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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3:1-26
▣ 기적과 설교-사도행전 3장-
1. 권능(3:1-11)
베드로와 요한이 여전히 성전에 있고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처음 일곱 장이 유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오늘날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를 이해하는 신약 그리스도인은 기도 모임을 가지러 성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절름발이는 잃어버린 죄인에 대한 생생한 실례이다.
-절름발이로 태어남-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걸을 수 없음-죄인은 걷지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성전 밖-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의 밖에 있다.
-구걸함-모든 죄인은 만족을 찾아 구걸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 기적을 행한 것은 그 사람의 고뇌를 벗게 하며 그의 영혼을 구하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이미 임하셨음과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다. 이사야 35장 6절은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영접할 때 이와 같은 기적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에게 약속하는 구절이다.
기적이 일어난 후에 그 사람이 취한 행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는 성전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그의 위치가 하나님의 교회로 옮겨졌음을 말해 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4:13-14)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간증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어서 관원들도 할 말이 없었다!
행 3:12-26
2. 설교(3:12-26)
베드로는 이것을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그 민족에게 왕국을 제시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그가 2장 14, 22절에서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을 고발한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베드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했기 때문에(요21장) 자기의 실패를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롬 8:32-34 참조).
17절은 대단히 중요하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알지 못함“이 이러한 무서운 죄를 범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형벌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그들의 메시야를 받아들일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계시다.
베드로는 19-20절에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도말하실 것과(사 43:25/사 44:22-23), 그리스도를 보내어 “새롭게 하는 때“를 주실 것임을 약속한다. 이 “때“는 예레미야 23장 5절, 미가 4장 3절, 이사야 35장 1-6절, 11장 2-9절 그리고 65장 19-23절에 설명되어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개인적인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이 회개하고 믿을 때에 이들에게 올 축복을 말하고 있다. 물론 민족의 구원은 개인적인 믿음에 의존한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회복의 시기“가 올 때까지 하늘(Heaven)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기 계시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돌아와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왕국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언급된 바 있는데, 베드로는 21절에서 이를 언급한다. 이 구절은 베드로가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구약에서 교회가 거론된 일은 전혀 없다. 선지자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미래 왕국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만일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베드로의 멧세지를 믿고 회개했다면 그 왕국이 세워졌을수 있었을 것이다.
이방인들은 어떠한가? 베드로는 25절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들인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실 것이며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축복하실 것이었다. “땅의 모든 족속(이방인들)이 네 씨(아브라함의 씨)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창 22:18 참조).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회복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축복하는 것이었는데,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사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 왕국을 세우게 될 때에 이방인들이 축복받을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고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제쳐진 후에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간 이유를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런 사실에 원인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계시하신 “비밀 계획“, 즉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계획을 깨달을 수가 없었다(롬 11:11-12 참조). 이 계획은 구약 시대에는 숨겨졌다가 바울을 통하여 계시된 “비밀“이었다(엡 3:1-).이 민족이 스데반을 죽여 성령께 대항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했을 때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적인 계획이 정지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 날로부터 이스라엘은 제쳐졌고 교회가 무대에 등장하였다."
행 4:1-37
3. 박해(4:1-4)
이러한 초청에 대하여 이 민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믿고 구원을 받았으나,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였다 ! 사두개인들은 물론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베드로의 멧세지를 듣고 감정이 좋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미워하였는데, 주님께서 그처럼 많은 죄들로 바리새인들을 고발하셨기 때문이다(마 23장).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요한복음 15장 18절-16장 4절에서 약속하신 박해가 이제 일어나고 있었다!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얼마나 인내하시는지 알아보자 ! 이들은 세례(침례)요한을 죽였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계신다(벧후 3:9 참조).
절름발이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는 받을 만하지 못했었다. 이것은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용서하실 때 그의 죄를 잊으신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셨으므로, 베드로가 그 죄에 다시 마음을 쓰도록 만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 성경을 사용한다. 죄인들은 명석한 논쟁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히 4:12).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재판 때에 “A급 증거“였다(4:14).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행실을 지닌 구원받은 죄인은 성경이 진실하며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가장 좋은 증명이다(롬 6:1-6).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할 때에 박해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비열한 태도나 교만한 영 때문에 받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베드로가 사랑과 겸손으로 전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할 때 거칠게 굴거나 비판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우리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몰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할당될 형벌의 정도가 다르기는 하다. 진리를 안 사람이 그 진리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는 형벌이 가중된다.
4:1-4
▣ 최초의 박해-사도행전 4장-
1. 체포(4:1-4)
우리는 앞에서 이 사건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이것은 종교적인 탄압의 시작이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베드로의 설교에 반대했다. 물론 제사장들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로 고발을 당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멧세지가 그들의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주님은 자기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돌아 오셨을 것이다.
행 4:5-22
2. 재판(4:5-22)
소집된 법정은 기본적으로 대제사장의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제사장 직분이 타락하여 “가족의 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 법정은 유대인의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공식 모임이었다. 이들 중에는 몇 주 전의 그리스도를 “재판“할 때 보조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7절에 나오는 이들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재판을 상기시킨다(마 26:57- 참조). 예수께서는 세상이 그를 취급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제자들을 대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일이 있다(요 15:17-). 마태복음 21장 23-44절에 나오는 지도자들도 똑같이 주님의 권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질문한 일이 있음에 대해서도 주목하자.
