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9)
존엄회복치료
환자는 82세 남자로 작년 2023년 봄에 간농양이 생겨 2차병원에서 복강경으로 담낭절제술을 하였는데 조직검사에 담낭암으로 나와 A대학병원으로 옮겨 다시 큰 수술을 받았다. 입원 중 심장발작이 있어 스텐트 시술을 받고 그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도 받았다. 두세 달 치료 후 대학병원에서 이젠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퇴원을 종용하여 우리 병원으로 온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에도 동의하였다.
배우자가 간병을 하여 물어보니 환자는 OO교회에서 장로로 은퇴하셨는데 교회생활에 아주 열심이어서 외부에서 전도사나 목사가 오면 이분이 항상 차로 모셔왔다고 한다.
“OO교회, 기억납니다. 대학 1학년 때 서클 여학생이 초청하여 한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보수동 거리에서 비탈길 골목 계단을 끝도 없이 올라가니 언덕 위에 굳건하게 세워진 목조 교회가 있었고 앞마당에서 보니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주일예배에 신자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눈을 감으십시오. 십일조를 온전하게 바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드십시오.”
나는 궁금하여 눈을 살짝 뜨고 좌우를 훑어보았는데 충격적이게도 4~5백 명이 넘어보이는 신자 중에 서너 명 밖에 손을 들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목사님이 외쳤다.
“손 안 든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이 열 개를 주시는데 왜 한 개를 되돌려주지 못한단 말이냐?”
그러니 사람들이 우수수 손을 들었다.
“손을 내리십시오. 모두 눈을 뜨십시오.”
목사님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 1학년 처음 나가본 교회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분이 교회 장로라는 말에 머리에 뭔가 번쩍거렸다. 아침에 회진할 때 물었다.
“장로님, 좋아하는 성경 구절 있으면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환자는 말기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기력이 쇠할대로 쇠하여 눈도 잘 뜨지 못하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나의 말을 듣고 눈을 뜨려고 노력하고 입을 옹알거리며 뭔가 말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했다. 환자의 입에 귀를 바짝 대니 모깃소리만 하게 말을 하였다.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
나는 휴대폰으로 찾아 크게 낭독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날 이후 하루에 한 구절을 이분에게 배운다. 장로님이라 부르자 이분은 몸을 꿈틀거리며 한창때의 장로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분은 나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려고 애를 쓰면서 기력도 조금씩 회복되고 기억력도 조금씩 회복된다.
“의사 선생 덕분에 두려움과 우울증도 없어지고 죽는 날까지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니 하늘나라 가면 크게 상을 받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네.”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한창 전도일을 할 때인 장로로 되살아나서 대학병원에서는 한 달도 못 산다고 했지만 지금 석 달째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약을 주는 것보다 한창때의 존엄한 품위와 직분을 세워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그 직분이 자랑스럽고 보람된 것이라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같이 성경을 낭독하면서 이분의 눈을 쳐다보면 이분의 몸속에서 위대한 한 스승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분은 암으로 죽지 않을 것이다. 영적 스승으로 살다 명이 다해 죽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