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캘리포니아 워크숍
즉각적으로 신을 접하는 길 한가지는
아름다움을 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성공회 대성당에서 신을 발견한 것도
아름다움을 통해서였습니다.
거기서 나는 주교의 복사이자 보이 소프라노였습니다.
이번 생의 몇가지 경험을 간략히 이야기 할 것인데요.
그러면 나의 괴이한 면이나 이상한 행동도 좀 설명이 될 것입니다. 웃음
그 시작은 세살 때
무 nothingness에서 빠져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전 생에서
궁극의 실상이라고 믿었던
공 void의 무의식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나는 불교의 구도자로서 여러 생 동안
부정 negation의 길을 걸었고
몸을 벗어나면 무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공이 실제라면 거기서 머물 수 있겠지만
공은 실제가 아니니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세살 때 공에서 빠져나오며
쿵!하는 충격과 함께
문득 내가 실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모차에 누워있는 작고 하찮은 육체로
존재함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싫었고 마음에 안들었지만
실재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실재한다는 것에
충격적으로 직면했습니다.
그건 마치
궁극의 진실이 공이 아니라고
반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실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재하게 되자,
실재하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난제가 곧바도 들이닥쳤습니다.
내가 실재하게 되었다면
내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실재하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이 갑자기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생의 양극성, 이원성, 상반성이자 난제였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데 50년이 걸렸습니다.
궁극의 실상은 모두 있음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음일까요?
의식수준 850에서는 저절로 해결되는 이 의문이
당시에 내가 직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애들이 뭐하고 놀지를 고민할 때
나는 실재함과 질재하지 않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웃음
애들이 스틱볼을 할때
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집에 '서양의 위대한 책들'이 다 있고요
서양의 위대한 책들에 심취하는 사람은
무엇이 진실이고
어떻게 하면 진실을 알 수 있을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출현했던 이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집대성한
서양의 위대한 책들의 의식수준을 측정하면 468이 나옵니다.
즉 지성에 갇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종교와 과학, 영성과 과학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할때가
문제가 됩니다.
과학이 거기까지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수준을 측정해보면
과학이 400대에 다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아이작 뉴턴 모두 499입니다.
그것이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입니다.
어릴 때 나는 아주 독실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에서 시달리곤 했습니다.
죄짓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했지요
신부님이 죄란 우리 영혼에 생기는 얼룩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스크린 같은 것에 생기지만
하느님께는 다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건 나에게 편집증을 일으키고도 남을 말이라(웃음)
고해성사를 하러 가곤 했습니다.
알다시피 고교회파 성공회는 천주교화 많이 비슷합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있던 고해성사에는 되도록 늦게 참석했고
다음날에는 되도록 일찍 지내는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고해성사와 영성체 사이에 죄를 지으면
안되었으니까요. 웃음
토요일 오후 4-5시 사이에 고해성사를 마친 다음에
일요일 아침 첫 영성체 시간인 7시까지 12-14시간 동안만
잘 버티면 죄를 피할 수 있는 거죠. 웃음
그 시간 동안은 생각을 감시하면서
아주 아주 조심해야 했는데
생각을 통제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겁니다.
녹색 낙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어떻게되는지 말이에요
5분동안 녹색 낙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들어 봤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죄를 피하곤 했는데
한번은 교회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차가 1929년 형 포드 모델이었는데
차지붕을 떼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교회에 다 왔을 즈음에 10미터 크기 광고판에
수영복 광고가 보였습니다.
육감적 몸매의 10미터짜리 금발이 누워 있더란 말이죠
하느님 맙소사! 웃음
열네살 소년들이 다 그렇듯이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광분하던 판에
10미터짜리 수영복 광고는 죄지을까봐 공포에 떨게 하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그날 아침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벼락에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신의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극도로 자기중심적이어서 전횡을 일삼는 자라면
두려움을 갖는 편이 분별있는 것이겠죠.
더욱이 그런 신의 개념이 오래된 기성 종교에서는 지배적인 것이었습니다.
종교기관이 대중을 통제할 막강한 권력을 업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신이 궁극의 위협수단이었습니다.
궁극의 악랄함이 있는
사실상 악마적이고, 사악하고 보복하고 질투하고
편집증적이고 불안정하고 불안해하는 신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입니다.
그는 편애하는 인간들이 있어
여러분이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면 신이 도와주길 바란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큰 웃음
...
열두살 내지 열네살 때
위스콘신주에서 가장 긴 경로로 신문을 배달했습니다.
자전거로 외딴 시골길을 30km쯤 달려야 했죠
한번은 영하 10도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 속에서 신문이 몽땅 날아가 버렸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데 집에 도착할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고
집에서 한참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 참인데,
자전거가 빙판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신문이 어둠속으로
날아가 버린 겁니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좌절했습니다.
그러고는 '눈더미를 파고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월 말의 위스콘신주에서는 눈 쌓이는 높이가 3미터는 되기 때문에
나는 눈더미에 구멍을 파고 들어갔습니다.
얼어붙은 표면을 깨고 안으로 기어 들어간겁니다.
갑자기 너무나 놀라운 상태가
나를 압도했습니다.
그런 상태를 너무 많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면 그 상태가 다시 시작되니까요.
무한한 존재의 평화로움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과도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자아는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나라는 것 that which i am과 다르지 않은
이 무한한 존재의 총체성 totality만 있었습니다.
작은 나self가 곧
이 존재의 큰 나Self,
모든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고
모든 시간이 끝난 후에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비언어적인 상태였습니다.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그 존재와 하나라는 앎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영겁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상태는 시간 개념상으로 측정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무한히 긴 기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세속의 개념상으로 무한한 것이죠
그런 상태가 끝나고 보니 아버지가 내 발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죽음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육체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대단히 슬퍼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때문에 육체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혼자 숲속을 걷다가
모든 시간을 통틀어 인류전체가 겪어온 모든 고통에 대한
완전한 앎이 내게 생겼습니다.
설명할 길이 없는 어떤 앎이 생기면서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것에 칙면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모든 고통을 목격했습니다.
휴! 세상에..
그 순간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신을 믿는다는 것은
곧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었으니까요.
발톱 무좀균도 신이 창조했었다고 믿었습니다. 웃음
그러니 신은 악당이자
모든 것의 창조자로서 그 모든
끔찍하고 섬찟한 고통 또한 창조한 것입니다.
나는 그런 신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개체는 이미 진실에 헌신하고 있었기에
그런 신은 진실이 아님을 인지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깊지 못했던 나는 내가 목격한 것이 인간 에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매일 밤 뉴스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들을 말이죠.
신은 왜 그런 일이
내 아이에게 벌어지게 했을까?
왜 버스에 치이도록 놔두었을까>
그렇지 않습니까?
카르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가 된 이후로는
정신분석을 통해 진실을 탐구했습니다.
아주 놀라운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위대한 철학책과 위대한 문학작품을 죄다 읽고
선이나 기타 여러가지 것에 관한 책도 읽었지만
오히려 절망감이 깊어져만 갔습니다.
삼십대 중반 쯤에는 상태가 더욱 심해져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진실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상관없었고
그것을 더이상 신이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 삶은 멍청한 행동주의나 조건화된 반사행동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