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 [?-945(혜종2)] 王規
#高麗史127卷-列傳40-叛逆1-王規-001
○王規廣州人事太祖爲大匡.
왕규는 광주(廣州) 사람으로 태조를 섬겨 대광(大匡) 벼슬을 했다.
太祖納規二女一爲第十五妃一爲第十六妃十六妃生一子曰廣州院君.
태조가 왕규의 두 딸을 후궁에 받아들여서 하나는 열다섯째 왕비로, 다른 하나는 열여섯째 왕비로 삼았는데 그 중 열여섯째 왕비가 아들을 하나 낳았으니 광주원군(廣州院君)이다.
惠宗二年規 譖王弟堯及昭有異圖惠宗知其誣恩遇愈厚.
혜종(惠宗) 2년에 왕규는 왕의 아우 왕요(堯)와 왕소(昭)가 반역을 음모하고 있다고 참소하였으나 혜종은 그것이 허위임을 알고 그들을 더욱 후하게 대우하였다.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혜종의 이복 동생인 왕요(후일의 정종)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혜종의 이복 동생인 왕소(후일의 광종)
司天供奉崔知夢奏:
사천 공봉(司天供奉) 최지몽(崔知夢)이 왕에게 말하기를
"流星犯紫微國必有賊."
“유성(流星)이 자미원(紫微垣)을 침범하였으니 나라에 반드시 역적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惠宗意規謀害堯昭之應乃以長公主妻昭用强其族規不得行其謀.
혜종은 왕규가 왕요와 왕소를 모해하려는 징조로 생각하고 맏공주(公主)를 왕소의 처로 주어서 그의 친족을 강화하였으므로 왕규가 그 음모를 수행하지 못하였다.
왕요 내외(왼쪽)와 왕소 내외(오른쪽)
規又欲立廣州院君嘗夜伺王睡熟遣其黨潛入臥內將行大逆
또 왕규는 광주원군을 왕위에 세우려고 어느 날 밤에 왕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그 도당을 침전에 잠입시켜서 대역(大逆)을 감행하려 하였다.
惠宗覺之一拳斃之令左右曳出不復問.
이때 혜종이 잠을 깨어 한 주먹으로 때려 눕히고 시종들을 불러서 끌어내게 하고는 다시 묻지 않았다.
一日惠宗違豫在神德殿知夢又奏:
또 하루는 혜종이 병환으로 신덕전(神德殿)에 있었더니 최지몽이 또 말하기를
"近將有變宜以時移御." 惠宗潛徙重光殿規夜率其黨穴壁而入寢已空矣
“곧 사변이 있을 것이니 제 때에 처소를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혜종이 가만히 중광전(重光殿)으로 옮겼더니 그날 밤 왕규가 그 도당을 인솔하고 벽을 뚫고 들어갔으나 침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規見知夢拔劒罵之曰: "上之移寢必汝謀也."
왕규가 최지몽을 보고 칼을 뽑아 들고 욕하면서 말하기를 “임금이 침소를 옮긴 것은 반드시 너의 작간이다”라고 하였다.
知夢竟無言規乃退惠宗雖知規所爲亦不罪之.
최지몽이 끝까지 잠자코 있으니 왕규는 물러갔다. 혜종은 왕규의 소위를 알았으나 역시 치죄하지 않았다.
規嘗惡大匡朴述熙及惠宗薨矯定宗命殺之.
왕규는 일찍이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를 증오하다가 혜종이 죽자 정종(定宗)의 명령을 위조하여 그를 죽였다.
初惠宗疾篤定宗知規有異志密與西京大匡式廉謀應變
이에 앞서서 혜종의 병이 위독하였을 때 경종이 왕규가 반역할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비밀리에 서경(西京) 대광 식렴(式廉)과 사변에 대응할 계책을 상의해 두었다.
及規將作亂式廉引兵入衛規不敢動
그러므로 왕규가 반란을 꾸미려고 하였을 때 식렴이 군사를 인솔하고 서울로 와서 숙위(宿衛)하여 왕규가 감히 반역 행동을 못하게 하였다.
乃竄于甲串遣人追斬之誅其黨三百餘人.
이에 왕규를 갑곳(甲串)으로 추방하고 뒤로 사람을 파견하여 목을 베었으며 그의 도당 3백여 명도 처단하였다.
'왕규'의 초상화 대신 2년 전에 KBS 1 방송국에서 방송한 '제국의 아침' 에 등장한
왕규의 모습을 올립니다.
비록 초상화는 아니지만 즐겁게 감상하시길... ^ ^(아마도 왕규의 초상화는 현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