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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ne-Healing(신의 치유)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치료이다.
성경에는 신성한 치유의 많은 예가 있다. 나사로의 이야기는 성경적 치유의 대표적인 예이다.
요한복음 11장 - 예수와 나사로는 친구였고, 예수가 가르치러 떠난 사이 그는 죽었다. 예수는 그 소식을 듣고 나사로가 묻힌 베다니로 돌아갔다. 베다니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 있었다. 그의 자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요한복음 11장 43절에서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에덤에서 나오라고 부르자 죽은 나사로가 걸어 나온다.
요한복음 4장 47-53절에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도착하여 가나를 방문하셨습니다. 이 마을은 그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바로 그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가버나움의 왕실 관리가 아들이 아프다고 찾아온다. 관리는 예수님께 아들을 고치러 오라고 간청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고 말하며 그의 아들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관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들이 다시 건강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유의 정의는 하나님을 알아야 그 답이 나온다. 하나니을 알지 못하면 신유사역의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자 다르듯이 신유의 이해에 대한 관점 또한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적 관점에서 치유를 구속과 병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한다.
"Divine Healing이란 용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서 병에서 깨끗하게 낫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유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뿐 아니라 정신적 결함, 영적인 정죄 상태에서 구원을 받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신유에 대한 현재성에 대한 이해는 일부 논란이 있으나 내가 생각하는 신유의 현재적 존부는 간단하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진행 중에 있다. 그러므로 신유은사는 예수 이후 사도시대나 현재의 성령시대나 신유은사는 계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 끝날까지 지속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신유는 예수와 사도 시대의 신유 기적에 나타났던 만큼 크고도 놀라운 주권을 가지지 못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으로 특히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병을 고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과 기도로써 모든 질병을 전부 혹은 거의 다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병고침 받고자 하는 사람의 믿음이 최종 결정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결코 신유는 사람의 역할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신유가 예수 시대나 사도시대의 신유 기적에 나타났던 것만큼 크고도 놀라운 주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못한다. 믿음은 그 자신만이 주님과 연계하여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Prinston의 Benjamin B. Warfield는 그의 저서 Miracles: Yesterday and Today, True and False에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사도시대의 교회는 하나의 기적을 행하던 교회였다. 그러나 특별한 기적의 은사들이 사도들과 함께 실질적으로 단절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주님과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구속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주장한다. 현재도 미래도 주님과 함께하는 한 신유은사는 계속된다.
현재의 신유은사와 체험이 사깃꾼들의 장난(이단)에 의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신유은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 나의 경험은 차후에 증거한다.
신유은사의 본질과 의의
A. B. Simpson은 "신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일부분이다. 신유는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것 중의 하나로서 그 주춧돌은 갈보리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대의 육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지셨으니"라고 하였다.
치유의 주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신약성경 가운데 4개의 복음서에 나타나는데 26회의 개인 치료와 15회의 집단 치료인 41회의 신유를 기록해 놓고 있다. 마태복음에 25회, 마가복음에 18회, 누가복음에 24회, 요한복음에 5회씩 나타나는 이 기록은 같은 사건이 서로 중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의 찾음은 인간이 지니는 육체적인 질병에 국한 된 것일 뿐이다. 앞서 홍성국이 지적하였듯이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질병의 치유"나 "감정의 상함에서의 치유"같은 것들은 치료 기사를 선별함에 있어서 제외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것까지를 질병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더욱 확장되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여리고로 가던 강도 만난 사람(눅 10:30-36)이나,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요 4:7-29),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기사는 두 질병을 동시에 치료하신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눅 7:11-17). 즉 죽은자를 살림심으로 치료하셨고, 다른 하나는 과부의 상한 마음에 대하여 그 아들을 살리심으로 치료하셨다. 또한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과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기심으로 평안을 얻은 기사(눅 7:37-50)도 있다. 이러한 모든 치유의 기사들은 예수계서 신유의 주체로써 행하신 것들이다.
사도를 통한 성령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교회에 신유의 은혜가 내려진 것은 성령의 갖가지 사역 가운데 하나이다. 성령의 사역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 사역이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의 사영과 동일시 된다. 성령의 사역은 사도행전 이하의 신약에서 나타나는데 성령은 사도들을 도구로써 사용하셨고, 또한 사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초대교회 당시의 교회 일꾼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렇게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시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기인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권능을 부여 하셨으며(마 10:1, 8), 제자들을 위한 대 위임령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위임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하신다(행 1:8, 눅 24:49).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유이다. 예수 승천 이후 교회에 처음 보여진 기사화 된 신유의 은혜는 행 3:2-8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유의 은혜가 나타나기 이전에 사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았다는 기록이 앞서 있다(행 2:1-4). 권능을 받은 사도들은 기사와 표적을 많이 보였다(2:43). 사도들이 보인 기사와 표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는 없으나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바대로 "예수께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셨다"(행 2:22)는 것에서 예수의 사역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신유도 포함되었을 것이며, 여기서 사도들 역시 기사와 표적을 보였다는 것은 신유도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 오늘날까지 신유의 주체는 성령의 사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신유의 주체자로서의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전인 공적 사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Marshall은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고(마 3:13-17, 요 1:32-33),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 가셨으며(눅 4:1, 막 1:12),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돌아 오셨으며(눅 4:14),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하셨고(눅 4:18),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 내셨다(마 12:28). 은사를 통한 성령의 사역. 이제 성령의 사역에서 특이할 만한 한 부분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 사역으로서의 신유 은사이다.
