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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12-20절) 몸이 바로 성전
*글렌 굴드*라는 캐나다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가장 완벽하게 연주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등받이가 있는 자기 의자를 가지고 다녔으며, 연주할 때도 코가 건반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연주했습니다.
또한 언제나 손에 장갑을 끼고 다녔고, 연주전에는 장갑을 낀 채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채, 뭉친 근육을 풀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수영을 할 때도 장갑을 끼고 했는데, 아주 긴 고무장갑을 끼고 수영했습니다. 그는 그만큼 자기 손을 아꼈고, 자기 연주 방식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멋있게 보이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즉 몸이 비만한 사람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비만하면 어떤 옷을 입어도 폼이 나지 않고, 아무리 예리하고 예민해도 남들이 보기에 금방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살을 빼려고 할 때,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다이어트나 운동을 합니다. 이때 문제는 자기는 죽어라고 살을 빼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들도 다 살을 빼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육체의 살을 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을 훈련시켰을 때, 우리 인간의 몸에서 상상할 수 없는 동작이나 아름다운 것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피겨 스케이트 선수의 경우 스케이트를 잘 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고, 얼음판 위에서 수없이 엉덩방아를 찍지만, 결국에는 아름다운 동작을 완성해냅니다.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경우에도 머리로 악보를 익힌 뒤,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엄청난 훈련과 연습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자신도 박수갈채를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의 놀라운 점은 몸 안에 지식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놀라운 지식을 가진 사람은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명예를 누리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몸 안에 지식을 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육체 안에 남을 위한 좋은 마음을 가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유명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자신과 남의 인생을 파멸에 빠뜨리는 것을 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靈)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에 하나님의 영(靈)을 담을 때,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성전이 됩니다.
즉 우리는 육체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기도가 응답되고 기적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살아있는 성전이 됩니다.
Ⅰ.인간의 자유와 선택
사람은 누구나 같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훈련 상태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프로 운동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즉 프로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 테니스 선수, 골프 선수를 보면, 똑같은 운동선수인데, 성적에 따라서 몸값이 크게 달라집니다.
영국의 유명한 축구 선수나 미국의 유명한 야구 선수,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골프 선수와 테니스 선수의 경우에는 상금이나, 스폰서 수입이 수백억 또는 수천억 원이 넘습니다. 즉 이들은 걸어 다니는 기업체입니다.
그러나 같은 프로 선수라고 해도 부상을 당하거나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면 돈을 조금밖에 받지 못해 비참하게 사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몸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냥 보기에 좋거나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진정으로 몸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6:l2절)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는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이므로 모든 것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정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음식을 많이 먹을 수도 있고 적게 먹을 수도 있으며, 매일 잠만 잘 수도 있고 부지런히 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너무나 음식을 많이 먹어 비만해지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잠을 너무나 많이 자는 바람에 게을러져 가난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롭게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빚을 많이 얻어 쓰는 바람에 돈에 쪼들리는 사람도 있고,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사람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폭행했다가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말든 자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가 걸어가야 할*도(道)*가 있습니다.
이런 길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면, 좋지 못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지적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적 훈련은 하나님 앞에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앞에서는 유익한 것이고, 주로 이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공부를 많이 하거나, 음악이나 예술 등 다른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와 행복은 여기서 끝나고, 더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 로마에는 크게 두 학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이 더 고상해지려고 하면, 정신으로 육체를 억압하고 통제해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스토아학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토아는 건물 안에 있는 기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철학을 토론하고 배웠다고 해서 스토아학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학파의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점점 더 돼지나 개 등 짐승처럼 되기 때문에 누구든 훌륭한 삶을 살려고 하면, 육체의 육망을 억제해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은 고상하지만, 육체가 영혼을 제약하므로 육체가 죽어야 영혼이 자유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했는데, 사람들 가운데 죽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에피쿠로스학파인데, 이들은 육체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육체가 고통스럽지 않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고통스럽지 않게 하려면,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실컷 먹고 육체의 정욕을 실컷 채워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로마 사람은 육체가 느끼는 만족감을 가지고 육체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쾌락은 다양한 인간의 행복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딱 한 번 살다가 죽는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우선 사람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육체 자체를 멋있게 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결국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건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며, 가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날씬하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음란한 생활을 한다면, 그 몸의 가치는 떨어질 것입니다.
