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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세 살의 나이에 청 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 하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황제즉위 3년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는 멸망하고 푸이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만주 지역을 장악한다. 이듬해 3월, 일본 관동군 주도 하에 만주국이 건국되고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일제에 의해 만주국 최고 지도자로 옹립 된다. 1945년 일제의 항복과 함께 패망하기 까지 푸이의 만주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932년~1945년).
최민정/KBS 아나운서: 역사저널 그날, 오늘 영화 마지막 황제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았는데요. 전 개인적으로 저 영화 굉장히 재미있게 봤거든요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영화 <마지막 황제> 美아카데미상 9개 수상 1988년). 다들 추억이 있으시죠?
이윤석/방송인: 푸이가 본인이 즉위하고 자기가 살던 자금성에 표를 끊고 들어가면서 내가 이곳에 황제였어~ 하는데 막 스산하고 불쌍하고 그랬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영화 <마지막 황제(1987)> 中----
푸이: 나도 이곳에서 살았었다. 저기가 내가 앉던 자리란다.
아이: 누구세요?
푸이: 난 중국의 황제였단다, (I was an emperor of the china).
최원정: 제대로 보셨네요
이윤석: 그러니까 청나라 옷 입은 영화로는 제가 이 영화는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신주백/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오늘 주제가 만주국인데 만주국을 떠올리면 딱 두 사람의 이름을 떠오르게 되어 있어요. 한 사람은 지금 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심용환/역사 작가: 또 있어요?
신주백: 네, 그 분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원정: 요즘 교수님들이 방송을 하셔 가지고~
신주백: 저도 분량을 확보 해야죠~(웃음)
최원정: 잠시 후 공개되거나 끝까지 채널 고정해 주시기 바라고요. 그런데 만주국 하면 또 어떤 것들이 생각이 나세요?
심용환: 저는 만주를 몇 번 갔었죠. 역사 답사활동 때문에~한 겨울에 내복 다 입고 핫팩을 몸에 부치고 나가도 영하 30도가 되니까 10분만 지나면 입이 덜덜 떨려요.
이윤석: 저는 만주국 하면은 정우성씨가 말타고 만주 벌판을 달리면서 장총을 돌리면서 총 쏘는 장면이 생각나요. 빵 쏘는 거~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2008)>中에서-
최원정: 만주하면 머리에 떠올라오는 건 광활함~ 그리고 춥다~
이윤석: 그리고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그건 빼놓을 수 없죠.
신주백: 그건 만주에 대한 이미지이지, 오늘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만주국에 대한 이미지는 아닌 거죠.
심용환: 그러네~
이윤석: 만주국은 사실 모르겠습니다.
최원정: 만주국하면, 나라인 거잖아요. 한국 중국 할 때 國~
신주백: 만주국이란 나라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점이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최원정: 자, 만주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들어도 굉장히 낯선데, 오늘 특별히 만주국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기 위해서 특별 손님이 오셨습니다. 모셔볼까요?
심용환: 진짜 특별해요?
신주백: 지금까지 안밝혀졌어~
~~스튜디오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일본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집총을 하고!~~
최원정: 무슨 국기 나누어 주고 있고~ 일본 군인들이 무대에 포진하고 있고~
신주백: 일본군 복장인데~
최원정: 공포감이 엄습해 오고~ (스튜디오 무대에 7명의 일본군 복장군인들 집총해서 일렬로 도열한 상태), 왜 이렇게 무표정들 하세요? 누가 만주국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면서요. 만주국에 대한 설명은 누가 하시는 거예요?
~~이때 박재민 배우가 일본군 복장을 하고 실제 말을 타고 스튜디오 녹화현장에 나타났다~~
박재민/배우: 만주국의 깃발을~! 더 높게 흔드시오~! (위풍당당) 만주국 만세!
심용환: 오늘 특별 게스트는 말(馬)인 거 같애요, 말(horse)~
(말 조련사 참여 하에 안전하게 촬영했습니다) (특별 게스트(?) 말과 함께 나온 박재민씨)
이윤석: 말 때문에 말이 안나와~
심용환: 사람이 보이는게 아니라 말만 보여~
신주백: 역사저널 그날 녹화에 동물이 나온 건 처음이네요~
박재민: 그날(말 이름)이 수고 했어~~
최원정: 말 이름이 그날이에요?
박재민: 실제 말 이름이 그날이에요. 그날=That day!
최원정: 오늘 와서 지은게 아니고~? The day
박재민: 실제로 태어났을 때부터 이름을 ‘그날’이라 지었소
최원정: 방송에 출연하겠끔 운명이네, 그날이를 매회 모셨으면 좋겠다.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될 것 같은데요. 박재민씨가 저렇게~아~
이윤석: 역대급 등장입니다. 역대급 등장~
박재민: (의자에서 일어나서) 만주국, 만주국의 깃발을 더 흔들어 주시오~!!
이윤석: 대본에도 안쓰여있었어요~박재민이 누군지~
박재민(일본관동군 복장): 오늘 제가 만주국의 일본 관동군 대표(役)로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최원정: 관동군 대표세요? 그런데 왜 말은 타고 오신 거예요?
박재민: 선구자 노래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선구자 노래의 일부분인데 실제로 이 때에 만주 지역에서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는데 그 중의 대부분이 일본군 장교였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말이 오늘 주제하고 연결되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출연하라는 섭외가 왔습니다.
이윤석: 그러면 그 선구자가 우리 조선의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관동군 이나 일본군을 말하는 건가요?
박재민: 그렇죠!
이윤석: 어우, 잘못 알았네!
신주백: 선구자 라는 노래 친일인사의 곡입니다. (가곡 <선구자> 작사가, 작곡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최원정: (박재민씨는) 말을 탈 수 있는 일본장교 관동군 역할로 나오신 거잖아요.
박재민: 그렇습니다.
이윤석: 저렇게~
박재민: (그날 말을 항해) 퇴장 해라~
일동: (일제히 그날이 말을 향해) 안녕 그날이~(그날은 휴가차 퇴장).
최원정: 참, 순하다 말이~
이윤석: 장렬했어요! 깜짝 놀랬어!
최원정: 관동군 여러분들이 국기를 하나씩 주었는데 이게 만주국 국기예요, 교수님?
