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대충 계획을 세운 것이 횡성 홍천에 있는 11기의 석탑을 모두 다 보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보물도 있고 지방문화재도 있다.
강원도의 특성상 보고는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대하고도 섬세하게 찬란했던 불교문화의 선두대열에 있던 경주나 경상도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 할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지방은 그저 지방일 뿐, 모든 것은 거대한 수도로 집중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쩌랴...
거기도 사람이 살았고 수도였던 경주나 변방 강원도나 똑 같이 삶을 고뇌하며 힘들게들 일생을 보냈을 것을...
큰 길이 나 있는 횡성을 거쳐 홍천으로, 다시 인제부근까지 갔다가 괘석리, 물걸리, 횡성댐 쪽으로,
산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큰 길로 다녀서는 강원도릉 알지 못 하고 사실은 사잇길,
험하디 험한 고갯길을 넘어 보아야 강원도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그 외딴 산골짜기, 험한 계곡에도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러는 가 본 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왼종일 산길을 헤매야 하는 고된 길이다.
횡성서 홍천으로 가는 길은 넓게 닦여져 있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신호등이 가끔 있어서 그렇지 요즘 새로 나는 국도들은 고속도로 못지 않다.
상동리로 가기 위해서는 5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공근면에서 406번 도로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전에부터 유심히 보던 길이라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밝은 가을 날씨에 햇살이 좋고 차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라 느긋하게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평화로운 농촌풍경이라 사진을 찍을만한 것이 더러 있었지만 오늘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은지라
마음이 급해서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여다 볼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주변 풍광을 즐기기도 잠시,
한참을 달렸다 싶은데도 아직 상동리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아서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너무 올라 온 것은 아닌지, 혹시 다른 길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으로 마을을 몇 개나 지나서 길에 있는 어느 어른에게 상동리를 물으니 더 올라가라고 한다.
길은 맞은 것 같으니 일단 안심이다.
한참을 더 가니 바로 도로 옆에 삼층 석탑과 불상을 나란히 모셔 두었다.
<원경>
<중경>
삼층석탑은 밭에 있는 것을 주민들이 여기로 옮겼다고 하는데 원래 절 이름은 성덕사(成德寺)였다고 한다.
탑은 그런대로 잘 생긴 모습이어서 일단 기분이 좋았다.
1998년 복원하면서 기단의 일부와 3층 몸돌은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쓰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매이고 석재도 좋아서 밝으며 품위를 잃지 않았다.
기단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하층과 상층 모두 양 우주에 중간에 탱주를 하나씩 돋을 새김으로 하였다.
하층 기단 면석에는 연꽃 무늬가 한 면에 두 개씩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하층기단 갑석은 네 개의 돌로 맞춰져 있으며
약간의 경사가 있다.
하층 기단 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하나의 통돌로 되어 있고 2단의 탑신받침을 하였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탑신에는 우주만 있을 뿐 탱주는 생략되었다.
비례는 2층과 3층의 몸돌이 1층 몸돌의 1/3 정도여서 안정되어 있으며 지붕돌의 경우 1층과 2층은 4단의 받침으로 하였고
3층의 경우는 3단으로 하였다.
낙수면은 경사가 느린 편이고 두께에 비해서 너비는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추녀선은 직선이고 네 귀퉁이는 반전을 주어서 약간 올려져 있는데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나 있다.
상륜부는 모두 소실되고 없었다.
전반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았지만 장식이 들어가는 등
여러가지의 변화로 보아 고려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깊은 산골에 이 정도의 탑을 건립하였다면 민중들의 불심도 대단하였을 것이다.
신라석탑의 양식이 다른 지역으로는 널리 전파되지 못 했던 것에 비추어 이 곳 강원도에서는 원주, 횡성, 홍천까지,
동해안 쪽으로는 양양, 속초까지 미쳤으니 강원도는 옛날부터 중앙 권력에 아주 순종적이었던가??
아니면 독자적인 문화가 따로 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의 문화를 쉽게 수용한 것인가??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 (횡성군) |
명 칭 |
상동리삼층석탑(上洞里三層石塔)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71.12.16 |
소 재 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3 |
==============================================================================================================================
삼층 석탑 옆에는 석불좌상이 한 분 모셔져 있다.
광배는 사라지고 없고 머리도 새로 만들어 올린 것이다.
불두는 사라졌지만 좌대와 불신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좌는 8각연화좌인데 연꽃을 새긴 원형의 상대와 각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중대는
전형적인 9세기 대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당당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무릎 위에 올려 왼손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자연스런 손모양,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의 유려한 옷주름 등에서도 역시 이상적 사실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고 적혀 있다.
불두는 새로 올린 것이어서 불신과 완전한 일체감을 이루지는 못 하지만
다른 지역의 새로 올린 불두보다는 잘 어울리는 편이다.
큰 눈에 부드럽고 온화한 웃음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불상들을 보면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그 많은 불상의 불두는 누가 왜 다 떼어버렸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돌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잘게 부수지 않는 다음에야 어디에 있어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기야 불두만이 문제랴...
거돈사나 고달사 같은 큰 절터에는 어마어마한 좌대만 남아 있고 불상들이 사라진 것도
의아하기로 말하면 몇 갑절 더 의아한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 큰 불상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기중기나 포크레인으로 옮겨 갔을 리는 없을 터.........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횡성군) |
명 칭 |
상동리석불좌상(上洞里石佛坐像) |
분 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등록)일 |
1971.12.16 |
소 재 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3 |
시 대 |
통일신라 |
==============================================================================================================================
처음 출발이 기분이 좋았던지라 이제 길이 좀 멀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이 도로는 수타사가 있는 공작산 밑 노천리에서 444번 도로와 만나 동면 속초리를 지나 홍천으로 가는 길이다.
거기에서는 희망리 삼층석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삼층석탑과 좌불을 두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항상 떠나는 마음은 뒤가 당기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무겁게 자리잡곤 한다.
나이 탓인가...
다시는 만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슬픔,
언제나 이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안타까움이 언제나 가슴에 하나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길은 멀고 험하니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2010. 9. 29.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횡성 상동리 삼층석탑
머루눈
추천 0
조회 78
10.10.01 13:59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풍부한 지식과 글솜씨와 사진촬영술과 컴퓨터 조작능력과 취미와 시간할애의정성과 모든것이 버무려져 올라오는 작품들....
점점 강원도가 가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강원도지사님이 머루님께 상이라도 내려야하지않을까...퍼떡 떠오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