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후
이경선
세월이 잔잔히 음미할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한 주, 한 달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느낌으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려면 벌써 또 저만치 먼저 와 있곤 한다. 미래에 대해 막연한 꿈을 갖던 시절에는 실상 시간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얼른 시계바늘이 돌아 성인이 되고 싶었고 나이만 많아지면 모든 일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줄 알았다. 지금과 달리 십년 후란 의미는 까마득한 기간이었고 그 많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에 대해 솔직히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숫자였다.
대학시절 종로에 즐겨 다니던 카페 상호가 ‘십년 후’였다. 그 당시 간판은 통속적인 상호가 많았는데 거리에서 마주친 간판을 보는 순간 온 몸에 피가 혈관 한 바퀴를 회전하는 느낌을 받았다. 주저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현재도 알 수없는 모호한 하루하루에 십년 후란 단 세 마디의 의미는 이제 막 성인대열에 다가서는 내겐 심오하고 그 카페에 가면 십년 후의 삶을 멋지게 설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호만 그렇지 그곳에서 십년 후의 인생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이는 없었는데 우린 시간이 나면 그 카페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상호가 그래서인지 보통 찻집과는 다른 화두로 십년 후에 우린 어디서 무얼 할까 라는 추측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예언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훗날이라는 생각이 컸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막연한 호기심은 이스트를 품은 밀가루처럼 부풀어 올라 설레기도 하고 들떠도 있었다.
그리 길게만 다가서던 십년을 벌써 다섯 번이나 보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려니 목이 돌아가질 않는다. 마치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분명 내게는 지나온 흔적들이 하나 둘 남아있지만 십년 전 이십년 전이라 하기보다 바로 엊그제 같은 날들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하지만 대답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행복했던 날보다 힘겨운 나날이 많다는 증거다. 아니면, 모르고 지나온 세월과 느껴 본 후에 알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앞설 수도 있다.
우여곡절 십년의 세월들이 몇 번 덮어진 채 올해가 결혼 삼십 주년이다. 내 삶인데도 숫자범위에 당사자인 내가 놀라 버릴 정도다. 결혼 초, 먹어도 살이 붙지 않아서 퀭한 얼굴로 친정에 가면 혀를 끌끌 차던 어머니는 이것저것 차려주시느라 분주했었다. 등에 업은 아이는 힘에 부쳐 묶어도 흘러내리는 통에 세 발짝도 못가서 다시 잡아매야 했고, 바쁜 남편을 둔 덕에 매번 혼자 친정행사에 가느라 안쓰러워 하셨던 쓸쓸한 아버지 얼굴. 동네에서 조차 남편이 사우디에 갔냐는 소리까지 들으며 그래도 희망을 등에 업고 포대기 끈을 조여매가며 살았다. 대그룹에 입사한 아버지친구 자제의 맞선 자리를 듣는 자리에서 거절하며 선택한 결혼 탓에 힘들어도 힘들다 말 못하고 좋은 일만 부풀려 전해드렸다. 이젠 보태서 말씀드리지 않아도 내려다보고 계신 아버지께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없다.
가늠 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멀기만 했던 세월을 여러 번 포개고 돌아보는 곳에 그나마 오래전 꿈을 잃지 않은 중년의 여인이 보인다. 겁도 많고 인내에 익숙한 여인이었는데 이젠 제법 목소리가 건반을 탄다. 호랑이로 변한다는 노래가사를 닮아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존재감을 찾으려 분주한 모습이 레이더망에 포착되기도 한다. 또 십년 후, 점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최소한 후회란 단어는 숨기고 싶어 현재 모습에 업그레이드는 계속 될 것이다.
십년이면 변한다던 강산이 요즘은 오년주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세월조차 가속이 붙었나보다. 지금까지 지나온 것처럼 그렇게 유유히 흐를 것이다. 앞으로 또 알 수 없는 십년 후를 상상해본다. 주어진 나만의 삶에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 타임캡슐을 묻었던 예전의 진솔함을 곱씹고 자신에게 중요한 버팀목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걸맞았으면 좋겠다. 사실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십년 후 일지도 모르겠다. 유턴 없는 삶을 인지하면서 초로의 여인으로 또 다시 다가 올 십년 후를 향해 더 바쁜 척 할 것은 분명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청소기를 돌렸는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첫댓글 올만에 오셨네염감사
올만에 오셨네염정말요
결실의 계절이라 행사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수원 연무대에서 화성백일장이 있답니다. 여러 행사가 있어 구경오시면 좋을텐데 인천이 안산 정도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ㅎㅎ 유익한 하루 되세요~~^^
그러케요 .
과연 10년 후에는 어케 변해잇을찌...조금만 늙엇으면 조겟네여
10년후엔 모두가 잘살기를
인천에 극단이 13개가 있는데 그 중에 '십년 후'라는 극단이 있습니다. 척박한 문화불모지인 인천에서 그나마 연극 본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고정 관객들도 꽤 있는...
그 극단 '십년 후'는 10년 후의 우리의 삶이 연극과 일치되는 상상을 한다는데, 우리의 이견선 작가님의 1년 후는 우리들에게 '삶의 화두는 이런 거야!'라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 좋은 글 보니 요즘 가뜩이나 노안을 따라가는 눈이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지요 . 늘 가슴속에 한 페이지로 남아 있던 곳이어서 언젠가 쓰고 싶었는데 인천에 '십년 후'란 극단이 있다니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깊은 가을 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