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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쌤
소풍을 못 간 어린 K가 친구들을 피해 물속으로 숨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이상하게도 51년생 K에게 마음이 가는 글이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폭력의 이야기는 추상적인데, K의 생애는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해요. 전 이 글을 K-가부장에 대한 편견으로 읽지 않았어요. 직접 언급한 첫 문단 빼고는 한국 남자에 대한 글쓴이의 편견이 드러나지 않아요. 관련 일화도 없고요. 저는 오히려 고쌤이 아버지의 삶을 이만큼 생생하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아버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쭉 써보고 거기서 다가오는 생각들을 적어보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힘든 삶을 쓰는 것에 저항감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힘든 삶을 살았다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듯, 폭력을 저질렀다고 힘든 삶 자체가 부정되는 건 아니니까요. 정당화, 미화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거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재평가하고 바라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남자’답지 않은 한국 남자”인 남편 이야기는 분리해서 다른 글로 써주세요. 두 글감을 분리해서 사례를 충실히 채우고, 이야기 속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새롭게 발견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결론을 먼저 내리고 이야기를 거기에 맞추는 느낌이 나서 아쉬워요.
*은유 - 아버지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필자의 세계여행 이야기가 나오니까 부자연스럽네요. 아버지를 주어로 통일해서 가다가 가족 폭력에서 필자가 등장하면 어떨까요.
오늑
필자의 치열한 고민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개인들”이라는 제목처럼 사람을 특정 정보로만 판단하지 않으려는 오늑의 고민에 공감이 가요. 성폭력 사건 이후 “그 할아버지를 다른 할아버지들과 겹쳐 보았다”, “여느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별생각이 안 들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다고 했는데요. 표현이 모호해요. 그 후 다른 할아버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것이 왜 ‘혐오’와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저는 필자의 반응이 예로 든 혐오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정 나이, 성별로 사람을 판단했다는 점에서 비슷할지 모르지만, 동기가 다르니까요. 나를 방어하는 것과 타인을 공격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고, 어떤 마음을 품는 것과 표현하는 것 또한 다르니까요.)
“과의식, 과민대우가 싫어서 페미니즘을 공부했다”라고 했는데 어떤 과의식, 과민대우가 싫었는지 사례를 들어주세요. “페미니즘 책이나 한권 더 읽고 오라는 식으로 대우”했다는 대목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적어주세요. 당시 남성이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는지, 그에 대한 강사 또는 참여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또 어떤 강연이나 세미나 자리였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 필자의 주장을 논증해주세요. 이 글의 핵심 메시지가 “개인을 개인으로 바라보겠다”라면, 서두에 나오는 성폭력 사건에 관한 서술은 줄이면 어떨까요. 친구들과의 통화나 정류장에서 책을 읽는 장면은 불필요해 보입니다.
*은유 - 개인은 구조의 산물이기에 정치경제사회의 맥락에서 분리된 자유로운 개인을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지점이 있어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할머니가 아니라 거의 할아버지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점 등) 개인을 개인으로 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짧은 글안에 녹여내가가 어려운 주제인데요, 차라리 독서모임으로 배경을 국한지어서 필자의 생각을 풀어가면 좋겠어요.
상온
정신병에 덧씌워진 사회적 낙인과 싸워야 하는 환자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읽었어요. 내재화된 편견을 깨고 찾아간 병원에서 “내 이웃일 것만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네요. 그 변화의 과정에 주변의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J가 잘 보여줘요. 저는 엄마의 변화가 눈에 띄었어요. 엄마가 어떻게 병원에 동행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전에는 우울증에 걸린 딸에 대한 엄마의 반응이 어땠길래 필자가 “딸을 정상인으로 키웠다고 믿는 엄격한 엄마”라고 느꼈는지도 궁금해요. 어린 시절 정신병원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길어요. 앞의 세 문단을 한 문단으로 줄이고, 가족이 가진 정신병에 대한 편견이 병원을 가는 데 어떤 걸림돌이 됐는지, 병원에 같이 가게 된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적어주세요. 첫 상담 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그냥 죽어라’라고 들렸다.”라고 했는데, 그렇게 느낀 이유도 적어주면 좋겠어요. 그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상온이 구체적으로 풀어주면 독자들도 그 상황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제목이 “평범 근처의 삶”인데요. 평범이라는 말이 너무 커서 지시하는 바가 구체적이지 않아요. 평범보다는 상온의 고유한 상황을 잘 드러내는 제목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마지막 우울증에 대한 의사의 설명이 좋네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좋은 글입니다.