신유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승천 이후에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이라는 특색을 가진다. 즉 하나님의 사역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의 조건을 가진 신유의 사역이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치료의 역사가 각기 나타났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축복으로서 질병에서 해방을 얻을 뿐 아니라,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축복이다. 반면에 말씀에 불순종하면 모든 질병이 인간에게 내려질 것을 경고한다. 그러한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를 믿는 조건이 함게 함으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으며, 또한 치료를 받고자 예수께로 다가선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다. 병고침을 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던 일들이 복음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증거는 무리들을 고치시는 사역에서 찾아진다. 예수님은 어떤 누구도 질병을 칙료 받기 위해 온 사람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는 순종을 치료의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으셨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 하시지도 않았다(마 4:23-24, 9:35, 14:35-36, 15:30, 눅 6:17-19, 9:11 등). 예수께서 결코 그들의 믿음을 보고 고치셨다는 보고를 하지 않는다. 물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고치셨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적 계산을 해 볼 때 그것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시대에 성령의 치료 사역은 이제 은사로써 나타난다. 은사로 주어진 신유의 역사는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요, 불순종하는 모든 사람이 질병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또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이 역시 건강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아니요, 믿음이 없다고 모든 사람이 질병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것은 모두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신유의 은사를 받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은사를 받는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성령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는 것"(고전 12:4-11)이다. 따라서 은사 시대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믿는 자 안에서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고한 목적을 따라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렇다고 질병이 있으면 은혜가 없고, 건강하면 은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Biblical Basis
신유에 대한 성서적인 기초에서는 먼저 용어들을 살피려 한다. 용어들이 갖는 의미를 통하여 신유가 나타나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구약과 신약에서의 신유를 찾을 것인데 각각 질병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사례들을 통하여 신유의 사실들을 고찰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지금가지 연구되어졌던 육체적인 질병에 관한 기사만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의 신유까지를 포함하여 살필 것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신유에 대한 연구들이 사례를 찾음에 있어서 기적과 표적들과 같은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언급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실례로 정신용은 그의 논문에서 성경에 기록된 질병 고침의 사실들을 도표로 작성하였음에도 정신적인 질병의 문제는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다. 물론 항목상 정신적 질병을 내포한 구약의 사례 셋을 제시했다. 신명기 28장 28절에서의 불순종에 대한 경고로서 미치게 하겠다는 것을 사례로 제시했는데 그것은 경고일 뿐이지 미쳤다가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류에 넣을 수 없다. 그렇다면 두 번의 기록인데 다니엘 4장 33절의 느브갓네살의 증상과 고침, 그리고 사무엘상 16장 14절 이하의 기록에서 사울 왕의 정신 분열증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우리의 눈에 보여지는 질병이었을 뿐이다. 스트레스 같은 증상이나, 심적 고통에 대한 신유 기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스트레스가 많은 질병을 유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유제명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아드레날린, 코티숀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생산되어 특별히 우리 몸의 면역 세포인 T임파구를 약하게 함으로 외부에서 병균이 침입을 해도 알아보지 못하고 병균이 몸에서 번식하여 염증을 일으켜 폐렴, 장염, 기관지염 등의 병에 붙잡힌다"고 하였다. 이러한 스트레스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갈등이나 휴식을 갖지 않는 피로, 고민, 긴장 등이다. 특히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을 때 스트레스는 더욱 많이 쌓이게 된다. 성경은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이 일주일에 한 번은 쉬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휴식을 빈번히 넘어가고 있는데 그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건강을 헤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유형의 정신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치료는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사례분석에서 살피겠지만 한나, 나오미, 수가성의 여인, 간음하다 잡혀 예수께 끌려온 여인 등에서 보여지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들까지를 성경을 통해 추적해 보고자 한다.
성서에 나타난 치유에 대한 용어 이해
성서에서는 치유에 대한 용어들이 곧 잘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치유라는 말 그 자체가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병이 낫는다는 표현들일 뿐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띈다.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쓰인 표현은 하루카와 마르페, 그리고 라파이다.
아루카( )는 건강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치료, 고침, 회복, 병이 점차 나마감, 의 뜻으로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건강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단어의 의미는 의사가 상처를 고치기 위해 사용되는 긴 붕대라는 뜻으로서 예레미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렘 8:22, 30:17, 33:6).
마르페( )는 치료(렘 14:19), 고치심(렘 8:15), 몸과 마음의 양약(잠 12:18, 13:17, 16:24), 그리고 재앙에서 구원 받는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고 이 단어는 원기 회복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라파( )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곧 그 행위는 하나님께서 전형적으로 수행하시는 행동이다. 꿰메어 고치다(렘 19:1), 상처나 병을 낫게하다(창 22:17, 욥 5:18), 위로하다(렘 8:11, 겔 34:3), 치료받다(레 13:37, 사 54:5), 본래의 상태로 회복 시키다(대하 7:15, 시 30:3)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고대나 현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써 약 65회가 기록되어 있다. 라파의 수많은 용법들이 민족의 회개까지 수반되어야 하는 고침이다. 하나님의 징벌은 회개와 고치심으로 이끄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호 6:1). 이방 도시와 권세들이라도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받을 수 있다(렘 51:8-9).
이외에도 할람( :회복케하다 -사 38:16), 샤마하( :치료하다 -사 58:5)등이 있다.
