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사이공
베트남 전쟁 속에서 꽃피운 베트남 여인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미스 사이공]은 1985년 영국 신문에 실린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
무표정하지만 슬픔 가득한 눈으로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한 베트남 여인과,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월남전이 종식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상흔은 아물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전쟁 속에서 만난 미군 파일럿과 사랑에 빠졌고, 그 남자의 아들을 홀로 낳아 키우며 그와의 재회를 꿈꿨던 베트남 여인. 혼혈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아이만이라도 풍요로운 땅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이별을 택한 그 여인의 슬픈 사연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레 미제라블]을 성공적으로 영국에 안착시킨 클로드-미셸 쇤베르크와 알랭 부브리 콤비 역시 그녀가 보여준 위대한 희생에 강렬한 인상을 얻었다. 마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을 현대화한 작품을 후속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두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이별하게 만든 베트남 전쟁을 작품의 배경으로 끌어들였다.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일 년여를 함께 고민하고 작업한 끝에 완성한 [미스 사이공] 제작팀은 열일곱 소녀 킴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영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을 다니며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십대의 동양인 소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TV에서 방영된 필리핀 영화에서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노래하는 한 소녀를 발견한 쇤베르크는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와 연출가 니콜라스 하이트너, 작사가 알랭 부브리 등과 함께 필리핀에서 마지막 오디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오디션 첫날, 쇤베르크는 영화에서 보았던 어린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레 미제라블] 포스터를 가지고 오디션 장에 들어와 그에게 사인을 부탁하고,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Sun And Moon’을 불러 제작진들로부터 ‘fantastic!’, ‘beautiful’ 등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던 레아 살롱가가 바로 그녀다.
[미스 사이공]의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필름을 통해 만난 열일곱 소녀 레아 살롱가의 풋풋한 미소와 단단한 눈빛은 꽤나 인상적이다.
1년 간의 오디션 끝에 여주인공을 캐스팅한 [미스 사이공]은 작품 개발 5년만에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가졌다.
1년간의 오디션 끝에 여주인공 킴을 발굴해 낸 [미스 사이공]은 작품 개발을 시작한 지 5년여 만인 1989년 9월 런던 로열 드루리레인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가졌다. 세계적인 프로듀서와 창작자들이 수년에 걸친 사전조사와 오디션, 그리고 1천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선보인 [미스 사이공]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막을 올린 지 2년 만에 3천3백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1991년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 공연을 앞두고 3천7백만 달러 치의 티켓이 사전 예매될 정도였다. 비련의 여주인공 킴을 완벽히 소화해 낸 레아 살롱가는 청아한 음색과 청순하지만 강단 있는 모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뉴욕 공연을 앞둔 [미스 사이공]에 좋은 소식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아계 단체들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가를 미화시키고 아시아 여성을 성적 노리개 감으로 삼았다며 공연 중지를 요구했고, 일부 미국인들은 작품의 내용이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며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극히 서양인의 시각으로 그려진 작품의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애절한 러브 스토리와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를 비롯한 거대한 무대 세트와 화려하고 디테일한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운 [미스 사이공]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투어 버전에서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헬리콥터 대신 3D 영상으로 대치되어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미스 사이공]은 전 세계 26개국 317개 도시에서 13개 언어로 공연되며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 무대에서도 2006년 초연 이후 세 차례 공연된 바 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기본적인 스토리나 인물 구성 등은 오페라 [나비 부인]과 비슷하다. 동양에 파견 나온 미군(핀커톤, 크리스)이 중매쟁이(고로) 혹은 포주(엔지니어)의 소개로 동양 여자(초초산, 킴)를 사서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홀로 남겨진 여자는 그의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르며 남편이 그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를 기다리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미군은 미국 여자와 결혼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3년 후 미군은 친구(샤프레스, 존)에 의해 동양 여자와 재회하지만,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양 여자는 아이를 맡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두 작품이 그리는 이야기의 큰 줄기다.
하지만 초초산의 한없이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나비 부인]와 달리 [미스 사이공]은 킴과 크리스의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과 목숨까지 내놓은 뜨거운 모정,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과 좌절, 전쟁과 고아, 혼혈아 등의 사회 문제들을 작품 속에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전쟁과 굶주림, 고문까지 이겨내며 살아가는 킴의 강인함은 수동적인 여인 초초산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자식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몸까지 팔면서 살아가지만 그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강인한 모성 또한 마찬가지다. 초초산이 맹목적으로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 역시 킴이 아닌 엔지니어와 쇼걸들을 통해 보여준다.
