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할까? / 정희연
무안 컨트리클럽은 바다를 막아서 만든 간척지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어느 골프장과는 다르게 넓은 평지 위에 있다. 어른 셋보다 작은 키의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또 다른 멋을 보여주는 곳이다. 광주와 목포에서 차로 말 몇 마디 주고받으면 닿을 수 있고 일조량이 많고 가성비도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은 내 고향 일부다.
바다에서 잔등을 넘으면 고향 마을이다. 40~50호가 살았다. 마을 이장이었던 아버지는 이른 시간 마을 회관으로 나가 카세트를 켰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감나무 위 잠깐 쉬어가는 오목눈이도, 대문 옆 누렁이도 깜짝 놀라 기지개를 편다. 활기찬 아침이다.
봄이면 삐비가 지천에 깔려 가는 걸음을 붙잡고, 여름이면 바다와 냇가로 나가 조개, 미꾸라지, 물방개를 잡고, 가을이면 학교 운동회가 마을 축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겨울이면 눈썰매와 연날리기 등 바다·산·들 모두가 놀이터였다. 또래도 열 넷 이어서 어디를 가든 친구가 있었고 구술치기,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딱지치기 등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2남 2녀중 막내다. 위로 열 살 터울이 있는 형과 누나, 그리고 2살 차이 나는 작은누나가 있다. 그 사이에 형이 있었다는데 아이 때 잃었다고 들었다. 형과 누나는 이른 나이에 사회로 빠져 나갔다. 할머니는 두 명이다. 왕할머니(할머니의 어머니)와 할머니다. 왕할머니는 우리집 대장이었다. 아랫묵을 차지했고, 화로불은 긴 겨우내 꺼지지 않았다. 아침이면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 올렸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참빛으로 물을 묻혀 정성스럽게 빗어 쪽 찐 머리를 하였다. 봉초담배와 곰방대는 할머니의 분신이었다. 담배를 많이 피웠어도 100세를 넘겼고 건강하셨다. 귀가 어둡고 일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보통 사람과 같이 건강했다. 면사무소와 군에서 장수 집안으로 불렀고, 명절이면 대통령이 선물을 보내왔다. 엄마는 두 할머니로 고기, 쌀밥, 김, 국이 빠지지 않는 밥상을 차렸다. 왕할머니 밥상은 작지만 풍부했다. 엄마와 누나는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랑 같은 상에서 밥을 먹다, 그러다 숟가락 하나가 늘어나면 엄마와 누나는 따로 먹었다.
집 뒤에는 넓은 대나무 밭이 있다. 그곳은 내 놀이터였다. 형은 비닐 포대를 가지와 가위로 끊어지지 않게 자르더니 대나무를 서로 연결 해가며 미로를 만들었다.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규칙이 있듯, 한참을 놀다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길을 찾지 못했다. 혼자 남은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 뒤에는 <바우백이>가 있다. 바위가 땅에 박혀 있어 그렇게 불렀지만 고인돌이다. 200평 남짓한 크기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60~80년 전후로 보이는 소나무가 지붕처럼 덮고 있다. 고인돌 위에 쑥으로 윷판을 그리고 바다에서 주어온 꼬막 껍질로 윷놀이를 했다. 내 명의 아이들이 앉아서 놀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있었고 그늘이 있어 시원한 곳이어서 동네 사람들은 여름이면 여기서 살다시피 했다, 모여라 외치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철이, 순이, 옥이 모두 모였다.
마을 뒤 위치한 골프장은 굴 양식장으로 겨울이 되면 바다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곳이다. 굴국, 굴젓, 굴 떡국 등 배부르게 해 주었지만, 겨울은 엄마를 물이 들면 밭으로, 물이 빠지면 바다로 엄마를 옮겨 놓았고, 엄마가 보고 싶은 아이는 추운 겨울을 바닷가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섬 집 아기'는 엄마와 나를 닮아 있었다.
앞집 철이는 무엇을 하는지, 밥그릇 숟가락이 몇 개인지, 낫과 호미는 어디에 있는지, 오리, 닭, 토끼가 몇 마리며 어디서 잠을 자는지, 감나무에 감은 몇 개가 달렸고 언제쯤 따는지,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의 크기와 시간으로 밥을 하고, 우족을 끓이고, 국물을 데우는지 가늠 할 수 있었고, 얼굴 표정만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지냈다. 눈을 감아도 훤히 보이는 고향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일손을 멈추고 땅에 묻히는 날까지 슬피 울었고, 상신계댁 아들이 장가를 가면 마을 잔치로 이어져 고기를 잡고 술을 마시며 즐거움을 같이하는, 고향은 희노애락이 묻혀있는 곳이다.
