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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여기 있다 / 맹재범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심사평】 밖으로 내몰린 존재가 여전히 있다는 믿음이 ‘여기 있다’
심사위원 : 송경동 이경수 진은영 황인숙
당선작으로 최종 선택된 ‘여기 있다’는 투명인간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생활의 감각으로 어떻게 변용해 시적인 순간을 발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사라짐을 노래한 시는 많았지만, 당선작은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던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선언을 통해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고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음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이 시의 고요한 단단함을 심사위원들은 믿어보기로 했다.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처럼 시도 그렇게 “여기에 있”음을 믿어보고 싶게 하는 시였다.
<시 분석>
https://naver.me/Gbr7395n 좋은 시가 있는 봄날
여기 있다 / 맹재범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 차용.'여기 있음'을 뜻하는 다자인. Da(여기, 거기)-sein(있음) Dasein을 일본학자들이 현(現)존재로 번역.Da는 장소의 의미뿐만 아니라 ' 존재가 드러나 있다'는 의미도 있음
하이데거의 존재개념을 차용하여 시의 깊이와 낯설게 하기로서의 시적 변용, 시의 다층적, 중의적 의미 확보 효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개념 차용.인간은 한 개념으로 동일화되지 않는 개별적 구체적 인격체이다)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어디에나 있는 존재와 존재의 관계성을 묘사)
(같은 접시로 동일화될 수 없는 미분화, 극특수의 존재가 있다)
(접시닦이 노동자는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존재는 행위에도 있고 버려지는 것에도 있고 그 사이에도 있다. 존재는 비가시적인 것으로 개념이고 원리로서 있음이다. '없이 있음'이다)
(배달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을 묘사)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존재는 위에도 있지만 뒤와 아래에도 있다)
(뒤, 바닥에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
(몸으로 부딪히며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묘사)
나는 투명인간이다
(존재는 시간성, 관계성, 가능성, 기획투사의 영역이어서 비고정성이므로 투명하다)
(인간의 본질을 말한다. 내가 사장이라면 사장이라는 존재개념이 들어있다. 특정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어떤 삶의 조건에서는 다 투명인간이다. 교실안에서 학생을 가르치면 교수이고 버스에서는 아저씨고 집에서는 남편, 아버지다. 나라는 존재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 존재자는 그 순간의 관계론적 실체이고 존재는 없다.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뒤에서 아래에서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존재는 사건에 의해 존재가 발생하고 사건이 끝나면 존재는 사라진다.식당일의 행위가 끝나면 존재는 다시 무로 돌아간다.존재자를 움직이는 원리로서의 존재를 인간의 몸으로 본다면 이제 존재가 무로 돌아갔으므로 인간의 몸은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그러므로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원리로서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이 존재를 인간의 몸으로 의인화 한 것인데 보이지 않으므로 투명인간이다.그러므로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식당 노동자의 행위를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사회에서 의미부여를 해 주지 않는다 )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존재를 의인화한 몸이 투명이므로 접시가 쌓이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의 가치를 무시한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순간의 사건이 사라지면 존재는 사라진다)
(존재는 이렇게 사건에 의해 발생하고 사건이 사라지면 존재의 의미도 사라진다)
(가르치는 행위를 할 때만 교수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이고 아버지이다.버스 안에서는 아저씨다.술 마실 때는 술꾼이다)
(땀과 눈물의 하루 노동이 끝났으나 내일 또 일을 맡을 지는 알 수 없다.비정규직, 알바생의 서러움을 묘사)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존재가 무로 돌아갔으므로 그 수단만 남는다)
(노동자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노동도구만 남는다. 노동자가 내일 일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식당일을 하지 않으므로 식당일에 필요한 팔과 다리는 사라진다.존재는 무로 돌아갔으므로 투명한 빗방울로 비유하였다)
(앞 문장에 물기가 나왔으므로 이것의 이미지를 연쇄하여 물방울 이미지로 변주, 확장하고 있다)
