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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가족회의 이야기
(닭살 가족의 생활일기)
1. 5분간의 가족회의 (2005. 4. 20)
순금이 빼고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주제는 “아내(엄마)의 생일을 어떻게 축하해 드릴까?”였다. 석영이는 벌써 엄마의 선물을 사 두었단다. ‘기특한 녀석~~~’. 석사에게 눈을 돌렸더니 “아빠, 내일은 저 학교로 데리러 오지 마세요. 학교 마치고 오는 길에 엄마 선물 사 올게요.”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하고 5분 만에 회의를 마쳤다. 중간고사가 코앞이기 때문에 아이들 모두 시험공부를 해야 한단다.
2. 엄마의 생일 (2005. 4. 21)
‘Happy birthday to you ∼∼∼’
오늘은 순금이가 마흔다섯이 되는 생일이었기 때문에 석사와 석영이와 내가 함께 둘러앉아 아내(엄마)를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생인 석사는 평소 학교에서 밤 9시-10시경에야 돌아오고 오늘은 나도 마침 신학교 야간 강의가 있어서 다녀오다 보니 이럭저럭 밤 10시가 넘어서야 모두가 함께할 수 있었다. 석사가 사 온 초코파이를 생일케이크 삼아 축하하였다. 석영이는 엄마에게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나는 아내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준비한 장미꽃 다발을 바쳤다. 그동안 아내에게 변변한 선물 한 번 못한 나였는데, 그래도 혹시 무언가 없을까 바라보는 아내에게 갑자기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니 너무나 놀라워한다.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 이 꽃은 내 마음을 담은 사랑이야. 받아 줘. 그리고 이 꽃은 언젠가 분명 시들 거야. 그러나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영원히 시들지 않아, 약속할게.” 어느새 순금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때가 그 언제였나? 가물가물하다. 4년간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벙어리 냉가슴 앓듯 바라만 보았던 그녀와 드디어 데이트 약속이 되어 만남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에서 연애하던 시절, 무려 세 시간 걸려 버스를 타고 가서 만난 그녀에게, 준비한 한 송이의 장미를 선물하려고 했을 때 ‘아뿔싸!’ 꽃은 이미 거의 다 시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무릎을 꿇고 시든 꽃을 바치며 약속했다.
“순금 씨, 이 꽃은 시들었으나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사랑합니다.” 시든 꽃을 소중하게 받아들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녀를 생각하며 돌이켜 보니 그 후 17년 동안 다행히 나는 이 약속을 잘 지켜 온 것 같다.
조그만 찻상에 초코파이 쌓아 올려놓고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서로가 바빠서 한동안 이런 시간을 낼 수가 없었는데, 초라한 생일상이지만 순금이는 그래도 참 행복해한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면서 엄마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석사는 좋은 엄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엄마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석영이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요즈음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엄마가 보기에 안쓰러웠던가 보다. 나는 좋은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금이에게 좋은 남편, 석사와 석영이에게는 좋은 아빠, 어머니에게는 좋은 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내의 눈가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이고, 내 마음속에는 미안한 눈물이 고이고.
3. 할머니를 위하여 (2006. 6.)
어머니께서 대수술을 받으셔야만 했다. 6월 12일에 전철 안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을 다치셨기 때문이다. 수술도 다 마치고 집으로 모신 다음 가족회의가 소집되었다. 주제는 “어머니(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 드려야 할지, 아니면 집에서 계속 모셔야 할지?”의 문제였다. 우리 부부는 교회의 성도들을 살피고 심방해야 하기에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들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를 계속 우리 집에서 모셔요. 저희도 시간 나는 대로 돌봐 드릴게요.” 회의 주제는 토론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났다. 회의를 마치면서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어머니(할머니)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서로를 바라보니 모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어른을 섬기려는 모습이 정말 대견합니다. 착한 심성을 주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소망대로 어머니를 섬김에 어려움이 없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행복한 녀석과 착한 녀석 (2006. 8. 25)
* 행복한 ‘석사’: 석사가 다니는 석사가 다니는 고등학교와 다른 여자고등학교의 SFC 동아리가 연합하여 연중 정기발표회가 있다기에 오후 4시에 다녀왔다. 아들의 ‘끼’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어쨌든 한 달 동안 계속하여 연습하러 바쁘게 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아! 짜~~식이~~” 제법이었다. 내 눈과 귀에는 분명히 소질이 출중한 아이로 보였다. 중창, 합창, 콩트 등··· 석사는 배우와 가수로서의 충분한 소질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나의 예술적 피를 물려받은 괜찮은 녀석!”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나를 가장 흡족하게 한 것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까부는 그 녀석의 얼굴에 “나는 지금 너무너무 행복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바라보는 나도 행복했고, 아내도 행복했다.
