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천도 (우룡큰스님)
영가천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룡큰스님 (울산학성선원조실, 경주함월사조실,시흥법륭사회주)
죽으면 맺힌 것만 남는다
이제 가슴속에 접고 사는 응어리에 대해 함께 새겨보자.
70년대에 지금은 쌍계사 조실스님이신 고산스님이 조계사의 주지로 계실 때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조계사 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불사가 있을 때마다 시주를 많이 하는 50대의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은 고산스님께 전화를 하여 울면서 애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고산스님은 택시를 타고 급히 그 집으로 가서 현관 유리문을 통하여 집안을 살펴 보았다. 딸은 쓰러져 있고 부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십 가량된 남자가 쓰러져 있는 딸의 배 위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느낀 고산스님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그 남자가 딸의 배 위에서 슬쩍 내려앉았다. 고산스님은
그 앞에 앉아 기억하고 있던 진언들을 총동원하여 외웠고,
그렇게 30분 가량이 지나자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원결(怨結)이 있음이로구나'
이렇게 확신한 고산스님은 부인에게 물었다.
"보살님, 어떤 남자와 원수 맺은 일이 있습니까?"
"원수라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으나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조계사로 돌아와 그 부인의 친구 되는 보살들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통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합니다. 원한을 살 일이 없지요.
다만 한 사람, 착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었던
남편에게만은 '병신'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 모두
남편에게 퍼붓고......"
성격이 남자 이상으로 활달했던 그 부인은 장사와 부동산 투기를 통하여 많은 돈을 만졌다.
그러나 부인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던 남편은 착하고 어질기만 할 뿐 활동적이지 못하였다.
무능한 남편이 되어 아내에게 얹혀 살자 부인은 차츰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어질고 착한 남편의 성품까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보요 병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자연히 부인은 남편을 끊임없이 구박하엿고 욕설과 모독은 물론이요, 때로는 남편을 집 밖으로 내쫓기까지 하였다.
해가 가면 갈수록 부인의 패악이 심하여지자,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 때문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착한 남편의 마음속에도 아내에 대한 응어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아들없이 두 딸만 두었는데,
남편은 두 딸을 결혼시킨 다음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자살을 하였다.
부인이 49재를 지내주기는 하였지만, 복수의 칼날만을
우뚝 세우고 있는 남편이 천도될 까닭이 없었다.
'요년!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다.'
49재가 끝나자 남편의 복수극은 시작되었고, 그 첫번째 결행으로 큰 딸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자식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영(靈)이 큰딸에게 붙자 딸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부인은 큰 딸을 데리고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지만, 한결같이 '특별한 병이 없다'는 말만 들려줄 뿐이었다.
이상과 같은 전후사정을 모두 알게 된 고산스님은 부인을 불러 물었다.
"보살님, 영감님에게 잘못한 것이 있지요?
무릎 꿇고 참회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될 것입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무능하고 바보스런 남편때문에 내가 희생되었지, 그 사람이 손해본 것이 무엇입니까?
한평생을 희생한 것만도 억울한데 왜 제가 그 사람에게 무릎을 꿇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얼마 후 큰딸은 죽었고, 조계사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 끝에 고산스님이 조계사 탑 옆의 회나무가 있는 자리에, 재를 지낸 음식을 놓고 옷도 태우러 갔더니, ●그 남자가 나무 밑에 서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제삼자인 당신이 왜 이일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요?
당신이 끼어들면 내가 보복을 하지 않고 그만둘 것 같소?
천만에! 당신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너무나 독하게 퍼붓는 남자의 서슬에 고산스님의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았던
둘째딸이 언니와 똑같은 상황속에서 죽고 말았다.
병원에 가면 병이 없다고 하는 데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조이는 고통을 느끼며 죽은 것이다.
두 딸을 모두 잃은 부인은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다가 쌍계사로 갔다.
때마침 고산스님은 조계사 주지를 그만두고 쌍계사 주지를 맡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름 한 철을 쌍계사 선방에서 지내고자 하여 왔습니다."
"영감님의 원결을 풀어주지 않아 두 딸까지 죽여놓고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참선은 무슨 참선이오?
왜 영감님의 원결은 풀어 줄 생각을 하지않습니까?
보살님이 살아 있을 때는 몰라도 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영감님이 달려들어 '요년, 맛 좀 봐라'며 쪼아붙일텐데......"
"스님, 정말 그럴까요?"
