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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민수기 16:1〜3 유장춘 목사 (법학박사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문제는 개인이나 국가가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면 불행이 계속됩니다. 가나안땅 면전에서 광야로 돌아가서 38년 고생을 한 결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새소망성도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 설교의 방향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과거의 잘못을 경계해 미래를 삼가다”는 『대한민국 징비록』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하여, 그 이론을 바탕으로 유럽은 바다로 나아가서 세계 강대국이 되었고, 1543년 일본에서는 15세의 도주가 재산을 털어서 철포 두 개를 일본 전역으로 확대시켰습니다. 같은 해에 조선에서는 서원을 세워서 당파의 중심이 되게 하고, 망한 명나라를 사대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발전했고,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내주었습니다. 본문말씀을 통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〇 본문말씀
- 본문은 가나안 땅 목전에서 원망한 결과 광야로 들어가서 38년 고생하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레위의 증손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 온을 중심으로 모세에게 반기를 들자 중간지도자 250명도 뭉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내일 아침에 향로에 향을 피워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오라고 사람을 보내었으나,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악담을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모세의 요구에 따라서 아론과 고라에 추종하는 무리들이 각자의 향로에 향을 태우면서 만남의 장막 문에 모였습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와의 대결처럼 모세와 아론, 그리고 고라와 추종자 250명의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식간에 멸하려고 하셨지만, 모세가 간청하자, "이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주변에서 물러서라고 일러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땅이 갈라져서 모두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고, 고라에 동조한 250명도 하나님이 보내신 불이 살라버렸습니다.
여러분! 성경적인 신앙은
이성도 필요하지만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성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연, 학연을 뛰어넘어서 진리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〇 이승만과 김일성의 비교
- 성경적인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권지민 교수(육군3사관학교)의 《완전한 독립에 대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인식 비교연구》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이유는 1945년 해방이후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지켜야 할 가치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주장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적화통일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승만의 내면에 항상 잠재해 있었던 기독교적 관념은 민족통합과 반공으로 이어졌고, 김일성은 공화국남반부 전 인민들을 해방하고 한반도를 적화통일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즉, 이승만의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이룬 ‘독립’에 대한 관념은 한반도 내 미수복지역인 북한지역을 완전 회복하는 것이 그 완전성을 더 하는 것이었고, 김일성은 공화국 남반부의 인민들을 해방하는 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 인민들의 완전 해방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 김일성은 이승만 보다 37세나 젊었고 소련 대위로 한반도에 들어왔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소련에서 함께 들어온 60여 명의 사람들의 학력은 5명만 중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남로당 출신들은 학력이 좋았지만 홀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해 들어가던 시점을 전후해 스탈린은 소련극동군사령관 바실리예프스키 원수에게 소련의 뜻에 맞게 북한을 이끌 조선인 지도자를 추천하라고 지시하자, 바실리예프스키는 김일성을 추천하여 스탈린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즉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가형식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면 지연, 학연을 떠나서 이승만처럼 반공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김일성 일가를 신으로 섬기는 주사파를 직접 간접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의 격변기에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과거에 잘못했던 일들이 재연되지 않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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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민수기 16:1〜3 유장춘 목사 (법학박사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문제는 개인이나 국가가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면 불행이 계속됩니다. 가나안땅 면전에서 광야로 돌아가서 38년 고생을 한 결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을 반면교사 삼아서 그와 똑같은 실수를 새소망성도는 범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 설교의 방향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과거의 잘못을 경계해 미래를 삼가다”는 『대한민국 징비록』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그들이 아무리 제 연구에 대해 비난하고 트집을 잡더라도 저는 개의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의 무모한 비판을 경멸할 것입니다.” 비난을 예상하고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영향 때문에 1000년 동안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는 생각을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주장을 기초해서 유럽은 바다를 건너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 1543년 일본에서는 15세의 도주가 거금을 주고 철포 두 자루를 사서 대장장이에게 주어 역설계 한 결과, 1년 만에 국산화에 성공한 뒤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 퍼졌습니다. 서양에서는 잘못된 신앙으로 억압하는 틀을 박살내고, 일본은 세상과 접촉하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몰두하여 성현을 제사하는 사당과 선비를 가르치는 서원을 세워 당파싸움의 근거지가 되게 하였습니다.
-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유학은 실천 윤리였다. 요순시대 이후 춘추전국시대때 망가진 천하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논어와 맹자에서 나열했다.
1543 조선에서는 첫 서원을 설립했고, 이후 성리학이 발전하여 조선 정신문화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대신 주자와 성리학에 반하는 학문은 어둠에 잠기고, 백성의 경제활동을 탐욕이라고 규정하며 상업과 공업을 억압하고 조선 팔도에 널린 금 은광을 폐쇄하고, 대신 중국을 하늘로 섬겼다. 성리학은 송나라 주희가 내놓은 ‘성리학’은 군사학, 재정학, 세무학, 외교와 경제도 없으면서도,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관리가 되었고, 조선의 모든 학문을 억압하는 지식 독재와 학문 탄압으로 이어졌다.
- 세종은 10년 동안 연구하여 농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칠정산 역문을 만들었다. 칠정산에 따르면 한 해 길이는 365일 5시간 48분 45초로 현대 역법에 겨우 1초 틀릴 정도로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역법 연구 목적가운데 하나가 농사를 제대로 지어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더 큰 목적은 사대였다.
- 1433년 장열실이 프로토타입 물시계 자격궁루를 만들자 세종은 “ 이 사람이 아니라면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칭찬했지만, 9년 뒤 장영실은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고, 기록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세종이 타는 가마를 불량으로 만든 죄였다. 노비 출신 공학자는 용도 폐기된 것이다.
