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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융자로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도 장만 했다.
하지만 앞으로 7년 더 갚아야 한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간신히 일어나 절룩거리며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가필.
가필(V.O): 매일 통조림 같은 만원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회사와 집을 오간다.
Cut To: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며 거리를 달리는 가필.
멀리 병원 간판이 보인다.
가필(V.O): 체력저하를 느끼고 석 달 전에 딸과 아내 앞에서 금연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다.
가필이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INT. 병원. 밤
가필이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필(V.O): 아내는 대학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났다. 내가 영화 동아리에 들어간 것은
오직 배우를 지망하는 미인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가필이 탄다.
INT. 엘리베이터 안
가필,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다.
가필(V.O): 나는 첫 눈에 지금의 아내에게 반했다. 그래서 신입생 환영회 도중 데이트
신청을 했고 그 후 졸업과 동시에 서둘러 결혼을 해 버렸다.
7층에 도착하자 ‘팅’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멈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앞에 가필의 아내가 서 있다.
가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아내: 여보…….
아내는 훌쩍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가필: 다미는……. 어때?
아내가 앞장서 병실로 향한다.
아내를 따라가던 가필이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엘리베이터 홀 구석에 놓여있는 벤치에 학생복 차림의 남학생 한 명이 발을 앞으로 주욱 내밀고 앉아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태욱이다.
태욱 옆에 검은 색 양복의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가필을 바라보는 태욱의 눈빛이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가필은 순간 당황해 한다.
그런 가필을 보고 태욱의 입가에 엷은 웃음을 떠올린다.
가필은 황망히 시선을 돌리고 아내를 따라간다.
INT. 병실 복도. 밤
병실 복도 멀리에서 남자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또 한 명은 추리닝 차림이고 나머지는 짙은 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이다.
중년의 남자가 의사에게 흰 봉투를 건네자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주머니에 넣는다.
이 때, 가필과 가필의 아내가 복도에 들어선다.
가필은 세 명의 남자를 힐금 바라보고는 아내를 따라 병실로 들어간다.
병실로 들어간 가필을 바라보는 세 남자.
INT. 다미 병실. 밤
작은 방에 침대 하나가 놓여있고 그 위에 16살 다미가 누워있다.
다미의 얼굴에 커다란 가재가 붙어있고, 팔에는 링거 주사가 꽂혀있다.
가제가 덮인 오른 쪽 눈은 부어올라 거의 감긴 거나 다름없고, 아랫입술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보인다.
가필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다.
가필의 모습을 본 다미, 힘없이 팔을 뻗어 가필에게 내민다.
다미: 아빠……..
다미의 팔은 가필을 향해 뻗어있지만 가필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다미: 아빠…….
다미, 다시 한번 아빠를 부른다.
다미의 부어오른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이 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병실 문이 열리면, 복도에 있던 의사와 그 뒤를 이어 중년의 남자와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들어온다.
의사: 안면과 복부에 타박상이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뭐 대단치는 않지만 열상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부기도 빠지고, 뭐……. 괜찮아질 겁니다.
가필: (흥분) 이게 대단치 않아요? 애가 저 모양인데……. 이게 대단치 않아요?
가필이 흥분하며 큰 소리를 지르자 중년의 남자가 가필에게 다가서며 말한다.
중년 남자: 저, 잠시 나가서 얘기 좀 하시죠. 자, 어서……..
중년 남자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의 카리스마와 차분하게 가필을 바라보는 추리닝 남자의 차가운 눈빛에 가필은 주눅이 든 듯 그들을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간다.
INT.병실 복도. 밤
병실을 나온 가필이 중년의
가필, 승석을 바라본다.
수빈: 그런데 태욱인 왜 찾은 거죠? 그것도 칼까지 들고……..
가필: ……..
개중: 그 놈이 아저씨한테 무슨 짓을 했나요?
가필: ……..
개중: 사실 저희도 태욱이 그 자식 별로 안좋아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흴 믿고 얘기해 주지 않으실래요?
가필, 담배만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지 못한다.
INT. 체육관 / Insert
태욱이 무서운 기세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INT. 아지트. 오후
가필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다.
승석은 여전히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수빈이 먼저 말을 꺼낸다.