(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하이데거는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신학적 전제는 존재를 잘못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존재자가 종교생활을 하는 동안 십자가로 상징되는 구원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올랐다가 현실을 개선해주지 못하므로 쪼그라든다)
(시의 차원을 이데아 차원으로 격상하고 있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존재는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존재는 연속되지 않는다.존재가 연속적이고 불변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오늘 하루 일로 통장에 잠시 돈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걸로는 나를 구하지는 못한다.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착각임을 깨닫고 기대를 버린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존재는 관계가 발생하여 결과가 생기면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위치가 정해진다. 개개의 존재가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까지는 존재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데모나 항의를 해야 사람들은 그제야 이들의 존재를 의식한다)
(빗방울이 거리의 색을 바꿔 놓는 건 비가 오기 때문이다. 세상을 말끔하게 청소한다. 일회성 노동자가 없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쓰러지거나 사라져야 사람들은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진다. 결국엔 정규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내가 바라본 곳에서 본 착각이다. 결국은 투명만 남는다. 우리는 뭘 안다고, 잘 어울다고 하지만 사라진다. 불이 없으면 밖을 볼 수 없다. 인식은 관계론적 착각일 뿐이다)
(사무실 안에서 밖을 볼 때 흰얼굴이 거리의 푸르름과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결국엔 투명 인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오늘은 존재가 무로 돌아가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늘은 일이 없다)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했으나 잘되지 않는다)
(창밖이 투명한 것은 유리창 청소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있었던 것인데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소외)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이제 존재의 깨달음에 이른다)
(우리 존재는 흐른다. 변해간다. 조건에 의해서. 존재는 진행형이고 존재는 그 사건의 극특수적 시간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다)
(내가 요리를 만들면 도마고 지게차를 운전하면 지게차이고 택배상자를 운반하면 택배상자다. 사건에 의해 내가 결정된다, 대학에서 가르치면 학생 앞에서는 교수이고 집에 오면 아내에게는 남편이다. 그 순간의 사건이 없으면 존재는 없는 것이다)
(도마, 지게차, 택배를 말하면서 소외된 인간을 보여주며 다층적 구조, 시의 중의성을 묘사해 준다)
(커다란 고층빌딩에 들어가기 위해 매달려 있다가 흘러내린 이들이 하는 일이 식당의 노동자, 현장의 지게차 일꾼, 택배 배달원이다. 임시방편으론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존재는 어디에나 있지만 관계에 의해 성립하고는 인연이 다하면 무로 돌아간다. 존재는 완성되지 않는다.미래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물이나 식물, 동물은 즉자이므로 그 자체 완성되어 있지만 인간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기획투사하므로 언제나 현재는 결여이고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그러므로 존재는 소외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소외이다. 어디나 일시적인 존재일 뿐이다.존재는 투명하므로 나는 당신의 눈빛을 비추어줄 수 없다. 이것은 존재는 각자성이다)
(비정규직의 사투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어디에나 있다)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결코 완성되지 않는 대자적 존재인 인간은 결여이고 미완이다)
(구조조정이나 대량해고로 숱하게 쏟아져나올 사람들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존재는 모든 곳에 있다)
(간판 노동자로 자동차 생산, 수리 노동자로 책상의 사무실 노동자로 모든 곳에 소외된 노동자가 있다)
(아버지, 엄마, 형, 동생 등 우리 모두가 비정규직으로, 소외된 노동자로 존재할 수 있다)
1. 개념분석
ㅇ주제: 소외된 노동자가 개별적 구체적으로 지금 여기 있다
ㅇ하이데거, 들뢰즈의 존재(심층-존재는 투명)-투명인간(존재+소외자의 교차/중첩)-소외계층(표층-소외 계층은 투명)
-하이데거의 존재
사건에 의해 생성되고, 결여와 가능성으로 기획투사하는 항상 미완의 상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개념
인간은 두 지점을 비교하여 얻어지는 개인이 아니라 미분화된 극특수로서의 개별적 구체적 존재
-들뢰즈의 배치와 사건 개념 https://m.cafe.daum.net/somdaripoem/rA34/138?svc=cafeapp
(배치이론) 기계의 영토화와 코드화가 관계 맺는 장
(사건개념)반복의 과정에서 그때마다 일어나는 것. 사건이란 나름대로 고유한 차이와 강도를 지님
