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내리다.
인고의 세월을 찰나처럼 보낸 한 여인이 있다. 세속의 이름은 김영한,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어렸을 때 그는 망망대해에 버려진 한 떨기 꽃이었다. 그가 타야 했던 운명선은 파고에 떠밀리고 때로는 세파에 흔들리면서 고단한 항해를 했다. 그가 생의 마지막 닻을 내린 곳이 서울 북한산 자락 언덕에 있는 길상사이다.
김영한이 잠든 영원한 피안, 이 길상사를 찾았을 때는 가을이 가득 내려앉은 정오 무렵이었다. 꽃무릇을 보기 위해서라지만 그 이면에는 김영한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보기 위한 행보이기도 하다.
추석을 전후해서 마지막 빛을 뿜어내는 꽃이 꽃무릇이다. 길상사 뜰에 핀 꽃무릇은 절정의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어 이 무렵이면 불자가 아니라도 나들이 인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붉다 못해 피 빛깔로 혼을 불사르고 있는 이 고혹적인 꽃에 내가 연연하는 것은 한 여인의 넋이 서린 한과 설움. 멍으로 박힌 애증 그 풀길 없는 붉음 때문이다. 한 남자만을 평생 가슴에 묻어둔 단심을 알기에 그 빛깔을 표현해보면 아마도 바래지지 않는 붉은색 그것이 꽃무릇이 아닐까 해서다.
꽃무릇은 사찰에서 여러모로 쓰인다. 뿌리로 쑨 풀은 방부제 역할을 하므로 단청이나 탱화를 그릴 때, 불교 경전을 만들 때 바르면 좀이 쓸지 않아 오래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꽃무릇 축제를 여는 다른 사찰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나 뜰이나 화단, 진영각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서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부처에게 올리는 절 꽃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김영한은 15세에 결혼하나 남편과 사별하고 16세 되던 해 기생이 되어 김진향으로 불리게 된다. 백석 시인은 동료의 송별회가 있어 함남 함흥관 요리 집에 갔다가 김진향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만난 두 사람은 그때부터 애틋하고 서러운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백석은 민요조의 서정시를 많이 남긴 김소월 시인과는 오산학교 선후배 사이로 백석은 소월을 흠모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백석은 그 자리에서 김진향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 준다. 자야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중 3수에 나오는 일명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 서역 지방으로 나간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을 말한다. 백석은 자야를 평생 자기만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여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기생과의 사랑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감했으리란 짐작이다. 김진향도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언변이나 화술까지 능통한 미남 백석을 보고 첫눈에 빠져들었다.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의 연분을 막기 위해 고향 여자와 강제 결혼을 시킨다. 영어교사였던 백석은 부모 몰래 서울에 올라와 청진동에서 자야와 살림을 차리게 되지만 날이 갈수록 부모의 간섭이 심해진다. 지금 사는 서울은 외부의 압력과 방해만 있으니 서울을 떠나 깊은 산골에 가서 살자고 백석이 제안한다. 하지만 자야는 백석의 미래를 염려하여 그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백석은 혼자 만주 신경으로 떠나고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죽는 날까지 이 둘은 만나지 못한다. 자야는 백석과 지냈던 꿈같은 짧은 3년 세월을 가슴에 간직하고 평생을 산다.
자야는 기생 생활을 하면서도 “삼천리 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학구적인 만학도였다고 한다. 백석에 대한 회고록으로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과 (내 사랑 백석)을 펴내는 한편 1997년에는 “창작과 비평”사에 사재 2억을 기증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였다.
가난에 밀려 조선 권번 가 출신으로 청춘을 다 바쳤으나 그에게는 천운이 있었던지 많은 재물을 얻어 재력가가 되었다. 성북동에 있던 청암장을 사들여 요정 대원각으로 탈바꿈시키고 삼청각이나 선운각과 더불어 군사독재 시절 요정 정치의 1번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최고의 요정 대원각은 700여 평에 건물은 40여 동으로 시세는 1.000억 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자야는 독실한 불자로서 법명은 길상화. 길상화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고 죽기 전 이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고 싶어 한다. 여러 번 거절하다가 대원각을 보시받은 법정 스님은 1997년에 대원각을 사찰로 바꾸고 길상화의 법명을 따서 길상사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경내를 걷노라니 고인의 따뜻한 인간성에 그저 송구한 마음만 크다. 절이 클 필요는 없다. 다문다문 잠잠이 고풍스럽게 앉아있는 건물들은 속세에 핀 연꽃 모양이다. 극락전 서편 실개천 건너에 김영한 여사의 공덕비가 있고 꽃무릇 만발한 길 따라 진영각 앞에 서니 법정 스님이 쉬고 계셨다. 길상사를 창시한 분의 정성과 고매한 사랑 앞에서 티끌 같은 존재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평생 자야의 혼을 빼앗아간 백석의 이상화는 뭐였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둘만이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백석은 이런 명시를 남겼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가마리에 살자.
길상화는 다 두고 이승을 떠났다. 백석의 시 한 줄 나타샤를 가슴에 안고 훨훨 날아갔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한 발소리 자박자박 들리는 듯도 하다. 백석과 나타샤는 그렇게 그리워했으니 지금쯤은 뱁새가 우는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서 한 생에 못다 한 사랑을 나누고 있을지도, 나름 행복한 환각에 잠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