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주의 『중랑천 하루』
폭우 쏟아진 날에
흙탕물이 된 강을 보다가
문득 이소(離騷)를 쓴 굴원(屈原)이 생각난다. 강이 흐리지 아니한 굴원, 강은 한 번도 흐린 적이 없다. 강이 흐린 것은 허물을 쓴 것뿐이다. 허물을 쓰고도 굳이 변명하지 않은 것뿐이다. 강은 한 번도 죽은 일이 없다. 그 많은 오명을 받고도 느긋한 것뿐이다
한 번도 다급해지지 않고
느긋한 강을 보다가
【주제】 허물에도 느긋한 자연의 모습
【감상】
화자는 폭우로 흙탕물이 된 중랑천을 보고 있다. 폭우로 흙탕물이 된 강을 바라보면서, 굴원이 쓴 이소라는 시집을 생각한다. 굴원처럼 흐리지 않는 강, 강이 흙탕물로 변한 것은 폭우가 쏟아져 여기저기서 흘러온 오물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화자는 그것이 강물의 잘못이 아니라, 강물이 허물을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허물을 쓰고도 굳이 변명하지 아니하고, 한 번도 죽은 적도 없는 강. 그러면서 오히려 느긋하게 흐르는 강을 화자는 찬양한다. 살아 숨쉬는, 죽는 일이 없는 중랑천을 꿈꾸면서 말이다. 중랑천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시풀이:김민정 –시인·문학박사>
선정주(宣珽柱 1935∼2012) 경남 고성 출생, 호 혜산(惠山) 1970년 시조문학으로 데뷔. ‘겨울 청산도’ ‘겨울 중랑천’ ‘겨울 삼십년’ ‘겨울 처용무’ ‘겨울 월인천강지곡’ ‘비시(非詩)’ ‘중랑천 시인이라 하기에’ 등의 시집이 있다. ‘새시대시조’ 편집인 겸 주간. 한국문인협회 이사 지냄. 국제펜 한국본부회원. 현대시조문학상, 문예한국문학대상, 백자예술상, 한국크리스찬문학상 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