신주백: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 국기를 우리는 태극기 라고 하잖아요. 당시 만주국 국기를 신오색기(新五色旗) 라고 했어요. 새로울 新자 써서~그런데, 왜 앞에 신이 붙었냐 하면 1911년 신해혁명 이후부터 중국에는 중화민국이 세워졌잖아요. (신해혁명(1911년)-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 탄생). 중화민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북경에 있었는데, 그걸 흔히 역사학에서는 북경정부 또는 북양정부 라고 해요. (북양정부-1912년부터 1928년 까지 베이징에 존재한 중화민국 정부). 그 정부의 국기 이름이 오색기(중화민국 국기) 예요. 그래서 그 오색기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오색기(만주국 국기) 라고 이름 부친 거예요.
심용환: 만주국은 1932년 3월 1일날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고요. 영토는 크죠, 한반도의 5배 정도구요, 인구는 1934년에 3천만명 정도였다가 1942년에는 4천 5백만명 까지 갔으니까~
신주백: 영토가 일본보다 더 컸으니까 일본의 3배 정도 된다라고 흔히들 이야기 했거든요. 상당히 큰 나라인데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수록 형성과정이 굉장히 괴이한 특징이 있고 그 형성과정의 핵심이 일본이 개입한, 그것도 군대가 개입한 나라다 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원정: 어떻게 개입을 한 거죠?
신주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뤼순(旅順)이나 대롄(大連)이라는 곳이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건설하던 도시를 일본한테 뺏긴 거든요. 전쟁에 이기면서 그것을 관리하던 군대가 일본군인데 당시의 명칭으로는 관동군이라고 했어요. (關東軍-중국 만리장성의 관문인 산하이관 동쪽에 주둔한 일본군대). 이 부대가 단독으로 만주를 침략하였지요.
최원정: 군대가 단독으로, 무슨 의미예요?
신주백: 일본 중앙에서 정부나 육군대신이 군대 움직이지 마, 그대로 가만있어 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그냥 밀고 들어간 거지요.
최원정: 항명을 했다는 건가요?
신주백: 그렇죠, 항명의 성격을 갖고 있죠.
심용환: 제1차 세계대전 때 사실은 일본이 전쟁을 별로 안했으면서 경제적인 이득은 많이 봤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그만큼 수요가 사라지게 되니까 급속도로 경기가 불황국면으로 들어가거든요. 일본 정부측에서 국방예산을 대폭 줄입니다. 사단도 2개 사단 정도 없애버리구요. 이러니까 군인들의 불만이 생기니까 군대에서 일부 군인들이 유력한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을 시도합니다. 아니면 쿠데타를 시도한다든지, 즉 정부나 내각의 말을 듣지 않는 군인들의 항명사건이 계속 발생해요. 그러다가 누가 나오냐 이 이름을 대면 아실텐데 이시와라 간지 [일본관동군 장교] 라고 하는 관동군의 참모가 우리가 만주를 점령해야 된다고 제안을 하죠. 만주를 점령하면 지리상 조선 식민지에도 유리하고 소련이나 중국에 진출하기에도 좋으니까 지금이 적기다. 일단은 만주침략을 해야 되는데 아까 얘기했던 이시와라 간지 관동군 참모와 이타가코 세이지로 등이 모의를 합니다. 모의를 해서 자작극을 만듭니다. 1931년 9월 18일에 관동군 장교 여럿이 중국인 인부 복장으로 변신합니다. 당시에 심양역 근처에 있었던 일본소유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줄여서 만철이라고 부르는데, 만철 소유의 철도에다가 사제폭탄을 설치하고 중국인들이 와서 일본인 소유의 철도에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최원정: 심 작가, 지금 얘기한게 예전에도 그랬지 않아요? 독립군 토벌할려고 마적을 매수해서~ 일본 총영사관 폭발에 의하면~
신주백: 그게 훈춘사건이죠 (훈춘사건(1920년)-일제가 마적을 매수해 훈춘의 자국 영사관을 공격하게한 후, 이를 구실로 항일운동가 학살).
최원정: 일본군 얘네들 이거 전문이구나
심용환: (일본군인 복장입은 박재민씨를 향하여) 공범이야!
최원정: 모의 자작극!
이윤석: 교활이란 말이 있잖아요? 교활이란 말이 상상 속의 짐승인데 일부러 호랑이한테 잡아 먹인데요. 그래서 그 속을 파고 들어간게 교활이래요. 결국 호랑이를 죽인데요. 그러니까 정확히 교활한 술수를 쓰는 거예요. 교활합니다.
------1932년 일본 관동군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만주국의 실체는?
최원정: 그럼 만주국 이라는 나라는 일본 관동군이 시작을 해서 세운 나라니까 만주국은 일본의 식민지 처럼 운영이 되는 건가요?
박재민: 식민지는 아니오! 만주국의 최고 지위 집정관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맡고 있고, 건국이념이 오족협화, 우리는 이 모든 민족과 국가를 다 수용하고 평화를 누린다. 우리는 오족협화의 가치에 근거한 엄연한 독립국이오 (五族協和-만주국이 홍보한 건국이념, 일본인 중국 한족 조선인 몽골족 만주족이 모두 평등하고 화합한다는 내용),
최원정: 아까 뭐라구요?
박재민: 한족, 일본, 조선, 몽골, 만주족 이렇게---
최민정: 다민족 국가였군요.
심용환: 일본은 만주족 수립에 대한 국제연맹의 비난을 피할려고 만주국의 국가 원수의 자리에 푸이를 세우는데 뭐라구 했느냐면 만주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부활을 꿈꾸며 세운 나라다. 우리 관동군은 그냥 푸이를 도와서 그가 꾸었던 만주국이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걸 도와 주었을 뿐이다 라고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시켰죠.
신주백: 사실은 그 집정관 자체가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다. 아까 서두에 들여다 볼수록 이상한 나라라고 했던 이유가 집정관이면 절대적 권한을 가져야 되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사실상 일본인 군인, 일본인 관료에 의해서 통제 당하고, 조종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게 국가야 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최원정: 일본의 그 논리가 본인은 침략자가 아니라 지원군 이라고 교묘하고 교활하게 신분세탁을 한 거네요.
이윤석: 국제적인 사기 같기도 하고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약간 그런 사기 느낌이 드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아까 오족협화 라고 했죠. 다섯 민족이나 되는데 서로 공존이 가능했을까요?