초록이
메타포라 수업 첫날, 초록의 이야기를 듣고 코로나 이후에 보건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어요. 이전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대응하느라 고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비가시화되는지도요. 그런데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필자가 보건 교사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예요. ‘관리 담당자’라는 표현 외에 필자의 역할에 대한 정보가 없어요. 정확하게 필자의 역할을 명시해주세요. 이 글은 제목 그대로 학교 구성원으로서 불편함을 삼키지 말고 이야기하겠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요. 그 불편함이 모호해요. “교육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 교사가 교실 소독을 하는 것이 맞나요?” 이 문제 제기에 필자는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 말이 불편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필자는 선생님들에게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데, 일을 회피한다고 느꼈던 걸까요? 학교 상황을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이해가 어려워요. 결말에서도 빠른 반성보다는 그 불편함에 천착해보면 좋겠어요. 나는 무엇이 왜 불편한지. 그것부터 들여다보는 거예요. 앞에 나오는 정담회에 대한 설명, 급식차와 교과서 이야기는 주제와 거리가 있으니 빼도 무방합니다.
아임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1등을 하는지가 아니라 모두가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주어진 틀을 넘어 사고하는 참신함에 놀랐고, 모두와 함께 가려는 마음에 놀랐네요. 교사와 학생의 위치가 바뀌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배우는 장면이 좋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어린이를 ‘부족한 존재’, ‘미완성된 존재’로 보는 편견에 대한 실사례가 없네요. 학교 현장에서 또는 일상에서 필자는 언제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마주했을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고 그에 대한 반증을 보여주면 이 글의 메시지가 더 힘을 받을 거예요. 두 번째 문단에서 “이 수업에서 나 혼자만 진지하지 않았구나 부끄러웠다.”라고 했는데, 필자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없어요. 필자가 아이들이 훌륭하다는 걸 논증하기 위해 애써 어른인 자신을 낮추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아이와 어른을 비교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독자의 편견이 절로 깨질 거 같아요.
*은유 - “산다는 건 시합이 아닌데 출발선과 도착선이 왜 필요할까.” “최종 목표를 도착에 두지 말고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경기장 대신 운동장이 필요하다.” 새기고 싶은 문장이네요.
아무튼,
암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좋은 글입니다.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더라.” “왜 수술하지 않니” “하루도 못 견딜 거 같아”. 갑상선암 발병 이후 사람들이 던지는 말들이 돌멩이처럼 우수수 와 박히네요. 질병을 그 자체로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거 같아 씁쓸합니다. 전 이 말들을 수술하지 않는 필자의 선택을 은근히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요. 필자는 “잊어버릴 때도 많다”고 할 만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말이 마음을 괴롭히네요. 저는 필자가 수술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면 좋겠어요. 수술 대신 6개월마다 검진하기로 선택한 배경을 말해주면, 저 편견의 말들에 가려진 당사자의 이야기 드러날 거 같아요. 배경지식 없는 저로서는 4,5번째 문단의 갑상선암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쉽게 풀어써주세요. 독자들에게 질병에 대한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주면 좋겠어요.
*은유 - 마지막 부분에 ‘서운함 속에는 돌멩이가 없다’고 했는데 서운함은 내감정이고 가족들이 보여주는 ‘무심함’에 돌멩이가 없다고 해야 문맥이 맞는 것 같아요.