수빈: 그렇지만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필: 자네들은 내 기분을 몰라. 내가 내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개중: 아버지가 살인자로 체포되면 딸이 슬퍼하지 않을까요?
가필: 난 우리 딸에게, 내가 지켜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그럴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어.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승석이 불쑥 대화에 끼어든다.
승석: (냉정하게) 그런데 칼은 왜 들고 다녀요?
가필: …….?
승석: 목숨을 걸어도 좋다면서요? 그럼 목숨을 걸고 태욱이랑 붙으면 되지 칼은
왜 들어요?
가필: …….
승석: 폼 잡지 말아요. 아저씬 결국 아저씨 자신이 중요한거야.
자기 몸은 다치기 싫으니까, 태욱이네 집안과 태욱이 주먹이 무서우니까
칼 따위나 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 식으론 아저씬 소중한 걸 지킬 수
없어요.
가필: …….!
가필, 반론의 여지가 없어 고개를 떨군다.
이때, 수빈이 무언가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른 듯
수빈: 내 생각엔 지금 상황에서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거 같애요?
말없이 수빈을 바라보는 가필.
수빈: 첫째,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태욱이 쪽에서 벌써 다 손을
썼을거니까 아저씨에겐 승산이 없다 봐야죠.
가필, 고개를 떨군다.
수빈: 둘째!
가필, 다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수빈을 바라본다.
수빈: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가필: 안돼. 그건…….
수빈: 그럼 마지막 방법으로……. 우리한테 도움을 받는 거예요.
EXT. 포장 마차. 오후
가필이 포장마차에 있다.
가필: 순대도 1인분 주세요. 떡복기에 만두도 좀 넣고요.
주인: 포장이시죠?
EXT. 병원 입구. 오후
가필이 음식이 담긴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들고 병원 입구에 서 있다.
무척이나 망설이는 표정이다.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그대로 든 채 나오는 가필.
다시 현관문 앞에 서 있다.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을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황급히 다시 뛰어 나오는 가필.
이 때 병원으로 가던 개중이 가필의 모습을 발견한다.
현관문에서 뛰어나온 가필은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는 현관문 쪽을 바라본다.
잠시 후, 휠체어를 탄 다미가 아내와 함께 나온다.
숨어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가필.
가필과 다미를 번갈아 바라보는 개중.
다미의 모습에 점점 빠져드는 듯한 개중의 표정.
잠시 후, 휠체어를 타고 있던 다미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한다.
놀란 표정의 가필. 그러나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개중.
INT. 아지트. 오후
승석과 개중 그리고 수빈이 아지트에 있다.
수빈: 토해?
개중: 나랑 친하게 된 간호사 누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정신적인 문제래.
충격 땜에 바깥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그런거래.
지금까지 무심하게 옆에서 책만 보던 승석이 개중을 바라본다.
개중: 그래서 상처는 대충 나아가는 데 퇴원은 시간이 걸릴 거 같애.
승석, 무언가 생각에 잠긴다.
EXT. 공원. 저녁
가로등이 켜져 있는 어느 공원, 겨울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어느 벤치 위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떡볶기와 순대가 놓여있고 그 옆에 빈 소주병 하나가 있다.
가필이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INT. 가필의 집. 저녁
가필,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 불이 켜져 있고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의아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 오늘부터 저녁 땐 집에 들어올거야. 금방 끝날 일도 아닌 거 같아서…….
가필: 다미는……. 어때?
아내: 많이 좋아졌어.
아내, 무심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고 다시 혼자 남는 가필.
INT. 승석의 집. 밤
승석이 잠이 들어있다.
악몽을 꾸는 듯 고통스런 표정이다.
Cut To:
승석의 꿈 - 온통 시뻘겋게 핏발이 선 어느 남자의 눈동자가 Close Up으로 위협적으로
보여 진다.
Cut To:
승석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우두커니 앉아 정신을 차려 보려 애를 쓰는 승석.
INT. 어느 창고 안. 밤
비교적 넓지만 허름한 창고 안에 백열등 불이 켜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승석이 서 있다.
상의를 벗은 승석의 탄탄한 몸은 땀에 젖어 있고 추운 날씨 탓에 몸에서 김이 난다.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승석.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약간 무릎을 굽히고 마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바닥을 향해 뿌린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동작들이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음,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며 완벽한 원을 그린다.