신약에서의 치유에 대한 용어는 대체적으로 네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테라퓨오( )로서 이는 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중히 시중들다는 말로써 이것이 성경에 사용된 의미는 병에서 고침 받다라는 뜻이다. Kelsey는 이 단어가 의료적 처방이나 치유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단어가 '치료하다, 회복 시키다, 또는 병을 고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둘째는 이아시스( )로서 치료, 또는 치료 행위, 치유의 뜻을 가지며 이는 이아오마이( )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아오마이는 동사로서 치유하다, 온전케 하다, 영적으로 고치다, 죄와 정죄의 상태에서 회복되다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이 단어는 죄가 곧 질병을 의미함을 나타내며 거의 의학적인 용어로 신약에서 사용되고 있다. 셋째는 소조( )이다. 보존하다, 상하지 않게 지키다, 구제하다,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다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써 고전 희랍어에서 의료적인 의미를 비롯하여 다양한 의미들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치료의 의미는 물론 한 사람을 질병이나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헬라의 개념에는 몸을 구원한다는 것이 전 존재의 구원을 향하여 내딛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완전한 구원 개념과 연결되는 동시에 신학적인 용어인 구원론(soteriology)이라는 말이 유래된다. 넷째는 휴기아이노( )이다. 이는 몸이나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일들의 건강한 상태를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예수와 후대의 다른 사람들의 사역에서 치료가 발생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완전하게 지으셨다. 그러므로 건강을 잃고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건강한 삶을 주님이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병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다양한 치유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구약에서의 신유
질병의 근원
구약 성서는 너무나 많은 부분들을 질병과 치유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질병의 근원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기인한다. 이것은 곧 질병과 죄가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련성은 구약의 곳곳에서 찾아지는데 켈시는 19회의 근거를 제시했다. 바로가 사라를 취했을 때 재앙이 내렸음(창 12:17). 롯의 집 문 밖에서 롯을 위협하는 자들에게 내려진 질병(창 19:11).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 했을 때 그의 집 여자들의 태를 막으심(창 20:18). 오난이 땅에 설정(泄精) 했을 때 죽임을 당함(창 38:9-10). 모세의 손이 문둥병에 걸렸다가 회복됨(출 9:8-10).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에게 내린 문둥병(민 12:10).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거역했을 때, 그리고 후에 그들이 바알브올을 섬겼을 때 내려진 질병(민 14:11-12, 36-37, 17:12-15, 25:3-9, 17-18, 31:16). 광야에서 백성들이 폭식을 함으로 내려진 재앙(민 11:33). 블레셋 인들이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 얻어진 질병(삼상 5:6-6:12). 하나님의 궤가 돌아왔음에도 기뻐하지 않은 여고냐의 자손들에게 내려진 질병 (삼상 6:19). 다윗의 무모한 인구 조사로 인한 질병(삼하 24:10-15). 불충한 여로보암의 아들을 죽게 하기로 하나님이 결정하심(왕상 14:10-14). 아하시야가 바알세붑에게 자문을 구함으로 그의 병을 치유시키지 않으심(왕하 1:16). 게하시의 탐욕으로 인한 문둥병(왕하 5:26-27). 엘리사의 기도로 인한 하나님의 역사로 적들의 눈을 멀게함(왕하 6:18-20). 유다왕 웃시야의 교만으로 인한 문둥병(대하 26:16-20). 산헤립의 군대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함(왕하 19:35). 여호와를 버린 여호람은 창자에 불치의 병이 생김으로 죽음(대하 21:14-15). 그외에도 유다왕 아사랴가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함의 죄로 말미암아 문둥병으로 죽음(왕하 15:3-5)도 찾아진다.
신명기적 유대교는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즉 질병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들 가운데 하나였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지는 질병은 그 종류가 끝이 없었다. 따라서 질병의 근원은 곧 죄라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찾아지는 또 다른 질병의 운인은 죄와 상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질병이 올 수 있다. 욥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죄와 관계없이 사단의 계략에 의해 질병을 얻었다.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단이 질병을 가져다 준 것이다(욥 2:6). 죄와 상관없는 다른 질병의 원인이 찾아지는데 그것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하나의 경우이다. 한나는 성경에서 고통을 받는 원인을 찾을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인 것을 놓고 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고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없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으로 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선지자였음을 볼 때 추측할 수 있다.
구약에서의 신유 사례및 분석
구약성경에서 신유의 사례는 상당히 많이 있다. 본 연구에서 그것들을 다 찾아 살핀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다만 몇가지 유형의 사례들만을 살펴 보고자 한다. 그 유형은 집단 신유와 개인 신유로 나눌 수 있다. 개인 신유는 다시 육체적인 질병의 신유와 정신적 질병의 신유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또한 본절에서는 단순히 사례들을 열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례들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질병에서 치료받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유의 방법은 어떤 것인지 등을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시편에서 치유를 위한 하나님의 신유를 구하는 기도를 살피고자 한다.
집단 신유. 하나님의 신유는 집단에게 나타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집단을 치료하신 하나님의 치료 사건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게 함으로 그것을 쳐다보는 순종의 사람들을 치료하신 사건이다. 질병이 나타나게 된 경위와 신유의 경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벡성들은 호르몬산에서 발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을 향아여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길의 험악함을 인하여 백성들은 마음이 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했는데 그 원망은 애굽에서 살게 할 것이지 왜 인도하여 광야에서 죽게하려는가? 나는 것과 다른 하나의 원망은 식물과 물이 없음을 원망한 것이다. 이러한 원망에 따라서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중에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시므로 죽은자가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고통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원망한데서 범죄가 드러났고, 그 죄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이제는 그들이 뱀들이 떠나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간청한다. 모세는 백성들의 간청을 마다않고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살 것이라고 가르치셨으며 그대로 순종한 자들은 살아났다(민 21:4-9). 이 기록을 요약하면 질병의 원인은 원망에서 비롯된다. 그 원망은 곧 죄이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질병을 제공하셨다. 비록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질병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긍휼을 베푸신다. 그러나 그 긍휼에는 조건이 따른다. 말씀에 순종하라는 조건이다. 따라서 그 과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간의 범죄요, 둘째는 하나님의 징계인 질병이요, 셋째는 죄의 자복 및 간구, 냇째는 순종을 요구하심이며, 다섯째는 순종의 행위요, 여섯째는 질병의 치료이다.
개인 신유. 역시 하나님의 신유는 개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개개인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신유는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들 수 있다. 육체적이라함은 인간의 육신에 나타난 질병을 말하는 것이요, 정신적이라함은 인간의 육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음의 질병이다. 인간이 육체와 마음, 또는 육체와 정신,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영혼과 육이라는 것은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에 질병이 있는 것은 곧 육체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요, 역시 반대로 육체에 질병이 있다는 것은 마음도 질병에 시달린다고 본다. 구약에서의 개인에 대한 신유의 기사를 살펴봄으로 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육체적 질병의 신유. 첫째는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 기사이다.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나아만은 자신의 문둥병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계집아이를 통하여 선지자 엘리사에게 소개되고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씼으면 깨끗하리라고 권고한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친히 손을 상처에 흘들므로 자신의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으나 요단에서 씼으라는 말에 노를 발하였다. 그 때 그를 따랐던 종이 재차 권구하자 나아만은 요단에서 몸을 일곱 번 씼으매 지니고 있던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 후 나아만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다는 고백을 한다(왕하 5:1-15). 이렇게 나아만의 질병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되었음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질병을 치료하셨다. 명령을 통하여 그의 순종 여부를 살피셨고 나아만의 개인적 생각은 그의 질병 치료에 큰 장야였으며, 오직 순종만이 그를 치료할 수 있게 했고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고백하게 했다.