여름밤
“나는 힘을 좀 빼기로 했다. 무리해서 밝음을 장착하지도 않았고, 아이들을 ‘돕겠다.’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봉사자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아이들을 만나기까지 일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네요. 누군가를 구하려 하지 않고 곁에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이 전환이 인상 깊었어요. 아이들과 계속 만나며 “내가 모르는 삶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구겨졌다”가 이 글의 핵심인데요. 이어지는 문단에 나오는 배움의 장면들이 설명이라 아쉬워요. “강강약약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 J의 이야기를 생생한 사례로 그려주세요. “편견 없는 밥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밥상일까요? 봉사를 시작한 계기와 봉사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글의 반을 차지하는데요. 그 부분을 줄이고 ‘쉼터에서의 배움이 무엇이었는지’에 비중을 실어주세요. 중반에 M이 “자신의 성을 팔고 왔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걸려요. 청소년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저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 청소년이 주체성을 가지고 성을 판매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이 들어요. 지금의 표현보다는 M이 가출해서 성매매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M이 이야기하거나 표현한 것을 사실 그대로 적으면 좋겠어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내 눈이 아는 행복이어야만 행복도 아니라는 말”, 담아갑니다.
인디고
디딤돌 교실을 통해 비춰본 한국 교육의 현주소네요. 자신을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여기는 아이들을 보며 “그 확고한 자의식이 생기기까지 어떤 경험이 쌓였던 걸까?” 필자가 던진 질문 덕분에 저도 그 아이들의 삶을 헤아려볼 수 있었어요. 7, 8년 전만 해도 ‘부진아 수업’이란 말을 썼다니 너무 놀랍네요. 학생들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평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성적에만 매몰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을 잘 짚어냈네요. 이 균형 잡힌 시각이 이 글의 미덕인데요. 저는 첫 문장이 “나는 초등학교 디딤돌 교실 선생님이다.”이면 좋겠어요. 지금의 서두는 시간, 장소가 특정되지 않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세 번째 문단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교실에 들어온 어린이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다” 첫 문장의 주어가 어린이라서 어색해요. 아이라고 써야 자연스럽습니다. 아영이에게 남긴 글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그 일에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들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아영이에게 꼭 가닿으면 좋겠어요.
*은유 - “나조차도 정교사, 기간제 교사, 시간강사, 교사의 위계 안에서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 대목이 좋아요. 평가와 서열화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네요.
고르곤졸라
사랑이 듬뿍 담긴 글이네요. 착 안기는 것만으로 뭉클한 그 마음, 반려견과 살기에 저도 공감하며 읽었어요. 당최 이해할 수 없던 ‘한낱 고양이’가 내 삶에 찾아온 ‘방문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재밌게 그려냈네요. 고양이 이름이 깜둥이네요. 이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깜둥이가 주인공이니, 서두에 독자에게 고양이의 이름과 생김새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주세요. 깜둥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도록요. 중반에 고양이가 싱크대 위에서 물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통과 교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이 글의 주제가 고양이와의 소통과 교감이라면 그 주제를 연관된 사례에 집중하면 어떨까 해요.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후 과정이 상세해서 전반의 내용이 주제와는 거리가 있어 보여요. 불필요한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고양이와 어떤 소통과 교감이 있었는지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주세요.
*은유 - ‘온기가 있는 것들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란 표현에 뭉클하고 반려‘짐승’이란 표현에 웃네요. 근데 서두에 반려동물을 ‘짐승’이라고 부르는 가족과 반려‘짐승’과 8년 째 살고 있는 엄마가 같은 구성원인가요? 그 부분이 헷갈려요.
