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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흘려야 할 눈물(2)
2023년 8월 27일 / 시 6:6, 시 39:12, 시 56:8
마음의 새 치료약 ‘눈물’ / SBS 스페셜 ‘신이 내린 묘약-눈물’(밤 11시 5분 방영)
심신의 안정을 달래는 자연 치유법으로 웃음 요법 대신 울음 요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마음껏 우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이 마음의 병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을 찾아 양파를 깔 때처럼 감정 없이 흐르는 눈물과 달리 감정이 섞인 눈물이 신체에 미치는 변화를 실험해 본다. 강원도의 한 명상캠프와 울기 위해 정기 모임을 갖는 일본의 한 가정집을 찾아 자주 우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찾은 이들을 만난다. 잘 우는 사람은 침울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갖는다는 일반의 예상을 뒤집고 더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소개한다. 슬플 때 울지 않으면 병이 들어 몸이 대신 운다는 주장은 솔깃하다.
신기하게도 눈물에 있는 호르몬이 스트레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고혈압 심장병 등 현대인의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 도호대 의대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눈물을 흘리기 전과 후의 상태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뇌파, 안구운동, 그리고 심전도의 변화를 조사했다. 눈물을 흘리기 직전에는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다가 눈물을 흘린 직후에는 카타르시스가 되어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교수는 일본에서 「겨울연가」로 한류 바람이 불게 된 것도 배용준 씨의 장점도 장점이지만 눈물 효과도 상당히 컸다는 말도 했다.
성경에서는 눈물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는 게 당연하고 좋은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으므로 신앙과 직결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눈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마른 눈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정말 그렇다. 성경을 보면, 훌륭한 신앙 인물일수록 눈물을 많이 흘렸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 다윗을 빼놓을 수 없다.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들을 보면, 곳곳에서 다윗의 눈물을 엿볼 수 있다.
시 6:6 / 흐느껴 울다가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이 되면 밤마다 흘러넘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여 침상은 흥건히 젖고 이부자리도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시 39:12 /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렇게 흐르는 눈물 주체할 길 없사오니 가만히 계시기만 하지 마소서. 일찍이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처럼 이 몸 또한 주님 곁에서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시 56:8 / 이것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 주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시오니 나의 눈물을 주님의 항아리에 담으소서. 주님의 책에 기록해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에게 눈물 병이 있다고 했는데, 비유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병은 유리병이 아니고, 가죽 부대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우유나 포도주 등을 가죽 부대에 담았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죽 부대를 갖고 계시면서 성도의 눈물을 담아두신다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가운데 슬픈 일을 당할 때마다 흘린 눈물을 병에다 담아두는 풍습이 있었다. 인생을 마칠 때에는 눈물 병을 관이나 무덤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어쩌면 다윗은 이 풍습을 연상하며 하나님의 눈물 병이라 표현했을지 모른다. 다윗은 한 마디로 ‘거룩한 울보’였다.
요즘 세태(世態)를 보면 눈물이 메마른 시대임을 알 수 있다. 눈물의 저수지가 되어야 할 성전에 애통하는 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악다구니같이 분노가 가득하고 원통함의 눈물은 많아지는데, 순수한 눈물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가 아닌가 염려스럽다. 신앙은 영성과 더불어 감성이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부터 눈물 신앙을 회복하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고, 영혼과 육체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눈물은 기도 응답의 비밀이다. 저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복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가 죽이려고 400명을 데리고 왔다. 이때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서 응답받은 줄로만 알았다. 호 12:4절을 보면 ‘ …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 ’ 울면서 기도한 것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도 그냥 나은 것 같아도 기도 내용을 들어 보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긴 것과 정직히 행한 것을 기억하사 나를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웁니다. 야곱이 그냥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다. ‘내가 20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하나님 뜻대로 산 것을 기억하사 살려달라’라고 기도하였다.
오늘날도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데 울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여쁜 행동도 하시기를 바란다. ‘너는 이제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늘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살고, 네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지내라.’
