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 한 장 -49회-
“박 시인이 사표를 내면서 사무실 정리도 잘 안한 모양입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는 곽 시인의 말에 긍정을 하기 힘들었다. 박 시인의 면면을 보아서는 그렇게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이 일을 벌이거나 중단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박 시인에게 연락이 안 되니 복잡하군.”
곽 시인과 전화통화 중 다른 곳에서 전화가 들어오고 있다는 기계음이 들린다.
“곽 시인, 어디서 전화가 오는데 내가 다시 전화 하도록 하지.”
나는 곽 시인의 대답도 듣지 않고 통화 중 대기를 누르자 곧 저편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김 시인님! 저 박 은교입니다.”
“아니! 박 시인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놀랐다. 곽 시인은 박 시인과 통화가 안 된다고 하는데 박 시인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 곽 시인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계속 통화중이시더군요. 그래서 시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곽 시인과 내가 통화 중이었는데, 곽 시인의 걱정이 크더군.”
나는 그 말을 하며 핸드폰의 액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033. 박 시인이 내게 전화를 한 전화번호가
강원도 지역 번호였다. 그러고 보니 바로 그 집의 전화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의 일도 급한 대로 정리가 되어서 내일 올라갈 계획입니다.”
“정리가 되다니?”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무슨 정리란 말인가?
“하여간 올라가서 곽 시인님과 함께 식사라도 하면서 자세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저
녁 시간 비워두십시오. 곽 시인님께는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 은교시인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내
게 건네면서
“시인님, 이 사진 아시지요?”
나는 그 사진을 받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 사진에는 내 책 속 갈피에 있던 사진, 공원에서 웃으면서
찍은 여자의 사진과 닮은 얼굴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제가 간직하고 있던 사진입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건가?”
곁에 앉아있던 곽 시인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박 시인은 곽 시인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가 내게
하고 싶은 말부터 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여자였습니다. 내가 다른 여자를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여자 말입니다. 나는 김 시인
님이 알려주신 주소대로 다음 날 강원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만났지요. 명희라는 그 여자 아이가 바
로 제 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명희가 국문학을 하겠다고 한 것도 어려서부터 제 엄마인 선영씨
에게서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지요. 선영씨는 내가 미국으로 떠난 후 내가 다른 여자와
한국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실어증에 걸렸고, 하지만 문학에 관한 집착이 그
의 정신적인 면에서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지. 시인. 이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하더군요, 거
기에 이모되는 분이 명희에게 엄마의 남자는 문학을 하는 남자라고 말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