사람은 대개 육체도 육체지만, 지식을 가지고 내면을 고상하게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즉 어떻게 해서든지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몸 안에는 광기(狂氣)가 있어서 사실 사람의 몸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자기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불안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우울증이 생겨 멀쩡한 몸을 가지고 자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신적 질병에 걸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행복이나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행동은 자유이지만, 자신의 가치나 행복을 높이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이 있고, 요령이 있습니다.
예수님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다른 사람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 가치가 있는 삶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Ⅱ.육체와 정신의 갈등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기 생각이 원하는 것과 육체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육체가 원하는 것과 정신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좁힐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육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채워주고 나서 정신적인 것을 채워주려고 합니다.
6:13절)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사람 가운데는 이 세상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고,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학생이 밤낮없이 공부하고, 대학생이 취직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똥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머리이고, 머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슴입니다. 사람은 가슴으로 행복을 느끼고, 사람은 가슴으로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좋게 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서는 음식이나 배, 머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하게 생겨나는지, 자기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죽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거의 절대적으로 심어놓으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결심해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식사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모두 다 굶어죽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에 엄청난 식욕을 주셔서 반드시 음식을 먹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이성을 보아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고, 흥분되지 않고, 끌리는 매력이 없다면, 아무도 결혼하지 않아 인간은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보면, 미친 듯이 좋고, 서로 사랑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은 음식을 너무나 많이 먹으면 병이 나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사랑하면, 죄짓게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되는데, 절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말로 사람이 생각으로 육체를 이겨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바는 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싫어하는 죄를 행한다고 고백하면서“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 몸을 사망의 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우리의 의식은 또렷하지만, 몸이 죽어 있어서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영혼과 육체는 별개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는 각각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영혼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육체는 정욕으로 채워주는데, 영혼은 영혼대로 만족을 얻고, 육체는 육체대로 만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한 인격 안에서 통합되기 때문에 육체가 죄를 지으면, 영혼은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 가운데는 먹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복을 똥배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똥배가 든든한 데서부터 모든 행복이 시작되는데, 똥배를 든든하게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13).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기 육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살면, 방탕한 사람이 되거나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육체의 욕망이 하자고 하는 대로 다 하면 전혀 쓸모없는 종교인이 되고 맙니다. 늘 양심이 죄에 짓눌려 있어 비참한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목표를 가진 세상 사람은 육체의 욕망과 싸워서 열심히 자기 자신을 훈련시켜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육체의 욕망과 싸워서 자기 자신을 바른 방향으로 훈련시켜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될 수 있습니다. 즉 잘 넘어지지 않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적인 자기 훈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릇은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론 사람이 그릇의 가치를 높이려면, 그릇 자체를 잘 닦아서 반짝반짝 빛나게 할 수도 있고, 그릇 자체에 칠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세상의 훈련방법입니다.
성경적인 훈련방법은 우리 안에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병(甁)에 참기름을 담으면, 참기름 병이 되고, 그 안에 간장을 넣으면 간장병이 되는 것처럼, 그릇은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마음 안에 더러운 탐욕이 가득 들어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두고, *그릇의 겉만 깨끗하지, 안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 바리새인이었고, 그리스 철학자였고, 중국의 도덕가였고,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릇의 겉만 깨끗하게 했지,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비우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여 믿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죄들을 모두 빨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 죄의 정욕이나 더러운 탐욕의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죄의 덩어리 대신,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을 하나님 말씀으로 채울 때, 그 가치는 천사처럼 높아집니다. 그러면 옛날에 정욕을 버리려고 그토록 애를 써도 안 되던 것들이 싫어집니다. 물론 예수를 영접하여 믿고 나서 남몰래 죄를 행하려고 할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죄가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즉 죄가 싫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 하나님을 따라 이미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놀라운 것은 그렇게 도덕적 수양을 쌓고, 자기 자신에게 금욕을 강요해도 안 되던 것이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생명의 말씀이 수도원에 들어가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더 거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우리의 죽었던 좀비 몸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전에는 우리 몸은 죄짓는 데 아주 빨랐습니다. 우리의 입은 농담하고, 반향적인 말을 하고, 남을 욕하는 데 빨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남을 욕하고 반항할 때는 꾹 다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엄청난 기적이고, 능력입니다. 결국 사람의 가치는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이나, 세상의 타이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을 하며, 은혜로운 말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방이나 구두, 자동차 등 명품은 아주 작은데서 판가름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말을 지껄이고, 감정을 함부로 폭발시키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별 볼일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전에 안 되던 경건이 하나씩 하나씩 되는 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6:14절)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능력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이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몸에 힘을 주어 좀비 몸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우리 몸에서 나쁜 습관들, 예를 들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탕한 것들은 모두 다 끊어지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예배에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설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차츰 이해되면서 자신이 빨려드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큰 감동을 받아서 울게 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기적이면서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면,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는 데, 이때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 몸은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어서 죄로 말미암아 굳어진 채, 망가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고, 죄를 끊게 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육체의 행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예전에 죄스러운 것들을 아주 행복하게 생각했습니다. 즉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할 때,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6:15-16절)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예수를 영접하여 믿음으로써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 즉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 입이나, 손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몸을 가진 천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 천사가 일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때 참으로 놀라운 것이 천사는 돈도 필요 없고, 명예도 필요 없고, 정욕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할 때, 야망이나 욕심을 가지고 봉사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주십니다.
