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과 어쩌면 마지막이 될 도전. 조오련은 두 가지 좋은 소식을 호탕한 목소리로 전했다. 반가운 얘기였고, 초청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해남 조오련의 황토집을 찾았다. 취재_강승민 기자 사진_박영하(studio lamp)
지난해 1월, 기자는 조오련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에 살면 사별한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져 싫다고, 도시의 소음도 마음에 안 든다며, 그는 고향인 전남 해남 산골에 황토집을 직접 지었다. 거기서 농사를 짓고, ‘락’(즐거울 락)이라는 이름의 셰퍼드 한 마리와 더불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고독과 벗 삼아 지내는 모습이었다. 나무 땔감을 때는 늦겨울의 황토집은 온기가 돌았지만, 그렇다고 홀아비 냄새를 모두 감출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안부를 묻는 기자의 전화에 대뜸 조오련은 “잘 지냈소? 내게 좋은 소식이 있소”라며 근황을 전했다. 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평생 수영을 해온 이의 폐활량을 고려하더라도 넘치게 밝은 목소리였다.
“좋은 짝을 만났소. 목소리도 마음도 예쁜 사람이오. 조만간 해남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를 생각이오. 좋은 소식이 또 있소. 내가 1980년에 대한해협을 건넜잖소, 내년이 횡단 30주년이고, 내 나이 예순인데, 수영 인생의 마무리로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할라 그러오.”
“목소리, 마음이 예뻐서 내가 ‘보쌈’해 부렀소”
취재 차가 비틀비틀 산을 올라 집에 도착하니, 조오련이 현관문을 열며 손님을 맞이했다. 그의 등 너머로 목소리와 마음이 예쁘다는 여인이 인사를 건넨다. 슬쩍 봐도 나이 차는 꽤 있어 보인다. 동향 사람으로 나이는 열네 살 차이. 조오련의 재혼 상대인 이성란씨(45)다.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기자가 불쑥 찾아왔으니 이성란씨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할 터였다. 그녀는 조오련과 인터뷰를 시작하자 조금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기색이었다. “동네 연고를 둔 처자요. 저 아래 배추 절임 공장이 있어서 내가 밥 하기 싫으면 내려가서 밥 동냥을 했소. 그쪽 동생이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니 부담 갖지 말라는 말도 해서 허기지면 내려가곤 했죠. 어느 날 목소리가 해맑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부엌에서 들립디다. 누군가 싶어 슬쩍 들여다봤더니, 도회적인 여인이 거기 있더만요.”
그의 황토집과 배추 절임 공장은 지척이었다. 그녀는 그와 호형호제하던 그 공장 사장과 친남매지간이었고, 주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몇 차례 둘만의 만남을 가졌다. 모두 올 초의 얘기다. 조오련은 그 인연을 소개하며 “최근 몇 번 선을 봤는데 결국 등잔 밑이 어두웠다”며 껄껄 웃었다.
“목소리, 웃음뿐만 아니라 마음이 예뻐요.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원만하게 잘 어울리고 있어요. 둘이 몇 번 만나다가 마음이 통했소.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내가 ‘감금’해 버린 거제(웃음).”
시쳇말로 여인을 ‘보쌈’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중순 ‘감금’했다니 1개월 반 정도 예비 부부로 살고 있다.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의 재혼, 열네 살의 나이 차. 궁금한 게 많다는 걸 조오련은 잘 알고 있었다.
“나이 차가 뭐 중요하다요. 둘이 뜻만 맞으면 되는 거제. 처가에서는 빨리 애를 낳아라, 아들이 둘이니 늦둥이 딸을 낳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웃음). 그런데 늦둥이 가지면 교육 문제가 있고,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 같고, 대학까지 마치려면 걔한테도 고생이고, 우리도 고생 아니겄소. 늦둥이는 하늘에 맡길라 그러요(웃음).”
거리를 두고 앉아 조오련의 말을 듣던 이성란씨가 그 즈음 반응을 보였다.
