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의 첫째 아들 결혼식에 온 가족이 출동한다.
모두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꽃단장에,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은 가장 좋은 옷들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멀지 않은 광주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다들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예식장에 도착하니 그동안은 뵙지 못했던 삼촌에 사촌에 오촌까지 온~ 친척분들이 다 와계신다.
도착하자마자 인사하느라 인사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요즘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가족과 친지들이 예전에 비해 덜 만나게 되어, 이렇게 결혼식이나 해야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라 그런지 얼굴도 모습도 길 가다 만나도 모를 만큼 변해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늠름한 사촌 녀석이 등장하고 나서 식의 피날레인 신부 입장 중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신부의 손을 잡고 등장하는 신부 아버지의 모습에서 난 그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신부 아버님은 웃으면서 등장하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리쌍의 노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가 머릿속에 자꾸 맴돈다.
한 걸음 한 걸음의 발자국이 너무나도 느리고,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만 같은 나만의 착각에 빠져버렸다.
실제로 신부 아버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길을 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새 신부 아버님에 빙의돼 버렸다.
딸을 보내야만 하는 그런 슬프고 아쉬운 입장이 나에게 파도처럼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 역시 딸을 둘이나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두 딸과 지금은 매일 싸우고 혼내고 삐치고 화해하고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지내고 있어서 따로 살면 참 편할 것만 같은데.
실제로 나에게도 저 날이 닥쳐오면 20m도 되지 않는 저 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마음속으로 눈물 한 바가지 한 바가지를 흘릴 것만 같다.
아내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한다.
나는 “나중에 울 딸들 시집 보낼 생각에 울어.”라고 대답하니 아내는 별걱정 다 한다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옆에서 그걸 들은 큰딸이 씨크하게 “나 시집 안 가고 혼자 살 건데?”
저 신부 아버지의 심정은 지금의 나와 같을까?
신부를 데리고 신랑에게 가는 저 한 걸음 한 걸음의 발자국이 왜 이리 슬퍼 보이고 아쉽고 안타까워 보이는 걸까?
축하해야 할 결혼식에서 나는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걸까?
언젠가는 자녀들을 떠나보내고 분가시켜야 하는 것이 이치인 줄은 잘 알지만 벌써부터 서운한 건 왜일까?
‘있을 때라도 잘하라.’라는 옛말이 있건만, 집에 가면 또 싸우고 혼내고 삐치고 사과하고.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사랑만 많이 주고 잘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식이 다 끝나가는데도 나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식사하러 가자는 아내의 말에 얼굴을 돌리고 몰래 눈물을 훔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