ㅇ 핵심소재- 투명인간,빗방울, 물방울
ㅇ 보조소재-식당, 교회, 고층빌딩,거리, 도마, 지게차,택배상자,간판,자동차, 책상
ㅇ 하이데거의 존재개념-존재'는 존재자에서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이라는 '있음(실재)'의 사실을 지칭.시간성, 비고정성, 비동일성,무, 생성, 관계성, 비가시성(투명)
ㅇ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를 보는 관점
*무시간성,결정주의,본질주의-플라톤,데카르트,헤겔
*시간성,관계성, 생성주의,각자성-하이데거,사르트르, 들뢰즈 등 실존주의, 포스트모던니즘
ㅇ존재자의 위상 (시공간) <전후좌우상하내외 >중에서 뒤, 바닥,바깥에 위치한 존재자 묘사
-위와 아래
-앞과 뒤
2. 이미지-연쇄와 교차(변주, 교차, 확장)
ㅇ존재의 이미지-투명인간, 빗방울, 물방울,
ㅇ물의 이미지-물기, 빗방울, 맺히다, 흘러내리다, 쏟아지다, 적시다
ㅇ식당의 이미지-접시, 식사,잔반, 앞치마,고무장갑, 물기, 도마
ㅇ고층빌딩의 이미지-커다랗다,유리창,흰얼굴,불, 택배상자
ㅇ 거리의 이미지-푸르다, 밖, 내몰리다, 자동차, 통과하다, 넘어지다
ㅇ앞, 안, 위의 이미지-교회첨탑, 고층빌딩,볼록해지다,부풀어
ㅇ뒤, 아래(소외,위축)의 이미지-뒤꿈치, 바닥,물기,쪼그라든다,착각, 지우다,모르다,사라지다,아무것도 될 수 없다,지나치다,넘어지다,쏟아지다
ㅇ종교의 이미지-교회첨탑
ㅇ 자본주의 이미지-도마(요식노동자), 지게차(건설노동자), 택배상자(물류노동자), 간판(간판노동자), 자동차(차노동자), 책상(사무실노동자)
ㅇ 이미지 연상의 연쇄(변주/확장)
*투명인간-물기-빗방울-물방울
*(장소 변주/확장)식당-교회-거리-고층빌딩-어디에나 있다
3. 리듬 - 자음, 모음, 단어, 구, 접미사의 반복을 통한 리듬 창출
ㅇㅅ자음운-접시, 사이,식사,벗어두다,사라지다,순간,당신,사무실,사람들,다시,적시다
ㅇㄱ자음운-차곡차곡,물기,기대,착각,거리,지게차,간판,여기
ㅇㅂ자음운-바닥,빗방울,볼록,부풀어,비,불,밖,분주,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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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G1sMJHo6
여기 있다/맹재범[2024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감상 홍정식)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접시닦이 노동자와 배달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을 떠 올립니다. 모두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죠. 시인은 이런 사람들을 투명 인간으로 정의합니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사라집니다. 내일도 일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죠. 그러므로 앞치마만 의자에 남겨집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진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종교도 나를 구원해 주지는 않아요. 잠시 위로가 되기는 하지만 빗방울처럼 투명한 투명 인간은 쪼그라들기 마련이죠. 오늘 하루 일로 통장에 잠시 돈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걸로는 나를 구하지는 못해요. 착각입니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빗방울이 거리의 색을 바꿔 놓는 건 비가 오기 때문이죠. 세상을 말끔하게 청소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같은 일회성 노동자가 없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죠. 우리 중 누군가가 쓰러지거나 사라져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죠. 결국엔 정규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거리의 푸르름과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결국엔 투명 인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요.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커다란 고층빌딩이란 정규직이겠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매달려 있다가 흘러내린 이들이 하는 일이 식당의 노동자, 현장의 지게차 일꾼, 택배 배달원입니다. 임시방편으론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될 수 없어요.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비정규직의 사투죠. 이들은 일상적으로 어디에나 있어요.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구조조정이나 대량해고로 숱하게 쏟아져나올 사람들이 있어요. 불안해 보입니다. 아버지, 엄마, 형, 동생이 비정규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있는지도 모르죠.
비정규직의 아픔을 투명 인간에게 비유한 시입니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들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도 이웃에도 있는 사람들이죠. 세상은 점차 인공지능과 기계와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어줍니다. 비정규직이 늘어만 갑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시는 이런 기능을 하는 거죠. 방법을 찾으라고 소리칩니다. 과연 정치인들이 이런 시에 관심이나 있을까요? 해석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것이 문학입니다. 이 시로부터 출발하는 거죠. 그들은 항상 여기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