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소망, ‘봉헌’은 어찌 됐나 / 김지영
천주교 신자로서 마음속에 품었던 세 가지 소망. 그 중 평생 ‘예수쟁이’들을 미워하신 어머니가 세례를 받는 일과 고향 큰집의 ‘해우당’(海愚堂) 현판-천주교를 탄압한 대원군의 친필-밑에서 미사를 드리는 일 두 가지는 앞서 술회한 대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남은 한 가지 소망은 직업적 소명인 ‘언론’으로 나를 봉헌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애초부터 ‘완료형’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내가 지금까지 과연 얼마나 소망한 대로 했는지 자격지심부터 앞선다.
세례를 받고나서는 알 수 없는 새 희망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지만 나는 천주교 교리와 신앙심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구원의 밧줄을 잡은 것 같기는 한데… 내가 너무 모르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은 점차 송구함, 초조감, 자책감으로 변해갔다. 그로부터 한 몇 년간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천주교 서적을 읽고, 강연을 듣고, 기도를 했다.
당시 일산으로 오가는 아침·저녁 출퇴근길 버스와 전철은 나에게 묵주기도를 하거나 교리서적을 읽는 공간이었다. 퇴근길 버스에서는 피곤한 몸으로 묵주기도를 하다 졸던 끝에 반지를 놓치는 바람에 반지가 바닥으로 ‘데구르르…’ 굴러간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늦은 밤에 버스종점까지 가서는 운전기사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뒤 버스바닥을 뒤져 반지를 찾고는 했다.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 옆의 ‘바오로 딸’ 서점은 내가 수시로 찾는 영혼의 쉼터였다. 이곳에서 나는 기초적인 교리부터 비교종교학까지 많은 서적을 접했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면 반드시 성경과 매일미사 책자, 묵주를 지참하고 아침저녁으로 읽고 기도했다. 당시 나는 사회부와 정치부를 오가며 기자생활을 했다. 아는 분은 다 알지만 사회부기자나 정치부 기자나 맡은 일을 처리하기에도 밤낮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거기에다 신자 초짜로서 모자란 공부를 하려니 잠을 덜 자는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일상이었지만 소홀히 하면 구원의 밧줄을 놓치기라도 할 듯 열심히 매달렸다.
이렇듯 ‘갈급한’ 마음으로 교리와 신앙에 대해 알고자 했던 데에는 몇 가지 자극제도 있었다. 세례를 받고 귀국하니, 경향신문사의 가톨릭 교우회 선배들이 세례를 축하한다며 점심 자리에 날 호출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경향 교우회 회장직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초짜인 내가 감히 교우회장을?…”
더욱이 경향신문사는 천주교 서울교구가 창립한 언론매체로서 천주교와 법적인 관계는 끊어졌지만 교우회는 여전히 굳건한 토대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내가 교우회장을 맡으면 나와 교우회는 사이비가 될 것만 같았다. 한동안 나는 교우회선배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결국 나는 선배들에게 굴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대부님인 서울신문의 최홍운(베드로) 선배가 가톨릭 신문출판협회장이 됐다면서 나더러 ‘감사’직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대부님의 말을 거역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으므로 이번에는 고스란히 ‘순명’을 했다. 이로부터 나는 신앙생활의 바탕을 가톨릭언론인회에 두게 되었다.
앞서 서술한 바 있지만, 언론인회의 형제들과 어울려보니 몇 대에 걸친 구교우 집안 출신도 많고 신학교 출신도 많았다. 교리와 신앙심은 물론, 전국 교구의 현황에서 신부님들의 성품에 이르기까지, 내가 모르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나는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나는 ‘무지한 초짜’에서 탈출하려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사회교리‘를 만났다. 가톨릭언론회가 주관하는 ‘언론인 신앙학교’에서였다. 사회교리는 인권과 공동선, 평화, 약자 우선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어 내 직업적 바탕인 저널리즘 원칙과 매우 흡사했다. 사회교리를 처음 접하고는 나는 갑자기 나의 눈이 떠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직업과 신앙이 일치하는 사회교리를 봉헌의 토대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은, 특히 논설위원으로 쓰는 사설과 칼럼에는 사회교리를 원리로 삼는다는 ‘글쓰기 방침’부터 정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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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