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송합니다.
원문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189286801
지난 해 인천 여정 중 문학산, 청량산에 올랐다가
남쪽 송도국제도시에 면한 좁은 바다 건너 오이도를 보았다.
아련하게 보이는 모습에서 생겨난 막연한 동경과
'오이도'라는 이름에 이끌리는 마음이 일었었다.
언제 한 번 둘러볼 기회가 있으려나,
기약할 수 없었는데
시흥 시화방면으로 여정이 잡혔다.
지하철 4호선 종착지 오이도역이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돌고돌아 세시간 가까운 귀가길이 너무나도 아득하다.
일찍 사무실을 나와 집에 들러 차를 끌고 길을 나선다.
바다에 접해 조성된 사선 직사각형
'오이도 해양단지' 북쪽 끝에 숙소를 정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뒤, 산 중턱에 목책계단이 보인다.
숙소에서 바로 접근하는 길이 없어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도니
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갈짓자로 완만하게 둘러져 있다.
야산에 조성된 '오이도 선사유적 공원'이다.
1960년 배다리에서 패총(조개더미)이 발견된 이 후,
패총, 주거 관련 다양한 유적이 일대에서 발굴되어
2002년 4월 사적 제 441호로 지정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거주했던 지역으로,
집터, 온돌유구, 토기편, 석기, 어망추 등
해안지역 주민의 생활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들이 출토되었다.
오이도는 육지 약 4㎞ 떨어진,
남북으로 긴 섬이었다.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玉貴島)'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 인근에서 표류할때
한 어부가 옥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치자
임금이 깜짝 놀라 귀히 여겨 옥귀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922년 일제가 소금을 강탈할 목적으로
오이도와 안산시를 연결하는 방조제를 축조하여 염전을 세웠다.
그때부터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목책계단을 오르는 초입 중턱 바다방향으로
해안초소를 그대로 활용한 '책 읽는 초소'가 눈길을 끈다.
굳게 잠긴 출입문 유리창 너머 보이는 내부는
널브러진 책상과 의자, 텅빈 서가가 을씨년스럽다.
나무계단 끝에 유리 출입문과 통창을 배치한,
용도를 알수없는 둥근 건물 뒷편 모습이다.
발코니 형식 공원 옥상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조망을 파노라마도 담았다.
아쉽게도 미세먼지와 옅은 해무가 베일을 드리웠다.
하긴, 맑았다해도 바다 저 너머 망망대해는 없다.
송도국제도시가 앞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전시장, 체험관, 안내소,
숙박시설로 이어지는 길이 산 양쪽으로 이어져있다.
옥상전망대 중앙은
건물 아래 바닥과 원형으로 훤히 트여있다.
그 아래 원형 테두리안에는
지난번에 내린 눈이 녹아내려 얼었다가
따스한 낮 햇살에 녹고 있다.
정상부를 향해 가는 길이다.
정상부 군부대가 있어 출입을 금지한 곳 바로 아래
잔디광장이 있다.
따로 배치된 조형물 없이 황량하다.
많이 오른 기온에
흙바닥 산책로 결빙이 녹아 질척거린다.
헐벗은 나무사이로 보이는
정상부를 차지한 것은 군부대다.
다시 돌아 내려와 패총박물관을 찾았다.
평일이라 관람객이 없어서 그런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움집과 체험관, 전시장, 안내소 등이 있는
선사마당으로 내려가는 길 언덕에 갈대가 무성하다.
동남아 어느 부족의 개량된 주거지 같은
움집들이 선사마당 체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체험관들이 모두 장겨있다.
선사시대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조형물들이 야외 곳곳에 전시되어있다.
곡괭이와 삽으로 고랑을 일궈
파종 준비를 하고있다.
각종 용기로 사용할 토기를 굽기 위해
숯위에 흙반죽을 얹어 놓았다.
뒷편 석기인은
나무로 만든 도구를 부벼 불을 피우고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형태의
움집 만드는 과정 중 뼈대를 재현해 놓았다.
사방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사선으로 도리를 얹어 이엉을 엮어 짓는다.
움집 내부에서 단순한,
그야말로 미니멀라이프의 끝판을 본다.
집착으로 채우기 전,
순수한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고대로 부터 무거운 돌이나 나무 등,
물건을 나르던 방식을 재현해놓았다.
둥근 나무를 도르래처럼 밑에 연이어 놓고
끈으로 단단히 묶어 물건을 끌던 방식이다.
노지에서 불을 피워
조개나 물고기를 구워먹던 모습이다.
