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03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40 : 33 – 34입니다.
“그가 또 성막과 제단 주위에 돌아가며 뜰을 세우고 뜰 문의 막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일을 끝마쳤더라. 그 후에 구 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더라.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음이더라.
(And he raised up the court all around the tabernacle and the altar, and hung up the screen of the court gate. So Moses finished the work. Then the cloud covered the tabernacle of meeting, and the glory of the LORD filled the tabernacle)”
임마누엘!!
모세의 성막 건축이 완성이 되자 그 성막과 회중의 장막에 구름이 덮였습니다. 이 구름이 덮힘은 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시내산에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출 24:16-18)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곧 성령의 임재하심을 이렇게 빽빽한 구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하심을 보여주시는 모습입니다.
곧 ‘영광이 충만하더라’는 곧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광’은 히브리어 'kabod(카보드)'Ⅰ.‘영광스러운(glorious)’. 이 단어는 여성 단수 케붓다(kebudda)로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겔 23:41; 시 45:14). Ⅱ. ‘영광(glory)’ 곧 ‘풍부’, ‘다량’, ‘다수’, ‘부’, ‘영예’, ‘영광’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히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카보드(명남, 여)는 '카바드(kabad)'에서 유래했으며, '풍부, 다량, 다수, 부, 영예, 영광'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회 나옵니다.
‘카보드’는 물건의 물리적으로 큰 무게나 '양'을 언급합니다. 나훔 2:9에는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것이 풍부함이니라(모든 종류의 바람직한 물건이 '대량' 있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22:24에서 엘리야김은 "그 아버지의 집의 모든 영광(모든 중한 것들)"을 건 벽에 단단하게 박힌 못에 비유합니다. 이 의미는 호 9:11에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카보드는 '큰 무리' 혹은 '군중'을 의미합니다: "에브라임의 영광이(군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이 단어는 단순히 '무거운'을 의미하지 않고 물건의 무거운 양을 나타냅니다.
카보드는 종종 '부, 재물(wealth)‘과 중요하고 긍정적인 '명성'(구체적인 의미로) 모두를 나타냅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합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巨富)'가 되었습니다"(창 31:1 - 최초의 성경의 용례).
두 번째 의미는 창 45:13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내 아버지께 고하라"고 말한합니다. 이 때, 이 단어는 만약 가족들이 애굽으로 온다면 그들을 부양할 수 있다는 보증과 요셉의 지위에 대한 보고 모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무, 숲, 삼림도 위압하는 속성, 풍부함, '장려함(영광)'을 지닙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왕을 벌하시어 그의 삼림의 대부분을 소멸시키실 것입니다: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사 10:18-19).
시 85:9에서는 부요함 또는 풍성함의 개념이 두드러집니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혹은 풍성함)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이 의미는 시 85:12에 다시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카보드는 또한 '영광, 즉 당당한 인물이나 지위를 강조하는 추상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媤父)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대제사장들인 그들이 죽었습니다: 삼상 4:21).
사 17:3에서 카보드는 요새화된 도시, 주권(자치), 백성들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사물들의 충만함이라는 보다 더 구체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런 속성들 중에는 '영예', 존경, 지위가 있습니다.
사 5:13에서 '영예'의 개념이 카보드로 표현됩니다: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따라서 카보드와 그 병행어('무리')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즉 상류 계급과 평민을 나타냅니다. 많은 구절에서 이 단어는 현실보다는 미래를 나타냅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사 4:2).
이 단어가 '영예' 혹은 '중요함'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두 가지의 어감을 지닙니다.
첫째로, 카보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영역 내에서의 개인의 지위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잠 11:16). 이 '영예'는 그릇된 행위나 태도로 인해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잠 26:1, 잠 26:8) 바른 행동으로 증명될 수도 있습니다(잠 20:3, 잠 25:2). 따라서 이 단어의 강조점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 주어집니다.
둘째로 카보드의 많은 용례들 중에는, 왕가에 속하는 '영예'와 같은 '고귀(성)'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도 있습니다(왕상 3:13). 따라서 이 단어는 귀족이 누리는 존경 받는 지위와 사회적 구별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될 때는 하나님께 합당한 속성을 나타내며 그 속성으로 인하여 모든 인정을 받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곧 하나님의 중요성과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라고 아간에게 명했습니다(수 7:19). 이 구절과 이와 유사한 구절들에서 '영광을 돌리다'라는 말은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해야만 할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구절들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시 29:1). 어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그런 구절들은, 찬미자들이 자연에서 그의 '영광'을 보고 예배에서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자연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주권을 찬미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구절에서 이 단어는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며 특별히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킨다고 합니다(사 40:5). 그러나 몇몇 구절들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역사와 백성을 주관하신 과거의 증거들과 연관시킵니다(출 16:7, 출 24:16).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