신주백: 집정관 밑에 국무원이 있고 장관은 중국인 한족인데 그 밑에 있는 차관은 일본인이에요. 실권은 일본인이 장악하였고, 그 차관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사람은 관동군이었습니다. 사실상 만주국은 관동군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박재민/관동군役: 다 잘 살자구 그러는 거요. 협화아니오, 협화~ 우리는 벼농사만 지어요~
박재민: 잘 하니까~
이윤석: 그걸 정해주면 안되지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끔 해 줘야지요. 오족협화인데, 지금은 오족협화요.
신주백: 그런 과정에서 잘 나가는 일본인들이 있었어요. 그 가운데서도 이키삼스케인데, 일본말로는 두 사람의 키, 세 사람의 스케, 라고 하는데 (2키3스케-만주국의 실권자였던 5명의 일본인), 두 사람의 키 중에 제일 대표적인 사람이 도조 히데키고~
최원정: 지난 시간에 봤던 태평양 전쟁 전범 도조 히데키~
이윤석: 무죄를 주장하면서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최원정: 나중에 교수형에 처해졌던 사람~
신주백: 그리고 3 사람의 스케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 고위관료역임] 라고 합니다.
최원정: 기시 노부시케는 누구?
심용환: 아베 신조 수상의 외할아버지~
이윤석: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가 안된 사람~
신주백: 2키3스케에서 제가 왜 도조 히데키 하고 기시 노부스케를 들었냐 하면 도조 히데키는 일본이 만주를 통치할 당시에 관동군 참모장을 지냈던 사람이거든요. 그때 당시 이 사람 별명이 면도날 이었어요.
이윤석: 섬뜻하다~
신주백: 또 한 사람인 기시 노부시케는 흔히 그런 얘기도 해요.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야 또 만주국 전체에 대한 기본 디자인은 자기가 했다는 거예요. 제국주의자로서 자부심이 있었던 거죠. 그런 사람이 당시의 만주국을 30년대 중반 후반에 통치하고 있었다는 거죠.
심용환: 기시 노부시케의 별명은 요괴로 유명하죠.
이윤석: 면도칼과 요괴가 합작을 한 만주~
최원정: 만주국 무시무시한데요.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런데 어떻게 독립국이란 얘기를 해요? 무슨 협화니, 이런게 다 허울좋은 명분이지 누가봐도 이거는 일본이 다 조종을 하고 있잖아요.
심용환: 1932년 9월에 만주국과 일본이 맺은 일만의정서 라는게 있습니다. 일만의정서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만주국은 일본이 만주에서 소유한 모든 권한을 승인한다” 그리고 일본군은 만주에 무기한 주둔한다. 그러니까 모든 행정권력과 모든 군사권을 다 갖겠다 라는 얘기이니까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괴뢰국이죠. 허수아비 국가~
박재민: 괴뢰국이란 말이 좀 헷갈릴텐데 사전적 의미로 하면 영어로 a puppet state예요. 파펫 꼭두각시 한 마디로 허수아비란 뜻이오.
신주백: (박재민씨를 향해) 아, 고백을 하시네~
박재민: 우리 승인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소. 협화는 무슨~ 우리 잘 되라고 하는거요.
신주백: 그게 진실이야.
박재민: 아이구 이거 들켰네~
최원정: 괴뢰국이 그런 뜻이에요?
이윤석: 근데 하나 궁금한 거는 사실 일제는 대만이나 조선을 식민지 통치할 때는 총독부를 두고 했잖아요. 그러면 만주국도 총독부를 두고 통치를 하면 괜찮을텐데~ 왜 굳이 총독부제가 아니고 괴뢰국을 세워서 통치를 했을까? 이유가 뭘까?
신주백: 31년 싯점에 국제관계 핵심은 동아시아에서는 어느 한나라 단독으로 야 여기 땅 내꺼야 내가 여기 경제적인 이권 다 차지할 거야 이렇게 할 수 없었어요. 서로 약속이 되어 있는대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이변을 일으킨 나라가 일본인 거죠. 그래서 사실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이변을 일으켰지만 그래서 내가 이거 다 차지할 거야 라고 말할 만큼의 감당할 능력은 아니었던 거죠. 국가를 하나 세운 거고, 우리가 얘기하는 만주는 다민족이 사는 곳, 여러 민족이 살던 곳이잖아요. 그런데 한편에서 보면 천황제 이데올로기로는 여러 민족을 통치할 수 없어요.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가족주의예요. 그러니까 하나의 가족을 이룰 만큼 단일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를 하나 세워서 실질적인 통치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라고 보면 됩니다.
최원정: 이게 독립국이긴 하지만 영토는 중국에 있고 일본이 실제적인 통치를 하고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네요.
신주백: 복잡하니까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할 수 밖에 없지요. 예를 들면 오늘 날의 중국 사람들은 만주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위만주국(僞滿洲國) 이라고 해요, 거짓 僞자를 써서, 가짜라고 하는 거죠. 다른 측면에서는 아까 이시 노부시케가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야 라고 말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이 갖고 있는 근대문명의 상상력을 거기에다 집어 넣어 볼려고 했던 거죠. 그 중의 하나가 도시계획이고, 그 중의 하나가 고속철도가 대표적인 거에요. 일본의 신칸센의 역사적인 경험은 만주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최원정: 거기에서 실험삼아 해본 거를 본토로 옮겨간 거군요.
신주백: 실험의 장이었던 거지요.
심용환: 그래서 우리나라 보다 오히려 만주국에 일본 건물이 많다는게 그런 실험을 했기 때문이군요.
신주백: 그렇죠, 그렇죠.
이윤석: 그래서 만주국을 세웠구나.
신주백: 만주국은 실험의 장이었지만 조선은 생존의 땅이기도 하고 항일운동의 땅이기도 했잖아요. 출세의 땅이기도 했고요. 처지에 따라서나 민족에 따라서 시선이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윤석: 교수님 말씀대로 들여다 볼수록 진짜 묘해요.
최원정: 그만큼 혼돈의 세계, 어떤 백지의 땅, 우리가 지금 모르는 그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재민: 만주국 하면은 國歌에도 국가건립이념이 드러나고, 아까 들어올 때 불렀던 노래가 실제 만주국 국가인데~
최원정: 말(馬)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듣지를 못했어요~
------------天地內-有了新滿洲--------新滿洲~便是新天地~
----------천지안 새로운 만주-------새로운 만주는 우리의 새로운 땅-----
신주백: 신만주에 천지가 열린다는 지금 내용, 발음을 들어보고 제가 지금 해석하는 겁니다. 끝부분은 그거예요.