1. 성경에서 귀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의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 죄인의 눈물을 보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창세기 21장이다. 사라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애굽 여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 이삭을 데리고 희롱하면서 노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여보, 저 계집종과 그 아들 녀석을 내보내세요. 내 아들 이삭이 차지해야 할 유산을 그 계집종의 자식과 나누어 가지게 할 수는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무척 괴로웠다. 하갈이 낳은 아들도 자기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 ‘아브라함아, 저 아이와 계집종 하갈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지 말아라. 사라가 네게 말한 대로 다 하여라. 내가 너에게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리라고 약속한 것은 바로 이삭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의 후손도 많이 불어나게 하여 큰 나라를 이루도록 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먹을 떡과 물이 든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는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집을 떠나게 하였다. 하갈은 아들과 함께 집을 떠나 브엘세바 들녘을 헤매었다. 가죽부대에 들어 있던 물이 다 떨어지자 하갈은 가시덤불 아래에 자식을 놔두고는 혼자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만큼 떨어져 앉아서 ‘아들이 저렇게 죽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목놓아 울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통해 하늘에서 하갈에게 이르셨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어째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있느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다 들으셨다. 하나님께서 네 자식이 우는 소리를 들으셨단다. 어서 일어나 가서 아이를 일으켜 세우거라. 그 아이를 다독거려 주어라. 네 아들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게 하셨다. 그래서 하갈은 샘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갈은 달려가 가죽부대에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돌아와서 이스마엘에게 먹였다.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말씀을 보면서 아래의 말씀이 생각난다.
마 5:45 /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마 7:11 /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욱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데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갈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응받을 받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해답은 우리의 손이 닿는데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라. 구하면 능히 얻을 수 있는 곳에 응답이 있다는 말이다.
2. 죽을병에서도 치료되는 눈물의 기도가 있다.
히스기야 왕은 남왕국의 13대 왕이다. 이스라엘에는 남북왕조 합쳐서 왕이 모두 42명이다. 그 왕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선정을 베푼 왕은 몇 명뿐이다. 그중 히스기야가 포함된다. 히스기야는 29년간 통치하였다. 29년 이상 통치한 왕이 42명 중 12명뿐이다. 나머지 왕들은 모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 모두 단명으로 끝났다. 나름대로 히스기야 왕은 선정을 베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하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 장수한 왕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열왕기하 18장에서 자세하게 증거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3절), 우상의 신당을 제거(4절)하였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였고(5절), 모세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다(6절).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던 왕(7절)이었고, 선왕들이 앗수르 왕을 섬기며 조공을 바쳤지만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하나님만 의지(7절)하였던 왕이다.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왕하 20:1-6 / 그때에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 그러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님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니 임금님의 최후에 대비하여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지명하여 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2) 히스기야는 그 말을 듣고 침상에서 얼굴을 벽쪽으로 돌려 누운채 기도하였다. 3) ‘오, 주님! 제가 항상 주께 충성한 것을 기억하여 주소서. 제가 진심으로 주께 순종하고 항상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것을 기억하소서!’ 그러고 나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울었다. 4) 이사야가 왕궁의 뜰을 지나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시 명령하셨다. 5) ‘너는 내 백성의 영도자 히스기야에게 돌아가서 전하여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듣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너를 고쳐 주겠으니 내일 모레에는 네가 다시 성전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6) 내가 네 수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겠다. 또 너와 이 도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겠다. 나의 영광과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 도성을 지켜 주겠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부르짖는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눈물을 보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을 더하여 주셨다. 무화과나무 열매를 찧어다가 상처에 올려놓으니 나은 것이다.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을 가졌기에 때때로 몸이 아플 때도 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생명의 연장까지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다.
3. 사단의 역사에서도 놓임을 받게 하는 눈물의 기도
최근 우리 사회에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정신적, 육체적인 증상들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날까?
스트레스란 ‘긴장’이라는 뜻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불안에 떨게 하거나, 예민하게 만들고, 화가 나게 하거나, 잠들지 못하게 하는 등 이런 상황들을 스트레스를 일으킬 수 있는 유발인자라고 한다. 이러한 유발인자에 의해 나타나는 인체 반응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에는 우리 몸에 도움을 주어 더 나은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가 있지만, 우리 몸에 혼란을 일으키고 병들게 하는 나쁜 스트레스(distress)가 있다.