베드로의 응답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며, 누가복음 21장 12-15절과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성취한 것이었다. 오늘날 신자들은 이 약속을 연구 또는 교육과 설교를 위한 준비를 등한히 해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워서는 안된다. 성령은 성실하게 시간들을 보내는 중에서도 준비가 불가능했던 때와 같은 긴급한 사태에서 우리를 지원하신다.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못박혔다가 이제는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무서운 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떨리는 일이었을까?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이들의 마음은 굳어 냉담해 있었기 때문이다.11절은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돌로,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을 건축가로 밝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 118편 22-23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유대의 지도자들과 논란을 벌일 때에 이 구절을 사용하셨다(마 21:43). 왕국을 건설할 선택된 돌이신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거절했으므로, 그 거절당한 돌이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다(엡 2:20). 그리스도를 돌로 가르친 성경을 찾아보려면 스가랴서에 대한 내용을 복습하라.
베드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였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그러나 12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 구절이 모든 시대의 모든 죄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베드로의 시대에 이 민족에게는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주님은 몇 년 안에 이루어질 무서운 파멸의 운명과 비극에서 이 민족을 구원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13-17절에서 “배심원들“은 휴정을 하고 이번 사건을 깊이 생각했다. 이들은 사도들의 담대함에 감명을 받았다. 이것은 베드로가 며칠 전에 두려워서 주님을 부인한 것과 같이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학문이 없는 범인“이란 “배우지 못하여 글을 모른다“는 뜻이다. 즉, 사도들은 랍비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성경에 대하여 그처럼 많이 알고 있었다. 지도자들은 또한 이 사람들이 동산에서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며, 주께서 죽기 전에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주간 동안 함께 있던 자들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거지가 고침을 받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들은 그 기적을 부인할 수가 없었으므로, 따라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침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사도들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향한 이들의 충성은 정부로부터 보호되는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마침내 그들을 가게 하였다 ! 제자들의 담대함, 말씀의 능력, 고침받은 거지의 간증은 모두 판관들의 말문을 막기에 충분하였다."
행 4:23-37
3. 승리(4:23-37)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와 같은 동료“에게로 향하는 법이다(요일 2:19).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교회는 통곡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하는 중에 기도하였다 ! 25-26절에 나오는 구절은 시편 2편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시는 명백한 메시야에 관한 시로서, 그리스도가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기 위해 돌아오실 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신자들이 왕국에 관한 시편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1-7장에서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왕국이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보다 확실한 증거이다.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도를 매두었기 때문이다(요 15:7).
이들은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써 응답하셨다. 이것은 “성령의 두번째 강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능력으로 채워 주기 위해 오시는 것이지 선지자들에게 세례(침례)를 주려고 오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은 또한 이들에게 놀라운 단합을 주셨으므로, 이들은 자기의 물건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기독교 공산체제“는 성령이 임재하신 또하나의 증거였다. 이것은 모든 국가가 성령을 받아 이타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때인 왕국 시대에 대한 본보기였다. 이 공동체는 오늘날 소련의 공산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내 것은 네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소련공산주의자들은 “네 것은 내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물건의 통용이 일시적이라는 것과,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본보기는 아님에 유의하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사랑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반면, 분리된 공동체에서 살며 소유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사도행전 11장 27-30절에 보면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신자들에게 구제 헌금을 보내야 했던 일이 있다(롬 15:26/고전 16:1-3/고후 8:1-4/고후 9:2).
이스라엘이 왕국을 거절하였을 때 성령의 이 은혜로운 사역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신약 교회의 본보기는 디모데전서 5장 8절과 데살로니가후서 3장 7-13절에 있다.
“담대함“은 본 장의 핵심 사상인 듯하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담대함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였고(8, 31절), 기도하였으며(29절),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였다(25-28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먹고 기도하고 성령께 순복한다면, 우리의 행실과 전도에 있어서 담대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담대함을 주시기 때문이다(히 4:16/히 10:19).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의 영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들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신실하면 주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영화롭게 될 것이다.
13절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으며, 그리스도께로부터 놀랍게 3년을 배운 터였다. 영적인 진리들을 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바울은 배운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께 능력으로 사용되었음을 잊지 말자. 교육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님과의 밀접할 행보(行步)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말씀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가 그랬듯이 문제가 올 때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고침을 받은 거지처럼 현실의 살아 있는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최선의 증명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첫째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분은 주님이시다(19절). 사람들은 주님께 마음껏 봉사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생애를 포기한다. 이러한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소홀히 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
행 5:1-42
▣ 표적과 기사-사도행전 5장-
사단이 아직도 신자들을 공격하고 있으며, 이중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내적으로는 속임수를 쓰고 외적으로는 박해를 가한다. 사단은 거짓말장이이며 살인자인데, 본 장에서 두 가지 영역에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내적인 반대(5:1-16)
여기서 우리는 사단이 교회 안에 있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여 주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뱀처럼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본다.