박재민: 맞습니다.
신주백: 새로운 만주에 천지가 열린다.
최원정: 교수님은 박재민의 저 중국어도 알아들으세요? 알아들으시는 교수님이 너무 신기해서~
----------박재민씨가 스튜디오 무대에 일본군 복장을 입고 등장-------------
박재민: 조선 팔도 여러분! 총독부 눈치 보랴~ 지주 비위 맞추랴~ 어디 마음 놓고 농사짓고 살 수 있습니까~그러지들 마시고 만주국으로 오세요~ 만주국에 오면 총독부도 없고 나라에서 잘 살라고 땅도 드리겠소 오족협화 하에서 만주국민으로 모두 평등하게 먹고 살 수 있소.
이윤석: 뭔가 솔깃해 지는데요~
최원정: 지금 솔깃해요.
이윤석: 조선은 총독부 폭정에 땅도 없고 살기 힘들잖아요.
박재민: 다들 아직까지 흔들리는 눈치인데 독립선언서 기초를 작성한 육당 최남선, 다들 알고 계실 것이오. 그분이 말씀 하시길, 만주는 오족협화의 왕도낙토로 조선민족을 위해 보국균점하고 있으니, 이 신천지에 있는 금후 조선인의 발전은 진실로 측량하지 못할 것이 되었다(간도와 조선인, 최남선). 이렇게 만주국에서의 삶을 찬양하고 계시오. 여러분들의 위인이 찬양을 하고 있다는 말이오. 이런데도 내 말을 못믿겠다면 별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여러분들은 만주국에 오게되어 있소. 하~하~하~하~만주국으로 출발합시다!
신주백: 마지막 말은 협박인데~
이윤석: 이거는 느낌이 사기 같은데요, 쓰는 용어들이 유토피아도 아니고 감언이설이 많아요.
최원정: 너무 과대광고에요.
신주백: (박재민 향하여) 자신감이 지나쳤어~
박재민: 땅도 드리오!
심용환: 땅도 준다고?
박재민: 우리는 모든 오족협화, 모든 민족을 협화, 평화와 화합으로 다스리고 있소!
이윤석: 아니야, 우리도 예전에 하와이 이민 갈 때, 지상의 낙원이라고, 그러고 나무에서도 돈이 열린다고, 그랬는데~하와이는 나무에도 돈이 열린다~ 머니 츄리~ 돈나무~사탕수수 슬렁슬렁 베면은 돈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데 채찍 맞으며 일했거든요. 이것도 그런 냄새가 나는데~
최원정: 그런 것에 혹해서 넘어간 조선인들이 있었을 것 같애요.
심용환: 만주사변 이후, 1931년 이후에 연평균 무려 7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를 해요 1936년이 되면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무려 약88만명, 굉장히 많은 숫자가 되는데, 결론은 어쨌건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다음에 조선인의 이주가 늘어나는데 그러면 흥미로운게 뭐냐하면 일종의 강제동원이라고 해야 되나요? 강제 이주적인 모습이 있었다는 거예요. 아예 일제가 조선인 만주국 이주를 국책사업으로 정하고 지역별 이주할당제까지 실시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최근 연구인 거죠, 선생님?
신주백: 당시 용어로 국책이민 이라고 했어요 (국책이민-조선총독부와 관동군의 협력으로 강행된 조선인의 만주 이주),
이윤석: 그래서 아까 마지막에 어차피 너희들은 가게 될꺼야 라고 말했구나.
신주백: 35~36년에 일본정부는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그냥 모집하는게 아니라, A라는 지역에서 몇 명, B라는 지역에서 몇 명을 행정기관을 통해서 모집을 해요. 모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래서 실제로 오늘날에 연변에 가면 원주촌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왔겠습니까?
최원정: 원주에서, 강원도 원주에서~
신주백: 그런 식으로 자기 고향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짓는 그런 국책이민이 있었다.
최원정: 강제동원된 사람도 있을테고~ 무슨 황야의 서부처럼 만주 드림을 품고 조선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조선인들의 실상은 어땠을까요?
심용환: 제가 아까도 만주에 가봤다고 했잖아요. 현대화된 만주를 갔었어도 한 겨울에 너무 추웠었는데, 그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죠. 겨울 1월 평균기온이 영하 15도에서 영하 30도 사이, 너무나 생각했던 것보다 추운 기후 조건에서 거기서 농사를 지으라는 요구를 받는 상황에서 이찌됐건 속아서 오긴 왔는데 모든 걸 다 가지고 왔으니까 돌아갈 순 없고 생계를 이어는 가야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윤석: 그런데 진짜 궁금한게 일제가 아무 이유없이 식민지 조선인들을 만주국으로 데려가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도대체 왜, 왜 일제는 조선인을 그렇게 만주국으로 이주를 시켰는지~?
신주백: 국책이민을 실시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런 분들이 대체적으로 떠날려고 할 때 보면 그 지역의 가난한 분들이잖아요. 그러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동시에 사람이 이동하니까 인구압박을 해결할 수 있잖아요. 또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갔던 대체적인 지역이 소련과 만주국의 국경선 지역 북만주 지역이었어요. 새로운 땅도 개척하고 개척한 지역에서 조선인의 장점인 쌀농사를 지어서 30년대 후반(1937년) 중일전쟁 때 식량이 많이 필요할 것 아녜요. 거기에 나중에 군량미로 쓰이고 이런 식의 다목적 의도에서 국책이민을 실시한 거죠.
최원정: 그 추위에 뼈 빠지게 벼농사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걸 해서 진짜 군량미 대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신주백: 그래서 구호도 있어요. 一粒糧(한알의 식량은) 就是(바로) 一粒彈(한알의 탄알이 된다).
일동: 야! 진짜 너무 하다!
신주백: 그리고 多收穫(많이 수확하고) 快出糧(빨리 출하하라), 이게 당시 조선인 농민들에게 부과된 슬로건 이었어요.
이윤석: 그러니까 그냥 뽑아 먹을려고 작정을 했어요.
최원정: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만주를 병참기지화 할려는 목적이 있었군요.
이윤석: 조선인 데려다가 관동군 배불리는 것이에요.
