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2일 금요일
나의 전성기
김미순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졌다. 벌써 오십 여섯
중학교 이학년 때부터 가져왔던 꿈이 돌고돌아 이제야 달성되었다. 그 사이에 그 꿈을 이루려고 부단히 애썼으나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신체의 오른쪽을 잃고서야 가능했다. 정신없이 재활을 하면서 조금씩 그 꿈을 달성했다
나는 전업작가로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시를 쓰고 책을 읽고 싶었다. 좋은 시를 쓰는 게 최대 목표였다. 앉아도 서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시를 생각하고 또 읽을 책을 검색하느라 일상적인 일엔 항상 구멍을 냈다. 공부만 해서 잘하는 게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먹을거리는 언니가, 청소와 쇼핑은 남편이, 예술과 철학적 토론은 아들이 맡아주었다.
새벽 세 시부터 시작되는 나의 일상을 소개한다.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들이킨다. 혈압을 재고 창에 처진 블라인드를 걷는다. 티비를 켜고 오늘의 뉴스를 본다. 네 시에 가톨릭 평화방송에서 하는 <새벽을 위한 기도> 를 보고 안심한다. 안마의자에서 몸을 풀고 계속 외이티엔 방송으로 오늘 하루의 새로운 뉴스를 확인한다. 네시 오십분에 다시 가톨릭평화방송의 <일상안에서의 빛의 여정> 을 10분 동안 본다. 그러고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는 이비에스 <왕초보영어> 를 한다. 차음 사작한 건 오월달이었는데 이제야 따라 적을 수 있다. 휴대폰에 번역하는 앱이 깔려있어서 영작이 밀리면 손쉽게 영어로 번역해서 내 노트에 차곡차곡 적어놓는다. 특별히 어떤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뭐라도 익혀나가는 게 보람되는 것 같아 시작한 거다
삼십 분 동안 재미있고 의미깊은 시간을 보내고 삼십 분 동안 실내 의료용 자전거를 돌리면서 티비를 본다. 솔직히 보고싶은 프로가 별로 없지만 그냥 자전거를 돌리면서 귀와 눈을 위로하는 차원이다.여섯이 티비는 킅이다.
정확히 아침 여섯 시에 오디오를 켜고 케이비에스 라디오 에프엠을 튼다. 클래식 음악방송을 켜서 들으면서 밥을 차린다. 반찬은 이미 어제 식판에 차려놓고 밥과 국, 약과 커피를 챙긴다. 시어머니께 여섯 시 반에 문안 인사를 드리고 본격적인 섭생의 시간을 갖기전에 당을 재고 인슐린을 투여한다. 그리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탁에 놓인 독서대 위의 책을 읽는다. 밥 먹는 속도가 참으로 느리다.
소량의 우유와 과일, 빵을 드시고 남편이 일곱 시에 나가면 더욱 자유스럽게 아침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으면 성경 쓰기른 한다. <매일 미사> 라고 날짜별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한 편 전례를 적는다. 감사하다. 항상 기도가 부족하고 일요일만 성당에 가는 게 부끄러운데 이렇게라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참 다행이다.
성경 쓰기를 마치면 약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양치하고 안마의자와 자전거로 운동을 한다. 그런 다음 월요일과 금요일엔 한의원, 화요일과 금요일엔 순천병원으로 출발한다. 순천병원에선 재활치료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점심 시간이 된다. 아주 간단히 미리 삶아놓은 고구마나 감자로 점심을 떼우고 다시 안마의자와 자전거로 낮 운동을 한다. 리모컨을 손에 들고 느긋하게 오후를 즐긴다. 그렇게 네 시 반까지 거실에서 의자와 돌침대를 오가며 지루하게 보낸다. 좋아하는 프로가 거의 멊어서 지겹기만 하다. 로봇청소기의 요란함이 나를 위로한다. 네 시 반에 저녁 먹거리를 챙긴다. 저녁은 유산균과 계란, 과일 세쪽으로 그친다. 다음날 먹을 반찬을식판에 담아놓고 그리고 다시 안마의자와 자전거 돌리기로 저녁 운동을 한다.
남편 저녁 밥상을 차리고 옆에 앉아 오늘 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설거지, 빨래, 주방청소, 쓰레기버리기, 다음날 내가 먹을 과일을 깎는 일은 사랑스런 남편의 몫이다.
이비에스의 <세계테마기행> 과 <한국기행> 이 끝나면 거실에 놓인 돌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중간에 화장실에 세 번 다녀오면 벌써 세시 반, 나는 다시 새로운 내일을 맞는다.
어렵사리 그동안 모아두었던 시를 책으로 냈다. 산문집도 출간하였다.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내가 살아왔던 삶을 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좋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재활치료를 해도, 침을 맞아도 오후가 되면 몸이 사그라들고 겨우 밥 먹고 재미있는 티비 포로그램만 즐겼다. 참, 전업작가라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내 전용 식탁에 독서대를 놓고 밥 먹으멘서 오디오로 에프엠 클래식을 들으면서 고급 스럽게 아침을 누려도 기력을 소진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더구나 당뇨병 환지이다 보니 억수로 많은 운동시간과 적게 먹는 습관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이 생겼다. 너무 근사한 책이 생기면 정신없이 달려들어 식탁 독서대로 향한다. 운동이 끝나면 바로 자리를 몲긴다. 어제부터 그일을 실행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졌고 중간중간 문장이나 책의 메시지에 대한 내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다. 뿌듯하고 즐거웠다. 잠이 안오면 억지로 자려고 애쓰지 않고 지금처럼 글을 쓰기로 핬다.
몸이 안 좋다고 어리광부리지 말고 그럴수록 더 멸심히 근육령을 늘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자. 예전처럼 꽃, 새, 곤충 그림을 하루에 한 편씩 그리기도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샤~
자고로 나는 지금이 전성기다. 나이가 어떻든 하고 싶은 일 자연스럽게 할 수있고 내가 이룬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전성기고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