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S 비밀정보국의 분위기는 여느 때 보다 더욱 상기되어 있었다.
천재적인 해커 능력을 가진 고수진 요원은 슈퍼 컴퓨터 AI '타키온X'로 수집된 인공위성 및 전화감청자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타키온X는 신형 슈퍼 컴퓨터로 모든 범죄 징후와 관련 동영상을 자동으로 수집하는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수진은 장갑부대로부터 비상 신호를 확인했다. 수진은 빠른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조작하며 위성을 띄워 784장갑부대의 상황을 모니터링 했다.
그녀는 국장실의 투명 유리창으로 컴퓨터를 보고 있는 이윤주 국장을 힐끔 쳐다보고는 수진은 내선 번호를 눌렀다. 그녀의 눈빛에는 타키온X가 제대로 된 첩보를 수집했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국장님! 현재 실시간 영상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 목소리에 긴장감이 전이된 윤주는 황급히 모니터를 열어보았다.
수진은 784장갑부대의 영상에서 발견된 군인의 얼굴을 확대해서 선명하게 만들었다. IDS(IDENTIFICATION SEVER)프로그램 창이 모니터에 떠오르자 군인의 얼굴과 동일인물을 초고속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여러 페이지가 넘어가다가 일치되는 얼굴이 나타나자마자 화면이 멈추었다.
"이 남자는 현직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 해군 특수전 전단 대위 유정균이에요."
그녀가 국장에게 보고를 하자 이윤주 국장이 바로 지시했다.
"지금부터 그의 GPS 위치를 추적하고, 전술팀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해."
"예. 국장님."
이윤주는 재빨리 전술팀 참모요원인 윤세진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세진은 비록 TSS에서 참모이긴 했지만, 모든 현장을 직접 다니며 지휘를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윤준장님? 테러의 조짐이 보입니다. 전직 특전사 출신 유정균이 장갑차 부대의 전차를 탈취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윤세진은 항상 출동 준비의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전술팀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네. 준장님! 조심하십시오."
유정균은 다섯 명의 대원들과 함께 얼굴에 검정색 녹색 위장약을 바르고 어둠을 틈타 신속하게 장갑차들이 즐비한 부대 안으로 진입했다.
유정균이 행정반의 문을 발로 차자 쾅하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는 기관총을 정확히 겨누며 사방을 확인한 다음 신속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맞은 편 문에서 두 명의 장정들이 놀란듯 튀어나왔다.
유정균은 적들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투퉁투퉁 하는 소음과 함께 정확하게 두 장정의 심장에 총알이 두 발 씩 명중됐다.
그가 두 장정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는 동안 다른 자들이 옆문에서 튀어나오며 기관총을 발포했다.
투투투퉁 하는 굉음이 울렸고, 유정균과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낮은 위치에 있던 대원들은 신속하게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K-7 신형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기관총의 총열을 달구는 소음이 일어나면서 나머지 세명의 적들의 가슴과 머리에 총알 구멍이 나며 사방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위성과 연결된 화면은 784장갑부대의 두 대의 장갑차가 부대를 벗어나서 도로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장면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진은 본부로부터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해받고 있었다.
윤세진과 전술팀은 탈취된 장갑차를 잡기위해 전술용 지프를 끌고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장갑차의 전투력에 상응할 만한 무기를 끌고 나간다면 도심에서 더 큰 참사를 일으킬 수 있기에 그들의 전술능력에 기대를 걸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장갑차 두 대가 막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기 직전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쾅 하는 어마어마한 폭발이 세상을 다 진동시킬 듯 굉음을 일으켰다.
윤세진과 전술요원들이 그들의 진입로에서 진을 치고 매복하면서 미리 진입로에 설치했던 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장갑차가 아니라 공중을 활보하는 로봇이었다.
다섯 대의 전술 로봇은 윤세진팀이 설치한 폭탄을 미리 제거한 다음 TSS 전술팀 매복 위치를 찾아내어 거친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열 명의 팀원들은 그들의 첨단 장치로 발각 되자 마자 그대로 총알 세례를 받고 피를 뿌리며 풀풀이 바닥 위로 쓰러졌다.
윤세진은 활공을 하는 로봇의 추격을 피해 수풀 속에서 달렸다.
시시각각 로봇들이 숨통을 조이며 그를 쫓아왔다.
"젠장!"
그는 로봇의 눈에서 붉은 눈을 응시하며 긴 갈대밭 속에 몸을 숨겼다.