적당한 긴장은 삶에 활력이 되지만, 지나치게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두통, 어깨 결림, 요통 등 각종 통증이 나타나며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알레르기반응이나 질병에 시달린다. 증상의 발현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지만,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행동적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신체적 증상 - 피로, 두통, 어지러움, 두근거림, 가슴 답답함, 가슴의 통증, 식욕부진, 소화불량, 전신 근육의 경직이나 통증(주로 목덜미나 어깨), 사지가 저리거나 차가움, 상열감이나 안면홍조, 땀
정신적 증상 - 불면,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우유부단, 마음이 텅 빈 느낌, 혼동, 유머감각 소실
감정적 증상 - 신경과민, 불안·초조, 우울증, 분노, 좌절감, 근심, 걱정, 성급함, 인내 부족
행동적 증상 - 안절부절, 신경질적인 습관(손톱 깨물기, 발 떨기), 과음이나 과식, 흡연과다, 울거나 욕설, 비난이나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는 행동의 증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을 모시지 못하였기에 사단이 틈을 타서 내 안에 들어와 괴롭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다(막 7:24-30). 그때 가나안(수로버니게) 여인이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고 소리치며 따라왔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동서 흑백을 불문하고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심지어는 불구덩이와 물구덩이에 들어도 가고, 묘지에서 살기도 하고, 흉한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한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좇아오며 소리를 질렀다. ‘내 딸을 고쳐 주십시오.’ 그냥 소리 지르기에는 어머니는 너무 큰 짐을 졌고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체면과 자존심을 불구하고 사람들을 뚫고 나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이 ‘자녀의 떡을 뺏어서 개들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질 은혜를 어찌 이방인에게 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어머니를 개에 비유하였다. 이쯤 되면 눈에서 불이 났을 것이고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귀신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에게는 자존심이나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회로 삼았기에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옳소이다.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나에게 그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주십시오.’ 이에 예수님은 ‘여자여! 가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셨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어린 딸은 조용히 자리에 누워 있었고 귀신은 떠나가고 없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어찌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응답받는 귀한 본이 된 것이다.
■ 중국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발생 하루 뒤인 2008년 5월 13일 오후, 베이촨현(縣) 폐허 속에서 구조대는 두 팔을 땅에 짚고 무릎을 꿇은 웅크린 자세로 숨을 거둔 20대 여성을 발견했다. 식사하던 중 젓가락을 채 놓을 새도 없이 몇십 톤에 이르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온몸으로 지탱하며 죽은 한 여인.. 구조대가 여성의 시신을 들어 올리자 그 밑에 태어난 지 서너 달 된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기 엄마는 떨어지는 건물더미 속에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버틴 채 건물의 잔해가 자신의 몸으로 떨어지는 데도 팔로 버티면서 아기를 지키다가 죽어간 것이다. 구조대가 아기를 발견했을 때, 아기는 전혀 다치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기에게 모유 수유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 중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이와 함께 발견된 휴대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가, 만약 네가 살아남게 된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주길...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문자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자식을 살리려는 가나안 여인의 부르짖음이 이러하였을 것이다.
4. 민족을 향한 구원의 눈물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3-4)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고 슬퍼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을 멀리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슬픔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애 3:48-49)”
에스더가 흘린 눈물이 있으며, 에스겔이 흘린 눈물도 있고, 모세가 흘린 눈물도 있다. 민족을 바라보면서, 멸망해 가는, 죽어가는 민족을 바라보면서 흘린 그들의 눈물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였다.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을 향하여 흘리는 눈물도 있어야 한다. 그들의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나라를 그 나라와 민족을 살려주신다.
