 있다.
용약환희하며
승리를 위해, 건설을 위해!
사제의 호흡
스승이 구축한 땅을 지키는 일이 야마구치 동지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제자의 서원이다.
광포사에 찬연히 빛나는 ‘야마구치 개척지도’는 1956년 10월과 11월 그리고 이듬해 1957년 1월에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지휘로 펼쳐진 절복홍교의 대투쟁이다.
지도에 나서기 직전인 1956년 9월,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이케다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마구치현에서 지도와 절복의 선풍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이케다 선생님은 바로 대답했다.
“예! 하겠습니다.”
이 사제의 호흡이 바로 대승리의 인(因)이 되었다.
당시 야마구치의 회원은 4백수십 세대밖에 없었다. 게다가 30개 정도의 지부에 소속된 회원들이 야마구치현 곳곳에 흩어져 있어 지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각자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러한 야마구치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글자 그대로 ‘지도와 절복의 선풍’을 일으켰다.
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나는 결단했다. 반드시 야마구치현을 되살려 내겠다! 역사에 남는 광선유포의 인맥을 만들겠다!
만나서 이야기한다.
만나서 고민을 듣는다.
만나서 격려한다.
만나서 지도한다.
만나서 함께 기원하고 어서를 읽는다.
직접 만나지 못해도 만난 것이나 다름없이 편지 등으로 성심을 다한다.
나는 용약하여 매일 매일을 전력투구로 뛰고 날며 승리와 건설을 위해 난무했다. 그리고 ‘연을 맺은 분들을 모두 위대한 광선유포의 대투사로 육성하겠다!’고 환희 용약해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었다.”(《수필 승리의 빛》)
총 22일 동안 선생님은 야마구치의 각 도시를 옮겨 가며 투쟁했다. 그렇게 분투한 결과, 1957년 1월 말에는 4000세대를 넘을 정도로 확대됐다. 무려 약 10배의 크나큰 비약을 이룬 것이다.
이 파동은 주고쿠 방면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넓혀졌다. 확대의 기세는 말할 것도 없고 “광선유포에 뒤처진 지역도 진지하게 괭이로 땅을 깊이 일구면 비옥한 대지로 만들 수 있다.”(소설《인간혁명》 제11권 ‘전기’)라는 ‘개척정신’이 각지에 있는 리더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그 뒤, 야마구치 각지에 지구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1960년 5월 3일, 제3대 회장 취임식을 겸한 본부총회에서 대망의 ‘야마구치지부’가 탄생했다. 올해로 60주년의 가절을 맞았다.
야마구치 멤버들에게 5월은 지부결성과 더불어 정말 뜻 깊은 달이다. 1974년 5월 19일, 제1회 야마구치현총회를 우베 시내에 있는 체육관에서 개최했다.
‘단결과 구도의 야마구치’를 슬로건으로 내건 총회에는 이케다 선생님이 메시지를 보내 축하했다. “혼슈의 남쪽 끝에서 타오른 새로운 묘법유신의 불꽃이 일본 사람들의 희망의 등대가 되도록 긍지에 넘쳐 싸우며 전진하기 바랍니다.” 하고 기대를 보냈다. 이것이 5·19 ‘야마구치의 날’의 연원이다.
정확히 3년 뒤인 1977년 5월 19일부터 나흘간에 걸쳐 선생님의 야마구치 지도가 실현된다. 이 모습은 소설《신·인간혁명》제25권 ‘공전’에 상세히 나와 있다.
이듬해 1978년 5월, 1년 만에 야마구치를 방문한 선생님은 18일과 19일 이틀간 지부좌담회 등에 참석했다. 그 모습은 제27권 ‘격투’에 그려져 있다.
어려움에 지지 않는 투혼을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제2차 야마구치 개척지도
《신·인간혁명》‘공전’의 연재는 ‘야마구치 개척지도’를 시작한 지 정확히 55주년에 해당하는 2011년 11월부터 시작됐다.
1967년 이후 10년 만의 방문이다. 선생님은 야마구치 지도에 나서는 심정을 소설에 이렇게 썼다.