혜원
“‘여직원’이라는 말에 납작해진 나는 매분 매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납작해졌다는 표현이 확 와 닿네요. 출근 첫날부터 여직원이 왔다고 대놓고 불평을 들어야 했다니. 10년 동안 얼마나 시달렸으면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을까요. “나에게 사회생활은 맨몸으로 사포 깔린 바닥을 뒹구는 일이었다.”라는 표현이 아프네요. 저는 네 번째 문단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일하는 현장이 ‘토목’ 분야이고, 그 현장에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무시당하고 차별받았는지부터 시작해주세요. 토목 분야에서는 어떤 성차별이 있는지, 독자가 알 수 있도록요. 지금은 첫날 들은 이야기 외에는 차별의 사례가 보이지 않아요. 필자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여직원일 뿐”이라고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글은 “예민한 나”에 대한 긍정으로 끝나는데요. 글 안에서 독자가 이 사람의 예민함을 느낄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요. 필자가 어떤 면이 예민한 건지, 그 예민함이 문제가 된 순간이 언제였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해주세요.
*은유 - 차별의 경험이 한두가지 나오면 마지막 단락에서 예민함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어 자신의 일에서 놓친 것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이야기가 더 와닿을 거예요.
히힛
저도 이 글 덕분에 엔딩크레딧을 이제 끝까지 볼 거 같아요. 엔딩크레딧 마지막에 밥을 해주시는 분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200km를 운전해서 식자재를 공수”하고, 고기를 먹지 않는 스태프를 위해 “고기를 넣지 않은 짜장면을 준비”한다니. 이런 정성으로 일하는 분들이 있구나 싶네요. 류승용 씨 편지의 “한결같다”는 말이 두 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거 같아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인물들을 만나니 제 시야도 한 뼘 더 열리네요. 앞으로 영화 볼 때마다 ‘스태프들 밥은 누가 했을까’ 생각날 거 같아요. 필요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써줘서 술술 재밌게 읽었어요. 엔딩 크레딧에 나타나는 위계 이야기가 처음과 끝에 반복되는데 한 번만 나오면 좋겠어요. 이 글 기고 안 하나요? 오마이뉴스나 어디 매체에 기고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은유 - 저도 기고하는 것 적극 추천합니다. 영화를 그렇게 보러 다녔어도 엔딩크레딧에 밥해주는 분들 나오는 것 처음 알았어요. 대반성.
울랄라
아이의 고유한 속도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과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들 속에서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 글을 읽는 내내 제 안에서도 이 두 가지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네요. 주변을 살피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도, “약자로 몰리고 이용당할까 두렵다”는 말이 훅 와서 박혔어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왜 온 마을이 필요한지 이 글을 보며 배우네요. 지금의 내 결정이 아이의 삶을 결정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죄책감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쉬운 결론으로 다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을 들려주어 좋았어요. 중반에 “뭐든 시켜야만 할 거 같았다”며 사교육을 하기로 결정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시부모님의 잔소리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텐데, 변화의 계기가 따로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전 이 글에서 아이의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어요. 내 아이의 속도에 맞게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속도를 가진 아이인지, 사교육을 많이 받을 때 아이의 반응은 어땠는지,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무엇을 꿈꾸는지, 성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필자의 고민이 아이의 모습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거 같아요. 목동에는 언제까지 살았는지도 궁금했어요. 주변 환경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칠 거 같아서요. 첫 문단이 관념적이라 필자의 구체적 상황이 드러난 두 번째 문단부터 시작하면 좋겠네요.
*은유 - 속 아이, 라는 표현이 내면의 아이라는 뜻일까요?