- 1589년 7월 1일,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 경복궁을 방문해 선조에게 조총과 공작새 한 마리도 선물했다. 조선 정부는 공작새는 남쪽 바다 섬에 풀어주고 조총은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3년 뒤인 1592년 임진년, 도요토미의 조총 부대가 조선을 짓밟았다.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착한 조선을 나쁜 일본이 정복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넘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영화나 드라마에서 끝나갈 무렵 4년 후, 10년 후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을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본문은 12명의 정탐꾼의 보고 중에서 10명의 부정적인 보고에 동의한 20세 이상이 광야에서 38년 고생을 한 다음 일어난 사건입니다.
-레위의 증손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 온을 중심으로 모세에게 반기를 들자 중간지도자 250명도 동조하여 "당신들은 지나치오. 야훼께서 온 회중 가운데 계시어 온 회중이 다 거룩한데, 어찌하여 당신들만이 야훼의 회중 위에 군림하오?" 라고 항의 하였습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광야에서 38년 동안 고생하고도 하나도 달라지지 아니한 모습입니다.
모세가 땅에 엎드려 고라와 그의 무리들에게 "내일 아침 야훼께서 알려주실 것이다. 누가 당신의 사람이며 누가 거룩하며 누가 당신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실 것이다. 당신께서 택한 사람을 당신께로 나오게 하실 것이다. “모두 향로에 불을 담아가지고 와서 내일 여호와 앞에서 향을 피워라 그때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계속해서 고라에게 "그대, 레위의 후손이라는 분들은 내 말을 들어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구별하시어, 당신 앞에 나와 야훼의 성막에서 섬기고 회중 앞에 나서서 그들을 돌보게 하셨는데도 불만이냐?
(민 16:10) 하느님은 그대에게 그대의 일족인 레위인들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 앞에 나와 섬기는 특권을 주셨ㄴ다.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사제직마저 요구하는가? 그대와 한 무리가 된 사람들은 모두 야훼께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아론이 어떤 사람인데, 그대들이 그에게 불만인가?" 라고 질책했습니다.
-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오라고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들은 가지 않겠다고 하며 이렇게 전갈을 보내자『민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고 분명하게 원망과 거절을 했습니다.
- 모세의 요구에 따라서 아론과 고라일당이 각자의 향로에 향을 태우면서 만남의 장막 문에 모였습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와의 대결처럼 모세와 아론, 그리고 고라와 추종자 250명의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민 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죄는 한 사람이 지었는데 온 회중에게 화를 내십니까?”고 하자, 여호와 께서는 "이 회중에게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주변에서 물러서라고 일러라."고 하시자 모세가 온 회중에게 "너희는 이 악인들의 천막을 떠나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마라. 건드리면 그들이 저지른 온갖 잘못에 휘말려 너희도 함께 망할 것이다."고 명령하였습니다.
-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죽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땅이 입을 벌려 이들과 그 딸린 식구들을 함께 삼켜 모두 산 채로 지옥에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과연 이들이 여호와를 업신여겼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선포대로 땅이 갈라져서 그들과 집안 식구, 고라에 딸린 사람과 재산을 삼켜버렸습니다. 향을 피워가지고 나왔던 이백오십 명도 야훼에게서 나온 불이 살라버렸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이성적이지만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성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연, 학연을 뛰어넘어서 진리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〇 이승만과 김일성의 비교
권지민 교수(육군3사관학교)의 《완전한 독립에 대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인식 비교연구》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이유는 1945년 해방이후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지켜야 할 가치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적화통일을 주장하였습니다.
- 이승만의 내면에 항상 잠재해 있었던 기독교적 관념은 민족통합과 반공으로 이어졌고, 김일성은 공화국남반부 전 인민들을 해방하고 한반도를 적화통일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즉, 이승만의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이룬 ‘독립’에 대한 관념은 한반도 내 미수복지역인 북한지역을 완전 회복하는 것이 그 완전성을 더 하는 것이었고, 김일성은 공화국 남반부의 인민들을 해방하는 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 인민들의 완전 해방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승만은 배제학당 졸업식 때 공식적으로 최초로 영어연설을 하였고, 매일신문을 창간해 자유, 평등, 민국, 국권 등 근대적 정치사상을 전파하다가 투옥되어 5년 8개월간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조지워싱턴 대학 2학년 2학기에 편입하여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 석사과정,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후 하버드 석사학위도 취득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최고의 학력이기 때문에 이승만은 당당하게 미국의 지도자들과 외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 김일성은 이승만보다 37세나 젊었고 소련 대위로 한반도에 들어왔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소련에서 함께 들어온 60여 명의 사람들의 학력은 5명만 중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남로당 출신들은 학력이 좋았지만 홀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1930년대 만주에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게릴라운동에 참여한 김일성은 일제 관동군의 대규모 토벌작전에 쫓겨 다섯 명의 동지와 함께 1940년 11월 소련 영토인 극동러시아로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은 부대 안에서 식사와 세탁을 맡고 있던 김정숙과 결혼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했습니다.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해 들어가던 시점을 전후해 스탈린은 소련극동군사령관 바실리예프스키 원수에게 소련의 뜻에 맞게 북한을 이끌 조선인 지도자를 추천하라고 지시하자, 김일성을 추천하여 스탈린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〇 결 론
- 그리스도인은 『대한민국 징비록』에서 제시한 요인을 거울삼아서 우리 시대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면 지연, 학연을 떠나서 이승만처럼 반공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김일성 일가를 신으로 섬기는 주사파를 직접 간접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이 있습니다.
- 소련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지금 국제 정세는 너무 무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과거에 잘못 판단해서 국가를 잃었던 때를 거울삼아 기독교신앙을 중심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기둥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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