둘째는 히스시야의 질병 치료기사. 히스기야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우리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에게 나타난 질병은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히스기야의 질병에 대하여 이제 그 생명이 끝났음을 알리게 하셨다. 이 때에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의로운 행위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며 통곡하였다. 히스기야가 절실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미처 성읍을 빠져 나가기도 전에 다시 이사야를 부르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히스기야의 기도와 그 눈물로 인하여 질병에서 낫게하리라고 하셨다. 그 뿐 아니라 생명을 15년간 연장시키셨다. 이사야는 즉시 달려가서 히스기야의 종처에 무화과 반죽을 하여 놓으므로 질병에서 회복되었다(왕하 20:1-7). 히스기야의 질병이 하나님의 은헤로 고쳐짐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질병에 걸려 죽게된 히스기야의 모습, 선지자를 통하여 죽음을 경고받게 되며, 그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인정해 달라고 간청함,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선지자를 통하여 질병에서 치료 받음.
셋째는 욥의 질병 치료 기사. 욥의 질병 치료 기사는 욥기 전체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만큼 방대한 기사를 갖고 있다.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이었다(욥 1:1). 그런 욥을 시기한 사단은 하나님과의 천상대화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그가 의로운자로 사는 것이지 결코 그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의로운 자로 살지 않을 것"(1:9-11)이라고 말한다. 1차 시도를 통해 소유물을 쳤으나 사단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1:12-22), 2차 시도를 통해 욥의 몸을 치는 계획을 시도했다. 욥에게 주어진 질병은 악창이었다(2:7-8). 의인이었던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결국은 "스스로 의로움을 얻은 것 처럼"말하므로 그것이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었음을 시인하게 된다(40:8, 42:6). 그리고 욥은 신유의 은혜를 입어 강건하여졌고, 소유물도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으며, 나이 늙어 기한이 차서 죽었다(42:10-17). 욥의 이 기사를 통해 그가 지녔던 질병의 근원이 밝혀진다. 욥은 자신의 죄 때문에 질병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사단의 흉계에 의해 무고한 가운데 질병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다라 욥은 사단을 통하여 질병을 얻었고 역시 하나님의 역사로 질병에서 치료를 받았다. 욥의 경우에서도 신유의 절차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음을 볼 수 있다.
사단의 시기로 인하여 질병이 발병되고, 사단이 질병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이 허락한 질병이심을 볼 수 있고,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심, 신유의 은혜 입음.
정신적 질병의 신유
구약성경은 육체적인 질병에 관한 신유의 은혜만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인 질병까지를 다루고 있다. 두드러진 정신적 질병의 치료는 룻기의 나오미와 사무엘서에서의 한나 기사를 통하여 찾을 수 있다.
첫째 나오미의 신유 기사. 나오미는 과부로서 많은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산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 둘과 함께 베들레헴에서 모압지방으로 이주를 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 남편이 죽게 되었고, 두 아들이 모압여인을 취하여 결혼을 하였는데 역시 두 아들이 죽고 말았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좋은 소식이 있으므로 모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두 자부를 각기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 갈 것을 권면한다. 나오미의 마음은 상당히 괴로운 가운데 있다. 나오미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 1:13)고 고백한다. 그녀가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남편을 둘 수 없음이요, 혹이 남편을 둔다하더라도 언제 아들을 낳아 그가 자라기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1:12-13). 며느리들에게 더 이상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 나오미의 마음이요, 그들과 함께 함으로 그녀의 정신적 고통은 계속해서 남게 되는 것이다.
나오미의 정신적 고통을 알리는 표현은 1장 20절에도 나타난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나오미는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것을 부탁한다. 도리어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한다.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전능자가 괴롭게 했다는 이 뜻을 나오미는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풍족하게 나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징벌로 자신을 괴롭게 했다고 말한다(1:21).
나오미의 또 다른 정신적 고민은 며느리 룻의 안식할 처소였다(3:1). 그것이 자신이 며느리에게 최소한의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금가지 돌보아준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로 여겼고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룻은 아들을 얻었다(4:13). 아들을 얻음으로 이제 나오미의 정신적 고통은 끝나게 되었다. 비록 룻이 낳은 아들이지만 그것은 결국 나오미가 낳은 아들이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시는 신유의 은혜였다. 아들의 이름은 오벳인데 나오기가 아들을 낳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4:17).
나오미의 신유의 은혜 기사를 통하여 질병의 근원과 신유 역사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게 된다. 징벌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주어지고, 그 고통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었으며, 그의 정신적 질병은 자손의 그침에 있고, 하나님께서 신유의 은혜를 베푸셨고, 정신적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함을 얻음.
한나의 신유기사. 하나 역시 하나님의 신유의 은혜를 입은 여인 중 한 사람으로 선별할 수 있다. 이 여인의 정신적 질병은 역시 자녀 생산이 되지 않음에 있다. 남편이 아무리 사랑을 한다해도 그녀 자신에게서 얻어진 자녀가 없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당 시대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아무리 위로해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브닌나의 괴롭힘으로 더욱 한나는 정신적 곹을 지닐 수 밖에 없었고 눈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삼상 1:6-7). 그녀의 정신적 괴로움을 남편 엘가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위로한들(1:8) 한나의 마음이 밝아질 수는 없었다. 한나의 정신적 고통을 재변해 주는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나다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1:10-11). 하나의 간절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제사자의 꾸짖는 소리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1:15). 이러한 정신적 고통속에 있는 하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녀를 생각하사 잉태케 하셨고 아들을 낳게 하셨다(1:19-20). 정신적 질병에서부터 치료함을 받은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기도하기를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2:1). 한나는 자신이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의 구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나는 자신의 정신적 질병에서 구원 받았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무자함의 심적 고통에서 자녀 생산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지금까지 골칫거리로 지니고 있었던 정신적 질병이 치유된 것이다.