움집 안에서는 여인들이 장신구나
몸에 걸칠 옷 등을 만들고 있다.
산이나 들에서는 일용할 양식,
짐승을 사냥하여 움집으로 옮기고 있다.
체험시설과 전시실 움집이 있는 건너편으로
다양한 움집들이 세워져있다.
이 곳은 숙박시설로 활용할 예정인것 같다.
급한 볼 일로 화장실을 찾았지만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다.
안내소를 찾았지만 역시 잠겨있다.
마침 안내소 출입문에
관리자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다.
의문도 생기고 은근히 화가 나
오기가 동하여 전화를 걸지만 받질 않는다.
옥구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린다.
짐작가는 바가 있어 전화를 받으니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관리인이다.
모든 시설이 잠겨있어 불편을 호소하니
아직 개장전이라 정상운영을 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언제 개장을 하게될지 모른단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해되었지만
큰 돈을 들여 만든 훌륭한 시설을 방치하는 것 같아
몹시 아쉬웠다.
다음 행선지는 옥구공원에 면한 산 정상 정자다.
멀리에서부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유혹이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다시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야산을 넘어와
바닷가 방파제로 올라선다.
노란 부교가 떠있는 끝에 섬이 보인다.
그 너머 아스라한 모습이 송도국제도시 아파트와 건물군이다.
방파제 아랫부분은 자전거전용도로로 이용중이고
윗쪽은 보행전용 산책로이다.
그 너머 보이는 산이 옥구공원 정상이다.
왼쪽 아파트단지 있는 곳이 배곶신도시다.
오이도로 접어들며 보았던 안내판을 담으러
통행이 뜸한 차도 가운데로 물러서 찍었다.
멀리 산정에 전망대가 뚜렷해진다.
옥구공원에 접어들어 전망대를 담았다.
공원 남사면 볕을 듬뿍 받는 곳 육산에
누런 억새가 넓은 밭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걷는 걸음이 부드럽다.
밝고 편안한 길이 계단으로 이어진다.
몇차례 갈림길을 만나지만
오르막을 따라 걸으면 정상부로 이어진다.
길을 오르내려며 바위에 쌓은 돌무지가
밋밋한 돌탑을 이루었다.
정상부 높다란 바위절벽 위에
산객을 유혹하던 정자가 바로 눈앞이다.
서린 위엄이 접근을 쉬이 허락할 것 같지않다.
이대로 돌아설까?
산허리를 돌아가니
정상으로 오르는 완만한 계단이 보인다.
내 인생길,
앞에 보이는 험난함만 보고 좌절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마음이 인다.
계단에 닿아 뒤돌아보니
산책로를 둘러싼 돌담이 정겹다.
언덕배기를 오르며
터지는 하늘을 보는 마음이 늘 새롭다.
이대로 하늘에 닿는 문을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란 기대에...
정상 데크에 올라 남쪽을 조망한다.
건너 보이는 완만한 산이
조금 전 올랐던 선사유적공원이 있는 야산이다.
옥구공원에서 약 4킬로미터
도심을 가르며 이어지는 공원이 곧게 뻗어있다.
왼쪽으로는 아파트단지가 늘어선 주거지대,
오른쪽은 철강을 비롯한 각종 공단이 자리잡고있다.
서해 바다를 파노라마도 담았다.
'매우나쁨' 단계를 표시하고 있는 미세먼지가
여전히 시야를 가리고 있다.
정상 옥구정이
사방 시원한 전망을 보여줄 것처럼 유혹했는데
막상 정상에서 보니 뿌옇다.
서남향에서 산을 올랐는데
동남쪽 넓게 잘 꾸며진 옥구공원이
또 다른 볼거리로 유혹한다.
공원으로 가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 북사면으로 걸음을 옮긴다.
올라올 때와는 딴 판인 바위산 산길이
같은 산인가 싶다.
산정상을 막아선 바위군이
커튼처럼 그 너머 별세계를 감추고있다.
데크 산책로가 아래로 이어진다.
'유아숲 체험원'에 설치된 방앗간,
연자방아와 디딜방아가 체험객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 조성 공사중인듯
한 켠에 출입을 금하는 줄을 쳐놓았다.
방금 산을 내려온 계단과 데크가
추위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연못 위에 놓여있다
돌과 나무 등 각종 재료를 이용해 설치한 지압마당이
길게 설치되어있다.
넓은 공원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이 눈길은 끌지만
하나 하나 둘러 볼 겨를이 없다.
옥구공원이 있는 이 곳은 예전에 옥구도, 섬이었다.