“(야마모토) 신이치가 야마구치현에 머물기 시작한 5월 19일은, 3년 전의 제1회 야마구치현총회를 기념하여 ‘야마구치현의 날’로 제정된 날이었다. 그때 신이치는 현총회에 참석할 수 없어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번 방문으로 ‘야마구치현의 날’을 더욱 깊은 의미가 있는 날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마구치현으로 가는 신칸센 안에서 신이치는 이렇게 결의했다.
‘이번에 야마구치에 머무는 기간은 3박 4일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야마구치현의 동지가 21세기를 향해 비약하는 힘을 함양하는 제2차 야마구치 개척지도로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 한사람의 흉중에 그 어떤 어려움에도 지지 않는 신앙의 투혼을 혁혁하게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5월 19일, 신이치는 오고리역(지금의 신야마구치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간부에게 “자, 광포회천(廣布回天)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합시다! 제2차 야마구치 개척지도의 시작입니다.” 하고 말한 뒤, 차를 타고 야마구치문화회관으로 갔다.
오후 3시가 되기 전에 회관에 도착한 신이치는 곧바로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의 기념비 제막과 기념식수 등에 참석했다.
당시 회관 사무장이었던 무라카미 다쿠오 씨(야마구치이케다총현 총주사)는 선생님이 회관에 도착했을 때 상황을 떠올리며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훌륭한 회관이 아닙니까!’라며 저희를 격려하고 회관 부지와 건물 안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때 ‘회관은 학회원들의 정성을 모아 지은 건물이므로 소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라며 회원님들에 대한 배려와 자세한 사용 방법 등을 친절하게 지도해주셨습니다.”
개관 당시 회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선생님은 그곳에 근사한 회관이 세워진 의의를 “이 회관 자체가 ‘상주차설법(常住此說法, 부처가 항상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한다.)’입니다.” 하고 지도했다.
언제나 동지가 모여 광선유포의 크나큰 파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무라카미 씨는 “야마구치 동지가 자부심을 가지고 또 세상 사람들이 놀랄 만한 근사한 야마구치문화회관의 개관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그곳에 모이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경애를 바꿔야 한다고 새롭게 결의한 기억이 납니다.” 하고 말했다.
10년 만에 야마구치를 방문한 선생님은 간담이나 적은 인원이 모이는 협의에 힘을 쏟았다. 야마구치의 간부는 그러한 선생님의 모습에서 한 사람 한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모두 강인하게 만들고 야마구치의 경애혁명을 이룩하고자 하는 기백과 정열을 느꼈다.
미래세까지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재보’를 쌓자!
총마무리하는 삶의 자세
신이치는 오후 5시 전부터 ‘야마구치현의 날’을 기념하는 대표자근행회에 참석하고 이어서 주고쿠 방면과 야마구치현 간부와 간담을 나눴다.
이 간담회에는 ‘야마구치 개척지도’ 당시 함께 활동에 힘쓴 그리운 벗의 얼굴도 보였다.
‘공전’에는 그들의 체험과 신이치와 새긴 원점이 상세하게 씌어 있어 신앙의 진수와 학회활동의 의의 등 중요한 점을 많이 배울 수 있다.
신이치는 이 간담에서 초창기 동지가 육칠십대가 되었기에 인생을 총마무리하는 삶의 방식에 관해 강조했다.
첫째, 보은감사의 마음으로 목숨이 있는 한 광선유포에 끝까지 살아가 신앙을 완결하는 일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다리와 허리도 약해져서 걷기도 힘든 분이 늘어날 터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무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자기답게 동지를 격려하고, 법을 설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더라도, 모두에게 제목을 보낼 수는 있지 않습니까!”
둘째, 인생의 총마무리는 각자가 행복의 실증을 나타내는 때라는 뜻이다.
