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생각하라
文 熙 鳳
큰 것이 반드시 좋은가? 큰 생각이 반드시 바른가?
만족감을 느끼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작게 생각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단순한 일상의 기쁨을 보고 그 소소함의 풍미를 느끼는 법을 배우는 삶이 좋다. ‘인생의 현자’들은 인생이 짧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순간의 소소한 기쁨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반면 젊은 사람들은 그 소소한 기쁨들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그것들이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헷갈리는 일이지만 판단은 나에게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잔, 겨울밤 포근한 잠자리, 잔디 위에서 먹이를 쪼고 있는 어여쁜 새들, 친구로부터 날아든 생각지도 않았던 편지 한 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등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지극히 소소한’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갖다 보면 일상이 소소한 기쁨들로 가득하게 되고 더욱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젊은 사람들도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다 보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기쁨들에 몰두하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 남보다 많고 큰 것을 차지하는데 두려고 한다. 수십 억짜리 저택에 수 억짜리 자동차를 굴려야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촐한 삶과 드높은 영혼을 지니고 살 줄 안다면 어떤 상황 아래서도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실패가 없으면 눈이 열리지 않는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해낼 때까지 2천여 회의 실패를 거듭했다고 하지 않는가? 되새겨 볼 일이다. 부드러움이, 계속 노력함이 단단함을 이긴다.
부자의 기쁨은 긁어모으는 재미보다는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갸륵한 마음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겠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멈출 때 질병과 늙음과 죽음이 찾아온다.
큰 내는 작은 내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큰 내들이 모여 강이 되는 이치와 같다. 허무맹랑한 일이 하루아침에 벌어지기를 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왜 그리 큰 것을, 엄청난 것을 원하는가?
가난하고 배고픈 데서 도심(道心)이 우러나듯이 풍족하게 배부르면 번뇌와 망상만이 들끓게 된다. 어느 정도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인내가 나에게 기쁨을 준다.
100m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번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 없이 덜컥 경기에 임했다가 겪게 되는 불상사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후회 없는 전진은 작은 것부터 시작할 일이다. 후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겨지는 허탈은 그에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다.
욕구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을 살자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