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46
2. 질문 : 경행을 할 때 발을 들 때 가볍게 느끼고 발을 내려놓을 때 무거운 무게를 느낍니다.
답변 : 좋은 상태다. 그렇게 알아차려라.
< 참고 >
경행을 할 때는 먼저 발이 움직이는 모양을 알아차립니다. 이때의 모양은 관념입니다. 이렇게 모양을 알아차릴 때는 정식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양은 사마타 수행의 대상이고 위빠사나 수행은 실재를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초보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하면 먼저 발의 움직임인 모양을 알아차린 뒤에 집중이 되면 발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의 느낌이 관념이 아닌 실재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실재를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과 마음의 실재를 알아차려야 궁극의 이치인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볼 수 있습니다. 관념에서는 집중이 우선이므로 이런 통찰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실재하는 느낌에서만 통찰지혜를 얻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위빠사나 수행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위빠사나라는 말은 대상을 분리해서 본다는 뜻이지만 무상, 고, 무아를 아는 통찰지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발이 움직이는 모양이 아닌 실재는 느낌입니다. 발의 느낌은 들 때의 가벼움과 내릴 때의 무거움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발은 없어지고 가벼움과 무거움만 있습니다. 이것이 몸이 가지고 있는 지수화풍 4대입니다. 이때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바로 지대에 속합니다. 발이 없어지고 느낌만 남아 있는 상태란 존재가 없어지고 인식만 있는 상태입니다. 존재가 없어지고 실재만 있을 때 내가 없어지고 무상, 고, 무아의 법만 있습니다. 서양이 존재론이라면 동양의 불교는 인식론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만 무아가 있어 깨달음을 얻습니다.
발의 모양이 아닌 느낌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들 때의 가벼움과 내릴 때의 무거움입니다. 집중력이 생긴 수행자는 발의 모양이 아닌 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알아차리면 법 가까이로 가고 있습니다. 발의 모양을 알아차릴 때는 그냥 발이지만 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알아차릴 때는 무상의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양과 실재가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때의 모양은 느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필요한 전단계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양을 알아차리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이러한 과정이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결합된 수행입니다.
여기서 수행자의 질문에 스승께서 간단하게 답변한 사실도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수행자가 바르게 수행을 하고 있으면 스승께서 간단하게 답변을 합니다. 어찌 보면 칭찬에 인색한 면도 있는데 이것은 오직 수행자를 위한 것입니다. 수행에서 칭찬은 자만을 가져올 위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승은 잘못하는 수행에서는 매우 열심히 가르침을 주지만 잘하고 있을 때는 한 두 마디로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바르게 수행을 할 때도 필요에 따라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세속에서는 칭찬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수행은 자아와 교만을 없애는 과정이라서 그렇습니다.
3. 질문 : 몸이 아파서 쉬다가 오늘 오전에 처음으로 법당에서 1시간 동안 좌선을 했습니다.
답변 : 오전에 1시간 앉을 수 있으면 오후에도 수행을 할 수 있다. 수행은 마음의 결정이 중요하다.
< 참고 >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허락을 받아 1주일 정도 법당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이 기간에 인터뷰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수행자가 아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몸살도 중요한 병의 하나입니다. 특히 너무 더워서 목욕을 자주하면 몸살이 납니다. 날씨가 더울 때 몸의 열을 밖으로 발산해야 하는데 찬물로 자주 목욕을 하면 열과 차가움이 마찰이 일어나 몸살이 납니다.
매우 더울 때는 낯에 목욕을 하지 않고 아침과 저녁에 목욕을 해야 합니다. 조금 쌀쌀한 계절에는 해가 있을 때 목욕을 해야 합니다. 이때는 차가운 물을 머리에서부터 끼얹으면 안 됩니다. 발부터 조금씩 문지르며 물을 끼얹어야 합니다. 미얀마는 더운 지방이기 때문에 목욕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얀마 기후를 모르면 목욕으로 인해 병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질문 : 좌선을 할 때 몸의 이곳저곳에서 통증이 많이 일어나 수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답변 : 몸에서 웨다나(vedanā, 느낌)가 많이 일어나도 자세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몸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 괴로운 느낌)가 많이 일어난다. 그런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많이 있는지 모른다. 어떤 느낌이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알아차려라.
< 참고 >
느낌의 중요성은 부처님에 의해서 발견된 깨달음의 중요 항목입니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느낌입니다. 인간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여섯 가지 감각대상과 접촉한 정보로 살고 있습니다. 이때 감각기관에서 인지되는 것이 모두 느낌입니다. 그래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면 윤회를 하고,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어 윤회가 끝납니다. 이처럼 느낌과 갈애 사이가 사성제의 도성제입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도성제(道聖諦)가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으면 열반에 이르는 멸성제(滅聖諦)입니다.
괴로움의 진리인 고성제(苦聖諦)와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인 집성제(集聖諦)는 인류가 끊임없이 겪고 있는 윤회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출현하셔서 도성제(道聖諦)와 멸성제(滅聖諦)을 제시하셔서 비로소 인간이 부처님과 같이 윤회가 끝나는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느낌은 윤회를 끝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목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공기처럼 항상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느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느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면 몸의 여기저기서 다양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할 때 비로소 느낌과 대면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가 처음에 수행을 시작하면 마주치는 느낌이 몸의 통증입니다. 이러한 느낌을 통역은 그냥 웨다나(vedanā)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면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의 통증입니다. 느낌의 분류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경장과 논장에서의 분류도 다릅니다. 경전에서 분류한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덤덤한 느낌입니다. 이 외에도 맨느낌, 육체적인 느낌, 정신적인 느낌으로 분류합니다. 이런 느낌을 통 털어서 웨다나라고 하지만 수행을 할 때는 주로 통증을 웨다나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행자가 느낌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알고 있는 것이 모두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느낌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도를 얻는 길이 가까워집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은 매순간 변하므로 무상을 알기에 더 없이 좋은 대상입니다. 몸과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느낌은 모두 괴로움입니다. 사실 즐거운 느낌도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느낌은 괴로움의 실체를 알기에 좋은 대상입니다. 또 느낌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지 나의 느낌이 아닙니다. 그래서 느낌은 무아의 진실을 알기에 좋은 대상입니다.
수행 중에 몸에서 일어나는 괴로움 느낌을 얼마나 인내하면서 알아차리느냐가 수행의 관문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괴로운 느낌을 무사히 넘기면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할 수 있고 넘기지 못하면 수행을 포기합니다.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중요한 길이 통증 하나로 인해서 좌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몸의 통증이 생겼을 때는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아픈 것은 몸이지 마음이 아니므로 몸의 영역과 마음의 영역을 분리해야 합니다. 몸이 아플 때는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하나의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 하나도 견디지 못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각오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괴롭던 통증도 때가 되면 사라집니다, 그 때까지 인내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