“‘곳간의 재보’ ‘몸의 재보’는 어차피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재보’는 미래세까지 누릴 수 있는 재보이고, 게다가 무한합니다. ‘마음의 재보’는 ‘욕락(欲樂)’에 대비하여 ‘법락(法樂)’이라고 하는데, 부처가 깨달은 법을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결국 신심으로만 얻을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인생을 총마무리할 때는, 생로병사를 비롯해 무상(無常)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그 오저를 꿰뚫는 상주불변(常住不變)의 묘법(妙法)에 따라 오로지 절대적 행복경애의 확립을 목표로 해주기 바랍니다.
풍요로운 ‘마음의 재보’를 얻은 행복경애는 내면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표정에도, 말과 행동에도, 인격에도 나타납니다. 그 말과 행동에는 감사와 환희와 확신이 넘치는 법입니다.
그리고 배려심이 많으며, 자신의 아집을 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해 헌신하려는 자애와 마음 씀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는 듯한 부드럽고, 온화하고, 명랑한 미소가 있습니다.”
셋째, 가정에서도 학회조직에서도 광선유포의 훌륭한 후계자, 후배를 육성해 남겨야 한다.
“학회의 미래를 반석같이 구축하려면, 봉추(鳳雛)가 잇따라 둥지를 떠나 하늘을 날듯이 각 조직에서 젊은 리더가 육성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인부의 경우에는, 자녀양육이나 인간관계의 괴로움 등 젊은 부인부의 여러 가지 고민을 잘 듣고 의논해주기 바랍니다. 모두 자신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희망을 가져야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입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멤버에게는 절복이나 교학을 비롯한 신심의 기본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몸에 기본을 제대로 익혀야 인재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공전’에는 ‘선배’의 올바른 자세를 말하는 신이치의 진심이 씌어 있다.
“학회의 각 현과 구에서 세대교체는 하나의 커다란 주제가 되어 있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그 모범이 되는 전통을 이곳 야마구치현에 만들고 싶었다.”
세계광포에 대한 사색
간담회를 마친 신이치는 아내 미네코 그리고 현지 간부와 함께 차를 타고 야마구치 시내를 시찰했다. 도중에 나가야마성터가 있는 가메야마공원에 들어섰다.
신이치는 이 주변에 ‘사비에르기념성당’이 있다는 현지 간부의 말을 듣고, 도다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한 직후에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의 서간집을 읽은 추억을 말했다.
당시 신이치는 사비에르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일본에서 어떻게 포교를 했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다가올 세계광포의 시대에 무엇이 중요한지 사색하고자 사비에르의 서간집을 읽고 세계광포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통감했다.
그러나 “그(신이치)는 도다 조세이 슬하에서 함께 투쟁하고, 일본 국내에서 수천,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불자(佛子)의 진열을 구축하면서, 세계광포를 차츰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강하게 확신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홍교에 끝까지 살아가는 동지들의 불요불굴의 실천과 결의를 눈앞에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가메야마공원에 이르자 차에서 내려 산책하면서 대성인 문하들이 말법의 광선유포를 위해 사신홍법(死身弘法)의 신심을 확립하기를 염원하신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세계광포의 신시대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참된 신앙자를 육성하겠다고 다시 한번 결의하고, 동행한 간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야마구치문화회관으로 돌아갑시다. 학회의 보배인 청년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나 전력으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창가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야마구치의 간부에게 말했다.
“야마구치현은 메이지유신을 짊어진 많은 수재들을 배출했다. 야마구치현은 일본의 여명,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알리는 곳이다.
광선유포의 새로운 시대에서도 야마구치현이 ‘새해 첫날의 해돋이’가 되어, 광선유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모두 씩씩하게 투쟁을 일으켜, 하루하루 자랑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써야 한다.
대하드라마에는 고투와 눈물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 여주인공은 지지 않는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승리의 감동은 크다. 한 사람 한사람이 주인공이고 위대한 사명이 있는 용자다. 모두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몹시 기대되는구나.”
청년들 속으로
저녁 8시가 지나 야마구치문화회관에 돌아온 신이치는 주고쿠 방면의 각 현에서 온 청년부 직원이 짐 정리 등의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스태프 인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고는 엄하고도 따뜻하게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야마구치현을 방문했으니, 야마구치현 청년들을 직접 훈련하고 싶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몇 십 명이나 되는 멤버가 와서 돌아다닌다면, 야마구치현 멤버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만다.
