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종류의 사랑: 그 본질과 속성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과 결합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은 사랑의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속성일 뿐 사랑의 본질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브랑슈빅, PCPO, p. 198)
철학자 ‘브랑슈빅’은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실 사랑의 본질을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사랑 그 자체는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적 행위를 넘어서는 ‘초-인간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랑을 그 본질로 하는 존재’ 즉 사랑 자체 자는 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다양한 사랑의 종류들을 살펴보면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랑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아가페(샤리떼) : ‘아가페인’에서 파생 / 신의 사랑, 신적인 사랑, 박애, 인류애, 보편적인 사랑
② 필리아 : 친구들 사이의 사랑, 우정, 형제애
③ 에로스 : 남녀 간의 사랑 (연애 감정)
④ 스토르게 : ‘스토르게인’에서 파생 /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모성애, 부성애
물론 이 외에도 관점에 따라서는 ‘물질에 대한 사랑’ 혹은 ‘세속적인 좋음에 대한 사랑’ 혹은 ‘예술’이나 ‘학문’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위 4가지로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위 4가지 사랑은 아래서부터 위로 발생학적으로 순차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모성애나 부성애를 의미하는 ‘스토르게’는 자식이 탄생하면서 그 생물학적 유대를 통해 자연적으로(본능적으로)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자녀로서는 생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어떤 의미에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으로서 그 형식에 있어서 신적 사랑(아가페)와 거의 유사하다.
두 번째 필리아는 외동이 아닌 모든 자녀들이 다른 형제들이 탄생하면서 가지게 되는 일종의 가족애 같은 것으로, 이는 어느 정도 본능적이나 어느 정도 부모들의 교육을 통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리아는 최소한의 나이를 먹은 어린이들에게서 형성되는 것이며, 나이가 듬에 따라 ‘벗’ 혹은 ‘친구’의 이름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평생 동안 항상 새로운 필리아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어린이 때에는 형제들, 청소년 때의 친구들, 청년이 되어서는 벗들, 어른이 되어서는 동료들 등 항상 새로운 필리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필리아는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그 사랑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덕목이 전제되기에 자주 그 사랑이 단절되거나 상실된다. 철학이 ‘필로-소피아, Philo-Sophia’인 것은 철학이 지혜(소피아)를 사랑하는(필리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 지혜를 사랑하는 형태는 곧 ‘친구’로 ‘형제’로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세 번째 에로스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유로 나와 다른 한 이성에 대해 가지는 유대감과 친밀감에서 시작된다. 청소년 때부터 저절로 갈망하게 되는 것이며, 그 발생원인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에로스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외적인 요인과 사랑하는 자들의 어떤 도덕적 요건이 충족 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하나가 되가 하는 것’이라는 사랑의 그 속성이 스토르게나 필이아보다 훨씬 큰 것이며, 그러기에 이전에는 없던 다른 속성 즉 ‘배타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사랑이다. 누구도 나의 애인이 나외에 다른 사람을 또 ‘에로스'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건강하고 확고한 에로스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서로 간에 ’큰 성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나 도덕적인 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기에 청년시절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아가페’는 신의 사랑, 보편적 사랑 혹은 박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간으로서는 추정을 해 볼 수 있을 지언 정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가치나 무게나 정서를 기술하거나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경험적 사실에 의하면 이러한 사랑은 현실에서 거의 체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한테서 이를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지만, 어차피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를 본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가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나마 잘 설명해주고 있는 곳이 있다면, 『신약성경』 「고린토 전서」 13장 4절에서 일 것인데, 그곳을 보면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마치 병의 증상을 설명하듯이 아가페를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외적인 행위들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아가페를 진정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그 모습, 그의 의식이나 그의 실존의 분위기를 전부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사랑 중에도 가장 탁월하고 심오한 것이며, 따라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늦게 나타는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유아세례’ ‘모태신앙’ 등에 대해서 부정적인 관점을 견지하기도 한다. 물론 아가페적 사랑을 믿는 사람도 있고, 이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믿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항상 가능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아가페적 사랑의 양태를 몇 가지로 규정해보면 1) 그 형식에 있어서 무조적이라는 차원에서 모성애와 유사하나, 그 범주에 있어서 모성애가 자기 자식에게로 향하지만, 아가페적인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아마도 ‘인류애’라는 것도 아직 ‘아가페’는 아닐 것이다. 아가페는 마치 불교의 자비처럼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사랑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성애나 부성애가 ‘배타적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가페는 말 그대로 ‘보편적 사랑’이다. 2) 아가페적 사랑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어떤 초월적 존재, 기독교적으로는 ‘신의 현존’과의 깊은 일치를 이룬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것이다. 종교가 필요한 가장 첫 번째 이유가 있다면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아가페’를 실현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3) 아가페적 사랑은 그 근원이 사랑 그 자체인 신에게 있기에 아가페적 사랑을 가진 존재를 항상 위로 상승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완전한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가페적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랑의 완성을 향해 노력하며, 그의 모든 실존이 매우 고양된 것으로 나타난다. 가끔 위대한 사상가나 예술가 등에서 우리가 ‘인류애’나 ‘세계에 대한 사랑’ 등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아가페적 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 의식이 매우 포괄적이고 도덕적 특성은 관용의 형식을 띄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가페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그 사랑의 범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 종교를 배척하거나 이단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아가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인류가 다 행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 지혜를 깨닫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사랑이 진정 아가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을 믿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거의 볼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마도 더 이상 이 지구상의 인류는 그 생존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스스로 멸망을 하든가, 아니면 신의 진노로 종말을 맞이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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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의 사랑들 중에 한 개라도 제대로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