천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퍼붓거나, 화가 난다고 술을 퍼 마시거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정욕을 참지 못해서 성추행한다면, 그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이지, 천사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신자의 몸으로 창녀가 있는 곳에 가서 정욕을 채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창녀의 오빠가 되고, 남편이 되면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됩니다.
부정한 성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끊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게 만듭니다. 즉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종이 악마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Ⅲ.움직이는 인간 성전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인간은 이 육체를 올바로 길들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교육에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말을 좀 잘하고, 자기 욕망을 더 잘 표현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기능인을 만드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감정과 그분의 의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이 몸에 술이나 퍼붓고,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음탕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서 최고 가치를 가진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육체입니다.
6:17-18절)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靈)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예수를 영접하여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와 연결되는데, 우리 안으로 전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들어옵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절대로 추하거나, 악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동안 우리 인간의 육체가 하나님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좀비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술이나 마시고, 정욕에 불타서 이 몸으로 못된 짓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하여 믿음으로써 우리 육체는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우리 몸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공장에 전기가 공급되면, 기계가 움직입니다. 사람이 사용할 줄 모르던 최고급 바이올린을 최고의 연주자가 연주하면 놀라운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 악기이고, 최고 기계인데, 예수를 영접하여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세상의 성공은 고장난 기계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하여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전기가 들어오고, 악기가 고쳐지고, 최고 연주자의 손에 들리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아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성추행을 하거나, 음란한 짓을 한 것이 들통 나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수치와 창피를 당하고, 감옥가거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람이 음행으로 망하는 이유는 좁비들이 마귀에게 기가 막히게 속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는 *지금 네 감정은 너무나 중요하고. 지금 너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속이는 사람은 그 속임수에 저항하지 못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죄가 가진 추악함과 거짓, 그 비참한 결과를 알기에 감히 죄를 저지르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6:19-20절)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본문은 우리 몸이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영적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은. 먹고 살려고 하는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고, 영적능력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소극적으로 이 몸을 나쁜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육체의 욕망에 넘어가 우리 몸을 죄짓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믿는 자에게도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욕망을 하나님이 주신 안전한 선(線)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몸을 바른 용도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을 넘어서서 욕망을 채우면, 죄가 되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를 더럽히고 훼손하는 사람은 국가적으로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남대문에 불을 지르고 국보급 책이나 그림을 태운다면, 온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 몸을 주신 것은 아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몸을 죽기 전까지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이 귀중한 몸을 그냥 가만히 모셔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나쁜 것은 몸을 너무나 귀하게 여겨서 매일 사우나에 가서 땀이나 빼고, 가장 좋은 화장품이나 찍어 바르고, 손톱에 물이나 들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기계는 많이 사용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는데, 우리 몸은 기계 가운데서 최고 기계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우리에게 가장 기초적인 훈련은 필수과목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운동선수가 기본적으로 육상을 잘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하기 싫은 것부터 하는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누군가가 하라고 하면 *예*라고 하면서 해야지 *싫어요*라고 하면, 훈련이 아직 덜 된 것입니다.
우리 몸은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피 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 몸은 하나님이 원하면, 얼마든지 쓰실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가기 싫은 곳이나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하라*고 하시면, 해야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이 우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내어주는 사람이 진정 부활의 능력대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상받을 자입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고 순종하면, 어떤 병도 나을 수 있고, 기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전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있고, 기적이 있고, 부흥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불을 가진 자는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히 부흥의 불이 뜨겁게 일어날 때, 세상의 죄는 모두 힘을 잃게 되고, 정신을 잃은 사람이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천사로 변해서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97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성숙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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