옥구도는 주변에 돌이 많아 석도, 석옥귀도 등으로 불렸다.
남쪽의 오이도와 함께 옥귀도로 불렀는데
'귀(龜)'가 '구'로도 읽혀 '옥구도'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돌이 줄을 선 형상이라 산을 '돌쭐산'이라 불렀다.
산 정상부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하여
'역적섬'이란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1998년 까지 해안초소가 있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
1999년 공공근로를 통해 환경 친화적 공원으로 변모,
2000년 초에 개장하였다.
2010년 우리나라 정원박람회 효시인
'제 1 회 경기 정원 문화박람회'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기념조형물인 '새 시대의 꿈'이다.
시화지구개발사업을 기념하며,
시화지구 도시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상징화하고
미래를 향한 무궁한 발전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는 설명이다.
'시흥 평화의 소녀상'과
'평화를 위한 소녀의 꽃밭'이다.
뒤로 노란 나비꽃이 피었다.
나비에 적혀있는 메시지가
일본 당국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재미있는 전설, 유래를 가지고 있는 '생금우물'이다.
조선 말엽 시흥시 죽음동에 살던 김창관이라는 사람이
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옥구도로 나무를 하려 왔다가
이곳에서 닭 한마리를 발견하여 곱게 싸
집 골방 반닫이에 넣었다.
이때 보자기에서 떨어진 닭털이 황금색이라
이튿날 한양에 가서 금방에 물어보니 금덩이였다.
한양에서 돌아와 반닫이를 열어보니
닭이 황금덩어리로 변해있었다.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황금을 바꿔
부자가 되어 땅도 사고 집을 지어 '생금집'이라하였다.
출가했던 딸이 이 소문을 듣고 친정으로 가
황금닭을 훔쳐 도망가다 보자기를 풀어보니 돌덩이로 변해있었다.
순간 딸은 황금닭 주인이 따로 있슴을 깨닫고
친정아버지에게 돌려주었으나
다시는 황금닭으로 변하지않았다.
그 후부터 이 우물을 '생금우물',
또는 '금계우물'이라고 불렀다.
물맛이 하도 좋아 뱃사람들은 배에 실어가기도 하였는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이곳에 염전을 만들고 샘물을 독점하였다.
자기들끼리 마시려고 자물쇠로 잠가두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접근도 못하게 할 정도로
물 맛 명성이 자자했다.
한겨울 장미원이 원색을 잃고
단색으로 퇴색하였다.
일본정원의 특색을 살린 정원이다.
명명된 이름이 '한일 우정의 정원'이다.
불과 몇 십 미터 옆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데
일본정원을 꾸민 관계자의 비상식이 아쉽다.
공원은 전체적으로 넓고
조형물과 각종 시설물 등 다양한 배치를 통해
외관상으로는 매우 조화롭다.
나무 그늘이 울창했던 기존 숲을 이용한
'숲속 그늘 정원'이다.
헐벗은 가지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진다.
한여름 그늘을 드리웠던 나뭇잎들은
한겨울 햇살이 절실한 계절이 되자
스스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버렸다.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제주섬의 화강암 돌담을 떠올리게 된다.
각종 조류가 둥지를 틀고있는 조류원이다.
AI 예방 및 감염방지를 위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선을 설치해 놓았다.
대밭 대나무 꼭대기 즈음에 새집을 달아놓았다.
그래서 이름이 '지지배배정원'이다.
산 정상 해발 95미터 '옥구정'이 보인다.
언덕위에 한국 전통정원이 꾸며져있다.
야외 공연장, '옥구 놀이마당'이다.
공원 끝자락에 국궁장, 시흥정이 자리잡고있다.
사로 맞은편 끝 과녘이 보인다.
국궁장 사대가 보인다.
사대에는 궁사가 화살을 재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국궁장 테두리 철책을 지나는데
화살이 과녘에 꽂히는 소리가 "탁, 탁"들린다.
머리가 쭈뼛해진다.
화살이 과녘을 벗어나
나를 향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다.
옥구공원을 벗어나기 전,
방금 이름을 알게된 '돌쭐산' 정상 '옥구정'을 본다.
되돌아 가는 길,
덕섬앞 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에 설치된
출입통제 표지판이 아리송하다.
출입통제 시간이 있는것도 아니고
옆에는 자전거전용도로 표지가 보인다.
물론 민간인들은
자전거로, 도보로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해가 서산으로 많이 기울었다.
숙소 앞 방파제에 연결된 다리 끝 노란부교에
평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몇 보인다.
이 짧은 구간에 길 이름이 있다.