신주백: 그래서 부를 축적한 조선인은 없어요. 농사를 지어서 부를 축적한 조선인은 없었어요.
최원정: 농토도 제대로 된 땅을 준게 아니라 황야, 허허 벌판, 황폐한 땅을 개간하라고 주었을 것 아녜요.
신주백: 그렇죠, 개간해서 써먹어라 조선인의 배치도를 보면 평소에는 농사 짓다가 긴장이 조성되면 그 사람들을 농민무장대로, 전투병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그래서 소련과 만주 국경지역에다 배치한 이유중의 하나가 그거 였습니다. 군사적 목적이 세번째 이유였습니다.
최원정: 그러면, 이게 뭐야 나 속았네 하고 집단반발 같은 게 없었어요?
신주백: 그거는 자료상으로 확인한 결과 반발은 일어나지 못했어요. 안한게 아니라 못했어요.
이윤석: 어떻게 통제를 했길래~
신주백: 조선인들만의 부락을 별도로 만들었는데 당시 흔한 용어로 따지면 집단부락이라고 하는데~ 지금 저기 화면에 나와 있는게 집단부락 이에요.
최원정: 진짜 허허벌판에 초가집 몇 채 밖에 없어 (30~40 가구초가).
이윤석: 진짜 모아 났네
신주백: 저기 보시면 앞에 문이 있지요? 저게 부락의 정문이에요. 왼쪽과 오른쪽에는 문이 없죠. 이건 저 문으로만 들락날락 하라는 거에요. 농사 짓는 사람한테 아침 몇시에 나갈 수 있고 농사 끝나면 몇 시에 들어와야 돼요. 그래서 저걸 위반하면 마을 전체가 연대책임을 집니다.
이윤석: 거의 수용소 분위기인데요.
박재민: 저기 보면 정문에 사람이 서 있지요. 담벼락 벽의 높이가 사람 키의 세배입니다.
신주백: 얼추 봐도 그 정도는 되네요.
이윤석: 이게 무슨 교도소도 아니고~
신주백: 농민들을 저런 식으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통제하고 감시를 하니까 반발이 있다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죠.
이윤석: 서로 먼 곳에서 왔으니까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서로 감시하면서 살게 만들어 놓은 거네요.
신주백: 일본이 저렇게 설치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조선인 이주민 가운데 어쩌다 보면 산간지역에 혼자서, 두채, 세채 거주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당시에 만주에서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유격대가 우리 같으면 게릴라 부대가 연락이 오면 혹시 아래 동네에 일본군이 몇 명이 있는지 아십니까 물어 보아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 지금 몹시 배가 고픈데 식량 좀 주십시오 한다든지 돈을 줄 테니까 의복을 달라든지 이럴 수 있잖아요. 그런 걸 철저하게 막아 버리는 거죠. 저렇게 하면 생활하는 대중과 게릴라 부대를 분리시킬 수 있는 거죠.
최원정: 통치의 달인들이네요~ 그걸 딱 막아버리는 군요.
심용환: 33년부터 39년까지 건설된 집단 부락수가 무려 13,451개소, 39년 기준으로 최소한 670만명, 아까 1934년 정도 기준에 인구가 한 2800만에서 3000만명 사이니까 2800먄에서 3000만 사이에 한 700만명이 저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오족협화예요?
이윤석: 저 많은 사람들이 헬 조선을 피해 갔는데 결국은 헬 만주~
신주백: 주로 북만주와 조선인이 많이 살았던 북간도 지역에 주로 많이 있었는데 저게 독립군 내지 유격대와의 분리라고 했잖아요. 저 정책이 성공을 해요. 유격대와 독립군이 활동을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대중으로부터 지원을 못받는데 일본의 통제체제 때문이었습니다. 이게 사실은 30년대부터 60~70년대 까지 전세계에서 게릴라들을 진압하는데 최초의 성공사례입니다.
최원정: 싹을 제거하는~
신주백: 저게 베트남 전쟁에 원용이 돼요. 우리가 베트남 전쟁 때 정착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미군이 베트남 지역 밀림에 흩어져 있는 주민을 한 곳에 모아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아이디가 저기서 나왔어요 (전략촌(Strategic Hamlet Program)-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과 주민을 분리시키기 위해 미군이 전략적으로 만든 마을),
심용환: 전략촌이라고 하더라구요.
최원정: 만주국을 거대하게 다양한 방면으로 실험을 했군요. 대단한 실험장이었어요.
박재민: 계속해서 우리 만주국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 강제 이주 이런 걸 얘기하고 있는데 만주국에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도 많이 있었소!
신주백: 그것도 맞습니다.
이윤석: 맞아요?
신주백: 네, 그래서 만주드림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기회가 어떤 기회냐?
이윤석: 어떤 기회의 땅이었어요?
심용환: 만주국 센서스에 의하면 1940년에 조선인이 전체 만주국의 5.9%, 만주국의 유일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가 협화회 라는 단체인데 협화회 회원과 간부로 활동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신주백: 예를 들어서 아까 언급했던 최남선 선생님이 협화회 회원이었고 저희가 만주의 농촌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던 조선인 중에 한 분이 이선근 이란 분이 계십니다. 역사학자이신데, 이분도 조선인 부락의 농장건설을 위해서 그때 당시 열심히 일했던 분입니다.
심용환: 나중에 (1954년)문교부 장관 하셨던 그 분이죠.
신주백: 3개 대학교 총장도 지내시고 문교부 장관도 지내시고~
최원정: 이 누구라구요?
심용환: 이선근~
최원정: 문교부 장관이란 자리는 나라의 교육 정신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그런 사람이 이런 요직에 올았다는 거는 참 부끄러운~
심용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굉장히 만주국의 교육제도와 비슷하다라는 생각도 들고~
신주백: 우리 육군사관학교에 해당되는 만주국의 학교가 만주군관학교입니다. 이 군관학교에는 조선인들도 입학했는데 제가 오늘 녹화 처음 부분에서 만주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두 사람이 있다 있지요.
최원정: 한 명은 푸이~
신주백: 만주군관학교와 관련되는 분입니다. 그 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분이시죠. 누구실까요?
최원정: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다. 맞나요 제가 아는~
심용환: 前대통령 President?
신주백: 박정희 前대통령이 이 학교 출신입니다.
최원정: 저 사진이 박정희 前대통령 이에요?