"절에 다니면서 인과(因果) 이야기를 많이도 들은 사람이 그 생각도 못합니까?"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방 수행 대신, 법당에 남편 위패를 모셔 놓고
백일 지장기도를 하십시오. 법당에 예불하러 들어가도
부처님전에 절하고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잘못했다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참회하고
염불하십시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그날부터 부인은
2시간씩
하루 네차례 지장보살을 부르며
남편의 위패 앞에서
참회와 천도의 백일기도를 올렸다.
"제가 어리석고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고 좋은 나라로 가십시오."
이 이야기 속의 남편은 살아 생전 자신을 학대한
아내의 가슴에 못을 치기 위해 딸부터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아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랑했던 두 딸을
죽여버렸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딸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있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아내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며 죽은 남편의 눈에는
●이미 딸이 딸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아내를 괴롭히고
아내로 인해 쌓인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는 아내에게 슬픔을 안겨주어야하고,
그 최상의 방법이 아내가
가장 아끼는 딸을 죽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두 딸을 죽인 것이다.
●●이토록 원결은 무서운 것이다.
●부모.자식.부부 등
가깝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흔히들
'나' 편한 대로 하여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토록 편한 사이라도 응어리가 맺히면 인정사정이
없는 사이로 바뀌고 만다.
살아있을 때는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히더라도 체면도 갖추고 도리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억제하지만,
●※※숨이 떨어지면 그 즉시 응어리만 남는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는 그 순간부터 체면도 인정도 모두 사라지고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섭섭한 생각, 괘씸한 생각, 못 다한 미련 등의 응어리만이 남고,
그 응어리가 산 기운이 되어 영가를 움직이게 만든다.
●따라서 그 응어리를 해결할 때까지는 갈 곳을 가지 못하는 영가로 남지않을 수 없다.
맺힌 응어리가 다할때까지 갈 길을 잃은 영가가 되어 주위 사람을 해치고 복수를 하는 것이다.
물론 죽은 다음의 세상은 많다.
윤회를 완전히 벗어나는 극락세계도 있고
갖은 복을 누리면서 사는 천상계도 있으며,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나기도 한다.
또 죄업의 무게에 따라 각종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기도 하고 축생의 몸을 받기도 하며 떠도는 영가의 귀신이 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당장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고 힘들게 하는 존재는 우리가 '귀신'이라고 칭하는 영가들이다.
이러한 영가에 대하여 단순히 49재를 올려준다고 하여 천도가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정녕 잘 떠나지 못하고 이 세상 주위를 맴도는 영가들은
원한, 사랑, 재물, 권력 등 살아 생전에 맺은 응어리와 미련 덩어리를 현실로 삼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응어리를 풀어주고, 그 응어리나 미련의 모순됨을 바른 법으로 깨우쳐 주어야만 천도될 수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영가의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고 잘 천도시킬 수 있는가?
●●그 비결은 '나'가 먼저 푸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인과의 당사자가 먼저 마음을 풀어야 한다.
앞의 이야기에서처럼, 딸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나는 참회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상에는 어떠한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불행만 더할 뿐이다.
●결국 부인은 두 딸을 모두 잃고 참선공부를 한답시고
●떠돌다가 고산스님의 교화를 입어 백일기도를 함으로써 남편을 천도할 수 있었다.
"제가 어리석고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고 좋은 나라로 가십시요."
이렇듯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풀고자 할 때 영가도
응어리를 풀게되는 것이다.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영가의 장애 때문에 힘들게 사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까닭없이 현실이 잘 풀리지 않고 시련이 끊이지 않는 경우의 절반은 영가의 장애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자주 계속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라고 하여 무시하지말고, 꼭 한 차례라도 영가천도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영가천도를 하면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되는 영가라고 생각하여 절대로 쫓아내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가의 장애가 생길 때 악마나 삿된 영혼의 짓으로 단정짓고
더 큰 존재의 힘을 빌려 무조건 쫓아내려고만 하는 이들이 있다.
서양의 기독교가 그렇고 무속 또한 다소 그러하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영가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영가는 추방당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구제를 해주어야 할 하나의 중생이다.
도리어 장애를 심하게 일으키는 영가일수록 응어리를 풀지 못해 안착해야 할 세계로 가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귀신을 추방하겠다는 자세로 천도를
해서는 안된다.
천도(薦度)란 말뜻 그대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잘 인도하는 것이다.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과 추방하는 것, 이 둘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영가를 추방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제도는 커녕 싸움만
일어나게 된다.
반대로 영가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자비심으로 영가를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고자하면 그 영가가 세세생생 은혜로운 마음을 갖고
'나'를 돕는 좋은 인연으로 피어나게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