“식사하러 오실 때 몇 번 뵈었는데 마음이 따뜻한 게 전해 오더라고요. 포근하고 넉넉한 사람이란 게 느껴졌어요. 외면과 내면 모두 따뜻한 분이죠.”
황토집에는 최근 호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조오련의 장남 성웅씨가 자리했다. 아들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우리 애들은 좋아합니다. 아버지의 말벗이 생겼다고, 외롭지 않겠다고 대찬성이오.”
조오련은 둘이 있으니 말벗이 생겨 외롭지 않다고 했다. 밥이나 설거지를 안 하는 것만도 꿈만 같다는 그였다. 조오련의 눈에 콩깍지가 씐 듯했다.
“목소리 하나로 반했응께 인연은 인연 같소. 하늘에서 날개 없는 천사를 보내준 것 같고. 요즘 서로의 살아온 세월을 얘기하며 지내요. 성란씨도 재혼인데, 자녀는 전남편 쪽에서 양육 중입니다. 이 사람이 원하면 그쪽 자녀들을 내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을 했소. 피는 안 섞였지만, 내가 직접 낳은 것처럼 사랑해 줘야 이 사람도 마음이 편할 것 아니겠소.”
지난 2001년 전처를 떠나보낸 지 9년째. 황토집 터는 나이 들면 전처와 함께 보낼 요량으로 점찍어둔 곳이기도 했다. 황토집을 직접 짓고 거기 사는 동안 그는 외롭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같은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무대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공허한 마음이 들어요(조오련은 지난해 7월 한 달간 독도를 33바퀴 돌며 독도는 우리 땅임을 알렸다. 33바퀴는 독립 선언을 했던 33인과 동일한 숫자였다). 큰 행사일수록 외로움을 더 탑니다. 지난해 독도를 33바퀴 돌고 나서 외로움 달래느라 소주를 좀 먹었소. 그렇게 술로 달래다가 이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을 채운 거제.”
조오련은 뒤늦게 맺은 연을 두고 스스로 이런 약속을 하고 있었다. 먼저 떠난 전처 생각, 새로운 인연에 대한 마음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전처와 20년을 살았소. 전처가 등 좀 긁어줘요 하면 내가 젊어서 주책이라고 예순 넘으면 해주겠다 말했어요. 그렇게 사랑을 아껴뒀어요. 그게 미안했고, 그렇게 사랑을 밀쳐놨으니 이제는 요동쳐야 될 거 아뇨. 지금은 뒤로 밀치지 않고 그때그때 해주려고요.”
결혼식은 머지않았다. 혼수는 있는 걸로 살아가면 되고, 혼인 날짜만 정하면 된다.
“결혼식은 해남 읍내의 한 교회에서 가족 친지만 모시고 조용하게 할라요. 재혼인데 잔치를 벌일 일도 아니고, 사람들이 서울에서 내려올라믄 너무 멀잖아요. 날짜는 4월 초쯤 생각하고 있소. 첫 대한해협 횡단을 함께했던 동아일보에 다시 대한해협 횡단 기획서를 내놓은 상태요. 그게 확정되면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훈련할 생각이오.”
지난해 독도 33바퀴를 헤엄쳐 도는 도전은 조오련 혼자서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성란씨가 동행한다.
“바다 수영을 앞두고 제일 힘든 게 뭔 줄 아요. 체온을 유지하고, 체력을 기르면서 살을 찌우는 일이요. 지금 몸무게가 79kg인데 87kg까지는 불려야 해요. 매일 운동하며 살을 찌우는 거라 그게 생각보다 참 어렵소. 음식부터 바꿔야 해요. 지방질이 적고 소화가 잘 되는 영양식을 많이 챙겨 먹어야죠. 곰장어, 돼지고기 삼겹살 등 조오련을 위한 특별 훈련 식단이 있어요. 이제는 이 사람이 그걸 채워줄 테니 한 걱정 덜었소.”