야마구치현의 몇 안 되는 직원과 청년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운영하려면 분명 힘들 터이다. 긴장도 하고, 실패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해도 좋다. 그 실패가 학습이 되고 교육이 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지키겠다.”
소설에는 그때의 진심이 이렇게 씌어 있다.
“신이치는 청년 한 사람 한사람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함께 행동하고, 대화를 나누고, 격려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럴 기회가 없다. 바로 그렇기에 현지 청년들과의 만남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고 싶었다.”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신이치는 겉옷을 벗고 청년들과 함께 짐을 정리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청년을 훈육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광포 스승의 자애는 한없이 깊다.
내가 일어서자고 마음을 정하고
진지하게 노력하자
뜻을 이어받은 제자
이튿날 20일 오후에 야마구치문화회관 개관기념근행회가 열렸다. 신이치는 이 자리에서 ‘야마구치 개척지도’는 사제가 한 순간에 나눈 호흡에서 시작됐다고 술회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게 야마구치는 광포개척의 소중한 고향입니다. 20년 전에는 거점으로 사용할 회관이 하나도 없었고, 각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회원도 모두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야흐로 이렇게 훌륭한 문화회관도 탄생하고, 야마구치현 창가학회는 반석 같은 포진을 갖추었습니다. 20년 전에 여러분과 함께 뿌린 씨앗은 야마구치 각지에서 꽃을 피우고, 지금 이렇게 훌륭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20년 동안 그 길을 외곬으로 걸어온 사람은 신용할 수 있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20년이라고 하면, 갓난아기가 자라서 성인이 되는 세월입니다. 신앙도 20년 동안 꾸준히 정진(精進)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애가 됩니다. 또 지역광포의 양상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진지하게 노력하고, 끝까지 도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조건입니다.
어쨌든 ‘어떤 일이 있어도 20년’ - 이 말을 하나의 슬로건으로 삼아 용감하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개관기념근행회에 이어 신이치는 야마구치대학교 대학부 멤버와 간담을 나눴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현지 간부의 요청으로 1877년에 창업한 전통 요릿집 ‘채향정’을 방문했다.
채항정은 현지의 자랑이기도 해서 일찍이 메이지시대의 유명 인사들도 발자취를 남겼다.
신이치가 방문한 5월은 기도 다카요시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때였다. 기도는 쇼카촌숙(松下村塾)을 연 요시다 쇼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신이치는 메이지유신으로 천하를 바꾼 지사들을 육성한 소인에 관해 도다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나눈 추억을 떠올렸다.
‘공전’에는 쇼인의 제자들이 사형을 당한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메이지유신을 이룬 역사를 언급하고 이렇게 씌어 있다.
“학회도 신이치를 비롯한 제자들이 도다 조세이의 뜻을 이어받아 광선유포를 실현했기에 비로소 크게 발전했다.
신이치는 지금 자신의 뜻을 이어받은 참된 제자들이 이곳 야마구치 땅에서 계속 육성되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며 기원했다.”
20년 만의 도쿠야마 방문
신이치는 야마구치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21일, 신칸센을 타고 도쿠야마로 떠났다. 실로 20년 만의 방문이다.
오후 1시 반이 되기 전에 도쿠야마문화회관에 도착한 신이치는 야마구치 개척지도 당시 입회한 멤버와 재회해 격려를 보냈다.
야마구치 광포 개척 2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회에서는 도쿠야마 동지의 분투를 칭찬하고, 신심의 기본자세를 언급했다.
“‘반드시 마음의 견고함에 따라 신(神)의 수호도 즉 강하니라.’ 운운. 신의 수호라고 함도, 사람의 마음의 강함에 의한다고 쓰여져 있소. 법화경은 훌륭한 검(劍)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물건을 자르느니라.”(어서 1186쪽)라는 구절을 배독하고 거듭 지도했다.
