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食이 힘들었네요. 건강검진을 받고 변수가 생겨 졸지에 수술대에 올랐다. 내겐 내시경 트라우마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시경을 떠올리면 항용 목에 숨이 차고 호흡이 거칠어지곤 했다. 국민건강공단으로부터 '귀하는 대장암 검진 대상입니다.' 라는 문자 메시지를 몇 차레 받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탈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배가 살살 아파왔다. 그냥 참고 견디기가 힘들어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약을 복용할 때는 괜찮은 듯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마찬가지였다. 어쩔 도리 없이 대형 병원을 찾아 검사예약을 했다. 검진결과, 만성위염에 대장엔 용종 4개가 있다는 거였다. 3개는 작아서 바로 걷어냈다. 하지만 1개는 크기가 워낙 커서 천공이 생길 듯해 다음에 시간을 갖고 수술하자 했다. 갑자기 이마에 김이 서리고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그래도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 하지 않았던가.' 24시간 금식했던 것과 각종 약물을 마시며 장을 비웠던 것을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원에게 지금 수술 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한참 후에야 담당의사 Ok 사인이 났다. 아들에게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연락을 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술대에 내려오는 나 에게 의사는 용종이 크긴 했지만 무난하게 제거했다며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지금은 입원하여 72시간 째 금식중이다. 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TV를 시청하고 있는 데, 칠십의 형아가 내게 눈인사를 하며 묻는다. "몇 기인가요?" 내가 화들짝 놀라며 쳐다보니 당황한 눈빛이다. 자신은 대장암 말기라며 세 군데로 전이 되었지만 담당의사와 문재인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살아 있다며 세상에서 두 사람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용종 몇 개 떼어내고 중환자처럼 행동했던 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슬며시 자리를 떴다. 제주도에서 온 치질 환자와 같은 날 함께 퇴원했다. 그와 제주 4,3사건을 얘기하다 친해졌다. 제주도 병원에서 1차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되어 지인의 소개를 받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7일 금식하고 나니 밥이 그립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득여진다. 간호사가 달려와 손목에 붙어있는 인식표를 끊고 3일 동안 자나깨나 끌고 다녔던 링겔꽂이와 작별을 하고 나니 모란시장 철창에 갇혀 있던 犬들이 생각난다. 평생을 목줄에 좁은 철창에 갇혀 손님의 선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며 살아가는 그들의 눈빛은 휴게실에서 만난 말기환자의 눈빛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번의 서른을 넘게 살았으니 탈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생 2모작, 남은 삶을 더 낮은 세상으로 치열하게 트레킹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