“물과 정말 친구인지 마지막으로 알아볼라요”
나이 예순이면 시쳇말로 ‘무한도전’할 연령대가 아니다. 그런데 조오련은 예순을 맞아 대한해협을 횡단하겠다며 준비 중이다. 아무리 조오련이라지만, 예순이라는 숫자 앞에서 그가 걱정된다. 이성란씨는 더 마음이 쓰일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도전이 조오련의 수영으로는 마지막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소. 더 나이 들어서 하면 추태일 수가 있으니. 마지막이라는 마음이 드니 한편으로 슬퍼집디다. 이 사람은 남편 된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라니 마지못해 허락한 것 같아요. 나를 못 믿으면 불안할 것이지만, 나를 믿으면 걱정 안 할 거요.”
지도상 대한해협의 거리는 55km 정도. 1980년의 횡단 기록은 13시간 16분 10초였다. 내년에 도전하면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다. 예상 기록은 16~18시간 정도로 잡았다. 조오련은 대한해협 횡단을 위해 16개월(=510일) 일정으로 훈련에 돌입한다.
“뭍에서 하는 훈련이 많아요. 걷기, 웨이트 트레이닝, 고무줄 당기기, 한라산 등반 등을 통해 체력과 허리 힘을 길러야 합니다. 수영은 힘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요. 어떻게 하면 힘을 빼고 물과 친구가 될 것이냐를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서른 살, 젊디젊은 조오련이 성공한 대한해협 횡단의 기억은 선명했다.
“8월 초부터 15일 사이의 대한해협이 가장 잔잔해요. 그 사이의 하루를 골라 횡단할 겁니다. 가능하면 14일 오후에 출발해서 광복절에 도착하면 의미가 있고 좋을 텐데 말이요. 바다에서 허기가 찾아오면 체온이 떨어져 위험합니다. 심장이 35℃ 이하가 되면 근육이 안 움직이니. 조난을 당한 이들 대부분은 저체온증으로 떠나잖아요. 1시간 30분마다 꿀을 타고 곤죽을 만들어 칼로리 높은 간식을 챙겨 먹어야죠. 처음에는 찬 물결을 만나다가 부산해협에서 8마일 정도 나가면 난류대가 흘러요. 그 난류를 타고 화살을 타는 식으로 나가야죠.”
대한해협을 떠올리던 조오련의 눈빛이 꿈에 젖어든 순간이 있었다.
“밤의 바다에서는 천국을 만납니다. 플랑크톤들이 그물망에 부딪쳐 반딧불처럼 파란 빛을 내요. 마치 은하수를 거니는 느낌이 든단 말이죠. 나는 그중 하나의 별인 것 같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그동안 해온 여러 도전 중 두 번의 무아지경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한강 600리를 완주하면서 잠수교를 건널 즈음에 한 번, 지난해 독도 33바퀴를 돌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바퀴를 더 돌았더라는 것이 두 번째 무아지경이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무념무상으로 헤엄친다는 거요. 무아지경은 물과 친구가 될 때 가능하고, 내가 물을 그만큼 믿을 때 물이 나를 친구로 받아주는 거요. 내가 늙은 건 사실이지만, 그러기에 성공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겄소. 요즘 불황이라는데 조오련을 보면 국민들의 엔도르핀이 돌 거고요. 거기서 실의에 빠진 분들이 힘을 얻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을 테스트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물과 함께 살아온 조오련이 정말 물과 친구인가를 묻고 싶소. 물을 떠나면서 ‘마지막 작품’을 근사하게 하나 만들고 싶을 뿐이오.”
그다음의 인생 계획을 묻자, “지금은 대한해협만 생각하고 있다. 그 너머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그였다. 조오련의 열정이 묻어나는 얘기다. 다른 하나, 즉 새로운 가족과의 앞날을 묻자 “없당께, 그냥…”이라며 짐짓 얼굴이 상기되는 것이었다. 기자는 그 투박한 말로도 조오련에게 찾아온 충분한 행복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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