신주백: 만주군관학교 시절의 사진입니다. 우리 같으면 육군사관학교 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정희 前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1940년에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 만주군관학교의 입학 자격이 16세~19세 였어요.
심용환: 입학이 안될 나이였네요.
신주백: 1939년 당시에 박정희 前대통령이 22세였습니다. 22살의 청년이 나이가 초과되어 자격이 안되니까 본인으로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그게 말로 회자되다가 어느 분이 만주일보 1939.3.31에 그와 관련된 보도기사가 난 걸 발견을 했어요. 제가 그 보도기사 내용을 그대로 읽어 드리면, 29일에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 합격증명서와 함께 한 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 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가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라는 신문기사가 나오면서 이제 이 존재를 알게 된 것이고 이런 박정희의 특단의 행동이 군관학교에 감동을 주어서 1940년에 만주군관학교 제2기로 입학하게 됩니다. 그래서 1940년에서 42년 사이에 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등으로 졸업을 해요. 만주 군관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들은 일본군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로 보냈습니다. 다시 2년의 교육을 받고 1944년에 만주로 돌아와서 만주군 소위로 근무하기 시작합니다. 만주국군 소위죠.
심용환: 불편한 진실이지만 얘기 안할 수 없는게 1917년 생이잖하요. 이쯤 되면 20대 초 자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나이인데 이런 결정을 한 거죠. 만주국은 내게 기회의 땅이다.
최원정: 혈서를 쓴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얘기잖아요. 우리가 아는 혈서 중에 대표적인 혈서는 안중근 의사의 혈서인데 한 혈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고 또 이분(박정희)이 쓴 혈서는 일본을 감동시켰다는 혈서네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두 혈서가 대비가 되네요.
심용환: 현재 확인된 숫자는 48명 정도의 조선인들이 만주군 지역의 군관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중에 정일권 이란 분이 있습니다. 만주군에서 활동을 했었고요. 나중에 인맥을 통해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데 박정희 前대통령 집권기 때 국회의장, 국무총리 까지 역임하십니다. 1960, 70년대 역사를 얘기하다보면 꼭 나오는 사람들이 한 명, 옛날 분들은 다 아는 내용~~
신주백: 북간도 랄지 북만주 일대에서 독립군 이나 항일유격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활동했던 조선인들도 있었어요. 군관학교 출신 장교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일본이 그 사람들을 간도특설대 라는 조직으로 만들었죠. 그들은 특급 친일파 내지는 최악의 친일파였죠. 그들은 일본군 정규부대가 아니고 만주국 정규부대도 아닙니다.
심용환: 그럼 뭐예요?
신주백: 일본이 조선인만으로 만든 군대입니다.
최원정: 간도특설대가 다 조선인이에요?
신주백: 조선인 군대인데 일본인이 장교를 맡고 물론 조선인 장교도 있었지만 병사들은 주로 조선인 이었다. 조선인 유격대나 조선인 독립군을 진압할려는 것도 있었고 두번째는 조선인에 협조하는 이주민들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었습니다. 간도특설대를 보고 했던 말이 있습니다. 독립군 사냥개! 내지는 철인부대 이런 별도의 별명을 부쳐줄 정도로 그 방면에 명성이 있었던 부대다. 그래서 일본으로서는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통치한다는 거죠. 以夷制夷 전략이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최원정: 만주국에서 존재했던 최고급의 친일파, 간도특설대~ (間島特設隊-장교와 사병을 합해 275명의 대원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이윤석: 그런데 구성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다는 게 조금 특이한데요. 우리가 그동안 얘기할 때 일제는 조선인만으로는 부대를 안들었다 왜냐면 총구가 이렇게 향하다가 언제 일본쪽으로 향할지 모르니까 이게 불안해서 안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신주백: 그만큼 정신개조가 잘 된 사람들을 선발한 거죠.
박재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원정: 말 그대로 사냥개들이잖아요, 그렇죠? 독립운동가들의 피만 쫓는 사냥개들~
신주백: 사실은 일본이 간도특설대를 만들면서 부수적으로 하나 테스트를 한게 있어요. 뭐 겠습니까? 예네들을 징병제를 실시해도 괜찮을까 하는 실험을 한 거죠. 간도 특설대는 분명히 그런 전제였어요.
최원정: 정신개조를 통해서 완벽한 우리부대(일본인)로 만들 수 있는지를 간도특설대를 통해서 실험을 했던 거네요.
심용환: 이게 1938년 간도특설대가 가능하니까 나중에 1943년에 조선인 학도지원병과 1944년에는 조선인 징병제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신주백: 이런 것의 연속 선상에서 그런 정책들이 추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윤석: 만주국 자체가 거대한 실험실이었던 것 같애요.
최원정: 이 사람들(간도특설대)이 되게 악랄하게 굴었다는 걸 우리는 얼핏 알고 있는데~
신주백: 그렇죠, 그러니까 예를 들면 마을에 들어가서 게릴라가 있었는데 불어라 안불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자연스런 행동이었고~
심용환: 민간인 구타행위는 너무나 흔했던 일로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타후 우물에 던진다든지 여자나 임산부들에 대해서 무차별적이고 무지막지한 행동을 했다는 것들이 너무 다양한 루트를 통해 확인이 되니까 정말 상상 이상의 악행을 저질렀다(20세기 중국조선족력사 자료집 1中),
신주백: 그만큼 탄압에 대한 강도가 쎘다는 부대이기도 하고요. 간도특설부대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아까 말씀드린 집단부락이든지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만주에서의 게릴라 운동, 항일무장운동이 40년이 지나면 사실상 끝납니다. 조직적인 항일무장투쟁이 끝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심용환: 간도 특설대 출신 인물 중에 해방 후에 대한민국 군대의 요직에 올라간 분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던,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있구요.
신주백: 현재도 생존해 계시죠. 얼마 전에 100세 축하가 있어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죠.
심용환: 그리고 해병대 사령관 신현준 (간도특설대 출신 대한민국 해병대 초대 사령관)도 같은 간도 특설대 출신입니다.