이중표 목사님은 시골 교회 전도사 시절에 새벽 4시가 되면 일어나 종을 쳤다. 종을 칠 때 ‘주님, 이 종소리 울려 퍼질 때 잠든 영혼을 깨워주시고, 지옥에 끌려가는 영혼들이 돌아서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종을 쳤다. 눈물로 기도하면서 종을 칠 때 목사님의 가슴속에 주님의 환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무릎을 꿇고 ‘주님, 왜 우나이까?’ 했더니 ‘네가 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 안에서 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던 예수님의 눈물을 담아 주신 것을 알았다.
▶ 예수님의 눈물을 본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신 후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다. 여기 우셨다는 말은 큰 소리로 우셨다는 말이다(눅 19:42-44).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가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당할 심판에 대해서 예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의 파괴가 이렇게 비참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택하신 자기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고 심판받아야 할 그 영혼의 비참한 상태를 표현해 주었다.
예수님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실을 예언했는데,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1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침략한다. 3일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았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백만이 넘는 인파가 예루살렘 성안에 모여들었다. 이 사람들을 일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포위하여 식량이 외부로부터 반입되지 못하게 하므로 그 안에 있는 식량을 가지고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시체가 산을 이루고 심지어 어머니가 자식을 먹는 비참한 상태까지 생겼다. 그래서 유명한 요세푸스라는 역사가는 인류 역사에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가장 비참한 참상을 이 예루살렘 멸망으로 기록해 놓았다.
예수님은 이런 민족의 참상을 예견하면서 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반역하고, 핍박하고, 또 처참하게 처형하는 민족에 대한 죄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시면서 흘리시는 눈물이다. 예루살렘의 파괴와 이스라엘 민족의 심판 참상을 예수님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예루살렘 성안에서 100만이 죽었다고 했다. 9만 7천 명이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42만 명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전쟁으로 죽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이 전쟁을 총지휘한 디도라는 로마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 예루살렘 성곽을 돌면서 자기 자신도 이렇게까지 비참할 줄은 몰랐다고 하였다. 시체가 썩어서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오! 이 죄를 내게 돌리지 마옵소서.’ 자신이 전쟁에서 이렇게 해놓고 자기도 감당을 못하니까 ‘오! 이 죄를 내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앞으로 되어질 모습을 보시면서 어찌 통곡하지 않으셨겠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이사야 선지자도 통고하였는데 …. 이러한 눈물을 이제는 우리가 흘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 안질로 고생하는 왕이 있었다. 눈이 찌르고 아팠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왕의 눈병을 고치겠노라 나섰다. 왕은 그를 따라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다. 왕이 생각했던 것보다 백성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슬픈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단칸방에 누더기를 걸친 시체 옆에 어린 자식 셋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처참한 정경에 왕도 눈물이 터져 통곡을 했다. 얼마 후 진정하고 난 왕은 깜짝 놀랐다. 눈의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2. 성도가 흘려야 하는 눈물
1.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 중 회개의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사람이 있다면 먼저 다윗을 꼽고 싶다.
시편 6:6 / 내가 탄식하므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세상에 다윗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로 요를 적시고 침상을 띄웠다고 했다. 이것은 다윗이 그만큼 많이 오랫동안 울었다는 자기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다윗이 훌륭한 것은 죄를 안 지어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회개의 눈물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다. 다윗은 허물과 죄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시편 32편에서는 구구절절 눈물과 회개의 내용이 나온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한 다음에 심한 통곡의 눈물로 회개하였다.
이사야 1:18-19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면, 너희가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너희는 땅이 내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
죄만 크게 보지 말고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예수님의 사랑 앞에 나와 죄사하심을 받자.
2.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 눈물 젖은 감사 /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어느 교회 학생들이 수양회를 가는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많은 학생과 2명의 전도사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댈러스 모닝뉴스’를 비롯한 여러 신문이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어느 신문 기자가 죽은 학생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심정이 어떻습니까?’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아버지가 대답했다. ‘내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져 말할 수 없이 슬픕니다. 하지만 16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날 소망이 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우리 삶은 항상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물에 우리의 눈이 잠기더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이 한번은 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예배시간이 되어서 작은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지 스펄전이 그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 그 목사님을 찾아가서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묻기에 스펄전은 자기가 영국 런던 뉴파크 교회의 담임목사인 스펄전이라고 대답했다. 이때 이 목사님은 그가 스펄전이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설교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고서 그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스펄전은 더욱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목사님의 손을 붙잡고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만든 빵을 오늘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게 다시 먹여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겸손하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 일평생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달라고만 했는지 회개합니다. 올해는 청구서만 내미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고 높여드리는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높이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한 해, 받은 구원이 감사해 더 이상 구하지 않아도 깊은 감사를 드리는 한 해 되게 하소서. 아버지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매일 드리는 한 해 되게 하소서.
