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도 먼 곳
승합차는 뱀사골을 빠져나와 달궁을 거쳐서 심원 마을로 내려간다. 그 깊고도 먼 곳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속세의 우여곡절에 쓰라린 패배를 맛본 사람들이 남의 눈을 피하여 하나둘씩 모여들어 고작해야 벌을 키우거나 산야초 약재를 채취하며 연명을 해나가던 곳이었을 텐데 이제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상점 식당 일색으로 변모했으니 날카로운 문명의 발톱은 깊고도 먼 곳이라고 할큄질을 멈추지 않은 모양새다.
주 선생이 바로 저 식당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걸 보니 그 식당의 알딸딸한 사연이 꽤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나도 이십여 년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으니 자세한 줄거리는 조금 엇갈리기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인가 보다. 내가 들은 사연은 대강 이러했다.
이십여 년 전에 이 선생이 심원에 놀러가서 하룻밤 묵었다. 그 식당 주인은 꽤 나이가 듬직해 보였는데 마당을 돌아다니는 어린 아이가 아무래도 식당 주인을 많이 닮아 보였다. 이상해서 캐물었더니 주인의 아들이 맞더란다.
그 식당 주인은 대학 교수였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가르치던 제자를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 제자도 교사가 되어 있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이 움텄다. 그 교수는 이미 결혼하여 자식까지 딸린 처지였다. 교수를 그만두고 부인과 이혼하고 몸만 빠져나왔다. 제자도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지리산 골짜기로 들어왔다. 늦둥이 아이를 낳고 식당을 차려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고생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웠다.
꽤 드문 사례다.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깊고도 먼 곳으로 피신하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대부분 사랑보다는 결혼 조건을 더 따지고 함께 살면서 서로 불평불만이 있더라도 자식이 생기고 관계가 끈끈해지면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동안 함께 살아온 의리 때문에라도 꾹 참고 인내하기 마련이다. 설령 바람을 피우더라도 바람기가 자면 시치미 뚝 떼고 의좋은 부부로 행세하기 십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혼율 1위라 한다. 이런저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한 사람들을 비난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사랑도 좋지만 이혼은 당사자들과 자식들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덴마크 스웨덴이 이혼율이 높았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는데 그 이유는 부모가 이혼하여 쓰라림을 맛본 자식들이 장성하여 결혼하면서부터는 엔간해서는 이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승합차가 심원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한동안 그 식당 주인의 운명에 마음을 뺏겼다. 어이하여 동물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사람들만 일부일처를 고집하게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일부일처 아니면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겄네.
성소
차가 정령치 휴게소로 들어갔다. 오른쪽 봉우리가 반야봉,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왼쪽 멀리 끄트머리 희미한 봉우리가 천왕봉, 지리산에 오면 늘 그 너른 영역에 감탄하곤 한다. 지리산은 금강산처럼 빼어나지도 않고 백두산처럼 성스럽지도 않고 한라산처럼 호방하지도 않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그 뭉툭하고 덤덤하고 평범한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들이 무표정에 가까운 포커스 페이스를 하고 있어서 내공 깊은 도인처럼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성인의 말씀이 알기 쉽고 평범한 것처럼 가닥가닥 이어지고 포개진 보통스런 봉우리와 산줄기들이 끝 간 데 모르게 펼쳐져 아늑하면서도 그윽하고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리산은 가히 한반도 남부지방의 성소로 우러를 만하다. 지리산은 그 품이 한량없이 넓고 아늑하고 깊어서 속세의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을 언제든지 얼마든지 너그러이 보듬어준다. 속세에서 빚쟁이한테 시달림을 받는 사람, 죄를 짓고 도망치는 사람, 병들고 아파서 신음하는 사람, 크나큰 마음의 상처로 버둥거리는 사람 따위를 누구든 가리지 않고 흔연스럽게 품에 안아준다. 뿐인가. 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대결로 궁지에 몰린 파르티잔들이 맹감나무 불로 밥을 지어 먹으며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곳도 바로 이 산이었다.
지리산의 성스러운 풍모를 눈이 시리도록 우러러보다가 문득 기독치과 김무영 씨가 떠올랐다. 그분은 시나브로 지리산 종주를 한다. 우리처럼 차로 한 바퀴 휙 겉만 핥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발바닥이 부르트고 거친 숨을 헐떡이며 신령스러운 봉우리와 능선과 골짜기들을 몸소 밟고 훑고 냄새 맡고 느끼며 땀을 뺀다.
나도 언젠가 한 번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면서 몇 시간 동안 악전고투 넘어지고 미끄러진 기억이 있지만 모름지기 심신이 고단한 사람들은 손수 발품을 팔아 지리산을 속속들이 밟아볼 일이다. 지리산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감싸주고 치유해주는 가히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산이라 할 만하다. (끝)
첫댓글 모처럼 짧은 글을 보내주셨군요.^^ 뜸하면 염려하고 바쁘시면 놀러가고 싶은 선생님이시죠... 저도 올 여름은 딱 그 코스였답니다. 옛 산은 없고 이름은 남아 얼얼하였죠. 좁히기를 포기하였더니 좀 낫고 옛날 전교조 순승지회 겨울 산행의 아득하고 결연했던 추억은 새록새록하였죠. 생애에 잊지 못할 것은 죄 지리산에 두고 나는 빈 속으로 내려오니 곡성이며 담양이며 화순이 굽이굽이 콧노래였습니다. 글 감사하구요, 10월 첫 주 토요일, 들꽃연구회 10주년 행사 때 꼭 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