홍슬기
중학교 때 우연히 들어갔던 수어 동아리. 두 달을 연습해 수어 공연을 했는데, 필자는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창피함을 느낍니다.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수어는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도구임을 필자가 일찍이 눈치챈 게 아닌가 싶어요. 길에서 수어로 소통하는 사람을 보고야 “살아있는 수어”를 처음 만나는데요. 그 장면을 보고서야 “내 주변에는 수어를 쓰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깨집니다. 필자가 왜 수어 공연에서 창피했는지, 다시 수어가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지, 사례와 내적 묘사가 생생해서 구절구절 공감이 갔어요. 그런데 마지막 문단을 시작하는 네 문장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 아쉬워요. 연못, 호수, 바다의 비유가 상투적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제야 수어를 알아본 내가 사랑스럽다는 구절부터 나오면 어떨까 해요. 농인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밑줄을 진하게 그었어요. 장애에 대해 비장애인이 가진 편견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를 문제로 보는 사회가 문제”라는 필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나무늘보
“통장에 꽂히는 캐시만이 눈에 보이는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말에 찔리네요.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늘 돈이라는 구덩이에 쉽게 빨려 들어가는 거 같아요. 글쓰기와 글쓰기 수업은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어디쯤일까 가늠해보게 됩니다. 수업을 등록하기 전부터 10주간의 일정을 확인하고 조정해야 했다니 그 품이 엄청나네요. 회사 미팅으로 갑자기 일정이 생긴 남편 때문에 필자의 마음이 복잡해지는데요. 저는 “계획된 가족 일정”과 “회사 일”이라는 대비가 정확한 표현은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돈이 되는 일과 아닌 일,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인정되는 일과 아닌 일의 대비가 아닐까 싶네요. 결말에서는 회사 일에 실렸던 비중을 다른 곳으로 분담하면서 “함께 하는 육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끝나는데요. 앞서 나온 사례와 간극이 커요. 앞에서는 돈을 버는 일만 우선순위가 되어 필자가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거든요. 게다가 글쓰기 수업은 가장 최근의 일이잖아요. 두 가지 마음과 상황이 혼재되어 있으리라 추측하는데요. 하나로 결론 내기보다는 필자가 지향하는 바와 현실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적어주면 좋겠어요.
*은유 - “육아를 시작하면서 우울하게 만드는 근원 중 하나를 살펴보면 내가 쏟는 이 시간의 의미를 찾기 힘들 때다.” 이 문장 좋아요. 간결하게 고쳐도 좋겠어요.
“나는 육아에 쏟는 시간의 의미를 찾기 힘들 때 부쩍 우울해진다.”
“내 우울함의 근원은 육아에 쏟는 시간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종이
“나도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데 왜 아이들에게만 그렇게 화를 냈을까? 내가 아이들보다 힘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변한다는 걸 배웁니다. 사실 ‘화’ 자체는 표현이지 감정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미안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고마워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밑바닥에 깔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인데요. 성찰을 통해 자신이 그저 약자에게 힘을 써왔다는 발견을 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글을 K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겠어요. 화가 나지 않게 된 계기 없이 그냥 나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초반부터 의구심이 들었어요. 시간순으로도 K의 이야기가 먼저 오는 게 자연스럽고요. K와의 사례를 쭉 서술한 뒤, 필자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화를 내지 않으면서 좋아진 건 무엇인지 말해주면 좋겠어요. K와의 사례에서 “자주 화를 냈다”고 했는데, 어떻게 화를 냈는지도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칭찬을 받았다고 쓴 K의 낙서가 마음에 남네요. 존재를 알아본 종이가 있었기에 K가 변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 K와는 연락이 닿는지,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무엇이었는지 언급해주어도 좋겠네요.
*은유 - “내가 화를 낼 때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을 화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걱정은 그냥 걱정으로 표현했어야 했다.” 좋은 성찰입니다.
내일
경기도 일산에서 인천 부평으로, 아버지 몰래 도모한 도둑 이사. 도박에 빠진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머니의 결단이 놀라워요. 필자가 몇 살 때 있었던 일일까요? 성인이었기에 함께 도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사회적 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요. 저는 “도둑 이사” 이야기가 인상적인데요. 문제가 많아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결심과 결단을 할 수 있었는지, 그 결정을 한 후에 남편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됐는지, 어머니와 나는 지금 그때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등이 궁금했어요.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지”라는 말로 엄마가 상처받은 이유는 독립된 글감으로 다루면 좋겠어요. 여섯 번째 문단부터 글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바뀌어요. 이 두 글감을 나눠서 구체적인 사례를 채워 써주세요.