3. 나 자신과 가정, 이웃의 영혼과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참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자성하고 허물과 죄악을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도우사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흔히 가정을 위해 운다면 무엇 때문에 우는가? 대개 육신의 문제 때문이다. 물론 연약한 육신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울어야 할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다. 사업의 문제, 성적이나 진학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문제이다. 가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앙이 별로 없는 가족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실 것이다.
우리가 매일 대하는 이웃을 육신의 눈으로 보면 부러움의 대상, 무시의 대상 혹은 무관심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보면 무엇보다 저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 장차 임할 심판을 생각하면 저들의 영혼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하자. 한 걸음 나아가 바울처럼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한다.
고후 11:28-29 / …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
바울 사도가 항상 염려하는 것이 있다. 사도는 모든 교회를 위한 부모와 같은 자신의 심정을 피력하고 있다. 요즘은 세상인심이 각박하다 보니 남의 일에 관심이 별로 없다. 자신의 유익만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이웃에 대한 관심은 먼 발치에 가 있다. 그러니 이웃 사랑이라는 단어는 머리 속에서 지워진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서로 위하여 기도해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슬퍼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주의 종을 위해, 하나님의 뜻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위해, 직분을 맡은 분들에게 각별한 믿음을 주시고, 어리석은 자가 없게 하시고, 애통함으로 매일 같이 기도하는 분들이 되기를 위해 기도하자.
4. 대속의 눈물도 흘려야 한다.
여기까지라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 자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있겠지만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이 바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는 대속의 눈물이셨다.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의 눈물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웃을 수가 있었다.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이것이 기독교이다. 오늘 우리가 울지 않는다면 우리로 인하여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부득불 할 일이 아니냐! 내가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도 남을 위해 울도록 하나님께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자.
스펄전 목사의 말대로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눈물로 젖은 말씀을 삼켜야 한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기도를 올려야 한다. 참 예배는 눈물을 흘리는 감동과 은혜가 있어야 한다.
■ 하루는 성 프랜시스가 길을 걸어가며 울고 있었다. 제자가 왜 우느냐고 물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울고 있노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땅끝까지 헤매도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 ① 내 영혼과 육체가 괴로움을 겪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하옵소서. ② 주님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그 타는 듯한 사랑을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 한 천사가 천국 문을 열기 위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의 피 한 방울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굳게 닫힌 천국 문은 꼼짝도 안 했다. 그는 급히 다시 세상으로 와서 슬픔 가운데 죽어간 한 여인의 한숨을 거두어 가지고 왔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흘린 노인의 눈물 한 방울을 담아서 갔다. 그러자 천국 문이 열렸다. 눈물은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약한 소금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눈물은 굳게 닫힌 천국 문도 열리게 하고, 돌같이 굳어진 사람의 마음도 녹일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슬픔보다는 기쁨을, 울음보다는 웃음을 좋아한다. 그러나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려야 할 경우를 만난다. 특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몰지각한 비난과 핍박으로 인해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토하며 기도하면서 맡기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손수건을 드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평강의 품에 안아주시기 때문이다.
마 5: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계 7:17 /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시 126:4-6 / 여호와여, 단비 내려 메마른 강바닥에 다시 물 흐르듯 우리 땅 우리에게 다시 주소서. 5) 눈물 흘리며 씨뿌린 이들 한없이 기뻐하며 거두어들이게 하소서. 6) 울며 씨뿌리러 나가는 이는 한없이 기뻐하고 노래하며 돌아오리라. 곡식단 거두어 들고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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