승석의 날개가 그려놓은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뜯어져 나간 천장 사이로 별빛이 빛난다.
승석은 마치 천정을 뚫고 하늘이라도 날듯이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EXT. 창고 밖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승석이 있는 창고 안에서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카메라, 천천히 크레인 업 하면, 허름한 창고가 있는 판자촌 마을 전경이 드러나고, 이어 멀지
않은 곳에 고층 아파트와 그 너머 있는 69층의 타워 팰리스와 아크로 빌 건물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 Fade Out
EXT. 가필의 회사 앞. 아침
가필이 침울한 표정으로 회사로 들어가려 한다.
가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회사 정문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뒤돌아서 걸어간다.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가필이 우산을 쓴 채 어느 노래방 앞에 서 있다.
잠시 망설인 후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는 가필.
누군가 그런 가필을 보고 있는 듯 하다.
INT. 노래방.
노래방 어느 룸에 혼자 앉아 있는 가필.
멀리서 여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멍한 표정의 가필의 눈동자. / C.U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가 내리는 거리를 가필이 힘없이 걸어간다.
가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어느 한곳에 시선이 집중된다.
가필의 맞은편에 우산을 쓴 행인들이 가필을 지나쳐 간다.
행인들 사이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어오는 세 명의 남학생들이 보인다.
태욱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태욱의 복싱부 친구 상민과 용철이 있다.
태욱은 일행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필 쪽으로 걸어온다.
우두커니 서 있는 가필과 태욱의 눈이 마주친다.
가필, 잔뜩 긴장한다.
하지만 태욱은 가필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지 흘긋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가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어이없어하는 낮은 웃음을 흘린다.
가필이 웃음을 거두고 돌아서 태욱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가자 마침내 태욱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필, 코트 속주머니에서 끝이 날카로운 샤프펜슬을 꺼내어 움켜쥔다.
가필, 곧이어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까지 이른다.
샤프펜슬을 쥐고 있는 가필의 손이 떨린다.
신호가 바뀌면서 태욱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가필이 태욱 바로 뒤에 서 있다.
태욱 앞으로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간다.
가필, 생각이 바뀌었는지 샤프펜슬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가필, 발을 조금 움직여 태욱 바로 뒤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마치 태욱을 도로로 떠밀려는 듯 천천히 태욱의 등을 향해 손을 뻗는다.
태욱의 뒷모습,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살의에 찬 가필의 눈동자와 태욱의 등을 향해 뻗어가는 가필의 손이 숨 가쁘게 교차 편집 된다.
가필의 손이 떨린다.
이 때 신호는 파란색으로 변하고 태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넌다.
뻗친 손을 힘없이 떨군 채 멀어져가는 태욱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혼자 서 있는 가필.
들고 있는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떨군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그런 가필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누군가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우산을 주워 가필에게 건넨다.
가필, 고개를 들어보면 승석이다.
가필과 승석, 말없이 잠시 서로 바라본다.
승석: 어떻게 하고 싶어요?
가필: …….?
승석: 태욱일 어떻게 하고 싶냐고요?
난 철학이 없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필, 잠시 고민을 한다.
가필: 난……. 난 이 손으로.. 내 딸이 맞은 만큼.. 태욱이란 놈을 패주고 싶어.
그리고 내 딸을 데리러 갈거야.
떨리는 목소리에 가필의 결연한 마음이 느껴진다.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본다.
INT. 가필의 회사. 휴게실. 아침
가필이 책상을 마주하고 동료직원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서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동료직원
동료 직원: 다음 달 인사이동 있어.
가필: 알아.
동료 직원: 요즘 우리 회사도 심상치 않아. 이럴 때 휴가신청을 한다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가필, 잠시 말이 없다가
가필: 자네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멋지게 보인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해?
동료 직원: …….?
가필: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올게.
동료 직원,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동료 직원: 자네가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언제 아버지로서 멋있었는지 기억해 볼게.
두 사람, 마주 보며 씨익 웃으며 악수한다.
EXT. 남산 케이블카 승차장. 오전
가필이 양복차림으로 허겁지겁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