속임수(1-2절)-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실제보다도 더 영적이라는 명성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기증을 하자 시기를 하여 똑같은 인정을 받고 싶었다(4:34-37). 명심할 것은 이들의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돈을 훔친 것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베드로는 4절에서 그 돈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들의 죄는 실제보다도 더 영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위선에 있었다.
적발됨(3-4절)-베드로는 성령께서 주신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매고 푸는“ 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본다(마 16:19). 죄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부부는 아무것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무서운 죄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다. 이들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은혜스럽게 일하시며 그들의 소유를 팔아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죽음(5-11절)-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도들을 직접 다루셨기 때문에 교회의 “권징“의 관례는 아니었다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왕국시대 동안에 행사하실 심판의 유형을 예증하는 것이다(렘 23:5/계 19:15 참조). 이 사건은 목회자와 교회가 어떤 문제를 조사하고, 회개와 용서의 기회를 주며,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회복시키려고 힘쓰는 지교회에서의 징계의 본보기는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분명한 판례이다.
본 장을 여호수아 7장과 비교하면 재미있다. 아간은 탐욕을 일으켰고 하나님께 죄를 숨기려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는 것을 보자 교회에는 큰 두려움이 생겼다.간증(12-16절)-교회는 한 마음으로 단합되고 확장되고 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일은 교회가 죄를 깨끗이 할 때에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사단은 교회 안에서 일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려 하고, 욕되게 하며 파괴한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한다면 사단의 작전을 간파할 수 있으며 교회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교회는 최선의 간증을 가진 사람들만을 환영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가담하기를 두려워하였다. 지교회는 어떤 표준이 설정되어 있어야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게 해야 한다. 이 시기에 베드로는 핵심인물이었음에 유의하자. 그의 그림자라도 병고침을 받게 한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사단은 내면으로부터 교회 일을 반대하고 있다. 바울은 늑대들이 양떼를 공격하려고 밖에서 들어왔다고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경고하였으며, 또한 “너희 자신들 중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행 20:29-30).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외부로부터의 많은 반대가 아니라 내부에도 죄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새로운 회원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곁 길로 가는 사람들을 징계할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행 5:17-42
2. 외부의 반대(5:17-42)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자극을 받는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성공과 인기에 대한 시기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이번에는 아마도 전체 사도들이 이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며, 특별한 수용실이 아니라 “공적 감옥“이었을 것이다. 주님의 천사(그리스도 자신일 수도 있다)가 그들을 구해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은혜스럽게도 이 민족에게 구원의 멧세지를 들을 또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 이 사람들은 성전으로 갔는데, 이는 거기에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죄수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지도자들이 얼마나 놀랐겠는지 상상해 보라.
항상 구해내는 것만이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야고보가 목베임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으나 베드로는 구해내셨다(행 12장). 이 각각의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취된 것이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호칭하기를 거절하는 것에 유의하자 !(28절) “이 사람의 피“라는 말은 이 민족이 마태복음 27장 25절에서 한 말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피는 지금도 유대 민족에게 돌려져 있으며, 그들이 메시야를 보고 자신의 죄에서 풀려날 때까지 그러할 것이다(슥 12:9-13:1).
베드로와 사도들은 굴복하려 하지 않고, 지도자들이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다시 선포하였다(31절). 지도자들이 회개하면 백성들은 이들의 본을 따를 것이다(요 7:48 참조). 검과 같은(히 4:12) 말씀은 통치자들의 마음을 찔렀으며, 이 들은 예수님을 죽였던 것처럼 사도들을 죽이고 싶어했다 !
이 때, 가말리엘이 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 하시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알아보자고 충고하였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중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정하기를 미루는 것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그가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주셨다. 결정을 연기할 이유는 없었다 ! 가말리엘이 체포를 주도한 사두개파 그룹이 아니고 바리새인이라는 사실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는 사도 바울을 가르친 유대인의 랍비이기도 하다(행 22:3). 그러나 그의 제자가 그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였다.
사도들은 두들겨 맞고(신 25:2-3)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의 특권으로 간주한다(빌 1:27-30 참조). 매일 공식적으로, 그리고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함으로써 교회의 사역이 지속되었던 것을 주목하자.
▣ 실천적인 교훈
사단은 뱀처럼 또는 사자처럼 와서 내적으로 속이려 하고 외부에서 “삼키려고“ 한다. 우리는 경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은 주님의 일을 망하게 할 것이다.
교회 내부의 위선은 교회 밖의 적들보다 더 무서워해야 한다.
죄를 방임하면 문제를 초래한다. 죄는 즉각적으로 완전히 처리되어야 한다.
성령만이 사단이 일하는 때를 알도록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실 수 있다.
사단은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하여 교회가 분열되고 비난받는 것을 보기 원한다.
탐욕이란 무서운 죄이다. 탐욕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였으며 아간과 그의 가족을 죽였고, 이 죄를 실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일 것이다.
사람들은 초대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두려워했다(5:13)!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담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 우리는 삼가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영적인 능력과 확신이 없는 하나의 사회적인 집단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