'황새바위길',
끝에 서면 '황새바위'라는 섬이 가깝다.
시흥시 유일한 무인도다.
밀물때라 섬 하단부가 바다에 잠기고
머릿부분만 드러나 암초 머릿부분처럼 보인다.
하지만 썰물때에는 고스란히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이 드러나면
낙지, 망둥어, 붉은발 농게 등 갯벌관찰도 가능하다.
부교로 가는 다리 앞 등대조형물에
사랑의, 다짐의, 약속의 자물쇠가 촘촘히 걸려있다.
부교 난간에 갈매기가 다리쉼을 하고있다.
어쩌면 관광객의
과자부스러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래를 펼치고 날아오른다.
위험을 피하여?
아니면 습관처럼 던져질 부스러기를 위하여?
조금 멀긴 하지만 황새바위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로는
'황새 모양의 섬'이라고도 하고
'과거 황새의 서식지'였다고도 한다.
멀리 배곶신도시와 옥구공원, 돌쭐산이 보인다.
산중턱에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전망대가 보인다.
멀리 방파제 모서리 끝에
'생명의 나무' 조형물이 보인다.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이도 삶과 흔적, 역사가
갯벌 매립으로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옛 오이도의 이야기를 후대에 길이 남기기위해 조성하였다는
명물 '생명의 나무'가 직사각형 방파제 모서리 한 끝에 설치되어있다.
''2014년 대한민국 경관대상',
우수상 수상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되어있다.
오이도 선착장 너머 시화호방조제 위로
장엄한 여정을 마무리하는 해가
사위를 황혼빛으로 물들이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오늘은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
'오이도 가볼만한 곳', 인터넷 검색을 하면
제 일 명소로 조회되는 '빨강등대'를 올려다본다.
등대에 올라 보이는 전망이 좋다는데
아쉽게도 출입을 통제하며 굳게 닫혀있다.
겨울철 바닥이 미끄럽다는 이유다.
하지만 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먼곳을 찾아 온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빨강등대'는 전망을 위한 조형물이다.
2006년 모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등대와 연결된 단층건물에 상품판매시설이 있다.
시흥시 기념 동물인 코끼리가
인형과 도자기 등 다양한 제품으로 진열되어 있는데
아직 정식 개장전이라 판매하지는 않았다.
판매점 직원의 소개로 함상전망대를 찾아
다시 방파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작품명 'WIND-HUMAN' 조형물이다.
남과 여,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소통이
동선으로 이루어진 곡선들의 뭉침과 풀림으로 바람을 표현한다.
바람 사이 공간은 인간관계를 의미하고
이러한 관계들이 중심의 원으로 하나되는 소통으로 해석된다.
조형물 앞 설명이 이해가 될 듯 난해하다.
바다에 맞닿은 직사각형 모서리 중 한 곳,
'노을의 노래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오이도 갯벌과 바다를 장식하는
노을과 낙조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감성을 깨우고
갯벌에 기울어진 고깃배, 낚시대를 드리운 사람뒤로 지는
석양의 아리아는 들어보라는 부연이 바다로 눈길을 돌리게한다.
하지만 그 위엄은 어디로 갔는지
바람앞에 촛불같이 위태롭다.
적어도 오늘은,
바다를 삼키는 개선장군이 아닌
바다로 함몰하는 패장의 모습이다.
1987년 부터 6년간 공사로 조성된 시화호방조제이다.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11.2킬로미터 길이다.
방조제 위로 사위어가던 태양이
촛불보다 더 초라한 모습으로 지워져버렸다.
저 앞으로 해경 퇴역경비함이 보인다.
'함상공원'이 아닌 '함상전망대'이다.
250톤급으로 낙조와 바다를 감상할수 있고
전시와 공연 등을 즐길수 있는 휴식, 문화공간이다.
개장시간이 10시 부터 17시 까지다.
17시 20분이 지난 터라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혹시라도 석양을 볼 수 있으려나,
서해바다를 돌아보지만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하루 여정을 마무리한다.
뿌연 미세먼지가 시야와 행동을 제약했지만
평일 한가로이 기웃거릴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이도가 내가 사는 일산에서
40 여 킬로미터 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거리를 찾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길고도 오래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아득해도
발을 떼고 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그곳에 닿았슴을,
먼곳이 아니었슴을 알게되는 경험을 자주한다.
그렇게 더 자주 발을 떼어야겠다.
|
첫댓글 긴 글이지만 사진따라 설명따라 읽다보니 재미있게 다 내려왔네요,
새로운 곳 보여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