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지나간 시화를 12월에 불러낸다.
언젠가부터 느림에 마음 쓰진 않게 되었지만, 미루는 것에는 미안함이 깃들었다.
지금 살짝 겁먹은 마음으로 기억을 불러보는 것이다.
손으로 익힌 것은 머리로 익힌 것과는 다르기를 기대하지만, 기억이란 조작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으니, 애초에 믿지는 말아야겠다.
'마음' - 허영옥
시화작업 할 때면 그림 노동자가 되므로, 몇 가지의 시화를 늘여 놓고 시와 그림의 조화로움 위주로 평가를 받아본다.
평가자는 안목 없기로 자타공인인 옆지기라 애초에 믿을 만한 구석을 노린 건 아니지만,
하위분류일지언정 일반적인 눈높이라는 셈도 있는 법.
그 하위분류자는 역시 꼼꼼히 보는 시늉이라곤 없이 가장 단순한 손가락 하나로 이 작품을 찍었다.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당개 삼년 왈왈하지만, 나는 훈장이 아니므로 우린 둘 다 자기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신세.
그럼에도 불혹 지난 지천명의 노안(노회한 안목)으로 슬몃 기대어 보니 이것이 조금은 조화롭다 믿어본다.
오롯함과 흐릿함이 교차하는 두 갈래 마음이 지천명이어서일까.
'미련' - 이광두
원초의 고통을 상징할 끈이란 단어에 집중하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하기도 했지만
자유낙하와 연결되어지지 않는 단점 때문에 덩굴성 식물을 택했다.
여린듯 강인한 나팔꽃 줄기는 구속과 자유의 양면성을 지닌 인간의 목숨줄이 될 수 있을까.
'가을' - 주향숙
우선, 온종일 은행비를 맞은 버스정류장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낡은 지붕 위로 한없이 떨어지는, 가보지 못한 그리운 모퉁이를 말이다.
'용수철' - 곽향련
용수철 이미지를 두고 그야말로 스프링을 그리지 않기 위해 고민을 했다.
콩, 튀어오르는 계집아이를 도대체 어찌 만들지?
시와 그림의 조화에 실패할 때 쓰는 카드... 내게는 꽃 그림이다.
낮은 목소리로 와글거리는 것을 연한 꽃무리로, 콩 튀어오르는 계집아이를 빨간 양귀비 한 송이로 부각시켰다.
'염일방일' - 한삼수
염일방일, 낯선 제목은 오랫동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고사성어는 재미있었다.
염일방일은 <자치통감>을 지은 북송의 학자 '사마광'의 어린시절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한 아이가 큰 물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른들은 사다리와 밧줄을 구하느라 야단을 떨 뿐,
정작 아이 목숨은 뒷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어린 사마광이 주변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커다란 물독을 깨뜨려 위험에 빠진 아이 목숨을 살렸다.
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덜 귀한 것은 버려야 한다는 일화였다.
머리로 재단하기보다는 가장 단순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으로도 이어졌다.
한 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염일방일, 좀 더 단순하게 지혜를 구하라고, 계절은 또 그렇게 하나의 계절을 놓아주는 걸까.
'백일홍' - 장인숙
백일홍에는 화단에 피는 키 낮은 화초 백일홍과 늦여름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즉 목백일홍)이 있다.
두 가지의 백일홍을 사이에 두고 누가 피든 여름은 뜨거운 것이겠지.
'술술' - 김인선
우습게도 이 시는 음식에 관한 수필을 위해 제목만 뽑아두었던 것을 급조한 셈이다.
내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음식의 자부심'이 넘쳐 흐르는 두 사람을 들자면 시어머니와 남편이다.
두 사람은 내 다음 글을 위해 언제나 여러 구실을 대 주는 바,
첫 제목 '술술술 백두대간 오르는 남자'는 그런 의미에서 남편의 영업장을 소재로 택한 것이다.
틀림없이 나날이 자부심도 오른다고 비아냥거릴 내용이지만, 완전히 비틀어 시화용으로 변조하다보니 모든 것을 바꾸게 되었다.
술술 보드랍게 넘겨준 셈이다. (급조가 그렇듯이 시화 직전까지 제목과 문장을 바꾸는 등 마지막까지 급조 티를 냈다.)
'겨울채비' - 박래녀
겨울이 오면 무 시래기를 허청허청 널어 말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우리집 풍경이 여기 들었다.
가마솥에 김이 오르고 콩이야 장이야 끓여가며 무 시래기를 장만하는 어머니 모습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이랑 똑 같다고 하니, 눈에 익는다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다.
이미 벽화 속에도 그린 적 있는 어머니 모습. 뒤에서 궁시렁거리면서 깍듯이 그려넣는 이 심리는 무얼까.
'석별' - 박현철
가을비, 물동그라미, 그림자, 지는 꽃 등.... 여러 소재를 구상했지만 의미부여에 실패.
시와 그림의 고민이 깊어갈 때 해결사는 역시 꽃 그림이다.