무안읍에 도착해 육회와 머리고기를 산다. 미리 주문해 놓지 않아도 이른 시간 쉽게 구할 수 있어 좋다. 펄펄 끓는 솥에서 바로 건져 따뜻할 때 묵은 김치와 먹는 맛은 특별하다. 여섯시 30분쯤 도착하면 솥은 끓고 있다. 집에 들어가면 약속이나 한 듯 엄마는 밥상을 준비해 놓는다. 육회를 바로 상에 올리고, 고기는 밥을 먹으며 곱게 잘라 올린다. 기본 반찬에 소와 돼지를 합했으니 수랏상이 따로 없다. 농막에서 가져온 복분자를 마시며 수고했던 추억을 꺼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아부지, 엄마, 아들, 며느리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해가 중천이다.
고향을 떠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이제 학업을 마친다. 아들은 올해 졸업반이다. 의공학을 전공해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졸업 전 경험을 쌓는다며 인턴사원 취업해 서울로 갔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 중인데 말이다. 딸은 수학과를 졸업해 학원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줘서 순탄하게 진행중이다. 정년을 준해야 할 때가 왔다. 기술 인력이 부족해 나이와 상관없이 일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내가 바라는 제 2의 고향이 있다. 일출을 볼 수 있는곳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 일출이나 일몰은 보면 잊었던 생각을 새롭게 찾아 주어서다. 그리고 4차 산업(농업)을 바란다. 비닐하우스, 유리 온실 등에 아이씨티(ICT)를 더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자동으로 기계를 작동시켜 작물과 가축을 기르고 사육하는 스마트팜을 만들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 농촌 이면서 촌 같지 않는 곳, 가족이면 언제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아이들에게 추억의 공간과 “이곳이 내 고향이야”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가능할까?
첫댓글 꿈은 절실하게 바라면 이루어 진다고 하지요. 선생님 선진 농장 구경 할 날을 기대합니다.
몸이 멀리 있어 거의 방치 수준입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엊그제 섬에 갔다, 일몰을 넋 놓고 보았네요.
고향이 남서쪽이라 일출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몰이라도 건질 수 있길 바라봅니다,
잔등, 삐비 등등 낯익은 낱말들이 많네요. 그리운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니 더없이 행복하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살아온 세대가 비슷한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바우배기라는 지명이 있었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제 고향에는 '도치바구'가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물놀이 하던 큰 바위였지요.
그곳에서 놀던 기억이 아슴슴합니다.
@이팝나무 이름이 독특합니다. 도치바구?
요즘은 편해지긴 했는데 사람 사는 맛은 예전만 못 한 것 같지요? 마을 초상, 잔치, 어우러져 살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미 편리함에 젖어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하겠지만요.
맞아요. 사람 사는 맛이 있었지요. 그렇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지금이 좋은 것 같습니다.
가능하고 말고요. 늘 부지런하시니 그리는 것들을 꼭 이루리라 믿습니다..
글이라서 그냥 바람을 써 보았습니다. 댓글을 받고 나니 좀 욕심은 생깁니다. 고맙습니다.
20년 전에 제가 섬에 근무할 때만 해도 누구네 집에 초상이 났다는 말을 방송으로 하더라고요.
편하긴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많다는 생각을 이번 글벗님들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스마트 팜, 응원합니다.
하하하! 제 용기가 하루 강아지입니다.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으면서 생각만 앞서가나 봅니다. 스마트 팜.
'겨울은 엄마를 물이 들면 밭으로, 물이 빠지면 바다로 엄마를 옮겨 놓았고~' 아주 예쁘면서도 애잔한 표현이네요. 선생님의 고향 잘 읽었습니다.
다시 보니 큰 일 입니다. 또 혼나게 생겼네요. "엄마를" 연거푸 세번이나 썻네요. 고맙습니다.
맞아요.
고향의 옛모습이 하나 둘 변해가는 걸 보면 가슴 한켠이 찡하더더군요. 제 고향도 39사단 이전으로 제약하는 부분이 많아 불만이 많답니다. 세월은 옛고향도 그냥두지 않네요.
그러게요 많이 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