최원정: 회고록인지 본인이 직접 하신 얘기라고 저도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이런 얘기를 했더라구요. “우리가 독립군 토벌에 전력을 다 했다고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니고 반대로 게릴라로써 싸웠더라도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동족에게 총을 겨눈 것도 사실이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대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1993), 백선엽) 라고 남긴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반성의 차원이 아니라 다 그랬다~,
박재민: 중국인들 사이에서 간도특설대의 조선인들 평판이 정말 최악이었다고 합니다. 감정이입을 해서 내가 이 캐릭터를 살려 보겠다 라고는 못하겠더라고요 (박재민 배우가 일본군 군복을 벗음).
최원정: 저희도 그 군복이 꼴보기 싫어요. 역사의 격동기 1945년 이제 일본은 패망의 길로 들어서잖아요.
신주백: 1945년 8월이 굉장히 중요한 해인거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오늘 우리가 만주국을 다루는 만주 지역에 소련이 만주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1945년 8월 9일이거든요. 드디어 소련군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면서 일단 만주의 전세가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소련도 무려 160여만명의 병력을 투입합니다. 일본이 굉장히 위기의식을 느껴요. 결정적인 위기의식은 저네들(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야 천황제를 절대 인정하지 않아. 소련이 만약에 본토를 공격하여 상륙하면 천황은 어떻게 되겠어요? 제1차 처벌 대상이 되잖아요. 그래서 일본의 전쟁 지도부가 이점을 가장 의식을 한 거죠.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했고 항복을 선언한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재민: 일본의 패전으로 만주국의 역사가 짧게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집정관으로 얘기했던 푸이가 8월 18일에 퇴위하고 다음날 일본으로 도망을 가려다가 공항에서 체포가 돼요. 소련군에게 체포가 되는데 중국으로 이송되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모범수로 석방이 됩니다. 완전하게 자유의 몸이 되어서 인생 최초로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데 중국 과학원 식물연구소에 부속된 식물원에서 보조관리사로 일을 하다가 1967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윤석: 어쩌면 마지막에 식물원에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을 수가 있어요. 이 만주국이라는 것이 일제의 야욕 때문에 탄생한 거잖아요. 그런 걸 보면 전쟁으로 만든 나라가 결국은 전쟁으로 인해서 망쳤다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애요.
심용환: 나라는 망했는데 뭐가 남아요 뭐가 남았는지 한번 들어 보세요. 만주국의 특징을 우리가 계속 얘기 했지만 군이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사회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까 수시로 반공대회 같은 걸 많이 열었어요. 반공대회를 많이 열었고 건국체조, 옛날에 국민체조, 일종의 총동원 체제를 해야 되기 때문에 국민체조를 보급했고~
신주백: 저는 1970년대에 학교생활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반공대회에 나가서 머리띠 두르고 참여하기도 하고 또 반공웅변대회를 통하여 선전대회를 하기도 하고, 우리 흔히 이야기 하는 60년대는 재건체조라는게 있었잖아요. (재건국민체조(1961년)-5.16 쿠데타 후 재건운동본부에서 보급한 체조), 그게 식민지 조선이나 만주에서 있었던 체조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심용환: 국민체조가 아니라 재건체조~
신주백: 박정희 제3공화국 초창기에는 재건체조라고 그랬어요. 체력은 국력이다 라는 모토가 만주국 시절의 경험이나 30년대 40년대 조선의 총동원체제의 경험이 60, 70년대에 그대로 부활한 것이고, 제가 자주 드는 예 중의 하나가 40년대에 중-고등학교 체력장 시험과목이 있었어요. 그때 도입된 것 중의 하나가 수류탄 던지기를 했어요.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 고무모양의 수류탄 있죠. 그걸로 던졌어요.
심용환: 우리는 공 던지기를 했는데~
신주백: 수류탄 던지기가 공 던지기로 바뀐 거예요. 그런데 1970년대 연원이 40년대에 군사동원 체제에서 기원인 거죠.
최원정: 여기 일부 카메라 감독편에서도 몸 푸는 분이 계세요. 나도 던져 봤지~그랬구나.
신주백: 그런 만주국 시대의 경험이나 식민지 조선 시대의 경험이 우리 현대사에서 재현되는 경우는 지금 얘기한 군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말랑 말랑한 분야에서도 많이 일어나지요. 저도 어렸을 적에 어떤 기억이 있는가 하면, 1974년 대한민국 KBS의 <꽃피는 팔도강산> 역작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꽃피는 팔도강산 이전에 1967년 영화 <팔도강산>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 이전에 만주국의 영화 <개대환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는냐 개대환희는 어떤 할머니께서 만주의 수도 신경에 있는 자식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기도 들리고 누구도 만나보고 하는 과정에서 그 드라마를 만든 거든요. 선전영화죠. 만주국이 이렇게 변했어 우리는 이런 질서를 지켜야돼 이런 영화인데, 그게 팔도강산 때 한번 나타났고요. 평판이 좋으니까 그거와 관련되어서 70년대에 경제성정을 잘 좀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걸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만든 거죠.
심용환: 그러니까 만주국에서 원래 개대환희 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역시 문명국 일본이 최고야 이렇게 했는데 여기에 영향을 받아서 먼저 팔도강산, 저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어요. 저기 저기 영화 포스터 八道江山~
이윤석: 故김희갑 선생님 하고 故황정순 선생님하고~
신주백: 저 두 분을 국민 스타로 만든 영화잖아요.
이윤석: 아~아~ 자식 찾아 다니는~
심용환: 재미 있는게 뭐냐면 가족이 전국에 다 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전국의 자식들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도 발전했네 저기도 발전했네 그걸 보여주는 선전계몽 영화라는 관점에서는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요.
이윤석: 유명한 스타들은 다 나왔어요. 故신성일 故허장강 故박노식,
신주백: 신성일씨 하고 손잡고 있는 이가 윤정희씨 이네요.
최원정: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장면들인데~
신주백: 꽃 피는 드라마 까지도 만주국에서~ 이런 문화에 있어서도 깊숙히~
신주백: 그런 부분에 사실은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분이 박정희 前대통령인데, 이 분이 40년부터 45년까지 일본 내지 만주에 체류하면서 만주국을 본 거잖아요. 당시 만주국은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걸 추진했어요. 낯설지 않죠. 대한민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만주는 산업개발 5개년계획이란 걸 추진을 해요. 그런데 원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경제개발계획을 세우는게 아니고 시장경졔에 맡기는 거죠. 이건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한 거죠. 국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죠. 그런데 만주국이 당시 국가운영방식이, 한마디로 압축하면, 중앙통제형 개발독제 라고 보면 돼요. 박정희 前대통령은 그걸 만주에서 보고 배운거죠.