베트남전 전후의 부패하고 부도덕한 사회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극을 이끌어가는 엔지니어는 미국에 대한 동경만을 꿈꾸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물이지만, 프랑스인과 베트남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혼혈아인 그 역시도 시대의 희생자이며 피해자로서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친구 존에 이끌려 드림 랜드에 왔다가 킴과 사랑에 빠지고, 어쩔 수 없이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버린 죄책감에 악몽을 꾸는 크리스의 순수함 또한 점령지마다 첩을 두고 다니는 핑커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철저히 서양인의 시선에서 그려낸 [미스 사이공]은 백인 우월주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주옥 같은 음악에 힘입어 세계 4대 뮤지컬의 반열에 올랐다.
철저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그려낸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사창가로 묘사하고, 베트콩 청년 투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수많은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인 미군을 선행을 베푸는 구원자로 규정하는 등 동양인이 보기에 유쾌하지 않은 면면들을 갖고 있다.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적인 시각을 담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4대 뮤지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미셀 쇤베르크의 음악의 힘이 크다.
극적 상황과 인물의 심리, 감정의 변화, 사건 등의 모티프를 노래마다 숨겨놓고 반복, 확장시키며 드라마적인 통일감을 부여한 음악만으로도 [미스 사이공]을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선율 안에 비극을 예고한 킴과 크리스의 듀엣곡 ‘Sun and Moon’, 다가올 이별을 예상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는 ‘The Last Night of The World’, 엘렌과 킴이 각자의 심정을 애절하게 표현한 ‘I Still Believe’ 등 주옥같은 노래들은 드라마와 떼어놓고 감상해도 충분히 아름답다.
공연 내역
웨스트엔드 초연 : 1989년 9월 20일~1999년 10월 30일 로얄 극장
브로드웨이 초연 : 1991년 4월 11일~2001년 1월 28일 브로드웨이 극장
수상 내역
1991년 토니상 3 개 부문 수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자조연상)
1991년 드라마데스크상 4개 부문 수상(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편곡상, 조명디자인상)
1991년 시어터월드상 수상 (레아 살롱가)
창작자
극본, 작곡 : 클로드-미셸 쇤베르크
194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대중음악 가수,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알랭 부브리와 함께 만든 록 오페라 뮤지컬 [프랑스 혁명]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 그리고 [마틴 기어의 귀향], [마가렛], [해적 여왕] 등을 함께 발표했다.
[레 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의 해외 프로덕션을 감독하였고, 그가 작곡한 뮤지컬의 다국적 음반 제작에도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02년에 공연한 발레 [폭풍의 언덕]에도 작곡가로 참여한 바 있다.
극본, 가사 : 알랭 부브리
프랑스 대중음악 작사가였던 그는 클로드-미셸 쇤버그와 함께 [프랑스 혁명],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마틴기어의 귀향], [마가렛], [해적 여왕]을 탄생시켰다. [레 미제라블]로 토니상과 그래미상, 빅투아 델라 뮤지컬상을 받았고, [미스 사이공]과 [마틴 기어의 귀향]으로 이브닝 스탠더드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캐릭터 소개
킴
베트남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미군을 상대로 한 술집 드림랜드에서 일하게 된 열일곱 살 소녀. 드림랜드에서 만난 미군 병사 크리스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홀로 아들 탐을 낳아 기르며 크리스를 기다리지만, 그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크리스
베트남전에 출정한 미군. 킴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홀로 미국으로 가게 된다. 이후 미국 여인 엘렌과 결혼하지만 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베트남에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엔지니어
드림랜드의 사장. 베트남전 전후의 부패하고 부도덕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캐릭터. 하지만 그 스스로도 역사의 희생자다.
엘렌
크리스의 미국인 아내.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킴과 정면으로 맞선다.
존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 전쟁의 실상을 경험한 후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재단에서 일하며 미국의 양심으로 활동한다.
투이
킴의 약혼자인 베트남 청년. 베트남 공산당이 사이공을 함락하자 고위 인민 장교가 되어 킴을 소유하려 한다.
탐
킴의 세 살 난 아들
시놉시스
1975년 4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미군 병사 크리스는 동료 존과 함께 사이공의 클럽 드림랜드를 찾는다. ‘미스 사이공’ 선발 대회가 열리는 클럽에서 만난 전쟁고아 킴과 사랑에 빠진 그는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1978년 호찌민 정부가 들어서고 미군이 급하게 철수하게 되면서 그 역시 강제로 헬기에 몸을 싣게 되고, 베트남 여인인 킴은 홀로 남겨진다.
킴의 약혼자였던 투이는 호찌민 정부 위원이 되어 반역자로 몰린 킴을 찾아와 결혼을 요구하지만, 킴은 아들 탐의 존재를 밝히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화가 난 투이가 탐을 죽이려 하자 킴은 그를 죽이고 드림랜드의 주인이었던 엔지니어와 함께 방콕으로 도망간다.
전쟁 후 미군이 베트남에서 남긴 부이두이를 돌보는 재단에서 일하게 된 존은 킴의 행방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 마이클은 이미 미국 여인 엘렌과 결혼한 이후였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킴은 그를 만나기 위해 호텔로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엘렌과 마주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아들만이라도 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