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37장1~10절
제목 : 기대와 기도
애굽의 원조로 잠시 바벨론이 물러난 상황입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자, 하나님은 바벨론이 다시 돌아와 성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1~5절)
1) 느브갓제살의 봉신 기드기야(1절)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 본절과 다음 절은 본장과 38장의 제목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앞장(36장)에서는 여호야김 시대의 사건들을 다루었으나 여기서는 다시 시드기야 재위 당시의 사건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Bright).
본장은 예루살렘 함락이 가까와옴에 따라 예레미야에 대한 핍박의 정도도 더욱 심해져감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유치(留置)되어 있으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을 계속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여기 언급되고 있는 그다랴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에 채운 바스훌(20:1-3)의 아들이며, 유갈은 여후갈(37:3)과 동일인입니다.
그리고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시드기야의 특사로 예레미야를 찾아갔던 자입니다(21:1, 2).
이들은 모두 시드기야의 심복으로 당시 유력한 실력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친애굽파를 대표하는 자들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Feinberg).
2) 예레미야의 선포를 듣지 않는 자들(2절)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유다가 민족적 파멸에 봉착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라고 하는 영적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한편 본문은 왕하 24:17-20에 언급되고 있는 시드기야에 대한 기사를 압축해서 옮겨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왕하에서의 주된 취지는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으로 임명된 후 그 역시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자기 신하들과 방백들이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배척했기 때문에 시드기야도 거기에 끌려다녔던 것입니다(Thompson).
3) 예레미야에게 신탁을 구하는 시드기야(3~5절)
(1) 시절을 보내는 시드기야(3절)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 시드기야는 다급한 상황에 처하자 예레미야와의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본절에서 시드기야의 특사로 보내진 제사장 스바냐는 예루살렘 포위 공격이 개시되었을 때에도 시드기야의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21:1-10).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스마야란 거짓 선지자로부터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라는 편지를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2:24-32).
그러나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 중에는 들지 않았습니다(38:1).
반면에 그의 동료 관계에 있던 여후갈과 바스훌(21:1)은 예레미야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20:1, 2 ; 38:1-6).
한편, 본절에 언급된 왕의 요구 사항은 아마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철수하였던 그런 기적을 여호와께서 다시 베풀어주시지나 않을까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였을 것입니다(왕하 19:32-37).
그러나 1-7절에서는 시드기야의 운명과 또한 포위 공격이 시작될 것에 관해 선언되어 있습니다.
(2) 예레미야의 개인적 상황(4절)
“[4]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출입하는 중 - 이 표현은 구약의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는데 , 본절에서 처럼 백성들 중에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녔다는 의미입니다.
13, 14절에서 그는 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로부터 그는 B.C. 586년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때까지 옥에 갇혀 있어야했습니다.
(3) 예루살렘의 정치적 형편(5절)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 애굽군대가 팔레스틴 평원으로 들어온 것은 B.C.588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시기드야의 응원 요청에 응답하여 출병하였을 가능성이 많지만 또한 바벨론군의 애굽 침입을 사전에 방어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라기스 서신(Lachish Letter)에는 유다군의 지휘관이 애굽에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째든 바벨론 군대는 애굽 군대의 등장으로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풀고 그들과 접전하기 위해 군사를 돌려야 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응답(6~10절)
1) 말씀의 계시(6절)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돌아올 바벨론 군대(7~8절)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애굽 군대는 갈대아인의 군대에 패하고 만다는 예언입니다.
그들이 출병한 것도 사실 유다를 진심으로 걱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각 자기들 나라로 철수했으며, 이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다시 공격하는 데는 방해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Clarke).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 본 단락에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21:1-7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동일한 사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예고되고 경고되어 왔던 유다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이 이제 완전하게 실행되고 말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이 중단된 것은 단지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어떤 것도 예루살렘 멸망을 방어해 줄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피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멸망(9~10절)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느부갓네살에게 비록 부상당한 병사만 있다고 해도 그가 승리할 것이므로 헛된 기대를 버리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수사적 과장법은 예루살렘의 패망과 파멸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 쓰였습니다.
선지자의 대답은 그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분명하고도 단호하였습니다.
오히려 유다 멸망에 대한 그의 확신은 그 이전보다 더 강렬했습니다.
바밸론 군의 철수로 인해서 백성들의 사기가 크게 고조되어 있던 그 시점에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은 심각한 반발과 증오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단락에서 그가 체포되고 투옥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한편 '스스로 속여 말하지 말라'고 하는 어구는 히브리어 관용적 표현인데, '너희 영을 높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패하여 부상자들만 남는다 할지라도 이들이 진영에서 일어나 예루살렘 성을 잿더미로 만들 것입니다(10절).
예레미야의 선포는 사람들의 막연히 들뜬 기대감과 소망에 찬불을 끼얹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레미야가 체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자기를 기만하는 신앙, 반성 없는 긍정의 신학을 경계하십니다(9절).
벼랑 끝에 선 이스라엘에게 ‘바로의 군대’의 등장은 한줄기 소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군대를 믿었고, 갈대아인이 떠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헛된 소망이고, 그들의 믿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기 확신이었습니다.
‘믿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겸손히 듣고 징계의 상황을 냉정히 인식하는 것이, 회복하고 바르게 재건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2) 자기 옷을 찢어야 할 때, 오히려 말씀을 찢고 불사른(36장 23,24절) 유다의 성읍을 불태우십니다(8,10절).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 태도는 말씀을 버리고 불사르는 것과 같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심판과 징계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이 누누이 선포되었음에도 시드기야 왕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사람들을 보내 기도를 요청합니다(1~3절).
이런 태도는 하늘의 뜻이 땅에 이뤄지도록 간청하는 대신, 땅의 뜻을 하늘에 관철하려는 거꾸로 된 신앙의 전형입니다.
지금도 세속화된 종교인들은 정의와 사랑의 실천, 헌신과 희생의 요구에는 귀를 닫고, 오로지 자기 안녕과 복을 위한 기도에 몰두합니다.
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기도를 멈추고, 이미 주신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애써 기도합시다.
2) 시드기야의 기대는 갈대아인이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기대는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7,8절).
기대가 달랐으므로 기도는 당연히 거절당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고 바로의 군대는 돌아가게 하시고, 갈대아인이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나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간절함에 앞서 ‘방향’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해 순종할 힘을 얻게 하소서.
열방-이란에서 이슬람법으로 금지한 서양식 결혼식이 성행하고 있다. 이란에서 이슬람과 이슬람법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사회가 더욱 개방되어 종교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