한나가 어떤 이유로 인하여 무자했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얻음으로 고통이 사라졌음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있었고, 그 원인은 자녀가 없었음이며, 따라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그녀는 자신의 정신적 질병을 하나님으로부터 해결 받게 되었다. 하나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였다.
치유를 위한 기도
시편에 나타난 신유와 관련된 기도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6장 2절, 41장 4절, 103장 3절, 147장 3절의 네 부분만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구절들을 분석하여 볼 때 질병의 근원을 역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곧 범죄함으로 인한 것이다. 시편기자는 범죄로 인한 질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한다(시 41:4). 치료의 주체는 역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질병만을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시 103:3). 그리고 그것은 육체적인 질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질병까지를 포함하고 있다(시 147:3). 더 나아가 영혼의 질병 문제까지 신유의 은혜로 이해하고 있다(시 6:2).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Keil과 Delitzsch는 6:2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내려 마땅하신 벌 대신에 당신의 사랑을 베푸시는 친절함과 상냥한 자비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혼의 곹옹이 이미 극에 달함으로 육체적인 병까지 번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의고 지쳐 있었다. 따라서 다윗은 치료를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뼈가 떨리고 있다고 탄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곧 육체적인 질병은 영혼의 문제로부터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탐 마샬은 "육체의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영적인 것에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신체적 상태의 여하에 따라 영적 정서적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영혼의 문제는 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육체적 질병을 지닌자는 영혼의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영혼의 문제는 결국 죄의 문제이므로 구약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질병의 근원이 죄라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게 만든다.
신약에서의 신유
질병의 근원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에서도 질병의 근원은 다각도로 나타난다. 첫째는 질병과 죄의 관계성이다. 중풍병자에게 예수께서는 죄 문제를 지적하셨다.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 다가선 사람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고 하는 영적인 문제를 진단하셨다. 이 사람을 치료하실 때 예수께서는 육체적인 질병에 관해서는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람의 질병의 문제는 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질병도 나타나고 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요 4:),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요 8:3-11) 등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질병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1-3). 셋째는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질병이다. 이성주는 딤후 2:2절의 말씀을 통하여 과로하지 않고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역시 김경래도 딤후 2:2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질병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질병은 약을 써도 무방한 것이다. 넷째는 마귀와의 관계성이다. 신약성경은 마귀가 질병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이해하게끔 만든다.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병자를 예수께서는 고치셨고(눅 13:16), 많은 귀신들을 내어 좇으셨으며(마 8:16),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셨다(마 12:22). 팔래스틴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질병은 마귀의 짓으로 돌렸고 여러 가지 정신적 질병은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복음서들은 정신병을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유의 사례 및 분석
신약의 신유 사례를 살핌에 있어서 신유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을 구분하지 않고 고찰하고자 한다. 라서 선택된 본문만을 분석한다.
집단 신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에서 집단적인 신유는 15회나 된다.
그리고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사도들을 통한 집단적 신유의 기사 역시 수회 나타난다.
이러한 많은 기사 가운데 예수께서 보이신 눅 17:11-14의 기사를 살펴 보고자 한다.
예수께서 지나실 때 열며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 자신들의 형편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하셨고, 그들은 가다가 자신들이 깨끗함을 얻었음을 발견하였다. 10명의 신유를 얻은자 중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와서 사례를 하였고 예수께서는 오직 한명만이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지 않음을 한탄하시면서 이방인이 이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면서 돌려 보내셨다. 이것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 문둥병자들이 어떻게 질병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② 그들은 예수께 간청하였다. 이는 기도로 이해된다.
③ 신유의 은혜가 이들에게 베풀어졌다.
④ 신유의 은혜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⑤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혼의 구원까지 얻었다. 이는 영육의 구원으로서 전인치유이다.
개인 신유. 신약성경에서 개인에게 신유의 은혜가 주어진 것은 상당히 많다. 육체적인 질병에서의 신유와 정신적 질병에서의 신유와 귀신에 의한 질병에서의 신유이다. 그리고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질병에 대한 신유는 신약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이성주와 김경래가 몇몇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부주의로 인한 질병에 대한 설명으로 확정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다. 그러므로 부주의로 인한 것은 여기서 취급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보이신 개인적 질병의 치유 사례는 복음서에 41회 나타나 있고,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치유 사례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9번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정신적인 질병으로부터의 신유를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신유의 기사는 더 많은 분량이 될 것이다.
1) 육체적 질병의 신유
마가복음 2장 3절에서 12절에 중풍병에 시달리는 사람을 친구들이 예수께 데려와서 치료받은 기사가 있다. 이 기사를 통하여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치료 받는 과정을 제공받게 된다. 예수께서는 네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 그리고 죄사함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이 중풍병자의 질병은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와 함께 질병에서 해방되었다.
사도행전 3장 2절에서 10절에는 성전에 있는 앉은 뱅이를 베드로가 치료하는 기사가 실려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질병이 치료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는 베드로의 믿음이다. 환자는 일어섰고, 결국 하나님께 찬미를 드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모던 백성이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았다. 이 기사를 통해 사도들의 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치료됨을 보여준다.
2) 정신적 질병의 신유
요한복음 8장 3-11절에서 간음중에 잡힌 여인의 정신적, 영적 질병의 치료 기사가 나온다. 이 여인은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결과로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헨드릭슨은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간음 중에 잡힌 이 여인은 결혼한 여인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여인은 도덕적으로 암흑속에 행하고 있는 자였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어두움을 쫓아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12절 이하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빛이다 라는 말씀은 곧 이것을 뒷받침한다. 여인을 고소하려는 자들은 지금 이 여인이 공중에 조출됨으로 초래되는 치욕감이나 공포감 따위는 생각지 않고 있다. 다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할 뿐이었다. 그러나 여인에게 누구도 정죄하지 못했고 예수께서도 정죄치 아니하셨다. 다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하셨다.
즉 이 본문이 치료의 기사를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여인이 가지는 수치감과 공포감으로 말미암은 불안은 분명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고통을 해결해 주신 것이다. 풀핏주석 요한복음 하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의 사명은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이다. 형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그의 사명이다. 죄가 용서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으며, 그녀의 믿음에 의한 구원도 아니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만 하셨다.