눈 앞에 강가가 보였다.
몇발자국만 더 이동하면 물속으로 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몸에 갖추고 있는 모든 장비를 하나씩 버리며 조용히 강가를 향해 기어갔다.
겨우 전술로봇의 탐색에서 벗어나 강기슭의 진흙을 헤치며 천천히 그는 강속으로 들어가 깊숙이 잠수를 했다.
그는 숨이 막히면 조심 스럽게 입술을 내밀어 숨을 빨아들인 다음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하늘을 활공하며 윤세진을 찾던 로봇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로봇들이 사라진 뒤에야 겨우 얼굴을 내밀고 큰 숨을 쉬었다.
11시 경
수한은 유주와 함께 지프를 타고 가면서 쉴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수한은 당장에 가족들이나 살던 집으로 갈 수 없는 형편이었고, 유주는 수원에 숙소생활을 하고 있어서 당장에 쉴만한 데를 찾아야했다.
"전 괜찮으니까 근방 작은 호텔로 가요."
여자인 유주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제안이었다.
수한은 걱정 안해도 된다는 정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방이 두 개 있는 방을 잡으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니 가까이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유주는 말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수한이 베네치아 호텔에서 스위트룸 체크인을 마치고, 유주는 밖에서 커피를 사와 함께 객실로 들어갔다.
둘은 소파에 앉아서 늦은 밤에 남녀가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을 은근히 의식하며 어색하게 커피를 홀짝댔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해보고자 수한이 입을 먼저 열었다.
"우리 몸에 위치 추적기 같은 것은 없으니 저를 잡으려고 여기까지 오지는 않겠죠?"
유주도 애써 어색함을 모면하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위성이나 카메라로 역학조사로 추적할 수도 있어요. 호텔에도 각종 카메라가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요."
수한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유주에게 마음이 끌리는 자신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참 오래간 만이죠. 십년 전에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도망다닌 적이 있잖아요."
그는 무의식 적으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유주 역시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네요. 비슷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스케일은 지금이 더 크네요."
수한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맞아요. 지금이 더 위험한 상황이죠."
얼마전 유주와 재회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키스를 했었다.
그때 이후로 자신이 유주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얼마전에 장위동 안가에서 만났을 때 말예요. 그때 참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네?"
유주는 다소 놀라운 듯 얼굴이 붉게 물들어 아무말도 못했다.
그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전 그때 이후로 유주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녀는 그의 고백같은 말에 붉게 물든 양볼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살며시 미소를 흘렸다.
수한은 그런 유주의 고개를 두 손으로 붙잡고 키스를 했다.
유주는 놀라면서 키스를 하다가 이내 저항하며 그를 밀쳤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가 괜시리 미안해지더니 이내 그에게 다가가 이제는 그녀가 먼저 입술을 내밀었다.
수한은 그녀와 격렬하게 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옷을 한 올 한 올 벗기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 키스를 하면서 뒷걸음 치며 침대로 향했다.
수한은 한번에 상의를 벗어던지며 근육질 몸매를 드러냈다. 그리고 바지를 벗고 빠르게 알몸이 되어 침대에 바로 누운 유주를 덮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주씨 사랑해요."
격렬한 사랑의 몸짓은 오래된 목마름을 해갈하듯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최고의 정점을 찍는 순간까지 수한과 유주는 어떠한 방식이든 짜릿함과 행복감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수한은 마무리를 유주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끝냈다.
"샤워할까요?"
수한이 묻자 유주가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둘은 함께 온몸에 비누칠을 해주면서 사이좋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다음 타월로 물기를 다 닦은 뒤 다시 옷을 입었다.
"오늘 밤에는 그래도 방심할 수 없으니 옷을 입고 잡시다."
수한이 말하자, 유주도 동감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수한씨."
그런데 문득 유주는 갑자기 명치의 신경이 불편해져왔다. 어두운 밤 가로등의 붉은 빛이 미세하게 퍼져있는 창 밖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센서 입구 등이 꺼져서 어두운 입구 쪽 복도를 응시했다.
그런 기분은 유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한 역시 불편한 기분에 벌떡 일어서며 침대 머리맡에 숨겨 두었던 권총을 꺼냈다. 다 경험에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곧바로 입구 방향 벽에 등을 대고 권총을 두 손으로 감아 쥐고 선 뒤 유주에게 눈짓으로 옆에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