어떡하든 말린 꽃은 궁하면 통할 것이다.
'옥잠화'- 신동환
옥잠화는 여름내 향수처럼 쏟아지던 우리 집 마당의 샤넬이었다. 내 코가 석자나 벌름거렸지만 정작 그리자니 제대로 흥이 오르지 않았다.
이파리가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흰 꽃은 도톰하게 봉긋거리는 발랄한 맵시를 지녔지만 가까운 정물을 대하는 마음은 두려움이었나보다.
살짝 늦은 가을까지 피고지던 그꽃의 화려함을 소박함으로 대체한 느낌이다.
'커피 이야기' - 양창호
커피에 관한 시는 많지만 커피에 관한 그림의 소재는 한없이 단순한 편이다.
일상이 커피인 삶과 나른하게 흩어지는 커피콩. 갈색의 바탕 위로 피어 오르는 향기의 진원이 커피로 느껴지면 좋겠다.
'운동화와 나' - 김영곤
이 시는 시화제작자가 시를 선택했다가 스스로 교체하는 등, 혼자 바쁘게 굴었던 작품이다.
시인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도 못챘는데, 처음의 '넥타이' 그림이 밋밋하겠다는 이유로 이 시로 교체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시인의 페이지에서 뒤져본 시의 소재들이 내가 그릴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있었는데
이 시는 소재가 명확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결국 운동화 한 켤레를 그리기 위해 고흐를 뒤진 셈이었다.
고흐의 광기에 휘둘리지 않으려 나름의 모작 수고를 감내해야 했으니, 결과적으로 사서 고생한 보람이라 하겠다.
'걷기 10일에 대한 생각' - 윤재환
고흐풍을 그린 뒤의 붓터치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그림이다.
지난번 시화에서는 장난스런 발그림('도끼')을 그렸는데,
이번엔 걷기에서 근육을 키운 다리를 평소의 그림과는 조금 다른 붓자국으로 그렸다.
모르긴 몰라도, 고흐는 조금 행복한 붓터치로 그림에 빠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기검사' - 정영길
부부의 소음에는 어떤 윤활유가 필요할까?
기름을 칠할 순 없어, 닮았지만 조금 다르게 피는 꽃 두 송이를 빌렸다.
이 두 송이는 검사를 받은 후 높이가 비슷해지거나 혼합형 색깔을 입을 수도 있지만
전혀 달라지지 못해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검사 받으러 가는 길에 만난 꽃처럼 알콩달콩 싸우고 물들고...그게 부부이지 않던가.
'가을' - 이미순
기러기떼에서 시작하여 시화의 소재로 나올 법한 단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해바라기, 들국화, 경운기, 사립문, 멍석 위 붉은 고추, 어머니, 소나무 위의 산새 등...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어 섬돌 위 고무신 한 짝을 놓았다.
가을 글자 속에 기러기를 날려 보았다.
'호롱불 우정' - 최윤업
주문한 캔버스 중 당장 수정할 수 없는 두 개의 실패작이 생기고 말았다.
덧칠을 할 경우와 새로 주문할 경우 모두 시간부족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포기를 하고 있었다.
책에 실릴 경우만 따지고 있을 때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니, 내일 당장 시화전시일이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대로 빨리 만드는 것 뿐.
지난번 액자 맡기는 곳에서 구해두었던 검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켄트지보다 두꺼운 종이였다.
시를 가만 보자니 '호롱불'과 '모과'로, 두 작품이 공교롭게도 검정 바탕에 어울릴 노란 소재들이다.
우선 급한대로 그려넣었지만, 액자가 더 문제였다.
집을 둘러보니 낡은 액자가 두 개 사진을 진열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집 벽에서 사진을 진열하던 액자를 급하게 떼어 조잡하게 씌울 수밖에 없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였다.
'모과' - 김기순
첫 시를 잉태한 회원님의 소중한 시를 하마터면 시화로 만들지 못할 뻔하였던 죄,
이실직고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을까마는 일은 그렇게 된 거였다.
액자 위치가 바뀌는 바람에 덜마른 유화 자국이 유리에 묻는 등, 여러 탈이 있어 속상함이 겹쳤는데
멀쩡할 때 모습 보니 마음이 새로 아프다.
미완의 어리숙함을 어쩌지 못하고 내 손을 떠나고 만 것이다.
언제나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그 자리에 머물고 마는 실력처럼 해마다 굳어지는 미완의 경지.
그럼에도 언제나 시화를 먹으며 열매를 생산하는 착각의 꿈을 꾸나보다.
떠돌던 마음자리 딱 붙잡도록 시를 제공해준 식구들에게 고맙다. 사흘 말미를 한 일주일 바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 비겁한 계산을 해보지만,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놓아야 하는 '염일방일'의 지혜로 나를 다듬을 밖에. 시로 수고한 모두에게 늦은 시화를 바친다.
첫댓글 김기순 님, 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요. 외모 지상 주의에서 떨어져 나온 너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