여인은 상처를 갖고 있다. 비록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상처이기는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상처를 감싸 주셨다. 여인의 믿음과 상관없이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전폭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치료였다. 이러한 예수의 치료는 여인으로 하여금 육신도 살고 영혼도 살게 된 치료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여인의 치료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는데, 첫째 이 여인의 고통은 죄의 결과였다. 둘재 그 고통은 육체적이기 보다는 정신적, 즉 수치와 모멸, 공포,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이었다. 셋째 여인의 믿음과 상관없이 예수의 자비를 받는다. 넷째 정신적 고통에서 뿐 아니라 영혼의 파멸에서 치료의 구원을 받았다.
3) 귀신들림에서의 신유
예수께서 보이신 치유 가운데에는 많은 육체적 질병자들이 있었다. 마가복음 9장 17절에서 29절에 귀신들인 아이를 그 아비가 예수께 데려와서 치료받은 기사가 있다. 이 기사를 분석해 보면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아비의 노력으로 예수의 능력을 받아 치료하게 된다. 첫째 왜 아들이 질병에 걸렸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둘째 아비가 긍휼을 구하지만 믿음은 없다. 셋째 예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셨다. 넷째 믿음을 가짐으로 치료를 받는다. 다섯째 병자 자신의 믿음이나 기도가 필히 요구되지는 않는다. 여섯째 기도만이 능력을 보일 수 있다.
또 다른 기사를 보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으로 치료의 기적을 보이신 기록이 있다(마15:21-28). 이 기사를 통해 찾아지는 것은 이방인도 예수만 빋으면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이 첨가 된다.
Historical Basis(역사적 기초)
신유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고찰함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 신유를 방해하는 여러 주장들은 역사적 근거들이 희박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요, 또한 오늘날에는 신유의 은혜가 과거의 것과 차이가 있다는 주장들을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의 주장과 같이 신유가 한 시대에 국한되었던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하는데 사실 교부들의 글에서도 신유의 은혜 체험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전혀 그들의 주장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신유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일들은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성경적 배경에서 성경에 나타난 역사성은 다루었기 때문에 본 절에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고 사도들 이후의 초대교회사에 속하는 속사도 교부들의 글과 몇몇의 교부들의 신유에 대한 언급을 찿고, 중세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신유 행적에 관한 사실들은 간단히 살피면서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서의 신유 사역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부들의 시대 (주후 430년의 Augustine까지)
로마의 Clement 속사고 교부로 불리우는 Clement는 95-96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로마인들의 편지로 명명된 클레멘트 1서 16장 5절에 보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상처를 입었고 우리의 허물들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온 채찍이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그의 상처들에 의해서 인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56장 6-7절에 보면 "그는 고통스럽게 하시나 다시 건강하게 하신다. 그는 상하게도 하시지만 그의 손이 치료하신다"고 언급한다. 59장 4절에서는 치료해 달라는 기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64장 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영들의 주인이시고 모든 육체의 주라고 말한다.
저자가 분명치 않으나 설교 혹은 권면으로 분류되며 Clement
2서라고 부르는 글 9장 5-7절에서는 온전히 육체가 치료를 받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만일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셨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부르셨다면 역시 우리의 보상을 이 육체안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여전히 치료받을 시간이 있는 동안에 의사이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를 맡기고 그에게 합당한 것을 드립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역시 14장 3절을 통해 육체가 부패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이 구절에서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 육체는 영의 복사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사본을 부패시키는 어떤 사람도 언본을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이신 성령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고 단호히 말한다. 즉 우리는 이것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완전치 못한 것은 영을 소유할 수 없다. 또한 성령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몸을 온전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안디옥의 감독 Ignatius. 주후 11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속사도 교부인 Ignatius의 편지들 가운데 Policap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Ignatius가 Policap에게 신유를 베풀도록 권면하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1장에서 그는 "육체적이고 영적인 관심사들을 계속적으로 돌보면서 당신의 직책을 감당하라"고 권면하면서 "완전한 경기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질병을 감당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2장에서는 모든 상처를 똑같이 다루어서는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염증과 같은 것들은 차가운 압박붕대로 통증을 완화시키라고 권면한다. 이같은 표현은 실질적으로 신유의 은혜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치료법을 통해 돌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질병을 감당하되 외과상 같은 상처는 의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속사도 교부 이후의 교부들. 순교자 Justine Marter(100-165년)는 신유를 영적인 은사로 받아 들였을 뿐 아니라 이것은 사도시대와 아울러 교부들에게도 주어진 영적 은사라고 생각했다. 저서인 The First Apology, On the Resurreection, The Second Epistile of Clement 등에서 신유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리용의 감독이었던 Irenaeus(140-203)는 Against Heresies(이단 논박)에서 이단은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할 수 있었던 신유의 기적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곧 기독교는 당시대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신유를 베풀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Tertullian(155-230)은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이름까지 밝히기도 하였다. 그는 북아프리카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으로부터 구출을 받았으며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습니다. 안토니우스 황제의 아버지인 세베르투스도 성직자를 찾았으며 기름을 발라 그의 병을 고쳐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했으며, 죽을 때까지 궁정에 남아 그의 곁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Origen(185-254)은 병을 고치는 주님의 능력은 계속 역사하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켈수스 반박문에서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치료하는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Ambrose(339-397) 역시 신유의 은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Augustine(354-430)은 초창기에는 신유에 대한 반대를 하였지만 자신이 죽기 3년전에 입장을 바꾸었다. 자신이 체험한 70여개의 기적들 가운데 몇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눈먼 사람의 시력이 회복되었으며, 둘째 카르타고의 한 주교는 직장의 누관을 치료 받았으며, 셋째 역시 카르타고의 한 의사는 응혈을 치료받았다. 넷째 한 배우는 중풍과 탈장을 치유받았고, 다섯째 이웃의 한 사람은 악령에 의해 생긴 병을 치유 받았으며, 여섯째 어린 소녀가 귀신으로부터 구출을 받았다. 일곱째 눈먼 여인의 치료와, 여덟째 마차에 치인 한 소년이 치인 상처도 없이 치료받았고, 아홉째 한 여인의 유방 종양을 치료받았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기적들은 우리 시대에는 계속 허락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 항상 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기적들에 익숙해지게 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어 열광하게 만들었던 그러한 일에 냉담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그러나 내 말이 그 어떤 기적들도 오늘날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롷 이해되어져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내가 이 책을 집필할 그 당시에 나는 이미 한 맹인이 밀라노의 두 순교자들의 시체에 가까이 감으로 그의 시력이 회복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이와같은 종류의 또 다른 일들이 너무나 많이, 심지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와같이 초대교회의 교부들 시대에는 사도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신유의 역사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에 명명하지 않았던 다른 교부들도 역시 신유의 은혜를 체험, 또는 현장들을 목격하고 신유를 베풀었다.