심용환: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 때 경제개발 계획을 제안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뭐라고 했느냐면 이건 스탈린이 하다가 망한 방식으로 받아드릴 수 없다 라고 했데요.
최원정: 사실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건 우리의 경제발전기간 동안을 자랑스럽게 우리가 얘기했던 일부분인데 그것도 역시 만주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거군요.
신주백: 아까 제가 언급했던 사람 중에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를 언급했잖아요. 그 기시 노부시케가 사실은 만주에서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설계했던 사람이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이 5.16 후 세달만에 그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은게 나중에 공개가 되는데 2001년에 이 친서 내용이 공개가 되었는데~ 제가 그 원문을 조금 읽어드릴 게요. “우리는 일본 명치유신 당시 지사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특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 한국 건설에 좋은 의견을 들려주기 바랍니다” (기시 노부스케에게 쓴 편지 中) 이런 내용이 담긴 친서였어요. 1970년 6월달에 기시 노부스케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수교훈장을 주죠. 지금 훈장 받은 직후에 만찬장면입니다. 또 하나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게 저 두 분은 만주에서 만난 적은 없어요. 없는데 1960년대부터 박정희의 등장과 더불어서 일본에 있던 만주 인맥이 연결되죠. 그 정점에 기시 노부스케가 있는 거다.
심용환: 적어도 어떤 문제(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만주국의 경험과 유산을 적극 활용할려고 했었던 그 시대를 롤 모델로 해서 살았던 사람은 분명합니다.
신주백: 만주국을 제대로 알면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고 불편하고 난감한 부분도 정면으로 맞이할 필요가 있는 역사에 대한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박재민: 제가 만주국의 관동군으로 오늘 연기 역할을 했는데 너무 몰랐어요. 13년이란 짧은 역사지만 그게 우리에게 준 영향,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연결고리들, 이런 부분들이 사뭇 무게감으로 다가왔고, 그 바로 밑에 있는 이면도 인정을 해야 더 찬란한 미래가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윤석: 저는 영화 마지막 황제를 재밌게 여러 번 봤으면서도 불구하고 만주국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해봤고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 오늘 우리나라가 만주국과 역사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걸 보고 놀랐어요. 만주국은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은 살아남았잖아요. 소중하게 지켜온 대한민국을 어떻게 잘 계승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주백: 만주국과 한국 현대사는 관통한다. 그래서 연결고리를 갖고 진지하게 살펴 봤으면 좋겠다. 열린 자세로 보되 모 아니면 도, 이거 아니면 저거, 선택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 역사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원정: 만주 라는 것이 우리에게 각별한 인연이 있네요. 고구려의 기상, 항일운동의 근거지, 오늘 만주국을 알게 되면서 또 다른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알게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만주국 미스터리 오늘 이 시간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248회, “만주국 미스터리”에서 인용).
①세상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읽는 성경에 구약성경에 모세가 나온다. 모세는 애굽에서 애굽인을 죽인 살인자였다. 붙잡히면 죽게되니까 미디안으로 도망쳐 나중에 애굽에 가서 애굽왕을 만나서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인 2백만을 인도하여 출애굽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되고 있다.
②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런데 전장에 나가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불러다가 간음하고 충성스런 부하인 우리아를 죽입니다.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죄를 지적하자 잘못을 즉각 깨닫고 바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통곡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42명의 왕중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③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국민의식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조선(한국)은 그런 노력도 없는 상황에서 일제 식민지 생활을 했고 해방이 되면서 건국 후 6.25 한국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국민정신교육이 전무했다. 박정희는 집권 초기 일본의 명치유신을 모방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나 물질적 풍요나 공업생산력만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④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남한에는 일본군이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여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시 까지 3년간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미군정은 일본통치 시대 한국인 관료들에게 자리를 떠나지 말고 그대로 남아서 근무할 것을 종용하였다. 관료들에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거나 일제에 협력해 축재한 친일파들이 섞여 있었다. 여기서 한국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미군정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⑤ 지구상에 192개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백년전 조선이라는 나라는 천대받고 멸시받다가 40년간 일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나라가 소멸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말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므로 해방되어 대한민국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어려운 건국을 한 사람이 초대 대통령 이승만씨입니다. 집권 중 개헌을 하고 부정선거를 한건 그의 잘못입니다.
⑥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웠지만 가난했고 못살았습니다. 그런 나라를 몇 번의 5개년 국가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해서 국가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통령은 박정희씨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시절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이 세 사람은 한국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3선개헌과 10월유신을 해서 18년간 무리한 장기 독재정치를 한 건 박정희의 잘못입니다. 잘 살게 된 유권자들은 민주화를 원했습니다.
⑦ 제가 196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 다닐 때는 56년전에는 가난하여 3년간 점심을 굶었습니다. 18살인데 정치가 뭔지를 몰랐습니다. 금년 2020년 1월부터 서울의 전체 고등학교는 3학년 학생부터 점심을 무상으로 공급합니다. 그리고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고등학교 3학년부터 금년 2020년 4.15 총선에서부터 18살 고3학생도 투표를 하게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왜 국회의원선거 투표권을 줍니까. 이런 무리한 법통과는 유권자들로부터 크게 심판 받을 것입니다. 거짓말과 불법과 비리가 많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를 왜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습니까. 임명권자는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⑧ 한국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의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고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자 짧은 시간에 가난을 벗어났고 선진국의 대열에 근접했고 경제는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왔습니다. 일부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의의 공이 컸습니다. 그들은 독종인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같이 사후에도 국민적인 사랑을 못받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강국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지도자들입니다.
⑨ 1905년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제에 주권을 뺏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고 동년 4월 15일에 민족지도자들이 상해에 모여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정체와 시장경졔를 주축으로 하는 임시정부헌법을 제정하였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분이 우리 한국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도산 안창호다. 윤봉길 의사가 상해공원 폭탄투척사건으로 임정요인들이 체포위기에 몰렸을 때 김구가 이 위기를 안창호한테 통보하지 못하여 그가 체포되고 말았다. 김구는 자책하고 통곡하였다.
⑩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의 전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은 지내지 못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다음으로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씨는 경제 대통령으로서 세월이 지날 수록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건 이 땅에서 태어나서 75년을 살아오면서 고생하며 배우고 체험하고 깨달은 나의 영감이고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