“대성인의 이 말씀은 ‘자신의 신심이 강한 만큼 수호하는 제천선신의 작용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설명하시는 중요한 지도입니다. 아무리 어본존을 수지해도,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흔들리는 신심으로는 제천이 가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병에 걸리면 현상에 미혹되어 ‘신심을 하는데 왜?’라며 어본존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인 이상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혹시 병에 걸리더라도, 불퇴전의 신심을 관철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용현하여 자신을 소생시키기 위한 신심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신심의 목적입니다.”
니치렌불법은 인간혁명의 종교다. 신이치는 신앙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근행회가 끝난 뒤, 신이치는 도쿠야마역 앞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옮겨 주고쿠 방면의 청년부 대표와 간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이치는 이틀 전에 다른 현에서 지원하러 온 멤버들을 되돌려 보내도록 지시했다. 야마구치현의 청년들을 직접 훈련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마구치를 떠난 청년들은 분명히 쓸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치는 그 멤버들을 도쿠야마로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청년부 멤버들은 따뜻한 스승의 진심에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신이치는 여자부 간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이윽고 결혼하여 부인부가 되겠지요. 자녀양육에 쫓기고, 생활에 몹시 지치기도 할 터입니다. 또 조직의 제일선에서 활동하면서 고생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은 여자부의 리더였다는 긍지와 기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소중한 학회조직을 맡았다!’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의 원점으로 삼아 끝까지 분투해야 합니다.
여자부 시절에 중핵이 되어 신심에 힘쓴 공덕과 복운은 큽니다. 그러므로 도중에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인생의 대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남자부 리더에게는 “어디까지라도 스승에게, 또 학회본부에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도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학회의 정도(正道)를 걷고, 자신을 철저히 단련하여 크게 성장해야 합니다.” 하고 강조했다. 그리고 힘차게 말했다.
“청년은 고생하여 힘을 길러야 합니다. 청년의 가장 큰 적은 ‘학력이 없다.’든지 ‘가난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지는 일입니다. 광선유포라는 가장 높고 가장 큰 뜻을 위해 살아가는 창가청년은 언제나 진취적으로, 무한한 도전을 계속해야 합니다!”
호후는 야마구치 광포의 원동력
신이치는 저녁 8시가 넘어 차를 타고 도쿠야마를 떠났다. 가는 도중 차에 함께 탄 아내 미네코가 호후 멤버들이 회관에 모여 있다고 알려주었다.
신이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가자! 짧은 시간이라도 온 힘을 다해 격려하자. 모두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하고 결정해, 진로를 바꿔 호후회관으로 갔다. 회관에 도착해 신이치가 현관에 들어서자 동지들은 기뻐하며 환호했다.
다 함께 근행을 한 뒤, 신이치는 강당에 있는 전자 오르간으로 ‘아쓰타무라’와 ‘아쓰하라 삼열사’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계속 기다리고 계셨겠지요. 그 ‘진심’에 응하고 싶습니다. 세간은 ‘타산적’이지만, 신심의 세계, 학회의 세계는 ‘진심’입니다.
광선유포를 목표로 스승과 제자, 동지와 동지가 마음과 마음을 맺어 구축한 창가학회입니다. 그러므로 학회는 조직주의가 아닌, 인간주의의 단체입니다. 학회의 강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그런 깨끗한 정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마구치지부가 결성되었을 때, 지부사무실을 호후에 둔 점 등을 언급하며 호후의 사명을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 야마구치시와 도쿠야마시에 문화회관이 완공되었지만, 야마구치현 창가학회의 원점은 어디까지나 호후입니다. 또 호후는 야마구치광포의 원동력이 되는 땅입니다.”
“아무쪼록 호후 여러분은 ‘우리야말로 야마구치창가학회의 중심이다.’ ‘이 곳은 야마구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원점의 장소이다.’라는 긍지를 가지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이치는 “광선(廣宣)의/ 원점(原點) 이곳이로다/ 호후성(城)”이라는 시를 선사하고 벗을 북돋았다.
“여러분은 그 의미 깊은 호후에 출현한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입니다. 지용보살입니다. 그리고 신뢰하는 불이(不二)의 사제(師弟)입니다. 그 긍지를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광포의 길을 끝까지 달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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