신유의 암흑기
교회의 신유 사역은 초대 기독교사에서 성황리에 나타났던 것에 비하여 중세시대에는 신유사역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후 590년부터 604년에 이르기까지 교황 Gregory가 등장하면서 질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단련이라고 보았다. 이후 교회는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사상을 그대로 전수 받았으며 따라서 신유사역은 공적 사역에서 제외되었다. 이 시기에는 병든 사람의 치유를 위한 기도보다는 임종을 위해 성사를 했다. 그렇다고 이 암흑의 시대에는 전혀 신유사역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예배나 모임을 통해서는 시행될 수 없었지만 수도원적인 영성 가운데 신유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었다.
St. Francis of Assisi. Francis(1181-1226)는 프란시스카 교단의 설립자이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활발한 신유목회를 한 사람이다. 그의 신유 역사를 살펴보면 수 많은 기적의 사건이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Toscanella에서 절름발이를 고쳤으며, Narmi에서 중풍병자를 고쳤고, 구신들린 여인을 치료하였으며, Ancona로 여행중 San-Severino에서 Acto라는 젊은이의 문둥병을 치료하였다. 또한 Citta Della Picve에서 귀머거리요 벙어리인 거지를 고쳤다는 기록을 보여 준다.
Vincent Ferrer. Vincent Ferrer(1350-1419)는 도미니칸 교단의 설교가로서 발렌시안에서 출생하여 심판의 천사로 알려졌다. 그는 실의에 빠져 병이 들었을 때 환상중에 성 도미니카와 성 프란시스가 만났던 주님으로부터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리스도를 전파하라"는 위임을 받았다. 1399년 11월에 그는 아비뇽(Avignon)을 떠나 20년간 사도직 설교를 하였는데 때로는 성령에 이끌려, 때로는 초청에 의해서, 스페인과 남부 프랑스, 북부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설득력을 가지고 회개의 필요성과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으며 저연과 은혜의 질서 속에서 신유의 기적은 항상 그의 뒤를 따라 다녔다.
신유의 르네상스(종교 개혁기-1800년대)
중세시대에 신유사역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암흑기에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맞아 다시 신유사역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기에 이 시기를 신유의 르네상스라 할만하다.
Martin Luther. 종교 개혁가 Luther는 기적이나 교회의 신유사역을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는 95개 논제에서도 교황은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야고보서를 비록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했으면서도 1545년 죽기 바로 전에 야고보서의 말씀에 기초하여 신유예배에 관한 지침을 썼다. 그는 생전에 친구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친구 Miconius가 결핵 말기로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시여 제가 살아 있는 동안 그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네를 나보다 더 오래 살게 하실 것일세. 나는 이 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네. 분명코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네. 아멘."하고 편지를 썼다. Miconius는 보내온 편지를 읽는 순간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고 술회하였다. Miconius는 병고침을 받았고 Luther보다 더 오래 살았다. 뿐만 아니라 친구 Melanchthon이 여행중 병들었을 때에 역시 기도해 줌으로 고침을 받았던 기록도 있다.
John Wesley. 감리교의 설립자이며 유명한 설교가인 Wesley는 많은 신유 역사에 관한 글들을 남겼다. 그 글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직접 신유목회를 통하여 체험한 사건들이다. 한예로 그는 1746년 3월 17일의 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다운스씨와 쉐퍼드씨와 함께 뉴케슬로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스메톤에 이르렀을 때 다운스씨가 몸시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말도 간신히 땅 위에 발을 세웠다. 말을 타고 7마일쯤 갔을떄 나는 몸시 피곤했고 몇 달동안 아팠던 것보다 더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셔서 혹은 아무 수단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람이나 짐승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즉시 나는 피곤과 두통이 사라지고 동시에 내가 탄 말도 더 이상 절지 않았다. 말은 그날도, 그 다음날도 절지 않았다. 이것 또한 매우 이상한 사건이었다.
반면에 John Calvin에게 있어서의 신유사역은 애매하다. Calvin은 신유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초대교회에만 한정적으로 주어졌던 하나님의 은사로 보았고, 따라서 더 이상 우리는 기적의 시대를 살지 않고 있으며 믿음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런 권능은 나누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신유사역은 인정되지 않았다. Calvin에게 있어서는 신유사역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였지만 그 뒤를 이어진 George Fox나 Charles H. Spurgeon은 신유사역에 열중하였던 인물들이다. Fox는 기적의 사례집을 통하여 자신의 사역 가운데 나타났던 150건의 신유 사례를 자세히 수록하고 있으며, Spurgeon의 전기 작가인 럿셀 콘웰은 교인들이 교회에 신유를 위한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으며 무수한 신유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한다.
근대의 신유사역(1800년대 이후 현대까지)
런던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쳔 헤럴드 편집인의 부인인 Michael Baxter와 미국 성결 운동의 지도자인 William E. Boardman이 세운 "안식의 집" 집회에서 신체적 질병을 치료받았던 Andrew Marry목사이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성결과 신유의 메시지를 증거하였다. 자신의 질병에서 치료받은 그는 신유라는 책을 썼다. 다른 한 사람은 A. J. Gordon이다. 그는 치유 사역이라는 고전적인 책을 썼다. 그는 여기서 예수의 지상 사역은 병 고침과 죄용서 두 가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고 영혼과 육신의 회복과 치유가 병행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소원이라고 말한다.
