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확립 경(M10) Satipaṭṭhāna-sutta
-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324-362쪽
서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 길(*1)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2),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얻게 하고,(*3)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4) 유일한 길이니(*5)
그것은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6)
3.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7)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8)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9) 버리고
근면하고(*10)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11)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12)
(*1) “길(magga)이라는 것은 어떤 뜻에서 길인가?
열반으로 간다는 뜻에서, 열반을 원하는 자들이 가야한다는 뜻에서 [길이다.]”(MA.ⅰ.231)
(*2)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sattānaṃ visuddhiyā)’라는 것은
이 길은 애욕(rāga) 등의 더러움과 욕심(abhijjhā)이라는 그릇된 탐욕 등의 오염원(kilesa)들로 인해
오염된 마음을 가진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MA.ⅰ.231)
(*3) "'옳은 방법을 얻게 한다(ñāyassa adhigamāya)'는 것에서
옳은 방법이란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를 말한다.
이 길은 그것을 얻게 한다. 증득하게 한다는 말이다.
예비단계에서 세간적인 마음챙김의 확립인 도를 닦으면 출세간도의 증득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옳은 방법을 얻게 하고‘라고 말씀하셨다.(MA.ⅰ.236)
(*4)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nibbānassa sacchikiriyāya)’라는 것은
갈애라는 욕망(vāna)이 없기 때문에 열반(nirvāna)이라는 이름을 얻은 불사(不死)를 실현하게 한다.
그것을 자신의 눈앞에 현전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 도를 닦으면 순차적으로 열반을 실현한다.
그래서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MA.ⅰ.236)
(*5) “유일한 길(ekāyana)은 ekamagga를 말한다.
①오직 한 갈래의 길이어서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다.
②혼자서 가야하기 때문에 유일한 길이다.
③ 오직 한 사람, 최고로 수승하신 세존의 길이다.
비록 다른 사람이 이 길을 가더라도 이것은 세존의 길이다.
그분께서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④혹은 ‘간다’고 해서 길이다. 한 곳에 있는 길,
‘오로지 이 법과 율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다’는 말이다.
⑤하나를 향해서 가기 때문에 ‘유일한 길’이다.
예비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인 열반으로 간다라는 말이다.”(MA.ⅰ.229~230)
(*6)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에서 ‘네 가지’라고 한 것은
이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마음챙김의 길[道]의 숫자를 한정짓는 말이다.
마음챙김의 확립(satipaṭṭhāna)은 sati와 paṭṭhāna의 합성어다.
sati는 마음챙김을 뜻하고 paṭṭhāna는 세 가지 뜻이 있다.
①영역(gacara)의 뜻, ②확립시켜야 한다(paṭṭhapetabbato)는 뜻, ③확립하다(upaṭṭhāti)는 뜻으로,
sati가 바로 sati-paṭṭhāna라고 설명한다.
(*7) “‘몸에서(kāye)’라는 것은 '물질의 몸에서(rūpakāya, 色身)‘라는 뜻이다.
여기서 물질의 몸은 신체의 사지와 머리털, 몸털 등 법들의 집합이라는 뜻에서 까야(kāya, 몸)라고 한다.
하찮고 몹시 혐오스러운 것들의 장소(āya)이기 때문에 몸(kāya)라 한다.
āya는 일어나는 장소를 말한다. (MA.ⅰ.241)
(*8) "세상에 대한(loke)'에서 ‘세상’은 바로 그 몸을 말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몸은 무너지고 부서진다는 뜻에서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지 몸에 대해서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느낌 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버린다.
그러므로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도 또한 세상이다.”라고
『위방가』에서 설하셨다.(MA.ⅰ.244)
(*9) “여기서 ‘욕심(abhijjhā)’은 감각적 욕망을 포함하고,
‘싫어하는 마음(domanassa)’은 악의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섯 가지] 장애[五蓋]에 포함된 이 두 가지 강한 법을 보여줌으로써
장애 버림을 설하신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MA.ⅰ.244)
(*10) “‘근면한 자(ātāpi)'라는 것은 삼계에서 오염원들을 태워버리기(ātapati) 때문에 근면함(ātāpo)이며
이것은 정진의 다른 이름이다. 근면함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근면한 자‘이다.(MA.ⅰ.243)
(*11) "느낌은 세 가지인데 그것은 모두 세간적인 것이다.
마음도 세간적인 것이고, 법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어떻게 느낌을 관찰해야하는가?
①즐거운 느낌을 괴로움이라고, 괴로운 느낌을 쇠살이라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무상하다고 관찰해야 한다.
이 모든 느낌들은 ‘괴로움이라고 관찰되어야 한다. “느껴진 것은 모두 괴로움에 속한다고 나는 말한다.”(S36:1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②느낌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측면에서도 관찰되어야 한다.
“즐거운 느낌은 머무르면 즐거움이요 변하면 괴로움입니다.
괴로운 느낌은 머무르면 괴로움이요 변하면 즐거움입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지혜가 있으면 즐거움이요 지혜가 없으면 괴로움입니다.”(M44)라고
상세하게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③혹은 무상 등 일곱 가지 수관으로 관찰해야 한다.”(MA.ⅰ.245~246)
일곱 가지 수관은 무상의 수관, 괴로움의 수관, 무아의 수관, 염오의 수관,
탐욕의 빛바램의 수관, 소멸의 수관, 놓아버림의 수관이다.(MA.ⅰ.157)
(*12) 주석서는 이렇게 한 가지 마음챙김을 네 가지로 설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구니 만드는 숙련공은 거친 돗자리와 섬세한 돗자리와 상자와 바구니와 자루 등의 가재도구들을 만들고자 할 때
큰 대나무 하나를 네 등분으로 자른 다음에 그 각각의 대나무 토막을 다시 쪼개어서 그런 가재도구들을 만든다.
그와 같이 세존께서도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수승함을 터득하게 하시려고
하나인 바른 마음챙김(sammā-sati, 正念)을 가지고 먼저 대상에 따라 그것을 네 등분으로 자르셨다.
‘네 가지 마음챙김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라고.
그 다음에 각각의 마음챙김의 확립을 취하여 먼저 몸을 분석하시면서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는가?’라는 식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MA.ⅰ.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