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5.월 새벽예배 설교
*본문; 대하 26:4~5
*제목; 웃시야왕의 형통의 이유
“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대하 26:4~5)
유다왕 요시아에서 아마샤를 거쳐 웃시야가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 ‘웃시야왕’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더라”(5절)고 고백되어 있습니다.
주일 낮예배에 말씀드린 것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모든 문제가 회복되고, 은혜로 채워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진 자녀에게 이렇게 해주시겠다고 우리 주님 예수께서 약속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시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웃시야 왕에게도 그 형통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찾아보고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 웃시야는 ‘4절’에 보면,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성품 중의 하나가 바로 “정직”입니다.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의 인생을 돌보시고 형통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귀는 “거짓의 영”입니다. 항상 속이고 숨기고 감추려 합니다. 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합시다.
두 번째, 웃시야는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아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묵시”는 ‘히, 엘로힘’입니다. 즉, 웃시야는 하나님을 잘 아는 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아니, 그 분의 뜻을 좇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형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웃시야는 ‘5절’에 보면, 하나님을 찾는 자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구하고 그 앞에 서는 자였다는 의미(히, 다라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케 해주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아침에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항상 정직하고, 하나님을 잘 알아 그 분을 따르며, 늘 그 앞에 서는 복된 자, 형통한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첫댓글 웃시야왕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 서있던 자였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우리도 웃시야의 이런 고백처럼 살아서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풍성히 누리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