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4:1-21 일반화의 오류
7일 동안 욥의 상황을 보았던 친구들이 드디어 입을 엽니다. 친구들의 생각을 듣는 것은 유익합니다. 하나님께서 친구들의 생각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친구인 엘리바스가 대답합니다. 엘리바스는 첫 말부터 몰아칩니다. 욥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여 대하였던 모습을 지적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충고를 들으면 싫증을 내지 않았고, 또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사람 즉 게으른 사람들을 강하게 하였지 않았느냐고 지적합니다. 넘어지는 자를 붙들어 주었도, 무릎이 약한 자 즉 연약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말합니다. 욥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격려하였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아픔과 고통을 당하자 힘들어 하고 놀라는 것을 본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욥의 자랑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욥의 온전함이었다고 인정합니다. 욥을 생각할 때 누구나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님 경외와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모습에서 실망하였다는 엘리바스의 진단입니다.
엘리바스는 더 욥의 심장을 찌릅니다. 생각하여 보라고 하면서 죄없이 죽은 자가 없고, 정직한 자가 망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욥이 자신들이 모르는 죄를 지었고 거짓을 하였다는 함의가 담긴 말입니다.
그러면서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당연하 이치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뿌렸다고 단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신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자의 비유를 통하여 욥과 그의 가족의 흩어짐을 지적합니다. 결국 모든 고통의 근원이 욥에게 있다는 확신입니다.
엘리바스는 단호하게 자신이 본 환상을 통하여 욥의 상태를 확정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깨끗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대로 믿지 않으시고, 천사도 미련하다고 하십니다. 하물며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더 더럽고 미련합니다. 사람들의 죽음은 티끌이 사라짐과 같습니다. 기억하는 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혜가 없어서 죽습니다. 이 진단앞에 누가 자신있게 반박하겠습니까? 엘리바스의 생각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음에 문제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반화를 욥에게 적용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보다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고난도 아닙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욥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친구의 내면까지 온전히 알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단정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욥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엘리바스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정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은 단정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실수를 합니다.
오늘도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내 눈의 들보를 보는 일에 우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픈 자를 위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픈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오늘도 엘리바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