* 착한 ‘석영’: 오후 7시가 넘어서 마치고 오는 도중에 집에 있던 석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석영이는 엄청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석영이는 어제가 개학이어서 학교 갔다 오느라고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함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온 후 할머니를 돌봐 드리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연세 드셔서 심적으로 좀 불편하신 할머니가 석영이를 무척 힘들게 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집으로 달렸다. 도중에 차 안에서 집사람의 손을 꼭 잡고 한마디 했다.
“여보! 요즈음 어머니 때문에 많이 힘들지? 그래도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이 만큼 되도록 살려 주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 힘만 들고 마음은 상하지 맙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 가족회의: 밤에 가족들이 다 모여서 즉석 가족회의를 열었다. 발표회 때문에 행복했던 석사에게는 ‘축하’를 주었고, 할머니를 위해 인내심 갖고 수고했던 석영이에게는 ‘칭찬’을 주었다. 그리고 시어머니 수발드는 순금이에게는 ‘감사’를 담은 마음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가 엄청난 날이었다.
5. 으악~ 얘들아~ 구해 줘~ (2009. 8. 2)
주일 저녁,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자기들 방에서 토익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방에서 ‘방콕(?)’과 ‘방굴러데시(?)’로 해찰하느라 모처럼의 한가함을 누리고 있었다. 마침 안방마님께서 방에 들어왔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손 맞잡고 토닥토닥 장난을 걸었는데, 튼튼하신 마님의 팔 힘이 보통이 아니다. 그러다가 그만 밀리고 말았다. 갑자기 여자의 강력 무기인 꼬집기 기술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으악~~, 아들들아~~, 에스오에쓰(SOS)~~ 에스오에쓰(SOS)~~ 얘들아 구해 줘~~”
그 순간 아이들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9~~~’
아빠를 엄청 좋아하는 석영이가 아빠의 다급한 소리를 듣고 아빠의 부탁대로(?) ‘구(9)’했다. 둘째 아이의 유머 덕분에 아주 즐거운 저녁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6. 가족회의를 실행한 이유 (2023. 5. 3)
결혼한 지 35주년, 이 기간에 우리 집이 평화롭게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회의 제도를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생길 때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서 그날의 주제를 두고 심도 있게 토의한 후 결정하였다. 내게 가정이 생기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보니 가장(家長)인 내가 미리 결정하고 식구들에게 통보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매사를 공동으로 결정하고 진행했기에 성공이든 실패든 안식구나 아이들 모두 결과에 대하여 불만이 없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에베소서 6장 4절이 결정적이었다. 보통은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기록된 에베소서 6장 1~3절이 중심이 되어 부모공경에 치중하기 일쑤다. 그런데 아버지가 된 내 눈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록된 4절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가 신경 쓰였다. 어떠할 때 자녀들이 노여울까? 나름 얻은 결론은 아이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인 결정을 통보하면서 무조건의 복종을 강요했을 때,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출해 낸 것이 가족회의 제도다. 고등학교 선택, 대학 선택, 결혼, 교회 개척 등 모든 문제를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하였다. 개인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가정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1년 동안 자기들이 쓸 용돈 액수를 정하는 문제도 직접 스스로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가족회의에서 검토하여 결정하고 실행하였다. 닭살 돋는 이야기로 가득한 이 가정이 행복하게 살아온 방법은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은총을 구하고 가족회의를 통해 가장 합리적이고 모두가 불평이 없을 결정을 통한 방법이었다.
이제 아들들은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아들 며느리들은 모두 아기를 낳아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지금은 모이기가 수월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가정에 중대사가 생긴다면 아들·며느리·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둘러앉아서 가족회의를 열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가족 구성원 수도 더 많아지고 의견도 다양해질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말솜씨와 이론이 밀려서 아이들의 뜻을 따라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이 닭살 가족의 신앙적인 가족회의는 자자손손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임학균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으며
강서대학교에서 실천신학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두 아들을 잘 키워 각기 가정을 이루었고 두 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