A. B. Simpson은 19세기 신유사역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38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신유사역을 수행했다. 자신의 응접실에서 금요 집회를 하였으며 이 집회는 특히 신유의 은총을 강조한 설교와 기도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의 사중의 복음이라는 저서에서 신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유는 의학적 치유가 아니며, 형이상학적 치유가 아니다. 최면술 적이거나 강신술도 아니며 의지력도 아니다. 또한 기도 그 자체가 병을 고친다거나 믿음 자체가 병을 고치는 것도 아니다. 신유는 인간의 육체속에 하나님이 주입하시는 초자연적 신적 능력이며, 인간의 논리적 사고나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증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일부분이며, 육체를 소생시키는 성령의 하시는 일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며 교회 역사의 모든 사실들과 일치한다.
Simpson은 자신의 체험을 통한 신유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썼다. 그의 영향하에 카우만과 길보른이 복음이 전파된 일본이나 한국은 그대로 신유를 믿고 따르게 되었다. 한국보다 먼저 이 복음이 전파된 일본은 동양 선교회를 조직하고 도쿄 성서학원을 설립하였는데 그 학교의 입학 안내에서 특색으로서 사중복음을 말하고 있다. "그 특색 : 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 성결, 신유를 얻고 또 주의 재림도"라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동양 선교회의 목적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본회의 목적은 ~~ 구원, 성결, 주의 재림, 신유를 주장합니다. ~~ 신유란 어떤 병이라도 낫게 되는 일입니다."
이성봉. 이성봉 목사는 한국의 Moody라고 불리우는 인물로써 1900년 7월 4일 평안남도 강동군 간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가족은 그가 6세 되던해에 개종을 하였으며 20세가 되던 해까지는 형식적인 신앙을 유지하였다. 우연히 병이 생김으로 의료 행위로 치료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중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기도 3년만에 신유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후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과 동시에 수원교회를 개척하였으며 1931년 목사 안수후 목포로 전임하였고, 그후 신의주로 전임하였다. 교단내에서는 그를 따를 만한 이가 없을 정도로 명실공히 능력있는 목회를 하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황해도 송화 무초교회에서 집회 인도중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나는 입으로 설교를 못하면 죽음으로 하리라"고 함으로 또 한번의 신유의 은혜를 체험하였고, 해남에서 집회중 급성 맹장이 발생하였을 때도 역시 신유 경험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그는 전국을 돌아 다니며 복음과 함께 신유의 은혜를 전하였고 경험케 하였다. 그는 신유란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 성지(聖旨)임을 믿어 치료받는 것이요, 직접적인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였다. 첫 개척지 수원교회에서 그는 주님의 권능으로 병자를고치고 귀신 들린 자들을 놓임받게 했으며, 7개월 동안 몸져 누워있던 무당에게 예수를 믿게하여 병을 고쳤다. 그가 시무한 교회들은 신유의 역사로 넘쳤고, 부흥사로 활동면서도 신유의 이적을 많이 행하였다. 김진환은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를 "그의 부흥회는 특히 신유의 이적으로 유명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1965년 8월 2일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응조. 김응조 목사는 1896년 12월 3일에 경상북도 영덕에서 출생하였다. 12세때에 부친과 함께 개종하였다. 1917년 4월에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920년 졸업하였다. 그후 5년간의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1926년 4월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해 10월에 북선지방의 감리 목사로 파송되었고 부임후 3년 6개월을 사역하였는데 그가 부임할 당시의 북선 지방은 10개처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북선 지방을 떠나 1년 6개월 후에는 10개처의 교회가 40개처의 교회로 성장되었다. 이러한 부흥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온 힘을 쏟은 결과이다. 김응조는 북선 지방에서의 사역 기간동안 내내 신유 사역을 수행하였다. 왜냐하면 북선 지방은 특히 사귀병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북선 지방은 남선과 달라서 사귀병이 많다.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던지 한 두 사람은 의례히 사귀병자이다. 풍토와 기후의 관계인지 문둥병자는 없는 대신 사귀들린 병자가 허다하다. 여기서 나는 사귀의 셰계의 비밀과 행동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나는 여러곳에서 집회하는 가운데 많은 사귀들린 병자를 고쳐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와 함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병을 얻게 되었다. 그는 북선 지방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사역을 회고한다.
나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폐병자와 동거도 하고 열병자와 한방에서 뒹굴고 사귀병자와 철야도 해 보고 몇백리 길을 도보로 걸어서 가기도 하였고 교회에 사건이 있을때에는 동역자와 같이 철야기도도 하였고 박해와 환난이 있을 때에는 진두에 서서 지휘도 하였고 .... 일천여리의 거리되는 광범한 지방을 나의 활동 무대로 삼았다. 이렇게 활동하는 동안 유한한 아늬 육체는 외강내허의 위험한 지경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르게 되었다. 신경쇠약에 소화불량, 불면증에 폐렴으로 시작한다. 4대병의 급습을 당하여 나는 병의 포로가 되었다.
김응조 목사는 북선을 떠나서 서울 외곽에서 기거하면서 자신이 세가지 무서운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심령상 고민이요, 둘째는 육체상 병고요, 셋째는 생활상 고통이 그것이다. 여기에 그는 머물수 없었다. 따뜻한 곳에서 요양과 함께 사역을 할 수 있기를 본부에 요청하였고 그는 목포교회로 부임되었다. 목포교회는 당시 개척교회로서 장년, 유년 합하여 15명뿐이었다. 요양은 커녕 도리어 다른 질병까지 더해지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유달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은혜를 주시든지 죽음을 주시든지라는 각오로 백일 특별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30일만에 들으셨고 응답하셨다.
김응조 목사는 자신이 신유를 직접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능력을 받아 백일 대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5명의 신자를 120명으로 성장 시킨 것도 하나님게서 육신의 구원을 통하여 영혼이 새힘을 얻게 된 결과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신유 체험과 함께 신유 사역을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술된 많은 책들 가운데서 유독 신유에 관한 글은 제외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그의 신유관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그의 고백속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신유가 육체적인 치유뿐 아니라 영혼과 마음의 건강까지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