카뮈
카뮈의 글을 읽고 나니, 저도 노력하는 공감은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공감도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는 거, 노력해서 단련하는 근육과 같은 거라는 걸 이 글을 통해 배웁니다. 이 글의 미덕은 꾸미지 않는 정직함인데요. 재수학원에서 세월호 사건을 마주한 필자의 심정을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 당시 나에게 세월호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지금 당장 관심을 쏟을 일은 아닌 ‘타인의 일’이었다.” 필자는 이 순간 슬픔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끼며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애도를 표현했는지 궁금했어요. 그 모습을 묘사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필자가 당시 느낀 이질감을 독자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슬픔도 공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참 소중하네요. 잘 듣는 사람이 되겠다는 카뮈의 결심이 저 자신도 돌아보게 합니다.
*은유 -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다가 대학에 가서 신형철 책을 읽게 된 ‘우연’의 계기가 조금 더 상세하면 좋겠어요. 이런 책에 손이 가는 것부터가 노력이고 변화니까요.
도리
우울증을 앓는 반려인의 삶이 보이는 글입니다. 각각 도리, 김몽글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가게끔 섬세하게 썼어요. 한 가지, 첫 단락의 주어가 혼란스러워요. 택배에 뛰어나가는 건 몽글, 뭐가 왔어? 묻는 건 필자, 방으로 들어간 건 몽글, 책상 위에 박스를 연 건 도리. 이 부분만 몽글의 행동, 도리의 행동으로 나누어주세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해를 돕는 참 좋은 글이에요.
첫댓글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리뷰 감사합니다 도리, 은유쌤! 제가 뭘 그리 잘했다고 이런 귀한 리뷰를 받을 자격이 있나 싶다가도... 리뷰의 노고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생각하고 뱉고 쓰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번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아 그리고, 케이터링 사장님 두분의 인터뷰는 곧 출간될.... 저의 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흐흐흐
앗앗앗앗 히힛님!!!!!!!! 책 너무너무 기대되요!!! 언제 출간되나요!! 제목이 뭔가요!! 출간되면 꼭 알려주세요!!!
오오 축하해요! 책 너무 궁금하네요~
완성도 높은 글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책으로 나오는군요.축하드립니다.
지난주 발표자라서 도리님의 리뷰 못 받아 아쉬웠는데, 넘 감사합니다! 점점 갈수록 제가 뭘 쓰고 싶은지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아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도리님 은유님 감사합니다 :) 글 하나 하나 읽으시면서 리뷰하시느라 읽고 또 보셨을 생각에 뭉클합니다. 정성스런 피드백 잘 참고해서 사유의 폭을 넓히고 글의 깊이를 가져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라고 건드려 주신 부분을 체크했다가 수정하며 조금 더 전달이 되는 글로 다듬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세심한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앗! 그러고 보니 지난주 목요일 도리님의 생일 아니셨나요!!!! 생일 축하드려요 도리님!!^^
그쵸, 저도 앞에 성폭력 부분을 최대한 줄여볼까했는데 들켰네요 ㅎㅎ
과감하질 못해서 미적미적 댔네요. 한번 용기내어 편집해볼께요.
사례도 많이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매모호한 지점들 다 캐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리님
개인을 개인으로 본다는 지점, 정체성이 말해주는 것에 묶여 상대방을 바라보지 말자는 메세지에는 은유샘 책에서도 영감 받은 지점이 있었는데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조금 의아하네요. 다수의 남자 또는 할아버지가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의 사례가 지워지거나 중요도가, 또는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 정도가 적은 건 아닐텐데요. 저도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